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203화 (203/486)

EP.203 재미있는 방송 촬영

“다들 알고 있겠지만 이번 확산 현상은 인간들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심복을 잃은 가루다는 본인의 둥지인 새의 탑에 틀어박혔고, 바이콘 역시 큰 피해를 입고 물러났죠. 하지만 그게 전부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잃었지만, 우리들이 얻은 건 거의 없죠.”

그렇다고 해서 인간들이 전쟁의 주도권을 잡았느냐?

당연히 그것도 아니었다. 현재 인간들의 수준으로는 힘을 잃은 가루다마저도 공략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별 볼일 없는 공격대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세계 최고의 공격대라는 화이트 하우스도 마찬가지. 물론,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화이트 하우스를 새의 탑에 투입하자는 의견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쌍수를 들며 반대했다.

만약 무리한 공략으로 화이트 하우스의 영웅을 잃는다면 미국의 괴물 방어 전략이 완전히 어긋나게 되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전례도 있었다. 운 좋게 가라이가 쓰러지면서 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지만 제국근위대의 공대장인 셀레스가 어둠 괴물에게 당해 마력이 오염되는 상황까지 간 적이 있었다.

‘괜히 카오스가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나를 데리고 온 게 아니지.’

몇 번이나 했던 생각이지만 이대로라면 이 세계의 미래는 불을 보듯 뻔했다. 그리고 그것을 막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제부터는 아이템 획득을 우선으로 던전을 공략해 나갈 겁니다. 그렇게 공격대의 장비를 업그레이드 하면서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다 싶으면 【A – 5】 난이도의 던전 공략에 들어갈 겁니다. 일정이 빡빡하기는 하지만 상황의 심각성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스펙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맞네. 올해만 던전 브레이크가 세 번이나 터졌으니….”

“본격적인 전쟁이 올 지도 모르겠어. 뭐, 집에서 죽치고 있어봤자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찬성.”

“실가는 데 바늘도 따라 간다고. 민국이가 던전을 공략하는 데 메인 탱커인 이 오현아님이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어? 공대장님이 7성이니 이제는 저희들이 버스를 타는 거네요?”

민국의 의견에 팀원들은 다들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라이 공략 때 있었던 일로 인해 그녀들 역시 본인들이 성장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이 중에서도 먼저 공략에 들어간 던전을 정해야 하는데….”

공략 던전은 쉽게 결정되었다. 투표를 했는데 팀원들 대부분이 공허의 문 공략을 선택한 것이다.

“공격대 화력을 뻥튀기 하려면 장신구는 역시 필수지. 괜히 아이템 값이 가장 비싸겠어?”

“맞아요. 그리고 마력구도 얻을 수 있잖아요?”

유나의 말대로 공허의 문에서는 마력의 위력 증가라는 효과를 지닌 ‘달의 심장’이라는 딜러 장신구를 획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어스코어 780의 마력구 또한 얻을 수 있었다.

“사실 제일 좋은 것은 기어스코어 799인 환상의 마력구지만….”

환상의 마력구는 네덜란드와 브라질에 있는 던전에서만 획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780과 799의 차이는 공격대의 전술과 트라이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차원을 달리할 정도의 위력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면 공허의 문에서는 마력구와 함께 달의 심장 다섯 개를 획득하는 걸 목표로 하겠습니다.”

“다섯 개라…. 벌써부터 피곤해지는 느낌이네요.”

민국의 말에 소정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화염 칼날을 얻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다시 한 번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장신구는 3네임드의 전리품 상자에서 얻을 수 있어요. 마력구는 마지막 네임드고요.”

유나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중국에서 줬던 기어 스코어가 높은 깡통 장비가 아니라 전리품 상자를 통해 제대로 된 장비를 구한다는 사실이 제법 기쁜 모양이었다.

“그러면 이 천호동 럭키걸이 빠질 수 없지.”

현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공허의 문 공략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민국은 공허의 문 공략을 진행하면서 다른 스케줄 또한 소화를 해야 했다. 바로 방송이었다.

* * *

《갑자기 방송이라뇨? 던전 공략도 힘드실 텐데 너무 무리하시는 것 아닙니까?》

‘뭐, 흥미가 없는 것도 아니고. 신규 영웅들을 끌어 모으려면 클랜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잖아?’

