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2 재미있는 방송 촬영
“한민국 영웅은 어떤 분이세요?”
“네? 두 말 할 필요가 있나요? 어둠 괴물과의 전투 그리고 지휘의 천재죠.”
리포터의 질문에 일반인들은 무거워서 들 수조차 없는 기어 스코어 장비를 몸에 두른 아리따운 여성이 당연한 걸 왜 물어보느냐는 식으로 답했다. 그런 그녀의 가슴에는 장미 모양의 엠블럼에 새겨져 있었다.
잠시 후, 화면이 바뀌었다. 새로운 인터뷰 대상자는 메모리아 소속 영웅이었다.
“한민국 영웅이 이제 2년차였던가요? 사실 그런 초짜 영웅들을 가리켜서 저희들끼리는 라이센스에 잉크조차 마르지 않은 병아리들이라고 표현하거든요? 실제로 그 정도 수준의 영웅들은 클랜에서 애지중지 하는 유망주들 정도는 되어야 4, 5 등급의 몬스터를 상대하는 레이드에 끼어주곤 합니다.”
“어째서인가요?”
“스펙과 경험. 둘 다 부족하기 때문이죠. 물론, 한민국 영웅은 예외입니다. 사실 천재라는 존재를 저같은 범인이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국내 랭킹 1위인 강채영이 소속되어 있는 한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클랜이자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는 메모리아 클랜 소속 영웅은 그 말을 시작으로 한민국에 대한 질문에 긴 찬사를 늘어놓았다.
“그렇군요. 그러면 한민국 영웅이 지휘하는 GGW 공격대는….”
“그러니까 한민국 공대장이 정말로 대단한 겁니다! 아니, 그 한민국을 R’s 클랜으로 데리고 간 오현아가 대단한 건가? 아무튼 한민국 영웅의 대단함은 본인의 전투 능력만이 아닙니다. 영웅들을 성장시키는데도 일가견이 있어요. GGW 멤버들을 보시면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말끝을 흐리는 기자의 물음에 메모리아 소속 영웅이 뜨거운 목소리로 답했다. 질문에 흥분했다는 사실이 화면 밖에서도 느껴질 정도였다.
이어서 비교표가 등장했다.
일반적인 2, 3 년차의 영웅들은 본인들의 재능에 따라 선배 영응들과 함께 4, 5 등급의 몬스터 트라이에 참여하는 모습이었다.
동기들끼리 던전을 공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더군다나 3 등급 몬스터를 상대하는 이들도 적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민국과 GGW 공격대는 달랐다.
민국은 영웅들을 지휘해서 6 등급 이상의 괴물을 밥 먹듯 쓰러뜨리는 것은 물론이고 이번 동아시아 전투에서는 8 등급으로 추정되는 괴물이자 십이 재앙의 심복 중 하나를 쓰러뜨리는 데까지 성공했다.
일반 영웅이 그런 활약을 했어도 난리가 났을 지언데 심지어 민국은 남성 영웅이었다. 대한민국의 관심이 폭발하는 게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베트남에서는 국가적인 영웅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 * *
국내 언론사들은 쉴 새 없이 민국에 대한 기사를 내보냈다.
민국의 과거는 물론이고 영웅으로 활동을 하면서 세운 전공들까지. 모두가 민국의 일거수일투족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렇게 사람들은 방송을 통해 남자의 몸에도 불구하고 일선에서 몬스터를 쓰러뜨려나가는 민국의 활약을 보며 열광했다.
“관심들이 엄청나요. 지금도 클랜으로 걸려오는 전화가 하루에 몇 통이나 되는 줄 아세요?”
“뭐, 금방 사그라지겠죠. 그래도 한국은 큰 문제가 없어 보여서 다행이네요.”
이번 확산 현상으로 인해 베트남은 거의 망하기 일보직전까지 갔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분명 인접국인 한국도 영향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닐 텐데…. 의외로 쓸 데 없는 것에 열광할 정도로 평온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오현정이 자신의 입에 담배를 물며 말했다.
“언론이 일부로 GGW 공격대를 띄어주는 이유가 뭐겠어요?”
“…사람들의 불안감을 해소시키려는 의도인가요?
“맞아요. 이번 중국의 확산현상 때문에 직접 국군이 움직였어요. 국군 소속 영웅들도 모두 전방에 배치되었고 말이죠.”
