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6 재미있는 방송 촬영
“…네, 네?”
“뭐라고요?!”
민국의 말에 출연진들은 다들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민국은 모르는 일이지만 신지민은 한다미가 코칭을 맡기로 암묵적으로 이야기가 되어 있던 영웅 유망주였다.
아무리 신지민이 과거에 거친 생활을 했던 성격이 더럽던 한다미는 랭커 클랜인 이화 클랜에서 활동하는 현직 영웅으로 생사를 오가는 어둠 괴물과 몇 년 넘게 싸웠던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다.
신지민의 거친 성격 정도는 한 손가락으로 찍어 누를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성격이 더러운 걸 따지자면 몇 년 가까이 어둠 괴물과 전투를 벌이며 굴렀던 한다미가 한 수 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놀란 건 출연진만이 아니었다. 카메라를 의식하며 가만히 대기하고 있던 신지민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몸을 흠칫 떠는 모습이었다.
“신지민 영웅은 딜러인데요? 그것도 단검을 사용하는?”
한다미가 신지민을 힐끔 보며 입을 열었다.
티가 확연하게 드러내는 신지민의 행동에 민국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한다미의 그런 행동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단검술 및 딜러의 코칭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이들은 자신을 가라이를 공략한 공대장이자 힐러 영웅이라고 알고 있겠지만, GGW 공격대의 영웅들이라면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 하나 더 있었다.
악의 칼날 클래스를 사용하는 민국의 딜링 능력은 수준급이라고 표현하기도 아까울 정도로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제가 딜링도 굉장히 잘합니다.”
민국의 주 캐릭터가 힐러였다면 가장 즐겨하던 부 캐릭터는 단검 도적이었다. 당연하지만 단검 도적으로도 세계 랭킹 100 위 안에는 들었던 실력자 아니 폐인이었다.
“이거 어떻게 하죠?”
메인 작가의 말에 촬영을 지켜보고 있던 PD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자신들의 의도와는 너무나도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민국은 신지민을 단단히 찍은 모양이었다.
“한민국하고 신지민하고 뭐 있어?”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왜 갑자기 신지민에게 관심을 보이는 거지? 나쁜 여자라 그런가?”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아무튼 어떻게 할 거예요? 이대로라면 신지민의 멘토로 한민국 영웅이 붙을 것 같은데?”
“어, 음…. 카메라는?”
“계속 찍고는 있어요. 어쨌든 신지민에게 한민국 영웅을 붙여놓으면 제 생각으로는 반드시 사고가 생길 거예요.”
프로그램의 메인 작가인 그녀는 고귀하다 못해 한국의 보물이라 할 수 있는 한민국이 신지민과 같은 양아치랑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물며 일대일 코칭을 하는 동안에는 출연진과 영웅들은 시시때때로 만나서 서로의 약점을 극복해야 했다.
처음과는 다르게 문제를 지닌 영웅이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이번 코칭의 목적이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즉 촬영 때문에라도 신지민과 한민국은 계속해서 붙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방송 사고라…. 일단 쟤 남성 관계 어떤데? 과거는?”
“현재 덩치가 좀 있는 남자친구가 한 명 있고…. 마력을 각성하기 전에 양아치 짓 좀 했던 모양이에요. 걱정이 되는 건 양아치 시절 남자를 돌렸다가 처벌을 받은 전적이 있어요.”
“한민국 영웅이 그 사실을 알아?”
“프로필을 확인하는 것은 봤는데….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옛날 일이라 신경을 쓰지 않을 수도 있고요.”
“…그건 좀 큰일인데.”
PD는 입맛을 쩝 다셨다. 막 나가는 인생이라 생각했는데 상상 이상이었다.
수많은 방송 카메라가 자신을 찍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지민의 자세는 껄렁함 그 자체였다. 게다가 메인 작가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그녀가 한민국을 향해 짓는 표정 또한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둘만 남겨 놓으면 한민국을 홀라당 벗겨 먹겠다는 얼굴로 보였다.
“같은 힐러인 홍예나 영웅이 더 코칭에 적합하지 않을까요?”
충격에서 헤어 나온 수아가 민국에게 재차 물었다. 소담과 지수도 옆에서 필사적으로 말리는 모습이었다.
