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201화 (201/486)

EP.201 가라이 레이드

“내가 제국근위대의 공대장이라는 사실은 알지? 너는 그런 영웅을 다시 살려낸 것이나 다름없어. 그렇다면 그에 어울리는 보상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래, 맞네!”

셀레스의 말에 클로에도 손뼉을 치며 동의했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던 민국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음…. 그러면 6성 영웅이 사용할 수 있는 장비 몇 개만 주시겠어요?”

“6성 영웅이면 기어스코어가 800까지의 무기를 사용할 수 있겠네. 아마 본국의 클랜 하우스에 가면 몇 개 찾을 수 있을 거야. 클랜장이 뭐라고 하겠다만 내 영향력이면 그 정도 쯤은 큰 문제 없이 넘길 수 있을 거야.”

가격이 만만치 않았지만 셀레스는 어렵지 않게 민국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잘됐다.’

이렇게 되면 【A - 5】 난이도의 던전을 공략하는 시기가 좀 더 빨라질 수 있었다. 적어도 팀원들 대다수가 본인들의 성급에 어울리는 최대 수준의 장비를 구하고 나서야 7등급 몬스터의 공략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7성 아니었어?”

“팀원들이 6성이거든요.”

“아하….”

민국의 대답에 두 여성 영웅의 얼굴에 부러움이 물들었다.

“쩌업. R’s 클랜으로 이적하는 건 어렵겠지?”

“프랑스의 역적이 되면 가능할지도?”

공대장의 대답에 클로에는 고개를 푹 숙였다. 팀원들을 생각하는 자상한 남성 공대장. 거기에 십이 재앙의 심복을 처리할 정도로 능력까지도 굉장히 뛰어났으니 그야말로 만화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존재가 눈앞에 있었다.

* * *

민국과 제국근위대를 태운 비행기가 하노이 국제공항에 내렸다.

호아빈에서 하노이까지의 거리는 버스를 타도 될 정도로 먼 거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자국의 중차대한 위기를 해결해 준 베트남 정부는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대우로 영웅들을 모셨다.

“아니, 이게 다 뭐야?”

그리고 민국과 제국근위대가 비행기의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베트남 군악대가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붉은 카펫이 길게 깔리며 사열된 군인들이 절도 있는 모습으로 영웅들을 기다렸다. 보아하니 의전병들인 모양이었다.

“와….”

“베트남 정부가 신경을 좀 쓴 모양이네. 하기야 십이 재앙 그것도 베트남을 오랫동안 괴롭혀 온 가루다의 심복을 쓰러뜨리는 성과를 올렸으니 얼마나 기뻤겠어?”

“그래. 이 정도는 당연한 거지.”

“나는 이런 것보다는 그냥 돈이 좋던데….”

뒤에서 제국근위대 소속 영웅들의 목소리들이 들려왔지만, 민국은 그녀들의 말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 아니, 잘 듣지 못했단 표현이 좀 더 옳았다.

와아아아아!!!

멀리 보이는 어마어마한 인파들이 내뱉은 커다란 환호성 때문이었다.

어둠 괴물들의 손에서 베트남을 구원한 영웅을 보기 위해 공항으로 몰려든 사람들은 그 수를 제대로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였다. 아무튼 이번 사태로 인해 베트남은 꽤나 요란한 사건사고들을 겪어야 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군인들의 사열을 받고, 베트남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등 모든 일정이 끝날 때까지 민국은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민국아!”

“오빠아!!!”

"Honey!"

결국 민국이 하노이에서 머무르고 있던 GGW 팀원들을 만난 시간은 공항에 도착하고 세 시간이 더 지나서였다.

기껏해야 열흘 정도의 헤어짐이었지만 다들 몇 년을 헤어졌다가 만난 연인처럼 하나같이 애틋한 얼굴들이었다. 심지어 현아는 다시는 떨어지지 않겠다는 양 민국의 소매를 붙잡고 놓지를 않고 있었다.

“다들 고생 많이 했어. 별일 없었지?”

“우리가 고생은 무슨…. 하노이에서 놀고먹으며 편하게 지냈지. 고생은 오히려 민국이 네가 했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튀어 나오는 현아의 대답.

하지만 뒤에서는 누군가가 던전을 도느라 힘들었다는 말이 민국의 귀로 들려오고 있었다.

“어? 나 없이 던전을 돌았어?”

“아…. 실전 감각도 유지할 겸 해서요. 별 건 아니고 그냥 【B】 난이도 던전을 공략했어요.”

