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196화 (196/486)

EP.196 가라이 레이드

나쁘지 않았던 첫 번째 트라이와는 달리 두 번째 도전은 조금 어이없게 끝이 났다.

가라이의 주시 공격 대상이 두 명의 힐러에게 연속으로 걸렸고, 둘 다 공격을 피하지 못하면서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민국이 아무리 날고 긴다 하더라도 혼자서 가라이의 공격에 영웅들을 살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시 트라이 가겠습니다.”

두 번째 힐러의 사망을 확인하자마자 민국은 바로 전멸 사인을 내렸다.

딜러라면 그나마 버텨 보겠지만 괴물의 공격을 막아줄 탱거나 영웅들을 치료해 줄 힐러가 없다면 레이드를 진행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주시 공격은 무조건 피해야 합니다. 어쨌든 힐러 분들은 가라이와 최대한 거리를 두도록 하죠.”

그렇기 때문에 민국이 힐러들을 향해 가벼운 주의를 담아 말했다.

“후우…. 알겠습니다.”

“제길. 클랜 하우스에 있었을 때 시뮬레이션 기계 좀 열심히 돌려볼 걸.”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만, 가라이의 주시 공격은 무조건 피할 수 있어야 했다.

적어도 1 타 공격은 얻어맞더라도 그 후에 쫓아오는 가라이의 손길은 무조건 피해야 했다. 특히나 생명력이 높지 않은 힐러라면 더더욱 말이다. 그건 이번 레이드를 클리어 하는 데 있어 기본적인 조건이나 다름없었다.

‘주시 공격을 유도하는 방법이 있다면 좋겠지만….’

가라이의 주시 공격은 일단 랜덤으로 알려져 있었다.

트라이 때 마다 꼬박꼬박 힐러들을 노리는 것을 보면 그런 건 아닌 것 같지만, 어쨌든 현재까지는 규칙성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결국 공격을 감당하는 건 영웅들의 일이었다.

“주시와 깃털 공격. 일단 그 패턴에 익숙해지는 것부터 시작하죠.”

갈 길은 아직 멀었지만,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렇게 다시 트라이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제국근위대는 공대장인 민국의 했던 말에 따라 본인들의 생존에 집중하며 전투를 진행해 나갔다.

“주시! 조안나!!!”

“주시! 접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가라이의 주시 패턴을 읽는 건 민국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가라이가 몸을 빙글 돌릴 때 쳐다보는 방향에 있는 영웅의 이름을 외치면 되는 일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괴물의 부리가 가리키는 대상이었다.

순간적으로 대상을 체크하고 그 이름을 외쳐야 하는 일이지만, 민국이 즐겼던 모바일 가상현실게임인 GGW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들과 비교하면 딱히 대단한 수준의 테크닉이 필요한 공격은 아니었다.

악마와도 같은 GGW 개발진이 만든 공격 패턴 중에는 진짜 지랄 맞은 것들도 한, 둘이 아니었다.

민국이 이 세계로 오기 전 마지막으로 상대했던 우라노라스 역시 지랄 같은 패턴으로 인해 게이머들에게 불리던 별명이 우라질이었다.

“오케이! 피했어!!!”

“세 시 방향에서 들어갈게! 공간 좀 만들어 줘!”

정확하게 주시 대상을 체크하는 민국의 리딩에 제국근위대도 빠르게 공격에 적응해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이었다.

“깃털!!! 모두 빠져요!”

가라이가 자신의 날개를 활짝 펼치는 모습에 민국이 재빨리 외쳤다. 이번에는 메인 탱커도 가라이가 멀찍이 거리를 벌렸다.

‘바람?’

정신을 집중하고 가라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민국은 가라이를 중심으로 일정 거리 안에 바람이 분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것을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느 경계를 중심으로 깃털의 움직임이 달라지고 있었으니까.

“음….”

민국의 고개가 뒤로 향했다.

가라이가 날개를 펼치자마자 부리나케 물러난 아군들은 자신이 방금 확인한 경계의 밖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사방에서 날아드는 깃털들을 탱커와 딜러들이 온 몸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어그로가 잡히는 공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공격은 아니었기에 힐러의 회복 능력으로 힘겹게 버티고 있을 수준은 되었다.

민국의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가정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생각들이 맞는 지 하나씩 확인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디얀.”

민국이 부 탱커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는 경계 안으로 진입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만약 디얀이 사망하면 다시 트라이에 들어갈게요.”

그리고 예상대로 경계의 안에 들어선 디얀은 폭풍과도 같은 깃털 세례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결국 예상대로였다.

