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182화 (182/486)

EP.182 바라노라스의 전진기지

“탱커의 피격 데미지 비율은?”

죽음에서 되살아난 민국이 외치듯 물었다.

“34, 37, 33.”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이어지는 현아의 대답에 민국의 얼굴이 보기 좋게 구겨졌다.

“나 참. 두 대만 맞아도 빈사고 세 대 이상 피격되면 힐이 들어가지 않는 이상 무조건 사망이라는 거네. 그것도 레전드리 클래스인 피닉스 나이트가 말이야?”

말을 마친 민국은 숨을 훅 내뱉었다.

질풍의 바라노라스를 쉬운 상대라 여기지는 않았다. 뿌우와 함께 여러모로 준비를 했다지만 상대는 7성급 괴물이었다. 지금의 전력으로는 분명 부족한 부분이 있을 게 틀림없었다.

그렇게 때문에 이런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었다.

‘다만 그 예상이 빗나가기를 바랐는데.’

대략 4에서 5초가량 메인 탱커에게 힐이 들어가지 않을 경우 탱커는 사망이라고 봐야 했다. 그 어떤 상황에서든지 말이다.

“최선을 다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메인 탱커 위주로 보호막을 사용해야 겠네. 들어오는 데미지 비율을 보면 벌써부터 머리가 다 아플 것 같은데?”

차례대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뷘드셴 자매들이었다.

베테랑답게 조금 전 민국이 던졌던 질문과 이어진 현아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그녀들이 아니었다.

“장비가 조금이라도 더 좋았으면 네 방 이상 버텼을 지도 모르는데….”

현아가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든 정신력으로 버텨보려고 했지만, 바라노라스의 공격은 그녀의 장비를 손쉽게 뚫어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장비를 얻기 위해 다른 던전을 공략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일단은 지금의 장비로 바라노라스를 쓰러뜨려야 했다.

“그래도 피닉스 나이트는 전투에서 되살아날 수 있지 않습니까? 저는 그런 것도 없습니다.”

러시아의 불곰 전차라는 이명을 지닌 타냐 루스가 자신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의 말대로 피닉스 나이트는 두 번의 날갯짓이라는 스킬로 인해 전투 중 한 번 다시 되살아날 수 있었다. 그러나 타냐의 클래스는 부활이 아니라 본인의 태세에 따라 공격력 혹은 방어력에 보너스를 주는 클래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탱킹만 놓고 보면 현아보다는 타냐가 조금 더 우위에 있었다. 클래스에 따른 숙련도가 굉장히 높았고, 본인의 몸 만큼이나 커다란 방패를 이용한 수준급의 탱킹 능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타냐를 메인 탱커로 둘 수는 없겠지.’

민국의 시선이 타냐에게 향했다.

그런 그녀라도 바라노라스라는 눈앞의 괴물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기껏해야 현아보다 한 방 더 버틸 수 있을까? 그런 것을 생각하면 실수로 한 번 죽어도 다시 되살아날 수 있는 현아를 메인 탱커로 두는 게 조금 더 나은 선택이었다.

“일단은 탱커의 생존에 신경을 쓰면서 공격 패턴을 파악해야겠네.”

바라노라스를 보며 민국이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상대가 강하다고 해서 공략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바라노라스의 데미지는 예상 외로 강력했지만 그렇다고 이 정도 수준의 괴물을 처음 상대하는 것도 아니었다.

‘우라노라스를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탱커라도 평타 두 방. 딜러와 힐러는 사이좋게 한 방씩.

심지어 꿰뚫기라는 스킬을 사용하면 보호막의 지원이 없을 경우 탱커조차도 한 방에 사망이었던 끔찍하고도 더러웠던 괴물을 떠올리면 질풍의 바라노라스는 그야말로 천사나 다름없는 녀석이었다.

게다가 바라노라스의 모든 능력을 파악한 것은 아니지만, 1분여의 전투 중에서 바라노라스는 강력한 공격 스킬, 약화 디버프, 소환수를 부른다거나 하는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블루 드레이크를 불러내는 건 강제적으로 봉인을 시켜버린 거지만.’

그런 것을 감안하면 1 탱커로도 충분히 탱킹이 가능해 보였다.

그렇다 해도 클래스 전환이 가능한 것은 아니니 타냐는 공격 태세로 트라이를 진행해야 했지만.

어쨌든 메인 탱커 혼자서 어그로를 끈다는 것은 그만큼 강하게 어그로를 끌 수 있다는 말이었다. 딜러가 강력한 공격을 연속해서 뿜어내도 어그로가 넘어가지 않는다는 말과 동일했다.