“딱히 전투가 벌어졌다는 소식은 못들었는데요.”
“언론이 입을 다물었으니까요. 결과적으로 큰일은 없었어요. 압록강을 건너려는 어둠의 괴물에게 몇 번 포탄을 쏘았던 게 전부였죠. 무리를 지은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길을 잃은 놈들인지라 사망자 없이 끝났기도 했고요."
중국의 청더 시에서 압록강까지 고작해야 400Km 남짓 떨어져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한국 또한 확산 현상에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듣자하니 큰 문제는 없던 모양이었다.
현정은 담배를 손가락으로 집었다가 다시 입에 물기를 반복했다.
민국은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담배를 태우는 것도 아니고, 안 피는 것도 아닌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모양새였다.
“아, 실내는 금연이라서요.”
민국의 시선에 현정이 부끄러운 듯 말을 이었다.
“전에는 여기서도 피지 않았어요?”
“그 때는 진짜 특별했던 상황이었으니까요. 아무튼 정말 고생 많이 하셨어요. 내일이나 모레쯤 출장비하고 포상금이 나갈 거예요. 적은 돈은 아닐 테니…. 미리 축하드린다고 해야 하나요?”
“이제부터는 부자라서요?”
“그렇죠?”
현정의 대답에 민국은 어깨를 으쓱했다. 딱히 돈이 많아 봤자 자신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다.
당장 쓸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의, 식, 주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굳이 돈에 의미를 두자면 경매장에서 좋은 기어 스코어의 아이템을 구할 수 있다는 것 정도?
하지만 경매장의 주력 물품이라 할 수 있는 착용 시 귀속이 되는 아이템의 가격을 생각하면 그냥 상위 난이도의 던전을 돌고 어둠 괴물을 때려잡아 전리품 상자에서 아이템을 얻는 게 훨씬 효율적이었다.
그리고 민국과 GGW 공격대는 그것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기량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큰 전투도 치렀으니 휴식을 취할 건가요?”
“아니요. 6 등급 몬스터를 상대하면서 장비를 마련한 다음에 【A – 5】 난이도의 던전 공략에 들어갈 생각입니다. 블루급 결정을 얻어야죠.”
제국근위대의 도움으로 7 등급이 되었으니 다른 이들 역시 7 등급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래야만 또 다른 상위 난이도에 도전할 수 있었다.
‘이번 위기는 운 좋게 넘길 수 있었다지만….’
만약 가라이보다 더 강력한 개체가 나타났다면 혹은 가라이가 7 등급 스펙으로는 무슨 짓을 해도 버틸 수 없던 괴물이었다면 정말 큰 일이 날 법했던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퀘스트로 넘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무리해서 블루급 결정을 만들어냈던 뿌우와 큐우는 현재 조그마한 퀘스트조차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만큼 GGW 공격대의 스펙을 하루라도 빨리 높일 필요가 있었다.
“벌써 【A - 5】 던전 공략을 생각하고 있는 건가요?”
“가라이 같은 놈이 한국에서 나타나지 않을 보장은 없으니까요.”
“뭐, 그렇기는 하죠.”
민국의 말에 현정은 미간을 좁혔다.
올해만 벌써 3 번째 등장하는 확산 현상이었다. 다시 말해 어둠 괴물과의 전투가 다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연히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공략을 원하는 던전이 있으시면 미리 말씀해주세요. 우리 클랜이 관리하는 던전이 아니더라도 공략 허가를 받아낼 수 있으니까요. 또 달리 필요한 것이 있으세요?”
“부활석 지원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번 확산 현상을 해결하면서 남은 것들을 가지고 오기는 했지만….”
본격적인 공략에 들어가게 되면 하루에도 수십 개 이상 부활석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았다. R’s 클랜 소속의 리바이벌 팀으로는 그 수요를 충당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이번 원정비용으로 클랜이 번 돈도 적지 않으니 최대한 부활석을 확보해 보도록 할게요. 그룹 차원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잘 됐네요.”
민국은 클랜장인 현정과 함께 자신이 생각한 공격대의 일정에 대해 계속해서 대화를 나눴다.
현정 역시 과거 영웅으로 활동한 바 있었기에 민국의 계획에 조언을 해주거나 공격대에 필요한 것들을 딱딱 캐치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둘의 대화에서 나온 핵심적인 내용은 현정의 비서가 빠르게 기록했다.