‘이런 식의 패턴이면…. 탱커와 근접 딜러들이 본인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원거리 딜러들이 딜을 넣어줘야겠군. 힐러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하겠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원거리 딜러의 화력이 중요했다.

보통 이런 경우 원거리 딜러들이 보스를 향해 어느 정도 딜을 넣고 난 이후에야 다른 페이즈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마지막까지 아군을 치유해줘야 하는 힐러들의 마력 상황을 생각하면 깃털 공격 패턴이 길어지는 것은 나중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깃털 공격은….’

주시 공격을 세 번 정도 흘리고 나면 사용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이제부터는 깃털 폭풍 속으로 무턱대고 들어가서 죽을 일은 없어보였다.

“그랬던 거야?”

“…크! 이래서 머리 좋은 사람이 공대장을 해야 하는 거였다니까?”

“그거 셀레스 언니가 들으면 가만두지 않을 것 같은데?”

“브리짓, 레미. 죽을 각오로 딜 넣어라? 알겠지? 너희들이 잘 해야 돼.”

설명을 들은 제국근위대의 영웅들은 하나같이 감탄을 터뜨렸다.

민국의 말이 그럴싸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가라이의 깃털 공격은 자신들의 스펙과 장비로도 도저히 버틸 수 없던 공격이었다.

그런데 버텨서는 안 되는 공격이었다니….

“다시 가자!”

“오늘 안에 그 새대가리의 모가지를 따버리고야 말겠어.”

“오르톨랑으로 만들어 버리는 건 어때? 아주 뼈까지 오도독 씹어 버릴 테야.”

조금씩 해결법이 보이는 것 같아서인지 제국근위대의 영웅들은 적극적으로 트라이에 나서는 모습이었다. 앞으로도 몇 번이나 목숨을 잃을 지 알 수 없는 도전이었지만, 영웅은 원래 죽음과는 친구나 다름없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네 번째 트라이가 시작되었다.

“클로에! 어택 블룸!!!”

민국의 지시에 클로에가 자신의 기를 방출하듯 뿌렸다. 이어서 몸의 마력이 끓어오르는 것 같은 느낌에 브리짓과 레미는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해 가라이를 공격했다.

“레미! 거리 조절! 거기서 앞으로 조금만 더 가면 바로 죽어요!!”

“탱커와 근딜은 본인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에만 집중해!”

그렇게 두 원거리 딜러들이 가라이의 보호막을 때리는 동안 민국은 다른 힐러들과 함께 팀원들을 회복시키는 데 집중했다.

허공을 맴돌다가 떨어지는 깃털들은 분명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하지만 트라이에 참여하는 영웅들의 스펙이 나쁘지 않은 까닭에 공대원들의 최대 생명력을 높여주는 디얀의 궁극기까지는 사용할 필요가 없어보였다.

‘데미지 딜링도 나쁘지 않고….’

브리짓과 레미는 레이드 강국인 프랑스에서도 한 손에 드는 원거리 딜러들. 거기에 브리짓의 궁극기까지 사용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지금보다 더 빠르게 지금의 패턴을 넘길 수 있는 방법도 없지 않았다.

제국근위대의 딜러 구성은 근딜 셋에 원딜 둘로 이루어져 있었다. 여기서 클로에가 클래스 변경을 통해 원거리 딜러로도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만큼 상황에 따라 최선의 방법으로 트라이를 이어나가면 될 것 같았다.

그래도 지금 당장은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 그렇게 얼마나 가라이를 때렸을까?

“어엇?!”

깃털을 피하는 데 집중하던 모두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자신의 공격에도 죽지 않고 버텨내는 영웅들의 모습에 가라이가 인상을 쓰며 자신의 깃털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경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깃털이 전부 사라질 때까지 탱커와 근딜은 아직 대기합니다!!!”

“시발! 저 새끼 죽여 버려!!!”

민국의 지시에 몸을 움찔하던 클로에가 큰 목소리 외쳤다. 이어서 브리짓과 레미의 공격이 가라이를 향해 우수수 쏟아졌다.

펑! 콰아앙! 펑!

브리짓이 움직이는 마력구의 레이저와 레미의 화염 마법이 깃털들을 뚫고 가라이의 몸에 닿을 때 마다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그리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깃털들이 모두 사라진 것을 확인한 순간 민국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오케이! 메인 탱커 어그로 잡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달려 나가는 메인 탱커. 이어서 근딜들도 바람처럼 달려 나갔다.

“딜보다 본인의 위치부터 확인합니다! 주시 공격이 또 올지 모릅니다!!!”

“모두 집중! 이제부터는 어떤 방식으로 공격을 할 지 알 수가 없어요! 조금의 이상함이라도 느껴지면 전부 체크합니다!”

