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17 스펙 업
“드디어 해냈군요!”
클랜장인 현정의 목소리는 민국이 이제껏 들어본 목소리 중 가장 밝은 목소리였다. 석산 던전이 사라졌다는 소식이 그렇게나 좋을까 싶었다.
“【A – 5】 난이도의 던전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으니…. 내년에는 다시 한 번 랭커 클랜 타이틀을 달 수 있겠어요.”
“아아….”
그런 이유 때문이면 이해가 될 것 같았다.
랭커 클랜이었던 R’s 가 일반 클랜이 되면서 가장 상심했던 이가 바로 클랜장인 그녀였다.
어쨌든 뺑뺑이를 돌아야 할 던전이 제대로 뽕을 뽑아먹기도 전에 사라졌다는 것은 씁쓸했지만 기뻐하는 팀원들과 눈앞의 클랜장을 보니 던전이 무너져서 아쉽다는 이야기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고민을 하던 민국이 현정을 향해 말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그 운도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나오는 거죠. GGW 공격대가 얼마나 많이 하남 석산 던전을 공략했는지는 제가 제일 잘 알걸요?”
이어지는 현정의 대답에 민국의 눈이 현아에게 향했다.
눈을 마주치자마자 휘파람을 불며 시선을 돌리는 것을 보니 클랜장인 언니에게 제법 하소연을 한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해봤자 난이도 때문에 하루에 한두 번 돌까말까 한 일정이었는데….
아무래도 좀 더 굴려도 될 것 같았다. 정말 힘들면 하소연을 할 마음도 생기지 않는 법이었다.
“아무튼 이 근방의 대장격인 던전이 사라졌으니 이제부터는 근처의 일반 던전들의 공략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겠네요.”
“네?”
갑작스러운 말에 고개를 갸웃하기는 했지만 이유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공허의 대지를 없애기 위해서인가요?”
“네. 그리고 땅도 확보해야죠. 사실 사람도 급속도로 줄어드는 판국에 넓은 땅이 딱히 무슨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은…. 그래도 던전이 없다는 것은 다시 말해 안전하다는 거니까요.”
“그렇죠.”
현정의 이야기에 민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 괴물과의 전쟁이 터진 이후 사람들은 모두들 안전한 장소를 찾았다. 그리고 현재 사람들이 주거지역으로 선호하는 곳은 영웅 전력이 탄탄한 클랜 하우스가 위치한 곳이거나 던전이 없는 장소였다.
그리고 서울 내에도 던전이 존재하지 않는 청정지역이 몇 군데 존재했다. 당연히 그런 지역은 밀집 주거 지역으로 집 값 또한 엄청난 수준을 자랑하고 있었다. 괴물이 있는 세계도 그렇고 없는 세계도 그렇고 집 값이 비싼 곳은 여전히 비쌌다.
“아무튼 석산 던전이 사라진 자리는 정부 계약에 따라 저희 R’s 클랜의 소유가 될 거예요. 그리고 지분에는 한민국 공대장과 GGW 팀원들의 몫도 있겠지요.”
“오….”
땅이라는 말에 입에서 절로 감탄이 흘러나온다.
현정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A - 5】 난이도인 던전이었던 석산 던전을 중심으로 생겨난 공허의 대지는 제법 넓은 편이었다. 자세하게 다시 측정을 해야 하지만 못해도 10만평 정도는 될 거라고 했다.
전 세계에서는 월세를 살던 내가 여기서는 땅 부자라니…. 그래봤자 쓸 데도 없을 것 같지만. 어쨌든 민국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석산 던전이 무너지면서 자신이 생가했던 계획이 우르르 무너진 상황이었다.
“새로운 【A - 5】 난이도의 던전을 공략하고 싶은데, 언제부터 가능할까요?”
“새로운 던전이요? 벌써요?”
현정이 놀란 눈으로 민국을 바라봤다.
오늘 같이 큰 성과를 올린 날에는 축배도 들며 쉴 법도 하련만 눈앞의 남자는 벌써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단 저희 클랜에서 담당하던 【A - 5】 난이도의 던전은 하남의 석산 던전과….”
“회기동의 경희 던전이죠.”
“네. 그리고 회기동의 경희 던전은 아시다시피 【A - 5】 난이도의 던전인데도 불구하고 7 등급 특수 개체가 한 놈 밖에 없죠. 그만큼 【A - 5】 난이도 치고는 공략이 쉬운 던전이기는 하지만….”
블루급 결정을 원하는 민국과 GGW 공격대에게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민국이 팀원들을 데리고 【A - 5】 난이도의 던전을 공략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특수 개체에서만 얻을 수 있는 블루급 마력의 결정이 목적이기 떄문이었다.
그렇다고 그 이상의 상위 난이도는 공략이 불가능했다.