《뭐, 뭐라고요?! 감히 누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그 때 봤던 클랜장이죠? 이런 시건방진 년! 우리 민국님을 얼굴 마담으로 내세우려고 하다니!》

‘…뿌우야. 너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야?’

이상할 정도로 격한 반응을 보이는 뿌우의 모습에 민국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는 빨간 불을 확인하고는 브레이크를 밟았다. 방송국의 촬영장으로 가는 동안 운전하는 민국의 차량은 로즈 그룹의 최고급 자동차였다.

그룹 회장인 조은영이 베트남의 확산 현상에 참여한 대가로 제공한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잠깐이나마 그녀의 뜨거웠던 육체가 생각이 나기는 했지만 자리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그녀 역시 그룹 회장이라는 위치로 인해 굉장히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조은영을 생각하며 끓어 올랐던 성욕은 현아를 통해 풀었으니 큰 상관은 없었다.

《그래도 던전을 공략하기에도 바쁘신 분에게 어떻게…!》

‘그렇게 바쁜 건 아닌데?’

《네?》

민국의 대답에 뿌우가 당황한 듯 메시지 창이 크게 흔들렸다.

사실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는 빡빡하게 던전을 공략해야 정상이겠지만, 의외로 당장 던전 공략에 들어가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몬스터들의 패턴에 영웅들이 적응할 시간 때문이었다.

‘그냥 생으로 꼴아 박아도 되겠지만….’

그로 인해 낭비되는 부활석을 생각하면 기존의 영상들을 통해 몬스터의 패턴을 다각도로 확인하고, 실전으로 경험한 다음 그것에 대응할 수 있는 훈련을 하고 난 뒤에 공략에 들어가는 게 훨씬 효율적이었다.

그 때문에 공대장인 민국도 방송에 출연할 수 있는 시간을 낼 수 있었다. 다른 영웅들과는 달리 민국에게 패턴 대응 훈련은 있으나마나한 훈련이었다.

사실 조금 귀찮기는 했다. 하지만 귀차니즘보다는 이 세계에서 활동하는 연예인들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강했다.

게다가 자신이 방송에 나오게 되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궁금했다. 자신을 관종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이 세계는 놀라울 정도로 본인을 사랑해주는 세계였다.

《연예인? 그게 중요합니까? 민국님은 원하시면 어떤 여자든지 손에 넣을 수 있으시잖아요?》

‘어떤 여자든지?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것도 접점이 있어야지.’

《음….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런데 민국님. 여자 많지 않아요?》

‘…….’

뿌우의 말에 민국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GGW 공격대 대부분이 속해 있는 카르텔의 연인들을 포함해 국내 다른 클랜의 에이스급 영웅들은 물론이고 뀨우♡의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 외국 영웅 다수와 잠자리를 함께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세계를 기준으로 하면 많은 건 결코 아니었다.

‘성비가 완전히 망가진 데다 이후의 상황까지 최악이지. 오죽하면 어둠 괴물과의 전쟁이 아니라 인류의 숫자가 줄어서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오겠어?’

아무튼 민국이 출현하기로 한 프로그램은 ‘금쪽같은 내 영웅’이라는 유치한 타이틀의 방송이었다. 하지만 이 유치한 타이틀의 방송은 매 주 시청률이 무려 20% 가 넘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방송이었다.

방송 컨셉은 간단했다.

상위 영웅을 게스트로 섭외해 실력이 부족하거나 어디인가 문제가 있는 1,2성 영웅들로 이루어진 파티의 플레이를 지켜보면서 출연진과 게스트들이 함께 그녀들의 문제점 및 약점을 코칭해주며 제대로 된 한 사람의 영웅으로 성장시켜 나가는 프로그램이었다.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막연히 강하게만 보였던 영웅들의 인간적인 모습과 상위 영웅들의 충고를 받아 점점 성장해나가는 장면들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면서 재미와 감동까지 둘 다 붙잡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실제로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1,2 성 영웅들 중에는 자신들의 약점을 고치며 10대 클랜에서 활약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사실 그보다는 게스트로 등장하는 영웅들 대부분이 상위 영웅이라는 점이 인기의 더 큰 비결이겠지만.

‘애들 키우는 거야 내가 전문이긴 하지.’

