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184화 (184/486)

EP.184 바라노라스의 전진기지

“그런데 선배님, 저희들 대체 왜 온 겁니까?”

“뭐가?”

“아니, 기껏 한민국 공대장을 만나러 와서 괜히 세 시간 넘게 쓸데없는 이야기나 하고…. 얻은 게 전혀 없잖아요? 원래 목적은 한민국 공대장을 꼬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하늘과도 같은 선배의 반문에 브리짓이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했다.

“쯧쯧.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뱁새가 황새의 뜻을 어찌 알리요.”

“네? 뭐라고요? 어디서 이상한 동방의 언어를 배우셔서는…. 꺅?!”

건방지게 도끼눈을 뜨는 후배 영웅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응징을 한 클로에가 한심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래서 초짜들이란.

“너 남자 만나본 적 별로 없지?”

“에. 엣? 제, 제 별명이 제국근위대의 카사노바라는 걸 모, 모르시나 봐요?”

“카사노바? 웃기시네. 우리 공격대 별명이 프랑스의 수녀기사단이라는 건 알고 있다.”

“수, 수녀라뇨? 하하하? 어디서 이, 이상한 이야기를 들으셨나 봐요?”

떨리는 브리짓의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클로에는 콧방귀를 내뿜었다.

“카사노바는 무슨….”

제국 근위대 소속 영웅들이 대부분 반강제적으로 수녀 생활을 하고 있는 건 같은 팀원인 클로에가 모를 리 없었다.

기껏해야 공대장 정도나 만나는 남자가 있지, 다른 이들은 그냥 남자에 미친 한 마리의 짐승들이었다. 그래도 영웅이라고 버는 돈은 많은 까닭에 경험조차도 없는 이들은 없는 것 같았다.

‘이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털레털레 머리를 흔든 클로에가 브리짓을 향해 말했다.

“자고로 모든 일에는 차례라는 게 있는 법이지. 남자의 마음을 얻으려면 부드럽게 접근해야 하는 법. 이성의 말을 잘 듣고 공감해주라는 말 모르니?”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기도 한데…? 그렇다면 저희들이 오늘 보낸 그 쓸모없는 시간들이?”

“쓸모가 없는 시간이 아니라 한민국 공대장의 말을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시간이었지.”

그렇게 말을 하면서 클로에는 자신과 엄지와 검지를 벌려 보였다.

“한민국 공대장과 함께한 그 세 시간으로 우리와 그의 거리는 이만큼이나 가까워졌을 거다.”

“저는 그것보다도 훨씬 더 가까워지고 싶은데요? 그리고 이왕이면 아랫부분으로요.”

허리를 튕기는 브리짓의 행동에 클레오는 코웃음을 치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게 백날 해 봐라. 남자들이 다가오나. 이렇게 천천히 서로의 거리를 좁혀야만 남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거야. 무턱대고 덤벼들면 남자들이 좋아할 줄 알아?”

“…제가 경험했던 남자들은 다 좋아했는데요?”

“네가 아니라 네 돈을 좋아했겠지.”

“그, 그런가? 맞는 말 같기도 하고, 틀린 말 같기도 하고.”

왠지 그럴싸한 클로에의 말에 넘어간 브리짓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쨌든 오늘 GGW 공격대를 방문한 목적은 민국과의 친목이었지만 다른 수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GGW 공격대가 마주한 바라노라스라는 새로운 네임드 몬스터. 며칠 전 발견되었던 블루 드레이크를 포함하면 이번 확산 현상에서 벌써 두 번째 노네임이 등장한 것이었다.

‘중국도 난리라는 데 협회 놈들 머리 아프겠네.’

그리고 이는 생각보다 심각한 사안이었다. 블루 드레이크와 바라노라스에 이어서 또 다른 녀석이 등장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6 등급 이하의 괴물이면 크게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그냥 스펙으로 밀어 붙여서 두들겨 패면 그만이었으니까. 탱커들의 스펙도 높은 만큼 괴물의 패턴을 확인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상의 강력한 개체라면 아무리 제국근위대라도 쉽게 여길 수 없었다.

하물며 지금은 다른 엘리트 공격대의 도움을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화이트 하우스, 텐센스, 붉은 전차 등 인류의 방패라 할 수 있는 공격대들은 던전 브레이크가 연속으로 터진 중국의 상황을 해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결국 고민과 고민을 거듭하던 클로에는 그렇게 미래에 대한 생각을 넘겨 버렸다.