영웅의 마력과 장비 스펙도 부족할 뿐더러 일단 R’s 가 관리하는 던전 중 【A – 5】 난이도를 초과하는 난이도의 던전은 한 곳 밖에 없었다. 【A - 4】 난이도의 던전으로 현재 클랜 1군이 담당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석산 던전이 무너지면 안 되는 거였는데….’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결국 참다 못 해 한숨을 내쉰 민국은 자신의 머리를 다시 긁적이며 던전이 사라진 장소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사람들은 던전이 무너진 것을 보며 기뻐하고 있었다.
그런 민국의 모습에 잠시 고민을 하던 현정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영리한 그녀는 민국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일단 다른 클랜에 도움을 요청해 볼게요. 어차피 저희들이 던전을 맡겠다고 하면 싫어하지는 않을 거예요. 문제는 분배인데….”
“그 정도는 감안해야죠.”
민국이 바로 말했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블루급 마력의 결정이었다.
“그러면 바로 연락해 볼게요.”
현정은 바로 다른 클랜장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슬쩍 귀를 기울이자 의외로 타 클랜들은 현정의 제안에 괜찮은 반응을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러면 지금 말한 조건 그대로 서류를 작성해서 바로 변호사를 보내도록 할게요. 【A - 5】 난이도의 낙성대 던전. 맞죠?”
[네. 그러면 기다리고 있을게요. 아, 그리고 던전 타이머가 보름 정도 남았거든요? 그 전에 공략이 불가능하면….]
“기쁘게 영웅시대 클랜의 도움을 받아들일게요.”
[저희들도 공략 시간이 있으니까 넉넉하게 이틀 전부터 공략에 들어갈 겁니다.]
“물론이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괜찮은 【A - 5】 난이도의 던전을 넘겨받을 수 있었다. 랭커 클랜인 영웅시대 클랜이 관리하는 던전으로 관악에 위치한 낙성대 던전이었다.
“생각보다 금방 넘겨주네요. 던전 관리도 클랜의 권력 아니었습니까?”
옆에서 둘의 이야기를 듣던 민국이 통화가 끝나자마자 현정에게 물었다. 생각보다 쉽게 영웅시대 클랜이 【A - 5】 던전의 공략 허가를 넘겨주었기 때문이었다.
“상위 난이도의 던전이잖아요.”
현정이 간단히 그 이유를 설명했다.
“8등급 몬스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7 등급 몬스터 역시 상대가 힘든 놈들이에요. 아무리 랭커 클랜의 1군이라 할지라도 제법 오랜 시간을 공략해 투자해야 하죠. 문제는 그 1군이 해결해야 하는 던전이 한, 두 곳이 아니라는 점이예요.”
“몇 곳이나 되는데요?”
“영웅시대의 경우 【A - 2】 난이도인 인천 시청까지 포함해 【A - 5】 난이도 이상만 총 여섯 개를 관리하고 있어요. 던전 타이머가 돌아가는 기간이 넉넉잡아 한 달이라고 해도….”
“최소 오 일에 한 곳의 던전은 무조건 클리어를 해야 한다는 말이군요.”
“네. 그것도 상위 난이도 던전만요.”
“으음…….”
이 세계 영웅들의 던전 공략 주기를 생각하면 굉장히 빡빡한 일정이었다.
게다가 던전 공략 허가를 넘겨주는 대신 장비 아이템의 전리품 수수료도 본인들이 얻을 수 있었다.
영웅들에게 휴식을 줄 수 있는 것과 더불어 가만히 있어도 돈이 굴러들어오는 것이니 그런 R’s의 제안을 영웅시대가 거절할 리 없었다.
그리고 잠시 핸드폰에 찍힌 번호를 보던 현정이 피식 웃었다.
“저희들이 【A - 5】 난이도의 던전을 찾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나 보네요. 다른 클랜에서 전화가 오는 것을 보면……. 아무튼 낙성대 던전은 한민국 공대장의 찾는 그런 곳 일거예요.”
“낙성대 던전이 제가 원하는 던전이다?”
“네. 여기 생각보다 어려운 곳이거든요.”
현정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옆에 있던 비서가 주섬주섬 무언가를 내밀었다.
뭔가 했더니 관악의 낙성대 던전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낙성대 던전에서 공략해야 하는 네임드는 총 열 마리. 그 중에서 특수 개체가….
‘어?’
서류의 내용을 보던 민국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커졌다. 그리고 그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현정이 웃으며 물었다.
“놀랍죠?”
“…네.”
무려 열 마리의 네임드 중 일곱 개체가 특수 몬스터였다.
다시 말해 공략 네임드의 대다수가 블루급 결정을 드랍 할 확률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조금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이 정도로 특수 개체가 많다면 분명 결정만을 수급할 공장으로 써도 될 법한데….
“난이도가 생각보다 높아요. 네임드의 패턴을 읽을 수 없는 경우도 있고요. 그 영웅시대 1군도 저기를 도전할 때 마다 부활석 스무 개는 매번 쓰고 나온다 하더라고요.”
