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181화 (181/486)

EP.181 바라노라스의 전진기지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돌풍 패턴이 등장하면 중앙으로 달리거나 바닥의 장애물을 붙잡고 늘어지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서릿발과도 같은 민국의 호통이 영웅들에게 날아들었다. 지금까지 이어진 트라이 도중 낭떠러지로 추락했던 이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낭떠러지 근처로 접근하지 말 것, 카사랴가 날개를 펼칠 때 최대한 중앙으로 모일 것. 이 사실을 머릿속에 기억하는 게 그렇게나 어려워?! 너희들 전부 붕어 대가리야?!”

공대장의 말에 모두들 입을 꾹 다물었다.

분명히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투에 집중하는 동안에는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특히 카사랴처럼 공중을 오가는 괴물은 더더욱 본인들의 위치를 예측하는 게 힘들었다. 게다가 전투가 진행되는 카사랴의 둥지는 공간이 그리 넓은 전장이 아니었다.

하물며 딜러들은 부족한 딜량 때문에 쉴 새 없이 카샤라를 쫓아다녀야 했다. 본인의 위치를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한참 동안 팀원들을 몰아붙였던 민국이 짐짓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채찍을 휘둘렀으면 이제는 당근을 줄 차례였다.

“그것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괜찮아. 하지만 평생 이 놈만 잡고 있을 건 아니잖아? 일단 딜량 문제는 둘째 치더라도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 만큼만 피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네, 공대장님!”

민국의 피드백이 끝나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투가 조금 거칠기는 했지만, 민국의 말대로 평생 이 녀석만 붙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스펙의 부족이 아니라 본인들의 실수 때문에 계속해서 트라이를 실패하고 있었다.

결국 기량 문제라는 이야기인데 그런 것이라면 자존심이 상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제기랄.’

아니나다를까 본인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공격에 집중하다가 두 번이나 낭떠러지로 떨어진 시라누이 마이는 자신의 입술을 질끈 깨물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일본의 초특급 유망주라는 수식어가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낭떠러지로 추락한 경험이 있는 다른 여성들도 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다시 트라이에 들어갑니다.”

멤버들이 장비를 점검하는 동안 민국은 본인의 둥지를 날아다니는 하피 퀸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카사랴와 눈이 살짝 마주쳤다. 눈동자가 가늘어지면서 민국에게 흥미를 보이는 몬스터. 자신의 범위 안이었다면 분명 달려들었으리라.

“캬르륵!”

민국의 위치를 확인한 하피 퀸은 코웃음과 함께 다시 날개를 펄럭였다. 열 명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병력은 자신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이들이었다.

그러나 몇 번이나 상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에 카사랴를 민국과 다른 인간들에게 별다른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 당연하지만 이런 카사랴의 행동은 민국의 자존심을 툭 건드리고 있었다.

“오늘 너는 무조건 잡는다.”

자신에게 저런 도발을 했다가 기름에 튀겨진 병아리들이 있는데 아무래도 저 괴물은 그 소문을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민국의 혼잣말과 함께 전투가 시작되었다.

콰콰캉! 쾅!

전투 시작부터 딜러들의 공격이 요란하게 펼쳐졌다.

딜량이 중요한 레이드인 만큼 딜러들은 본인들의 마력을 아낀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때문에 탱커인 현아와 타냐도 어그로를 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타냐는 어그로를 잡기 보다는 방패를 들어 하피 퀸을 후려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메인 탱커인 오현아가 그만큼 하피 퀸의 어그로를 꽉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그로 안정되었으니까 마음껏 패도 돼!!!”

현아가 보유한 레전더리 클래스인 피닉스 나이트의 스펙은 아랫단계의 탱커 클래스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났다.

게다가 피닉스 나이트의 특성인 불꽃의 날갯짓으로 인한 데미지가 추가적으로 더해지면서 현아는 도발 능력으로 인한 어그로 상승효과 뿐 아니라 본인의 딜량으로도 하피 퀸의 적대감을 추가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

그만큼 딜러들이 더욱 강한 공세를 쏟아낼 수 있다는 이야기로 괜히 세계 유명 공격대들이 레전더리 클래스 스톤을 구하기 위해 돈을 물 쓰듯 쓰는 게 아니었다.

“하피 깃털 나왔어요!”

“불길 위치 확인해!!!”

“여섯시! 여섯시!”

누군가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 동안 하피 퀸의 어그로를 잡은 현아는 전투가 벌어지는 둥지의 중앙으로 이동했다. 괜히 외곽에 있다가 하피 퀸이 돌풍을 일으켜 팀원들을 추락시키면 큰 일이었다.