“정말이요?”

김소정의 대답에 민국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GGW 공격대의 스펙은 【A】 난이도의 던전에서 등장하는 6등급 특수 개체도 무난하게 상대할 수 있는 수준으로 4, 5 등급이 주를 이루는 【B】 등급 던전 따위는 어렵지 않게 클리어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반드시 클리어를 할 수 있다는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그녀들의 움직임을 지휘하고 조율해 줄 공대장이 있다는 가정하의 일이었다.

“공대장은요?”

“현아가 리딩을 했어요. 처음에는 부활석을 몇 개 깨먹기는 했는데, 그래도 조금씩 익숙해지다 보니 괜찮아지더라고요. 최고 【B - 4】 까지는 클리어 할 수 있었어요.”

“【B – 4】 까지?”

이어지는 설명에 민국은 소정과 현아를 번갈아 보았다.

난이도야 어쨌든 팀원들이 스스로 던전을 공략했다는 사실이 민국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놀랍게 다가왔다. 장비 빨을 많이 받기야 했겠지만 【B – 4】 난이도까지 던전을 클리어 한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B – 4】 라면 그렇게까지 쉬운 던전도 아니었다.

‘내가 착각했어.’

GGW의 팀원들은 자신의 명령에만 따르던 모바일 가상현실 게임의 수동적인 영웅들이 아니었다.

팀의 지휘관이라 할 수 있는 자신이 없어도 본인들 스스로 강해지려는 욕구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팀원들의 이러한 변화에 대해 민국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B – 4】까지 클리어 했다니, 이야 우리 현아 제법인데?”

“스펙 빨인데 뭐. 너랑 비교하면 많이 부족하지.”

민국의 칭찬에 현아가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그리고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국내 복귀하고 나면 리딩하는 법 좀 제대로 알려줘.”

“알았어. 경험이 가장 중요하기는 하지만 이론적인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그 정도야 전혀 어렵지 않은 부탁이었다.

게다가 현아가 부공대장 역할을 맡게 하면 자신도 편하게 상위 난이도를 트라이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경험한 적이 없는 패턴이지만 모바일 가상현실게임 GGW 에서는 공격대가 둘로 나뉘어서 전투를 치러야 하는 상황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그리고 그럴 때는 공대장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부공대장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고 탱커는….’

트라이 도중 가장 가까이에서 네임드를 상대하는 클래스. 그만큼 빠르게 네임드의 움직임과 변화를 체크할 수 있었다.

“진짜? 정말이지?!”

“물론.”

민국의 시원한 대답에 현아가 만세를 불렀다.

그렇게 민국과 팀원들이 회포를 풀던 도중이었다. GGW 공격대로 몇몇 여성 영웅들이 다가왔다. 제국근위대의 셀레스와 클로에였다.

“오랜만에 만나서 굉장히 반가운 모양이네? 어쨌든 한민국 공대장. 우리는 여기서 헤어져야 할 것 같아.”

“바로 중국으로 가시는 건가요?”

“응. 잉글랜드와 독일 친구들도 함께.”

클로에의 대답에 민국의 눈이 그녀들의 뒤로 향했다.

원탁의 기사와 철십자 클랜의 영웅들의 자신들의 장비와 짐들을 점검하고 있었다. 민국이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던 도중이었다. 이상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라? 왜 우리는?”

생각해 보니 GGW 공격대는 영웅 협회의 호출 명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민국의 혼잣말을 들은 모양인지 셀레스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아마 너희들은 바로 한국으로 복귀하지 않을까? GGW 까지는 나서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되었거든.”

“…중국 상황이 제법 안 좋다고 들었는데요.”

“가라이가 쓰러지고 난 후에 그 쪽도 큰 변화가 있던 모양이야. 상위 난이도의 임시 던전에서 모습을 드러내던 바이콘의 심복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감추기 시작하면서 던전들이 빠르게 클리어 되는 상황이라지?”

셀레스의 말을 들으며 민국이 낮게 신음했다.

보아하니 가루다와 바이콘 녀석이 서로 손을 잡고 함께 움직였던 모양이었다. 어느 정도 심증은 있었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확실해 보였다.

“맞아. 세계 영웅 협회에서도 그렇게 예상을 하고 있어.”

민국의 이야기를 들은 셀레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인간들의 입장에 그리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한 놈도 감당하기 힘든 십이 재앙이 서로 손을 잡고 전선을 구축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당장 큰 문제가 벌어지지는 않겠지.’

