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4 재미있는 방송 촬영
‘50회인데…. 오늘의 게스트는 대체 누굴까?’
촬영이 진행 중이었지만 아이돌그룹 컨피덴셜의 리더이자 ‘금쪽같은 내 영웅’의 고정 패널로 활약하고 있는 소담은 도통 방송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인류를 위해 어둠 괴물들과 싸우는 영웅들은 그녀의 우상이나 다름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는 영웅을 만날 수 있는 이 시간은 소담에게는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이나 다름없었다.
‘랭커? 10대 클랜? 그래도 50회 차니까…. 랭커 클랜에서 활약하고 있는 영웅들을 섭외했겠지? 이왕이면 메모리아나 강한 여자들 소속 영웅이면 좋겠는데.’
분명 이번 회 차를 맞이해 PD가 특별 게스트를 섭외한 게 분명했다. 감이 그랬다. 실제로 촬영장에 흐르는 분위기는 평소와는 크게 달랐다. 말이 많아 출연진들끼리 수다쟁이라 부르는 메인 MC도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이 심상치 않은 느낌이었다.
“저희 금쪽같은 프로그램이 벌써 50회나 됐습니다! 그 동안 고민을 가지고 있는 영웅 분들이 도움을 요청했고 저희들이 힘을 합쳐서 그 분들을 도와드렸는데요. 도움이 되셨다고 말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았죠?”
“맞습니다. 그렇게 프로그램을 방문하신 분들 중에는 현재 재능을 인정받아 랭커 클랜에서 천천히 실력을 갈고 닦으시는 분들도 계시죠?”
“이세영 영웅 말이죠? 저는 그 분에 대한 글을 볼 때 마다 얼마나 가슴이 뿌듯한지 몰라요.”
메인 MC를 포함해 다른 진행자들도 소담과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래도 프로 방송인답게 MC 와 패널들은 능숙하게 오프닝을 진행했다.
“네. 바로 이화 클랜에서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요. 그래서 오늘도 이화 클랜의 한다미 영웅님이 나오셨습니다. 이제는 거의 방송인이 다 되신 분이죠?”
“어머? 그래도 일주일에 한번 씩은 꼬박 【A】 난이도의 던전을 공략하거든요?”
“촬영 때문에 매번 훈련 빠지시는 거 아니셨죠? 공대장님께서 트라이에 끼워주세요?”
“저 나름 베테랑이거든요?”
진행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기어스코어 장비를 착용한 미모의 여성이 자신의 입술을 쌜쭉 내밀었다.
그렇게 신변잡기와 함께 간단한 이야기들이 끝나자 오늘의 게스트를 소개할 시간이 되었다. 프로그램의 메인 MC를 맡은 수아가 PD와 작가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드디어 오늘의 게스트를 소개할 시간이네요. 소담 씨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죠?”
“하하하….”
“어쨌든 제가 오늘 촬영장에 도착할 때부터 이상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왠지 촬영장의 분위기가 경직된 느낌?”
“맞아요, 저도 그랬어요.”
수아의 말에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촬영장의 분위기가 평소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런데 큐 카드를 확인하니 매 주 적혀 있던 게스트 란이 완전히 비어 있더라고요? 원래는 촬영 전에 게스트 분과 만나서 가볍게 인사를 나누곤 했는데, 게스트 분이 없는 것 마냥 작가들이 완전히 감췄단 말이죠?”
“설마…. 게스트 없이 오늘의 조언자로 게스트 없이 한다미 영웅님이 활약하시는 거 아니에요?”
“어우. 프로그램 시청률이 10% 이상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네요. 오늘이 마지막 방송인가요? 다들 촬영 마치면 쫑파티 한 번 해야겠네요.”
짓궂은 농담과 함께 웃음을 터뜨리는 패널들. 다들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던 사이답게 척척 멘트를 주고받는 모습이었다.
“그것도 가능성이 없지는 않은데, 우리 PD가 시청률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란 말이죠. 분명 대단한 게스트를 섭외했을 것 같은 느낌인데….”
“서, 설마! 그 분이?!”
수아의 말에 소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단한 게스트라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인물이 한 명밖에 없었다.
“그 분이라면 혹시? 메모리아의?”
“가, 강채영?”
프로그램의 50 회를 장식할 특급 게스트가 등장할 시간이 다가오자 촬영장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감을 지닌 영웅이 방송에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자! 그러면 오늘 금쪽이들에게 도움을 주실 영웅 분을 모시겠습니다!”
박수 소리와 함께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게스트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은 곧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던 영웅이 천천히 자신들에게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세요.”
