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86 바라노라스의 전진기지
괴물의 손에 공대장을 잃은 제국근위대는 바로 바라노라스의 전진 기지에서 후퇴했다.
새 머리의 괴물에게 농락을 당한 셀레스도 부활석을 통해 임시 던전의 밖에서 부활할 수 있었다.
잔인하게도 새 머리의 괴물은 셀레스를 타락시키자마자 그녀를 내던져버렸다. 괴물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던 행동이었다.
“내, 내가 조금만 더 빨리 행동했더라면….”
“자책할 필요 없어, 클로에. 너도 알다시피 어쩔 수가 없던 상황이었잖아? 그리고 나한테 걸려 있는 버프 효과가 몇 개나 되는 줄 알아? 네가 아무리 빨리 움직였어도 무리했을 걸?”
“그래도!”
몬스터에게 더럽혀졌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는 셀레스의 강한 모습에 클로에는 고개를 푹 숙였다.
‘내 실수다.’
셀레스가 괴물의 손에 붙잡혔을 때 느꼈던 불안감을 믿고 한 발짝 빨리 움직였어야 했다.
하지만 괴물은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고, 자신들은 그 녀석의 함정에 보기 좋게 빠지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결과로 프랑스의 수호자라 불리는 공대장을 잃었다.
“아무래도 더 이상의 트라이에 참여하는 건 힘들겠지?”
“…….”
“나도 알고 있는데, 그냥 한 번 물어봤어. 하. 진짜 큰일 났네. 내가 빠지면 저 놈을 어떻게 잡지?”
셀레스의 혼잣말에 제국근위대의 멤버들은 다들 눈을 내리깔았다. 그녀의 물음은 이미 답이 나와 있는 질문이었다.
괴물에 의해 타락한 영웅들은 어둠의 괴물 특히 인간형 몬스터에게 맥을 추지 못한다.
셀레스가 아무리 베테랑 영웅이라 해도 마력의 본질이 타락한 이상 제대로 된 전투력을 내지 못할 건 분명했다. 역사가 그 증거였다. 오히려 몸이 지배를 당한 그녀가 아군의 움직임을 붙잡지 않기를 바라야 했다.
하물며 전진 기지의 무시무시한 괴물은 셀레스를 직접 타락시킨 존재였다.
그런 만큼 셀레스가 전진 기지의 괴물과 만나는 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했다. 그 괴물 앞에서 셀레스는 단순한 괴물의 노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아. 내가 타락했다는 게 알려지면 다비드가 그냥 있지 않을 텐데.”
“보나마나 바로 차일 걸? 그렇게 의리 있는 녀석은 아니었어.”
“젠장. 올해는 어떻게든 결혼 좀 해보려고 했는데….”
“거기 좀 큰 놈으로 구해. 이제는 매일 밤마다 몸이 뜨거워질 텐데.”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 좀 시켜줄래?”
장난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클로에와 셀레스의 모습에 제국 근위대의 영웅들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특히 나이가 어린 영웅들은 지금의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애처롭게 어깨를 떨기까지 했다.
“일단은….”
클로에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호아빈으로 복귀하자. 그리고 셀레스 너는.”
“나도 알고 있어. 그리고 이왕이면 잘 묶어줘.”
안쓰러운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동료를 향해 셀레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나마 내가 힐러라 다행이기는 하네. 탱커나 딜러였으면 감시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괴물의 마력에 타락한 그녀는 근시일 내에 괴물의 정을 받아들이기 위해 난리를 칠 게 분명했다. 마치 마약에 중독된 사람처럼 말이다.
* * *
“…뭐?”
가라이의 던전으로 향하는 동안 제국 근위대의 이야기를 들은 민국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때문에 호송 버스도 가라이의 던전이 아니라 호아빈으로 목적지를 바꿨다. 공대장을 잃은 제국근위대가 던전에서 물러난 이상 자신들이 가봤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최악의 소식에 공격대의 다른 영웅들도 충격에서 빠진 얼굴이었다. 특히나 셀레스는 제국근위대를 이끌고 있는 베테랑 공대장이었다.
그녀의 타락은 단순히 베테랑 영웅 하나를 잃은 것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는 여성이 있었다.