그런 출연진들의 행동에 민국은 다시 한 번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이들이 하는 걱정이 너무 뻔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게 걱정이었으면 성격이 조용조용한 이들을 골랐어야지.’
게다가 이들이 걱정을 하는 그런 상황은 오히려 민국이 환영하는 바였다. 신지민이 자신에게 추파를 던지는 것 자체가 민국이 원하는 바이기 때문이었다.
‘프로필에는 남자 관련해서 처벌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지?’
일반이었을 때도 그런데 영웅이 된 지금은 더더욱 남자에 미쳐 있을 게 분명했다. 당장 만나고 있는 남자가 있다고는 하는데, 사실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뭐, 보아하니 미래를 생각하며 만나는 관계도 아닐 테고 말이다.
그래도 여기서는 당장 이들의 불안감을 해소해 줄 필요가 있어 보이기는 했다.
출연진 뿐 아니라 촬영 스탭들도 표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대로라면 자신이 신지민을 코칭하는데 있어 계속해서 태클이 들어올지 몰랐다. 그리고 이왕이면 겸사겸사 촬영 분량을 만들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면 단검을 사용하는 모습을 좀 보여드릴게요.”
“…네?”
“제가 직접 신지민 영웅의 문제점을 고치려면 적어도 신지민 영웅보다는 잘 싸워야 하지 않겠어요?”
“어떻게요?”
소담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음…. 직접적인 비교 대상이 필요하니 신지민 영웅과 가볍게 겨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뉴비를 괴롭히는 건 취미에 맞지 않지만 필요하다면 놀아줄 생각은 있었다. 겸사겸사 힘의 우위가 누구에게 있는지도 알려주고 말이다.
“저랑 한 판 붙으려고요?”
그런 민국의 제안에 신지민이 불쑥 앞으로 튀어 나왔다.
갑작스럽게 나서는 신지민의 행동이 건방지게 느껴졌는지 민국의 옆에 있던 한다미가 인상을 버럭 썼다. 그나마 촬영 중이라 험한 말은 입으로 삼키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신지민은 그런 한다미의 행동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한다미와 관계가 틀어지면 이화 클랜과는 부딪치지만 않으면 일차원적인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행여나 정 상황이 이상해지면 남자를 등쳐먹던 원래의 생활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이유 역시 영웅 라이센스를 따서 클랜에 들어가면 돈을 많이 만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녀는 베트남의 국민 영웅이나 천재라 불리는 한민국 앞에서도 아무런 필터링 없이 그대로 말을 내뱉었다.
“성급 차이가 조금 나기는 해도 연약한 힐러신데 정말 괜찮겠어요? 제가 또 마력을 각성하기 전에 날붙이 좀 몇 번 만져 봤거든요?”
“어, 음….”
살짝 건방져 보이는 신지민의 말에 민국은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
가소롭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를 보니 어째 실력 행사를 한 번 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민국은 어깨를 살짝 으쓱이고는 몸을 움직였다.
콰아앙!
눈 깜짝할 사이에 요란한 소리가 촬영장에 울려 퍼졌다. 민국에게 매다 꽂힌 신지민이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구겨져 있었다. 순식간에 신지민의 품으로 파고 들어간 민국이 그녀를 업어서 던져 버린 것이다.
“이런…. X발! 남자라고 좋게 봐줬더니!”
당연히 한 성깔 하는지 신지민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게다가 자신이 먼저 얻어맞은 상황이었다.
분노로 눈이 먼 신지민은 바로 민국에게 달려들었다. 여자의 자존심이 있지 남자에게 얻어 맞고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만약 방송에 이 장면이 나가기라도 한다면 그녀는 그녀의 친구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게 분명했다. 그러나 민국은 그녀에게 얻어맞던 일반적인 남자가 아니었다. 게다가 이런 싸움에도 굉장히 익숙했다.
“이 개 같은!”
선을 넘는 신지민의 행동에 한다미가 직접 나서려고 했다. 민국은 손을 뻗어 그녀의 행동을 제지하고는 신지민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어디 한 대…!”
짧은 고함과 함께 신지민이 자신의 주먹을 내뻗었다.
“무턱대고 멧돼지처럼 돌격하면….”
그리고 옆으로 몸을 틀어 신지민의 공격을 가볍게 피한 민국이 빠르게 주먹을 뻗었다.