지금 당장 골치 아프게 신경을 써봤자 무슨 해결책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보다는….

“와인은 어떻게 됐어?”

“좋은 걸로 보내겠다고 클랜 매니저한테 연락은 받았어요. 그런데 진짜 이렇게 하면 한민국 공대장하고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 맞아요?”

“이 언니만 믿어. 이런 식으로 사이를 좁힌 다음에 덮치는 게 정석이야. 그런 분위기를 만들려면 좋은 와인은 필수고.”

“오오…!”

남자를 꼬셔 본 경험이 많아 보이는 클로에의 장담어린 목소리에 브리짓은 자신도 모르게 반복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어떻게 우리 공격대로 데리고 올 수는 없나?”

“한민국 공대장이요?”

“응. 진짜로 탐이 나는데.”

“언니, 한국의 강채영하고 다시는 안 보려고요?”

“그가 프랑스로 귀화를 한다면 그것도 생각 좀 해 보지 뭐.”

민국이 공략법이 밝혀지지 않은 노네임들을 공략한 것이 벌써 세 번째였다.

그렇다고 그가 지휘하는 공격대가 전장에서 몇 년을 구른 베테랑 공격대도 아니었다.

R’s 클랜 소속의 GGW 공격대는 한민국을 포함해 기껏해야 1,2 년차 수준의 영웅들로 이루어진 초짜에 불과했다. 비록 세계에서 주목하는 영웅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해도 말이다.

“그렇다는 말은 한민국 홀로 공격대 지휘를 했다는 건데….”

“그런데 선배님. 한민국 공대장의 리딩 능력이 남다르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려진 사실이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좋으니까 하는 말이지.”

클로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래 전부터 시작된 어둠 괴물과의 전쟁은 이제 백 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 끝날지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혼란과 전란의 시기에서는 실력 있는 영웅을 보유하는 게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특히 그 영웅이 공격대를 지휘할 수 있는 공대장이라면 더더욱. 그런 면에서 한민국은 무슨 대가를 치러서라도 손에 넣고 싶은 전사였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겠어요? 한국이나 R’s 클랜이 바보도 아니고. 저 같으면 천금을 줘도 안 보내줍니다.”

“국가나 클랜 입장에서는 그렇겠지. 하지만 영웅의 마음은 모르잖아?”

“그거야 그렇다지만. 남자 영웅의 마음을 갖는 것보다 일단 몸부터 갖고 싶네요, 저는.”

“마음을 얻으면 몸도 저절로 따라오는 법이지.”

“…틀린 말은 아니네요.”

영웅이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남자가 있다면 브리짓은 최선을 다해 그 남자를 예뻐해 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가루다의 군단을 상대하는 최전선이나 다름없는 이 호아빈에 남자가 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클로에의 생각에는 브리짓 역시 공감하는 바였다.

한민국이 이끄는 GGW 공격대의 전투 기여도는 객관적으로 봐도 굉장히 높은 편이었다. 5, 6 성 영웅들로 이루어진 공격대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확실히 한민국 공대장이 프랑스로 온다면 큰 도움은 되겠네요. 다른 남자 영웅들과는 조금 다르긴 하죠?”

“그냥 다른 게 아니지.”

프랑스에도 마력을 각성한 남자 영웅은 여럿 있었다.

하지만 그들 대다수는 몬스터와의 전투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이들이었다. 심지어 영웅과 관련된 직종에서 일하는 이들도 소수였다.

때문에 제국근위대는 그런 남자 영웅들을 가리켜 장식품이라고 부르곤 했다.

그러나 한민국은 달랐다. 그는 웬만한 여성 영웅들보다도 적극적으로 어둠 괴물과 전투를 벌이는 특이한 남성이었다.

“앞으로의 전쟁을 생각하면 한민국과 같은 친구들이 좀 더 많이 생겨나야 할 텐데 말이야.”

“그건 불가능해 보이는데요? 남자 영웅은커녕 여성 영웅의 숫자도 눈에 띄게 줄어드는 판국에….”

브리짓이 말 끝을 흐리며 말했다.

어둠 괴물과의 전쟁으로 인한 급격한 인구 감소는 프랑스 뿐 아니라 전 세계의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이 인구 감소를 가속화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출생률이었다.