“제가 좋은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시라누이 마이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몇몇 이들이 짧게 탄성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는 공대장님의 희생이 전제되는 조건입니다. 공대장님께서 저와 비슷한 방법을 사용하면 셀레스 공대장에게 사용하시면….”
“아하! 그러면 제국근위대의 공대장도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을까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지만 이미 그렇게 해서 치유된 대상이 눈앞에 떡하니 있으니.”
시라누이의 말에 공감하며 다른 이들도 한 마디씩 덧붙였다.
현아는 그런 시라누이의 의견이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민국은 그런 마이의 의견에 조금 회의적이었다.
‘가능할까?’
시라누이 마이의 정신을 원래대로 되돌린 것은 오로지 자신의 능력만 이뤄낸 일이 아니었다. 그 이면에는 뿌우의 퀘스트가 있었다.
‘뿌우 있지? 어떻게 생각해?’
《결론적으로 말하면 당장은 불가능합니다.》
민국의 눈앞으로 나타난 뿌우가 메시지를 만들어내었다. 관음증에 걸린 놈답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미 파악을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뿌우의 메시지를 보던 민국은 메시지 안에서 바로 묘한 위화감을 찾아낼 수있었다.
‘당장은 불가능하다?’
《그렇습니다. 프랑스의 인간 영웅을 타락시킨 놈은 민국님도 알다시피 가라이 녀석입니다.》
민국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근위대의 베테랑 공대장을 타락시킬 놈은 자신이 아는 한 그 놈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민국님의 힘으로 타락한 영웅을 원래대로 돌리려면 그녀의 몸에 있는 가라이의 마력을 전부 몰아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 해봐.’
《간단히 말해 가라이 놈을 쓰러뜨려야만 인간 영웅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뿌우의 말대로 당장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현재 자신의 스펙으로 가라이를 잡는다는 건 무리였다. 아무튼 상황은 최악이나 다름없었다.
제국근위대가 트라이를 했던 전진기지의 괴물은 8에서 9등급으로 추정되는 몬스터였다.
공격력을 포함한 스펙으로 따지면 9등급보다는 8등급에 가까운 괴물이었지만, 제국근위대가 경험했던 공격 패턴이 상당히 까다로웠던 데다가 흉계까지 꾸밀 정도였기에 영웅협회에서는 가라이를 9등급으로 판정하려는 것 같았다.
‘문제는 8 등급이나 9 등급이 아니야. 가라이 녀석을 상대할 공격대가 베트남에 존재하지 않다는 점이지.’
가장 강력한 전력을 지니고 있는 프랑스의 제국근위대는 가라이의 공략에 실패하며 공대장조차 잃은 상황.
그렇다고 다른 공격대에게 도움을 요청하자니 【S】 난이도의 던전을 공략할 수 있는 공격대들은 전부 중국에 발이 묶여 있었다.
‘진짜 튀어야 되나?’
게다가 가라이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호아빈의 공격대에게는 주어진 시간조차 얼마 없었다. 제국 근위대의 말에 의하면 가라이가 있는 임시 던전의 타이머는 열흘도 채 남지 않았다.
결국 그 시간 내에 가라이를 쓰러뜨리지 못하면 또 다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테고, 그 결과는 최악의 참사로 이어질 게 분명했다.
“한민국 공대장님. 비상 회의의 참석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곧 갈게요.”
제국근위대가 마주했던 괴물의 처리를 의논하기 위해 바로 공대장 회의가 열렸다.
민국 역시 GGW 공격대의 공대장 자격으로 회의에 참여했다. 회의에 참여한 이들 중 유일한 청일점이었다.
“각 공격대의 에이스들은 모은 연합 공격대를 구성해서 괴물을 쓰러뜨려야 합니다!”
“저는 반대예요. 공격대의 에이스들을 모은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을까요? 오히려 급조된 공격대는 호흡이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저 임시 던전을 그냥 둘 수는 없잖아요?”
“중국에 있는 화이트 하우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전력으로는 막아낼 수가 없어요.”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자리에 모인 공대장들은 저마다의 의견을 꺼내들었다.
그래도 지금처럼 싸우자고 하는 이들은 양반이었다. 던전 브레이크가 재차 터질 것 같은 최악의 상황에 베트남을 버리고 후퇴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아. 나도 그러고 싶기는 한데….”