뿌우의 말에 의하면 이번 던전 브레이크까지 실패한 가루다는 어마어마한 양의 공허의 마력을 허공으로 날려 버려야 했다고 했다. 때문에 적어도 몇 년은 새의 탑에서 쥐 죽은 듯 지내야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다음에 또 봐. 아, 아이템은 R’s 클랜으로 바로 보내줄게.”

“감사합니다.”

그렇게 헤어지면서 셀레스와 클로에는 민국의 볼에 입맞춤을 하며 떠났다.

화끈한 스킨십에 현아를 포함한 GGW 팀원들이 불편한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스킨십의 장본인인 두 여성 영웅들은 오히려 현아를 향해 윙크까지 보내는 패기를 보이며 자리를 떠났다.

“이렇게 되면 우리도 한국으로 가야하나?”

상황이 좋아졌다지만 왠지 조금 찝찝하기는 했다.

중국의 일도 끝까지 마무리되는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 곳에 있을 고 난이도의 임시 던전들이 아깝게 느껴졌다.

그래도 GGW 공격대의 호출 명령이 없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중국의 확산 현상에서 남아 있는 던전들이 대부분 GGW 공격대가 감당하기 힘든 상위 난이도의 던전인 모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영웅 협회도 연락을 하지 않았을 테고 말이다. 그렇게 세 공격대를 태운 비행기가 전투기의 호위를 받으며 중국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며 민국이 소정을 향해 말했다.

“혹시 우리 클랜 1 군 팀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클랜과 연락을 취한 소정이 즉시 입을 열었다.

“1군도 현재 확산현상에서 철수해 베이징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해요. 아마 바로 귀국할 것 같아요.”

소정의 말을 들으며 민국은 다시 한 번 확산 현상이 끝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 중국도 지금 베트남 못지 않을 정도로 난리가 났을 것 같았다.

“그리고 클랜장님이 저희들도 귀국하라고 하네요. 비행기는 이미 공항에서 준비 중에 있다고 하니 한 시간 뒤에 탑승하면 된다고 해요.”

계속해서 이어지는 소정의 말을 들으며 민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라이를 처리하면서 뿌우의 퀘스트도 전부 클리어한 마당에 굳이 베트남에 남아 있을 필요는 없었다. 여기서 상위 난이도의 던전을 클리어하며 스펙 업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건 베트남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면 우리도 돌아가도록 합니다.”

“와아아!!!”

“집이다!”

민국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팀원들이 격한 포옹을 나누기 시작했다. 반 년 가까이 이어졌던 원정이 끝났다는 사실에 다들 크게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두 개의 국가에서 확산 현상이 생겨나며 그것을 막아내기 위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기는 했지만 영웅들의 활약으로 인해 어둠 괴물들은 결국 자신들이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오염된 대지를 넓히지 못했다.

인간의 승리였다.

《이번 확산 현상의 실패로 가루다 녀석은 정말 쥐 죽은 듯 지내야 할 겁니다. 가루다와 사이가 좋지 않은 레비아탄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하노이 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민국은 비행기의 좌석에 앉아 뿌우가 했던 말을 다시 되뇌었다.

‘가루다가 공허의 마력을 많이 잃었다고 했지.’

그 말은 가루다의 힘이 크게 약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인간들이 어둠 괴물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반드시 어둠 괴물의 지휘관이라 할 수 있는 십이 재앙을 쓰러뜨려야 했다.

‘그렇다면 다음 목표는 가루다로 정해볼까?’

새의 왕 가루다.

캄보디아, 태국 서부, 라오스, 미얀마를 쑥대밭으로 만든 무시무시한 이 괴물은 【S】 난이도의 던전인 새의 탑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리고 가루다는 다른 십이 재앙과는 다르게 이미 몇 번이나 민국과 얽혔던 악연이 있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당장은 공략이 불가능한 괴물이었다. GGW 공격대의 가루다를 상대하려면 적어도 팀원을 9성까지 성장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한국으로 향하면서 민국은 태블릿을 통해 한국의 던전들을 검색했다.

GGW 공격대의 전력으로 공략할 수 있는 【A - 5】 와 【A - 6】 난이도의 던전들이었다. 이번 사태를 통해 다시 한 번 느꼈지만, 십이 재앙과 같은 강력한 네임드들이 활개를 치기 전에 최대한 빨리 공격대의 성급을 높이고 장비를 마련해야 했다.

다음화 보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