“확실히 요즘 아이들 보기가 힘들어졌지.”

“여자들이 임신을 못하니까 그렇죠. 어휴, 빌어먹을 남자들. 괴물과의 전쟁에서 도움이라도 안 되면 좆이라도 좀 잘 놀릴 것이지.”

심각한 사회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 마냥 행동하는 남자들의 행태에 불만이 많이 쌓인 모양인지 브리짓의 입에서 거친 소리들이 계속해서 흘러 나왔다.

하지만 이건 브리짓이 특이한 게 아니었다. 최전선에서 어둠 괴물을 쓰러뜨리고 있는 여성 영웅들은 대부분 이와 비슷한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도 전쟁 초반에는 남자들의 희생 때문에 인류가 버틸 수 있었어.”

클로에가 남자들을 대변하듯 말했다.

그렇게 괴물과의 싸움에도 목숨을 잃은 이들 중에는 그녀의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이번 확산 현상도 무사히 넘겨야 할 텐데….”

상황이 점점 이상하게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벌써 베트남에서만 확산 현상이 두 번째 발생하고 있었다.

거기에 중국의 사태도 심상치 않았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지금의 사태를 가리켜 잠잠했던 12 재앙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하려는 조짐으로 보고 있었다.

십여 년 가량 이어졌던 짧은 평화가 깨지고 수많은 영웅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전쟁이 다시 시작된다는 말이었다.

“그 전에 한민국하고 한 번 자봐야 되는데….”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도 성욕으로 뇌까지 물든 멘트를 뱉어내는 브리짓을 보며 클로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기야 언제 부활석이 떨어져서 죽을지 모르는 인생. 이런 브리짓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 * *

“하아?”

숨을 한껏 들이켠 괴물이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의 움직임에 맞춰서 농밀한 마력이 주위를 관찰하듯 움직였다.

“뭐야, 대체? 바라노라스는 어디로 가고 전진 기지는 또 왜 이렇게 된 거야?”

말을 그렇게 했지만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어이가 없어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의 발밑에 놓인 뼈 무더기가 누구의 뼈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전진 기지를 맡겼던 심복 ‘질풍의 바라노라스’가 틀림없었다.

“대체 어떤 놈들이…!”

허탈감과 분노에 이어 짜증이 솟구쳐 오르자 가라이는 자신의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번쩍 자신의 팔을 들어 올렸다.

쿠쿠쿠쿠쿵!!!

강대한 마력이 주변을 진동시켰고, 그로 인해 생겨난 돌풍들이 엉망으로 된 전진 기지에서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신의 분노를 풀어낸 가라이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그나저나 큰일이로군. 이대로 그냥 있어서는 안 돼.”

이번 던전 브레이크는 그의 상관이자 열두 재앙 중 하나인 가루다가 무리를 하면서까지 만들어낸 던전 브레이크였다.

심지어 인간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바이콘의 도움마저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브레이크는 결코 실패를 해서는 안 됐다.

하지만 시작부터 바라노라스의 전진 기지가 날아간 상황.

던전 브레이크로 생겨난 임시 던전의 구심점이나 다름없는 전진 기지가 날아갔으니 이대로라면 인간들의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다시 새의 탑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나도 끝장이겠지.”

분노에 찬 가루다의 얼굴을 떠올리는 순간 가라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쨌든 전진 기지가 무너진 것은 가루다에게 보고를 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자신의 능력이 의심받는 것은 물론이고, 당장이라도 새의 탑으로 불려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결국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려면 자신이 직접 움직여야 했다.

“꺄아아악! 꺄아악!”

가라이의 마력을 느꼈는지 멀리서 하피 몇몇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라이는 그 하피들을 붙잡아 전진 기지의 일꾼으로 만들었다.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나서서 던전들의 구심점이 되어야겠군.”

이렇게 되면 레이더라 불리는 인간들의 정예 병력이 쉴 새 없이 자신의 던전으로 진입을 하는 귀찮은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귀찮음을 감수하더라도 가라이는 자신이 받은 명령을 완수해야만 했다.

그렇게 가라이의 마력이 엉망이 된 전진기지를 뒤엎었고, 그의 마력에 영향을 받은 몇몇 괴물들이 깊숙한 잠에 빠져들었다. 앞으로 이 전진기지를 지킬 강력한 힘을 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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