“일단은 바라노라스의 공격 패턴에 익숙해지는 식으로 트라이를 진행하겠습니다. 특히 메인 탱커. 스쳐도 세 방인데, 정타를 얻어맞으면 곤란하겠지?”

“최선을 다해서 버텨보겠습니다!”

민국의 말에 경례를 하듯 손을 들어 보이는 현아.

거대한 괴물을 코앞에 두고 전투를 이어나가야 했지만, 그녀의 눈동자에는 조금의 두려움과 불안감도 담겨져 있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트라이가 시작되었다.

* * *

“브, 브레스!!!”

“8시 방향에 불길! 그 쪽으로는 접근하지 마!”

“날개 펼쳤어! 돌풍 온다! 모두들 중앙으로 달려!!!”

민국과 GGW 공격대는 어렵지 않게 바라노라스의 능력을 파악할 수 있었다. 바라노라스는 본인들이 현재 공략하고 있는 던전에서 상대했던 괴물들의 까다롭다고 여겨지는 공격 패턴들을 전부 보유하고 있는 질 나쁜 녀석이었다.

“아, 진짜 짜증나네.”

때문에 민국과 GGW 공격대는 블루 드레이크의 한 방 브레스는 물론이고 하피 퀸의 돌풍, 불길 소환 등과 같은 패턴에 대응을 하면서 전투를 이어나가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슷한 공격 패턴을 미리 경험해 본 까닭에 대응이 어렵지 않다는 점.

그렇다 해도 돌풍에 휩쓸렸다가 불길 쪽으로 빠지거나 위치 선정을 잘 못 해서 브레스를 얻어맞으면 바로 사망이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패턴을 몇 번 경험해 봤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일단 중요한 것은 위치 선정이야. 브레스를 피하고 돌풍에 휩쓸려도 불길 쪽만 피하면 돼.”

“맞아요. 여기는 하피 퀸을 상대했을 때와는 달리 돌풍에 굴러도 낙사는 안 당하잖아요? 과감하게 피해도 될 것 같아요.”

“브레스, 불길. 아! 깃털 폭탄도 조심해야 되는 거 알지?”

“그러게. 그거 떨어지면 난리 나긴 하더라. 충격파가 없는 건 다행이지만 근처에서 터지면 바로 죽겠던데?”

전멸로 트라이가 끝날 때마다 피드백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초반에는 막막하게만 보였던 바라노라스의 강력한 공격력도 조금씩 익숙해지다 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바라노라스처럼 특수 능력을 제외하면 메인 탱커만을 죽어라 패는 괴물은 민국의 클래스인 집중 치료술사의 효율을 극대화 시킬 수 있었다.

때문에 처음 예상과는 달리 탱킹 면에서는 초반을 제외하면 크게 문제가 터질 적이 없었다.

“지금처럼 탱커는 내가 전담해서 힐을 하면 되겠고. 켄달, 지젤. 돌풍이나 불길에 버티는 건 어때?”

“불구덩이로 직접 뛰어드는 친구들만 없으면 문제없을 것 같아요.”

“소모되는 마력량이 아슬아슬하기는 한데….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대신 오늘 고생한 것은 나중에 꼭 받아낼 거야. 무슨 뜻인지 알지?”

켄달에 이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지젤.

보아하니 계속된 전투로 인해 아드레날린이 머리를 지배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저런 도발에 넘어가기에는 민국의 이 세계 생활도 그리 짧은 건 아니었다.

“혼자서는 버티지도 못하는 주제에.”

“꺄앙!”

말과 함께 손을 뻗어서 지젤의 가슴을 크게 주물럭거린 민국은 시선을 돌려 영웅 패드를 확인했다.

영웅 패드에 새롭게 등록된 몬스터 바라노라스. 그런 바라노라스와 연관된 영상이 몇 개가 업로드가 되어 있었다. 당연하지만 전부 민국이 올린 영상이었다.

공략이 성공한 영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바라노라스가 사용하는 스킬과 그에 대응하는 GGW 영웅들의 움직임이 괜찮은 구도로 찍혀져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훗날 바라노라스를 상대하는 이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터였다.

하지만 공략법을 완성시키려면 눈앞의 괴물을 쓰러뜨려야 했다. 그리고 저 녀석을 쓰러뜨려야만 GGW 공격대는 던전을 클리어하고 이 던전을 닫을 수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지.’

바라노라스가 지키고 있는 전진기지의 파괴는 현재 진행이 되고 있는 베트남의 확산 현상 그리고 십이 재앙인 가루다의 움직임을 제약하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눈앞의 괴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잡아야 했다. 가라이라는 괴물이 등장하기 전에 말이다. 다행히 부활석은 충분히 있었다.

“다들 준비가 끝난 것 같습니다.”

소정이 팀원들의 상태를 체크하고 말했다.