바로 한민국이었다.
“허억?!”
“어…. 어어…? 어?! 꺄악!”
민국의 얼굴을 확인하고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한다미.
그러다가 스튜디오의 테이블에 무릎을 세게 부딪치고는 아픈 듯 울상을 지었다. 당연히 카메라는 이런 한다미의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빈자리에 앉은 민국은 그런 한다미를 향해 조심스레 물었다.
“세게 부딪치신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아, 네, 넵. 이 정도야 거뜬하죠.”
“우와, 씨! 조PD!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어, 어떻게 섭외 했어?!”
민국의 등장에 촬영장은 스튜디오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영웅인 한다미를 포함해 여성 출연진은 민국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고, 이는 유일한 청일점인 최선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그…. 진짜 저희 프로그램에 나오시는 것 맞죠?”
민국의 등장에 문자 그대로 기겁을 했던 메인 MC인 수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아무리 그녀가 연예계에서 최고의 인지도를 자랑하는 베테랑 MC라지만 민국은 이번 확산 현상을 통해 십이 재앙의 심복을 쓰러뜨리고 베트남의 구원자가 된 영웅 중의 영웅이었다.
심지어 공대장으로 인류 최후의 보루 중 하나인 제국근위대를 지휘해 확산 현상을 해결하기까지 했다. 덕분에 국내에서의 인지도만 따지면 메모리아의 강채영을 뛰어넘을 정도로 이를테면 아이돌의 아이돌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와…. 이러니까 작가들이 그렇게 꽁꽁 입을 다물었지.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진짜 촬영장 분위기가 이상하긴 했다니까?”
민국의 등장에 충격으로 굳어 있었던 또 다른 패널인 지수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옆에 있던 소담은 말없이 민국의 얼굴만 힐끔 바라 볼 뿐이었다. 민국의 잘생긴 얼굴이 눈에 들어올 때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지 머릿속에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그거 아세요? 한민국 영웅이 오시자마자 우리 소담 씨가 지금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거? 우리 소담씨가 이런 여자가 아닌데….”
당연히 수아가 그 모습을 놓칠 리 없었다.
“맞아요. 소담 누나, 너무 부끄러워하시는 거 아니에요?”
남성 패널인 최선우도 수아를 거들었다. 자신에게 하는 행동과는 전혀 딴 판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말에 민국도 소담을 바라봤다.
‘아이돌이었지?’
그룹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인기가 제법 많은 아이돌이라고 했다. 그리고 프로그램에서는 현역 영웅이라 생각될 정도의 폭 넓은 레이드 지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패널들의 짓궂은 멘트에 소담이 한 번 더 민국을 힐끔 보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 조용히 해. 너무 잘생겨서 숨이 막힐 것 같단 말이야.”
그런 소담의 중얼거림에 촬영장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런 소담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만큼 민국의 외모가 숨이 막힐 정도로 잘생겼던 까닭이었다.
그 때 프로그램의 막내이자 남자 패널인 선우가 민국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한민국 영웅님은 이 중에서 어느 분이 가장 예쁘신 것 같으세요?”
“누가 제일 예쁘냐고요?”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몸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이미 시선은 자리에 있는 네 명의 여성들에게 향해 있었다. 그러자 다양한 자세로 웃음을 터뜨리고 있던 이들이 하나같이 몸을 바로하고는 예쁜 포즈를 취했다.
‘뭐….’
일단 메인 MC인 수아는 제외.
이름은 예쁘지만 예쁜 건 이름 뿐이었다. 인간으로서의 매력은 넘쳐날 지 몰라도 일단 질문은 에쁜 사람을 고르라는 거였으니.
한다미도 제외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영웅이기 때문에.
‘그러면 남는 건….’
지수와 소담이라는 여성이었다.
그리고 지수는 모델로 소담은 아이돌로 활동하는 여성들이었다. 둘 다 예쁘고 매력적인 여성들이었지만 선택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소담씨요.”
자신의 외모적인 취향은 소담이라는 여성에 더욱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네?”
민국의 시원한 대답에 질문을 던졌던 선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연히 한다미를 입에 올릴 줄 알았는데 대답이 살짝 의외였던 까닭이었다. 그리고 민국이 태연한 척 입을 열었다.
“한다미 영웅은 제외했습니다. 마력을 각성한 영웅이시잖아요?”
이어지는 민국의 대답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던 다미가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선택을 받은 소담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가리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방송 분량을 위한 여러 질문들이 이어졌고, 민국은 패널들의 질문에 하나하나씩 대답을 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녹화가 시작되었다.