민국이 모바일 가상현실 게임인 GGW 에서 등장 영웅들을 키운 숫자만 수백 번이었다.

그 뿐인가?

GGW 공격대 역시 자신이 키워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다들 괜찮은 재능을 지녔고, 싹 수도 좋았기에 지금까지 함께할 수 있었지만. 어쨌든 이번 방송은 한 달 가까이나 진행을 해야 했다. 사실 그것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시간을 내기에는 민국도 곤란했다.

방송 출연이 흥미롭기는 해도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스펙 업과 【A – 5】 던전의 공략이었다.

“오, 오셨습니까?”

민국이 세트장에 도착 했다는 소식을 받자마자 중년의 PD가 후다닥 달려왔다.

PD 뿐이 아니었다. 평소와는 달리 촬영장을 얼쩡거리며 스탭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방송국 사장과 예능국장까지도 걸음을 옮겼다.

그런 고위 간부들의 이상 행동에 아침부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작가와 조연출 역시 난리가 난 건 당연했다.

“대체 누가 나오기에 PD님이 저런대? 강채영이라도 오는 건가?”

“그것보다는…. 남자 아니야? 남자 같은데?”

“우리 프로그램에 남자 영웅이 나온다고? 아니, 한국에 그럴 만한 사람이 있었어?”

하지만 그런 이야기도 잠시 곧 작가들 사이에서 큰 환호가 터져 나왔다.

“하, 한민국이다!”

“한국의 영웅!”

순식간에 난리법석이 난 스탭들에게 PD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혹시나 말하는 데 한민국 영웅이 방송에 나온다는 거 퍼뜨리는 사람은 전부 인생 종 칠 줄 알아요. 방송국과 영웅 협회의 변호사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알았죠? 그리고 출연자들한테도 미리 얘기하지 마세요. 걔네들이 놀라는 모습도 카메라로 찍을 거니까요.”

PD 의 협박에 스탭들은 다들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민국을 바라보는 눈만큼은 다들 초롱초롱했다. 다행히 민국을 제외하면 촬영장에 도착한 출연진은 아무도 없었다.

“오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야 말로요. 괜히 한민국 영웅님의 귀한 시간을 빼앗는 게 아닌지 모르겠네요.”

“아닙니다. 저도 방송 재미있게 봤습니다.”

“어머? 우리 프로그램을 보신 적이 있으세요?”

자신에게 집중되는 수많은 시선들을 느끼며 민국은 여유롭게 방송국 사장과 예능국장이라는 여인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 정도의 관심은 베트남에서도 매일 받았던 터라 크게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그렇게 인사를 끝내고 민국은 스탭의 안내를 따라 대기실로 향했다.

“여기 대략적인 대본이 있기는 합니다만…. 굳이 대본대로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신에 대한 호의가 듬뿍 담긴 목소리였다.

“그래도 되나요?”

“물론이죠.”

민국의 물음에 메인 작가로 보이는 여성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틀에 짜인 것 같은 대본대로 하는 것 보다는 민국이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훨씬 좋아보였다.

“저희 방송이 어떤 방송이시는 조금이라도 아시죠?”

“모니터링을 하기는 했습니다만.”

“어머, 정말 대단하세요. 괴물들을 상대하시느라 바쁘실 텐데…. 어쨌든 간단하게 촬영이 어떻게 진행이 되는 지 설명을 드릴게요.”

그렇게 한 시간 가량 방송과 관련된 대화를 나누고 촬영장으로 향하자 벌써 출연자들이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출연자는 여성 네 명과 남성 한 명으로 이루어진 멤버들이었다. 티비로만 보던 이들을 직접 눈으로 보자 조금은 신기한 느낌이었다.

“혹시 출연자들에 대해 제가 설명 좀 드릴까요?”

민국이 뚫어지게 출연자들을 바라보고 있자 옆에 있던 스탭이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양 옆으로 땋은 갈래머리가 인상적인 여성이었다.

“아, 괜찮습니다.”

민국은 미소와 함께 스탭의 친절한 제안을 거절했다.

그래도 자신이 출연할 방송인데 출연자들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다섯 명의 출연자들은 시청자들 사이에서 금쪽이라 불리는 문제 영웅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민국이 모습을 드러낼 차례가 다가왔다.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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