그렇게 이야기가 마무리 될 때쯤이었다.
“아, 혹시 방송 출연 하실 생각 있어요?”
“방송이요? 영웅 관련 방송인가요?”
뜬금없는 현정의 물음에 민국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뇨, 평범한 예능 프로그램이에요. 아시다시피 사람들의 관심이 대단하잖아요? 때문에 방송계 쪽에서도 몸이 많이 달아오른 모양인가 봐요. 뭐, 크게 메리트가 있는 건 아니지만 페이도 업계 최고로 쳐 줄 테니 심심풀이로는 나쁘지 않다고 봐요.”
“예능이라…”
갑자기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예전에 현아와 유나가 둘이서 개인 방송을 했던 기억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또한 던전 공략의 풀타임 공략도 생방으로 진행했던 적도 있었다.
‘그 때 방송을 봤던 이들이 18만이나 되었던가?’
예전 세계를 기준으로 하면 머 기업이 따로 없었다.
아무튼 그 이후로 GGW 공격대가 방송을 한 적은 없었다. 확산 현상이 터지면서 베트남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민국이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며 현정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딱 부러지게 거절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관심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한민국 영웅이 방송에 나가게 되면.’
R’s 클랜에 대한 관심 또한 엄청나게 높아질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관심은 많은 이들의 후원으로 되돌아올 테고 또한 실력 있는 영웅들이 클랜에 입단할 가능성도 높아질 게 틀림없었다.
‘1팀과 GGW 공격대가 잘 해주고 있기는 하다만….’
클랜을 성장시키려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게다가 어둠 괴물과의 본격적인 전쟁이 벌어지면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영웅 한 명의 존재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많은 인원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랭커 클랜 타이틀을 박탈당한 R’s 클랜이 내세울 수 있는 건 오로지 한민국뿐이었다.
“급한 것은 아니니까 한 번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이어지는 현정의 말에 민국도 고개를 끄덕였다. 출연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말대로 일단 재미는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 * *
클랜 하우스의 회의실에는 GGW 멤버들이 자유분방한 자세로 대기를 하고 있었다.
이번 확산 현상에서 고생을 한 클랜의 1 군 공격대는 일주일의 휴가를 받았다지만 GGW 공격대는 예외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실에 불만을 가지는 팀원은 아무도 없었다.
공대장인 민국이 제국근위대와 함께 가라이를 때려잡는 동안 그녀들은 하노이의 호텔에서 나름 편안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기이잉.
문이 열리면서 민국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편안한 자세를 하고 있던 이들이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런 팀원들의 분주한 움직임에 민국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대충 아무렇게나 있어요. 우리가 군인도 아니고….”
“엄격한 규율을 지닌 군인보다도 앞서서 몬스터들과 전투를 벌여야 하는 영웅들이지.”
공격대의 맏언니라 할 수 있는 소정의 말에 민국은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오늘부터 저희들은 이 세 곳의 던전 중 한 곳의 공략을 진행할 겁니다.”
말과 함께 민국은 던전 세 곳의 이름을 칠판에 적었다.
【A - 6】 난이도의 던전인 ‘왕의 용’
【A - 6】 난이도의 던전인 ‘성남 폐허 전투’
【A - 6】 난이도의 던전인 ‘공허의 문’
테블릿으로 몇 번이나 검색을 했던 던전들로 세 곳 전부 GGW 공격대의 전력으로도 충분히 공략이 가능한 던전들이었다. 당연히 던전에서 등장하는 어둠 괴물을 쓰러뜨리면 공격대의 전력에 도움이 되는 아이템을 얻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왕의 용에서는 유나와 활과 딜러들의 방어구 중 몇 부위를 획득할 수 있었고, 성남 폐허 전투에서는 힐러 장비와 탱커 장신구, 공허의 문에서는 딜러들의 화력에 영향을 주는 딜러 장신구를 획득할 수 있었다.
모두가 6성 영웅들이 착용할 수 있는 높은 기어스코어의 장비들이었다.
“스펙 업이 목적인가요?”
유나가 손을 번쩍 들며 물었다.
“그래.”
그리고 민국은 짧게 대답하며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이제부터는 길고 긴 노가다의 시간이었다.
어둠 괴물을 쓰러뜨린다고 해서 바로 장비를 얻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옛날 김소정의 화염 대검을 얻는데도 제법 고생을 했던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해야 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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