* * *
“오늘 코칭을 받으실 영웅 분들은 2성 분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네요.”
“어머? 이 분은 라이센스를 딴 지 제법 오래되셨어요.”
“그러게요? 최별 영웅. 나이는 스물 셋으로 각성을 일찍 하신 것 같죠?”
2 성 셋, 1 성 둘로 이루어진 파티.
그 중에는 무려 7년차 영웅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중간에 활동을 그만두었던 건지 던전 공략 전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딱히 별 문제점이 없어 보이는 모습.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영웅들은 하나같이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목적이었다.
“일단은 방송 하나가 나올 겁니다. 이 분들끼리 촬영팀과 함께 던전을 공략했던 방송인데요. 저희들은 그 영상을 보고 이 분들의 문제점이 뭔지 찾아볼 예정입니다.”
“크…. 오늘은 정말 기대가 되네요. 한민국 영웅님은 공대장이시잖아요. 보는 눈이 정말 남다를 것 같은데요.”
“글쎄요. 어쨌든 최선을 다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우의 말에 민국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방송이 시작되었다.
‘2성 던전인가?’
영상을 보니 탱커 한 명과 근딜 하나 그리고 원거리 딜러 둘과 힐러 한 명이 조심스레 던전 내부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잠시 후, 영웅들의 등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괴물들. 징그러운 생김새를 한 언데드였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죽여! 왼쪽에 둘 온다!]
[정면에 하나!]
민국은 집중에서 영상을 바라봤다. 아니나 다를까 전투는 엉망에 가까웠다.
탱커는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괴물의 어그로만 끌고 있었으며, 딜러들은 본인들의 어그로 관리도 하지 않은 채 화력만 막무가내로 끌어 올리고 있었다.
그나마 힐러가 어느 정도 제 몫을 하기는 했지만, 역시 아쉬운 부분은 있었다. 난전 상황에서 빛을 볼 수 있는 군중 제어 능력을 사용하는 모습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전투는 영웅들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언데드들이 딜러의 화력을 감당해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상대가 조금이라도 강한 개체였다면 결과는 백퍼센트 뒤바뀌었을 터였다.
‘그래도 당장 문제라 할 건….’
없는 것 같았다.
눈에 보이는 전투는 엉망에 가까운 수준이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경험의 문제로 보였다. 그런 것을 감안하면 이번 코칭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이어서 네임드 전투가 시작되었다.
리치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괴물로 언데드를 불러내며 자신의 부하가 쓰러지면 시체를 폭발시켜 데미지를 주는 놈이었다. 그러면서 강력한 어둠의 화살로 파티원 중 한 명을 공격했다.
[폭발?! 으아악!]
[어엇?! 꺄악!]
그리고 파티는 첫 번째 네임드를 감당하지 못하고 전멸했다. 다들 열심히 딜을 넣는 모습이었지만, 패턴에 대한 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지적해줄 머리도 없어 보였다.
‘총체적 난국이네. 준비가 하나도 안 되어 있어.’
조금 실망스러웠다.
레이드의 기본도 지키지 않는 이들이 공부조차 되어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가상현실 모바일 게임인 GGW 의 최하위 영웅인 1성 영웅들도 저렇게는 싸우지 않았다. 한 마디로 그냥 본인들의 마력만 믿고 달려드는 셈이었다.
“화력은 나쁘지 않은데…. 전투가 살짝 답답해 보이기는 하네요. 시야가 너무 좁은 것 같죠?”
“그래도 탱커의 방어력은 괜찮아 보이는데?”
“힐러의 회복 능력도 괜찮아 보였어요. 이거 너무 쉬운 거 아니야?”
의외로 패널들은 다들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모습이었다.
“기술적인 면은 좀 더 봐야하겠지만 일단 큰 문제는 없어 보이네요. 굳이 따지자면 경험?”
한다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속으로 PD가 정상에 가까운 영웅들을 섭외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만큼 다들 생각 이상으로 잘 싸우는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한민국 영웅님의 생각은 어떠세요?”
수아의 질문에 모두의 시선이 민국에게 향했다. 제국근위대를 지휘해 가루다의 심복을 쓰러뜨렸을 정도의 실력자는 지금의 전투를 보며 어떤 느낌을 받았을지 궁금했던 것이다.
‘어떻게 말을 할까….’
그리고 잠시 고민을 하던 민국은 곧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레이드의 A부터 Z까지 모든 준비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네요. 영웅 학교에서는 대체 뭘 배운 거죠?”
이왕 방송에 출연하기로 한 것. 제 몫을 해 주는 사람이나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