휙 하는 소리와 함께 민국의 주먹이 신지민의 귓가 정확히 말하면 피어싱 몇 개를 건드렸다. 귓가에서 느껴지는 얼얼함이 아니었다면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의 엄청난 속도였다.
이어서 번개와도 같은 속도로 뿌려진 주먹이 신지민의 눈과 귀를 어지럽혔다.
“어, 어어….”
그리고 그제야 신지민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건 분명 자신을 봐준 게 틀림없었다. 만약 주먹에 제대로 얻어맞았다면? 상대가 상위 영웅인 것을 감안하면 최소가 기절이었다. 주먹이 아니라 무기를 들고 있었더라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렇게 신지민이 겁을 먹었다는 것이 느껴지자 민국이 양 손을 들어 올리며 다른 이들을 바라보았다.
“보시다시피 제가 보기보다 굉장히 세거든요? 힐러가 아니라 딜러의 코칭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상위 영웅은 확실히 상위 영웅이네요. 전투 능력이 장난이 아닌데요? 현재 7성이시죠?”
“네. 제국근위대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요.”
“와…. 저 형처럼 강한 남자는 처음 봤어요! 정말 대단하세요!”
순식간에 신지민을 제압하는 민국의 모습에 촬영장이 분주해졌다.
사고에 가까운 일이 터지긴 했지만 편집만 잘하면 해프닝으로 넘길 수 있을 정도의 사고였다. 그렇게 신지민의 코칭은 한민국이 맡기로 했다. 저 정도의 실력 차라면 신지민이 한민국을 건드리는 게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는 본격적인 코칭 영상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영웅인 민국과 한다미는 드론 카메라와 함께 던전으로 향했고, 일반인 출연진과 함께하기로 한 이들은 그녀들의 인맥을 만나기 위해 따로 움직였다.
* * *
“이걸로 우리끼리 알아서 찍어야 하나…?”
던전으로 들어온 민국이 드론 카메라를 보며 중얼거렸다.
한다미를 제외하면 촬영 팀에는 마력을 각성한 이들이 없던 터라 던전 내로 들어올 수가 없었다. 때문에 프로그램의 촬영 장비는 드론 카메라가 전부였다. 조금 어이가 없는 느낌이었다.
“별 거 없어요. 그냥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주는 식으로 코칭을 하면 되니까요. 겸사겸사 몬스터와 싸우는 장면도 좀 찍으면 알아서 잘 포장해 줄 거예요.”
한다미가 말했다. 프로그램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그녀는 이런 촬영이 굉장히 익숙했다.
“그래도 되나요? 이왕이면….”
“당연히 의욕적으로 임해야죠. 이 분들이 라이센스를 딸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저희 프로그램의 목적이니까요.”
“제대로 된 영웅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거로군요.”
“맞아요. 이왕이면 제가 몸을 담고 있는 이화에도 들어올 수 있는 재능이면 더더욱 좋겠지만요. 사실 제가 프로그램을 찍는 이유도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해서거든요.”
“아아….”
민국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재능 특히 팀을 리딩할 수 있는 재능을 지닌 영웅이라면 클랜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특히나 최근 들어서 어둠 괴물과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에 각 클랜들은 다수의 영웅들을 받아들여 본인들의 세를 불리려고 하고 있었다. 민국이 방송에 나선 이유도 R’s 클랜의 홍보를 위해서였다.
“아무튼 저는 이 근처에서 코칭을 할 건데 한민국 영웅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저희는 네임드가 있는 곳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갈 예정입니다.”
“그렇게나 깊게요?”
한다미가 불안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민국이 강한 건 알겠지만, 상대는 여성 영웅이었다. 그것도 남자를 건드리는데 거리낌이 없는 양아치.
그리고 그런 민국의 말에 신지민도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
그녀는 기껏해야 던전 입구에서 몬스터를 조금 상대하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는 것으로 촬영을 끝낼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네.”
하지만 민국의 대답은 단호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목적은 오로지 한다미와 멀리 떨어지는 것. 그래야만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보아하니 한다미 근처에 있다면 될 일도 안 될 분위기였다.
그렇게 민국은 신지민을 데리고 던전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길을 뚫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차피 【B】 등급조차 받지 못한 일반 던전이었기에 던전에서 등장하는 네임드들은 악의 칼날로 전직한 민국에게는 장난감밖에 되지 않았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