그런 민국의 의문에 현정이 자신의 손가락을 까닥이며 말했다. 그리고는 품에서 담배를 꺼내들었다. 대화가 조금 길어지다 보니 연기 과자가 생각이 나는 모양이었다.
“난이도가 높다라….”
딱히 걱정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어려운 네임드라도 계속해서 두들기다 보면 해법이 나오는 법이었으니까. 게다가 부활석도 충분히 여유가 있었다.
“아, 하남 석산 던전이 사라지면서 생겨난 땅에 제 지분도 있다고 했죠?”
“네? 네.”
“그거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요?”
“당장은 큰돈이 되지 않을 거예요. 적어도 그 근방에 있는 공허의 대지들이 전부 처리되고, 안전이 확보된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그 때부터 땅 값이 폭발적으로 상승하겠죠.”
현정의 말에 민국은 쩝하고 입맛을 다셨다. 땅 값이 비싸면 팔아서 부활석으로 바꾸려고 했는데, 아직은 묵혀놔야 할 때인 것 같았다.
GGW 공격대의 노력으로 하남 석산 던전이 무너졌다는 소식은 곧 언론으로 퍼져 나갔다. 상위 던전인데다가 석산 던전으로 인해 오염된 공허의 땅이 근 10만평 가까이나 되었다.
다른 공격대가 상위 던전을 무너뜨렸어도 화제가 됐을 이야기인데, GGW 공격대는 그 한민국이 공대장으로 있는 영웅이었다.
●진짜 독보적이다…. 세상을 구원해 줄 영웅이라는 존재가 정말로 있긴 있었구나?
└ㄹㅇ레전드 그 자체.
●한민국 영웅 와이프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마력부터 각성해야하지 않을까?
└응, 안 돼. 돌아가.
●벌써 몇 개죠? 3 개인가?
└국내에서는 세 개인데, 던전 브레이크의 임시 던전을 포함하면…. 백 개가 훌쩍 넘음.
└ㄹㅇㅋㅋ 2년차 영웅이라는 걸 감안하면 그냥 존재 자체가 사기임.
소식을 들은 팬들은 하나같이 민국과 GGW 공격대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석산 던전이 있던 지역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방어선에서 가까운 것이 흠이기는 했지만, 대장급인 던전이 무너졌으니 그 이하의 던전을 처리하고 나면 괜찮은 안전지대가 생겨나기 때문이었다. 주거지역이면 몰라도 다른 용도로는 충분히 활용가치가 높았다.
상위 던전이라 할 수 있는 석산 던전을 무너뜨리는 성과에 기자들은 R’s 클랜에서 한민국 공대장을 앞세워 인터뷰를 한 번 가지기를 원했다. 민국의 사진만 박아도 제법 조회 수가 나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R’s 클랜은 그런 기자들의 염원을 들어주지 못했다.
아니, 들어 줄 수가 없었다.
[속보] GGW 공격대, 관악의 【A – 5】 난이도의 던전인 낙성대 던전 공략 시도!
GGW 공격대가 이미 낙성대 던전의 공략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GGW 공격대는 하남에서 바로 관악으로 향하고 있었다.
* * *
“자, 잡았다…!”
“와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사라지는 거대한 슬라임을 보며 피와 땀으로 몸이 젖은 영웅들은 모두 만세를 불렀다. 각자의 얼굴에 해냈다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처음으로 클리어 한 낙성대 던전의 네임드였기 때문이었다.
‘19트.’
민국은 슬라임을 상대하면서 자신이 트라이를 했던 횟수를 떠올렸다. 첫 네임드부터 특수 개체를 상대해야 했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자신의 부하를 다수 만들어내는 동굴 슬라임 레이드는 메인 보스라 할 수 있는 슬라임의 다양한 분신체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공략의 성패가 갈렸다.
그런 분신체들의 공통점은 아주 위협적인 범위 공격.
만약 분신체들의 공격이 공격대의 본진을 한 번 휩쓸면 그대로 전멸이었다. 게다가 분신체끼리 서로를 흡수하면서 체력을 회복하거나 공격력을 높이기도 했다.
때문에 딜러들의 화력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판단에 민국도 동굴 슬라임을 상대로는 위그드라실이 아닌 악의 칼날로 레이드를 진행해야 했다.
‘그래도 조합 빨을 좀 받았네.”
민국의 눈이 김소정에게 향했다.
대검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 그녀는 양 떼 속의 늑대처럼 용감하게 대검을 휘두르며 분신체들을 해치웠다.
대검의 넓은 면적으로 달려드는 분신체를 후려 패거나 그대로 땅에 찍어 버리는 등 무기의 장점을 한껏 살린 그녀의 활약에 슬라임들은 찍 소리와 함께 으깨지기 일 수였다. 분신체 중 큰 덩치를 한 놈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영웅 패드에 나타난 그녀의 딜량은 독보적인 1등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활약을 확인한 소정이 민국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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