그리고 이 회의의 주체이자 호아빈의 공격대 중 가장 강력한 전력을 지니고 있는 제국근위대의 에이스, 클로에 카스텔이 자신의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 후퇴는 불가.”
“어째서입니까?”
“제국근위대도 막아내지 못한 괴물을 우리보고 막아내라고요? 목숨을 걸고?”
“자자, 흥분하지 말고 내 이야기 좀 들어 봐. 아무튼 던전 브레이크가 또 다시 일어나면 베트남은 회복 불가능의 상태에 빠질 거야. 그리고 그 여파는 분명 중국에도 미치겠지.”
클로에의 말에 사방이 조용해졌다.
“그렇게 되면 중국에 있는 친구들도 곤란한 상황에 빠질 거야. 그리고 중국이 무너지면….”
인류의 미래는 어둠으로 뒤덮여질 가능성이 높았다.
특히 한국과 러시아, 인도, 태국의 상황이 굉장히 난처해 질 건 틀림없었다. 일본도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결국 이는 어둠 괴물과의 본격적인 전쟁으로 이어질 테고, 중국을 잃은 인류에게 그 끝은 파국일 게 분명했다.
“그리고 화이트 하우스와 텐센스, 붉은 전차에게 도움을 요청해봤지만 불가능하다는 답을 받았어.”
“어째서…?!”
클로에의 충격적인 말에 회의장에 있는 공대장들은 다들 안색이 하얗게 굳었다.
‘와…. 이거 진짜 난리 났는데?’
민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민국 역시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9성 영웅이 포함된 그들뿐이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 누구도 도움을 줄 수 없다니?
만약 GGW 공격대가 성장할 시간만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라이의 던전은 열흘 후면 폭발할 예정이었다. 그 안에는 죽었다 깨어나도 가라이를 쓰러뜨릴 방도가 없어 보였다.
치이익.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답답했는지 클로에가 담배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어서 다른 이들도 본인들의 품에서 꺼낸 담배를 한 대씩 물기 시작하면서 회의실은 곧 너구리들이 사는 소굴로 변했다.
“한민국 공대장님은 담배 안 태우세요?”
남자가 있는 자리에서 담배를 태우는 게 신경이 쓰였던 모양인지 한 여성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미국 클랜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대장으로 남지 출신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갈색의 매끈한 피부가 눈에 확 들어왔다.
“아, 예전에는 태웠는데 끊었어요.”
“…와.”
민국의 대답에 여성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감탄 어린 표정을 지었다. 민국의 말을 들은 다른 이들도 하나같이 비슷한 얼굴이었다. 담배를 끊었다는 게 그렇게나 놀랄 일인가?
아무튼 민국 역시 끊었던 담배가 다시 생각이 날 정도로 암담한 상황이었다.
공대장을 잃은 프랑스의 제국 근위대는 제대로 된 전력을 낼 수 없었고, 다른 공격대들도 최대 9등급으로 추정되는 괴물을 쓰러뜨릴 전력은 되지 못했다.
오히려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제국근위대가 당했다는 사실에 전의마저 잃고 있은 모습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가라이를 쓰러뜨려야 주장했던 이들도 이제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쨌든 임시 던전은 공략해야 돼. 그리고 우리는 내일부터 다시 그 괴물을 상대로 던전으로 진입할 생각이야.”
클로에의 말이었다.
공대장은 잃었지만 그녀는 호아빈에서 활동하는 공격대 중 전진기지의 무시무시한 괴물을 상대할 수 있는 건 프랑스의 제국근위대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건 나 뿐만 아니라 제국 근위대 친구들의 동일한 생각이야. 그 녀석을 쓰러뜨리지 못한다면…. 적어도 수천만 이상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거야.”
그리고 클로에의 말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를 도와줄 머리가 필요해.”
“머리?”
“그게 무슨 뜻이죠?”
뜬금없는 클로에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영웅들은 곧 어렵지 않게 클로에의 그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클로에의 말은 제국근위대와 함께 괴물의 트라이를 진행할 공대장을 지원받는다는 이야기였다.
“으음.”
“능력이 된다면 당연히 함께해야겠지만….”
하지만 그 셀레스마저도 감당해내지 못했던 괴물이었다. 지원자가 있을 리 없었다. 단 한 명을 제외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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