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민국은 빠르게 공격대를 안정화시켰다.

그리고 그 이후에 드러나는 가라이의 공격은 의외로 어렵지 않은 패턴들의 연속이었다.

전투 도중 서너 명의 영웅을 노리고 동시에 날아드는 미사일처럼 떨어지는 깃털 화살, 불의 새를 소환해서 아군을 따라다니게 하는 공격 등 제국근위대의 기량이라면 집중만 하면 어렵지 않게 대응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문제는 그런 공격들을 사용하는 와중에도 연달아 주시 공격과 깃털 폭풍을 사용한다는 점이었지만.

“브리짓, 레아 깃털 화살! 뒤로 빠졌다가 다시 복귀합니다!”

“불의 새 대상 확인! 클로에! 반 시계 방향으로 크게 돌아요!!! 본진은 7시로 이동합니다!”

“깃털 폭풍! 빨리 떨어지고 합류 합니다! 불의 새 대상은 최대 힐 사거리에서 유인해요!!!”

때문에 민국은 조금의 쉴 틈도 없이 계속해서 리딩을 이어나가야 했다.

그러다가 실수가 나올 때면 처음부터 다시 트라이를 시작해야 했지만, 제국근위대의 사기를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조금씩 진도가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시간이 지날수록 가라이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일그러지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겁니까?”

전멸과 함께 던전 밖에서 다시 부활한 영웅들을 보며 베트남 관계자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트라이가 시작된 지 벌써 열다섯 시간 정도가 지나있었다. 이제 베트남의 운명은 이틀 정도만 남은 셈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프랑스의 제국근위대는 던전의 모든 몬스터를 처리하고 십이 재앙의 심복이라 추정되는 새 괴물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새 괴물이 쓰러지지 않는 이상 던전 브레이크는 막아냈다고 할 수 없었다. 피가 마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레이드를 진행하는 제국근위대 영웅들의 표정이 그리 어둡지 않다는 점이었다. 즉, 트라이에 어느 저옫 진척이 있다는 말이었다.

‘제국근위대가 공대장이었던 셀레스를 잃었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만 하더라도….’

그녀는 베트남의 운명이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했었다.

남자 영웅인 한민국을 임시 공대장으로 삼아 트라이를 이어나간다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재능은 인정하지만 한민국은 아직 어린 영웅. 그의 능력으로는 상위 괴물들을 상대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이 제대로 먹혔들었던 모양이었다.

“30% 아니 정확히 26.8%까지 봤습니다.”

한민국의 대답에 베트남 관계자가 눈을 크게 뜨며 황급히 물었다.

“그, 그렇다면…. 잡을 수 있는 겁니까?”

현재 호아빈과 하노이를 통해 많은 베트남 인들이 해양 몬스터들이 즐비한 바다를 통해 목숨을 걸고 해외로 떠나고 있었다. 공항 역시 사람들로 우글우글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에 머무르고 있는 이들은 천만이 훌쩍 넘었다. 던전 브레이크가 재차 일어나면 몬스터들의 공격에 노출이 되는 사람들의 숫자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민국은 섣불리 장담하지 않았다. 행여나 트라이를 성공하지 못했을 때의 여파는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직 가라이의 마지막 패턴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보통 이런 음흉한 놈들은 마지막 발악이라 할 수 있는 패턴들이 엄청나게 까다로웠다.

그리고 제국근위대가 가라이의 마지막 패턴을 확인한 것은 서른 번이 넘는 트라이를 진행했을 때였다.

“가소로운 것들. 가루다님께서 부여하신 나의 힘을 보여주마.”

콰아앙!

가라이의 손에 생겨난 불덩이가 메인 탱커를 향해 던져지는 순간 단단했던 탱커가 한 방에 사망해 버렸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가라이의 공격 패턴이었다.

“디얀! 어그로!!!”

민국이 재빨리 부 탱커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감히 어딜…! 네 년도 같이 끝장을 내주마!”

하지만 디얀 역시 두 번째 불덩이를 맞고 사망했다. 그리고 세 번째 공격 대상은 딜량이 가장 높았던 클로에였다.

“이런, 씨앙!”

자신에게 날아오는 불덩이를 향해 클로에는 빠르게 뒤로 달리며 이리저리 몸을 피했다. 하지만 유도 기능이라도 달려 있는 듯 계속해서 따라오는 불덩이를 피하지 못하고 한 줌의 재로 변해야 했다.

그리고 불덩이 공격은 그 세 번을 끝으로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전멸하겠습니다.”

그렇게 순식간에 세 명의 영웅들이 사망하는 모습을 확인한 민국은 바로 전멸 사인을 내렸다. 트라이 실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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