그리고 민국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바라노라스의 공격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상황. 슬슬 클리어 각을 봐도 될 것 같았다.

“다섯 번 내에 잡으면….”

민국이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이는 민국의 의도된 행동이었다.

그 증거로 민국의 말을 들은 소정의 눈동자가 전의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잡으면?”

“오오옷?!”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보통 이럴 경우 트라이를 성공적으로 끝내고나면 공대장의 뜨거운 포상이 이어졌다. 그렇게 의욕을 드러내는 팀원들을 보며 민국은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역시 여자는 남자하기 나름이었다.

“메인 탱커 힐! 불길 위치 제대로 파악해!”

트라이가 다시 이어졌다.

여러 번의 전투로 경험을 쌓은 영웅들은 민국의 지시에 따라 침착하게 움직였다.

다들 불길의 위치를 미리 파악해두는 것은 물론이고 순간적으로 브레스가 들이닥쳐도 피할 수 있도록 본인들만의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 놓는 모습이었다.

“나이스.”

그런 팀원들의 움직임을 체크한 민국도 그렇게 중얼거리며 마력을 끌어 올렸다.

회복의 기운을 지닌 민국의 마력이 질서의 수호자를 통해 현아에게 전달이 되자 바라노라스의 공격으로 피투성이가 된 그녀의 신체가 멀쩡한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는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 현아가 회복된 팔을 이용해 바라노라스의 코를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큰 타격은 주지 못했지만, 전광석화와도 같은 현아의 움직임에 민국은 입에서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처음에는 바라노라스의 공격을 막아내기에만 급급한 모습이었지만, 어느 정도 경험이 생기자 이제는 간간히 반격까지 가하는 모습이었다.

확실히 재능이 있었다.

“하아아아압!”

기합과 함께 땅을 박차고 날아든 소정의 대검이 바라노라스의 날갯죽지를 후려쳤다.

이어서 정예린의 얼음 창이 푸른빛을 흩뿌리며 대기를 갈랐다. 하지만 바라노라스는 그런 공격을 몸으로 감당해내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이었다. 트라이 초반이라 아직 기운이 많이 남아 있었다.

“검과 몸은 하나!”

시라누이의 장검도 무서운 속도로 움직였다.

마이의 계속되는 공격에 막대한 마력을 지닌 바라노라스가 귀찮은 듯 몸을 틀었지만, 패시브를 살리기 위한 그녀의 검은 끊임없이 바라노라스의 몸을 두들겼다.

딜러들의 활약에 이어 힐러들도 쉴 새 없이 회복 능력을 사용했다.

민국도 메인 탱커에게 도트 힐을 계속 유지하면서 집중 치료술사의 특성을 살리는 한 편, 바라노라스가 강력한 공격을 가할 때 마다 타이밍을 맞춰서 동료들의 생명력을 회복시켰다.

“이대로만 가자! 다들 집중해!”

바라노라스의 강력한 브레스가 몇 번이나 전장을 갈랐지만 바라노라스의 공격 패턴에 익숙해진 GGW 팀원들은 다들 날렵하게 움직이며 바라노라스의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 캬아아아악!!!

그렇게 계속해서 공세를 퍼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재빠르게 대처를 하자 바라노라스의 표정에 언뜻 당황한 기색이 어렸다.

그리고 그런 바라노라스를 향해 민국이 자신의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하기야 인간들을 정복하기 위해 전진 기지를 세우던 녀석의 입장에서 지금의 상황은 그야말로 황당할 게 틀림없었다.

브레이크로 생겨난 임시 던전이 근처에만 수백 개만 있는데, 인간들의 공격대가 자신의 전진 기지를 콕 찍어서 들어온 것도 어이가 없을 지언데 아무리 괴성을 질러도 블루 드레이크는 나타날 기미도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바라노라스를 쓰러뜨려야 했다.

“조금만 더 집중해!”

무난하게 트라이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민국은 계속해서 동료들의 집중을 요구했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실수가 생길 가능성이 더 높았다. 냉정한 민국의 목소리에 잠시 마음을 풀었던 인원들이 정신을 다잡고 전투를 이어나갔다.

- 콰우우우우!!!

계속되는 영웅들의 공격에 질풍의 바라노라스가 분노를 터뜨렸다.

모기처럼 주위를 오가는 인간 병력들은 자신의 공격에도 쓰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들의 공격에 자신이 위기에 처하고 있었다.

단단했던 발톱은 잘려 나간 지 오래였고, 강철과도 같은 피막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날개도 엉망으로 찢겨져 있었다. 이대로라면 자신이 어떻게 될 지는 명약관화.

하지만 바라노라스의 입장에서는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인간들의 공격이 이어질 때 마다 자신의 미래를 예상한 바라노라스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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