“켄달! 이동해! 곧바로 돌풍이 날아올테니, 중앙으로 달릴 준비 하고! 여차하면 켄달이 불꽃을 뚫고 지나가야 할 수도 있으니까 지젤 너는 상황 봐서 보호막 잊지 말고!”

“알았어!!!”

민국의 다급한 지시와 함께 얼마 지나지 않아 치이익하는 소리가 모두의 귀로 들려왔다.

카사랴의 깃털이 불길에 의해 태워지는 소리였다. 그리고 영웅들을 노린 자신의 깃털에 화염에 휩싸여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카사랴가 분노에 찬 목소리를 내었다. 자신의 일을 방해하는 화염 괴물에게 향하는 분노였다.

잠시 후, 카사랴가 자신의 날개를 펄럭이며 돌풍을 만들어 내었다.

“중앙으로 날려!”

“천근추! 천근추!!!”

돌풍에 휩쓸린 이들이 마치 잔가지처럼 나뒹굴었다.

그렇게 나뒹군 이들은 바닥의 무언가를 붙잡고 버티거나 몸을 낮춰서 중앙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둥지에서 떨어지기 않기 위해 다들 필사적이었다.

민국도 마찬가지였다.

돌풍이 등장하자마자 몸을 납작 엎드린 민국은 지면에서 튀어나온 부분에 의지하면서 엉금엉금 둥지의 중앙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돌풍이 지나가자 다들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메인 탱커인 현아는 바로 도발 능력을 사용해 카사랴의 어그로를 잡는 모습이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네.’

자리에서 일어선 민국은 빠르게 고개를 돌려 공격대의 상황을 파악했다.

벌써 여섯 번째 이어지는 트라이.

만약 추락한 이들이 있었으면 진심으로 실망을 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카샤라의 공격에 대응해나가며 민국은 공격대의 영웅들을 리딩하면서 계속해서 전투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5성과 6성 영웅이 반반씩 섞인 GGW 공격대의 딜량으로는 카사랴를 쓰러뜨리는 게 쉽지 않았다.

딜러들의 기량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동 나이대에서 수위에 손 꼽히는 이들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굳이 경계를 나누자면 상위 5% 정도? 그래도 해결책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내가 악의 칼날로 클래스를 변경할게.”

공격대 딜러들의 평균 기량이 상위 5% 라면 힐러진은 이야기가 달랐다.

특히나 브라질의 뷘드셴 자매는 세계 랭킹 24위와 38위에 랭크된 특급 유망주들이었다.

그리고 카사랴 레이드는 불길로 깃털만 잘 처리할 수 있다면 공격대의 힐량이 그렇게까지 많이 필요한 괴물이 아니었다. 즉, 두 명의 힐러로도 충분히 전투를 진행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어서 악의 칼날로 클래스를 변경한 민국은 질서의 수호자를 갈무리하며 단검을 점검했다. 그리고는 목청을 험험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면 다시 트라이 들어가는데, 딜러 분들 저보다 딜량이 낮으면 곤란 합니다?”

“어, 음….”

“네?”

다섯 쌍의 눈동자가 민국에게 집중되었다.

민국이 악의 칼날로 레이드를 진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때 민국은 하늘을 꿰뚫는 딜량을 기록하면서 팀원들을 경악에 빠뜨린 적이 있었다.

“물론 돌풍 때문에 추락하면 더 안 되고.”

암살자처럼 날카로운 조금 전과는 달리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팀원들을 향해 민국이 자신의 손가락을 흔들었다.

* * *

트라이가 다시 시작되자 이번에는 여섯의 딜러가 카샤라에게 달려들었다.

“조준, 발사.”

신나연의 의지에 따라 그녀의 마력구가 파괴적인 빛을 뿌렸다. 그 공격에 하피 퀸이 자신의 날개를 휘둘러 빛을 위로 튕겨내었다.

그리고 그 틈으로 이용해 하나의 그림자가 하피 퀸에게 접근했다.

“빈틈!”

민국의 단검이 휘둘러지자 카사랴의 날갯죽지에 기다란 상처가 생겨났다. 그래봤자 살짝 긁힌 수준에 불과했지만 어찌되었던 유효한 공격이었다.

“캬아아아악!!!”

민국의 공격에 화가 났는지 카사랴가 민국을 향해 날개를 휘둘렀다.

하지만 민국은 ‘악의 칼날’의 고유 스킬인 어둠의 끝자락을 사용해 유유히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리고는 선회하듯 전장을 돌며 팀원들을 향해 외쳤다.

“뒤로 돌아갈게!”

“제가 시선을 끌도록 하겠습니다!!!”

화염 대검을 앞세운 소정이 카사랴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는 커다란 검을 크게 휘두르면서 카사랴의 시선을 끌었다.

“엄호합니다!”

마력으로 보호되고 있는 단단한 깃털과 피부 때문에 당장은 제대로 된 타격을 줄 수 없는 최유나도 화살을 날리며 카사랴를 귀찮게 만들었다.

그 사이 민국은 열심히 단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악의 칼날도 사기 클래스라니까?’

뷘드셴 자매와는 반대편에서 전투를 하고 있는 까닭에 민국은 직접적인 피해를 입게 되면 바로 회복을 할 수 없는 위치에서 전투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포지션이 전투에 문제로 이어지는 부분은 아니었다.

유니크 클래스인 악의 칼날은 적의 급소를 공격할 때 마다 자신의 생명력을 일정량 회복하는 희귀한 패시브 능력을 보유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급소 공격은….’

모바일 가상현실게임인 GGW로 단련된 민국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했다. 현질 없이 컨트롤 하나로 우라디우스의 WFK를 달성한 게이머가 바로 자신이었다.

“캬아아아악!!!”

하피 퀸의 비명 소리. 돌풍으로 만들어진 거센 바람소리. 그리고 영웅들의 공세가 이어지는 소리.

여러 가지의 소리들이 뒤섞이면서 계속해서 시간이 흘러갔다. 처음에는 문제가 되었던 추락사도 이제는 어느 정도 경험을 쌓고 나니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했다.

부족한 딜량도 마찬가지였다.

악의 칼날로 전직한 민국의 합류는 단순히 딜러 한 명이 늘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실시간으로 갱신이 되고 있는 영웅 패드만 봐도 그랬다.

민국의 딜량은 전투에 참여하고 있는 여섯 명의 딜러 중에서 가장 높은 딜량을 기록하고 있었다.

시라누이 마이와 신나연이 그나마 따라오는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데미지 비율이 약 10%나 넘게 차이가 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잡았다!”

“나는 죽을 것 같아….”

“역시 잡기 힘든 괴물을 쓰러뜨리려면 힐러를 혹사시켜야 한다는 말이 맞았네요.”

그렇게 카사랴 레이드는 민국이 클래스를 변경을 하자마자 바로 승리로 끝이 났다.

다들 카사랴의 공격 패턴에 전부 익숙해져 있던 상황에서 오로지 카사랴를 쓰러뜨릴 딜량만 부족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카사랴를 쓰러뜨린 GGW 공격대는 카사랴를 상대하는 데 도움을 준 불꽃의 괴물을 시작으로 【A - 6】 난이도의 던전에서 등장하는 네임드들을 다시 차례대로 공략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종 보스로 보이는 마지막 상대를 앞에 두고 민국이 표정을 굳혔다.

‘질풍의 바라노라스.’

외형은 블루 드레이크가 비슷했지만 풍기는 분위기가 달랐다. 당연하지만 바라노라스에 대한 정보는 영웅 패드에도 없었다.

가라이의 심복이라는 바라노라스의 위치 그리고 오랜 기간 동안 이어진 어둠 괴물과의 전쟁을 생각하면 약간의 정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조금 의외였다.

“영웅 패드에도 정보가 나오지 않아. 새로운 몬스터야.”

“블루 드레이크와 함께 벌써 두 개체네요. 아, 진짜 정말 큰일이 나는 거 아닐까요?”

“언노운의 등장에 크게 의미 둘 필요는 없어. 어차피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때마다 벌어졌던 일이야.”

GGW 멤버들 역시 처음 등장하는 바라노라스를 보며 제각각의 의견을 내었다.

그래도 공통적인 뉘앙스는 있었다. 바로 눈앞의 녀석을 쓰러뜨려야 한다는 것.

“블루 드레이크의 상위 호환이라고 생각되는 녀석입니다. 일단 정보가 하나도 없으니 최대한 방어적으로 공략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부활석이 다수 깨질 각오를 하면서 시작된 레이드.

그리고 GGW 공격대는 전투가 시작된 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전멸을 경험해야 했다.

뿌우의 꼼수로 인해 6성으로 격을 낮췄다지만 질풍의 바라노라스는 원래 7 성급 괴물. 그래서인지 까다로운 공격 패턴은 둘째 치더라도 공격력 자체가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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