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27 준비
아무튼 일단 시작은 조합식을 획득하는 것 부터였다.
《네? 민국님. 그건 카오스 상점에서 구입만 하면 됩니다만….》
“야, 그 카오스 상점은 나만 볼 수 있는 거잖아?”
민국이 한심하다는 듯 뿌우를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게 갑자기 새로운 던전을 공략해서 클래스 스톤을 수집하더니만 갑자기 레전드리 클래스를 만들어냈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아무리 비밀로 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다. 심지어 함께 트라이를 진행했던 GGW 팀원들에게도 설명할 것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카오스 상점의 존재와 함께 뿌우와 큐우♡의 존재를 알릴수도 없고 말이다.
“그렇다고 전리품 상자를 통해서 레전드리 클래스를 등장시킬 수는 없다며?”
《그, 그렇죠?》
뿌우가 땀을 흘리며 메시지를 만들어 냈다. 불과 몇 분 전에 자신이 한 말이었다.
“그래. 그래서 내가 머리 좀 써봤지. 다행히 이 세계에도 조합식이라는 게 아예 없는 건 아니거든?”
네임드의 전리품 상자에서 드물게 얻을 수 있는 영웅 티켓과 함께 장비나 클래스 스톤의 조합식이라는 것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노력에 비해 크게 쓸모가 없던 지라….
‘대부분 폐지 취급되며 버려지는 게 현실이지.’
클래스 스톤만 하더라도 그랬다.
레어 등급 이하의 클래스 스톤은 차라리 원하는 클래스 스톤을 얻을 수 있는 네임드를 공략하는 것이 훨씬 빠르게 쉽게 아이템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게다가 몇 개의 재료를 다양한 던전의 공략을 통해 구해야 하는데 그것만으로도 공대장이 학을 뗄 게 분명했다.
상위 마력의 결정을 얻으려는 데 아닌 이상 대부분의 공격대는 자신들이 이미 공략했던 익숙한 던전을 처리하는 것을 선호했기 때문이었다.
뭐, 랭커 클랜의 경우 어쩔 수 없이 다수의 던전을 공략한다지만…. 조합식을 완성시키기 위해 굳이 다른 클랜이 담당하는 던전의 공략 허가를 받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우리가 【A - 4】 난이도의 던전을 공략중인 건 알고 있지?”
민국이 말했다. 르네상스 클랜을 대신해서 공략하고 있는 던전이었다.
“조만간 퍼플급 결정을 얻기 위해 다시 공략에 들어갈 거야. 그 때 새벽의 성처녀에 대한 조합식을 전리품 상자에 넣어줘. 그러면 내가 팀원들에게 이 조합식을 완성시켜야겠다고 하면서 작업에 들어갈 테니까.”
《그렇게 해서 팀원들의 눈을 가리겠다는 거로군요.》
“그래. 지금도 쉽게 밖을 돌아다니기 힘들 정도인데, 특별한 능력으로 레전드리 클래스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고 알려지는 것은 절대로 사양하고 싶거든.”
그렇다고 이 세계의 인류에게 뿌우와 큐우♡의 정체에 대하 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그 둘의 이름이 십이 재앙의 귀에 들어가면 일단 두 녀석이 지금까지 말했던 것만 하더라도 아무튼 지구가 난리가 날 건 분명해 보였다.
그런 민국의 말에 뿌우의 메시지 창이 오므라들었다가 펴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이는 것처럼 창이 앞으로 휘어졌다. 생각보다 빠르게 수긍을 하는 모습이었다.
《알겠습니다, 그 정도는 제가 배려해드려야죠. 어차피 십이 재앙 중 가장 가깝다는 바이콘과도 거리가 있으니…. 특별히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지.”
뿌우의 대답에 민국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머리 아프게 팀원들에게 핑계를 댈 멘트를 떠올릴 필요는 없어 보였다. 아무튼 조합식을 얻고 나면 바로 팀원들과 함께 새벽의 성처녀의 조합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생각하면 클래스 시너지를 조합하는 것도 진즉에 했어야 할 일이었다. 아무튼 모든 준비를 끝내기 전까지 십이 재앙이라는 괴물들이 잠잠해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래도 잘하면 클랜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네.’
전리품 상자로 얻을 조합식은 무려 레전드리 클래스의 조합식이었다. 그것도 아주 희귀한.
그렇다면 클랜이 직접 나서서 쌍곡 던전의 공략 허가에 대한 협상을 진행해주는 걸 기대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R’s 클랜은 쌍곡 던전을 관리하는 메모리아 클랜과의 관계도 제법 좋았다.
그와 함께 집중 치료술사, 하이 프리스트와 같은 그나마 저렴한 클래스 스톤의 경우 클래스를 획득할 예정이 지젤이 대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닌 클랜의 자금으로 대신 구입해주는 것도 기대할 수 있어 보였다.
R’s 클랜은 가난했지만, 모 그룹인 로즈 그룹은 전 세계에 자신들의 물건을 팔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었다. 뭐, 정 안 되면….
‘김태연도 있으니까.’
민국은 자신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라온 그룹의 후계자를 떠올렸다.
참고로 라온 그룹은 로즈 그룹과 국내 그룹 순위 1, 2위를 다투는 라이벌 기업 집단이었다.
* * *
오후 두시 반.
직장인이라면 점심을 먹고 한창 식곤증으로 고생을 할 때 민국은 카페에서 커다란 선글라스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는 영웅 패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하, 한민국…?!”
“쉬잇.”
사실 얼굴을 가렸다 해도 민국을 몰라볼 사람이 없는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다들 조심스럽게 힐끔거리거나 몰래 사진만 찍을 뿐 민국이 의도적으로 흘리는 마력 때문에 섣불리 접근하는 일반인들은 아무도 없었다.
조금 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민국의 옆을 지나가다가 깜짝 놀라는 몇 명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리고 잠시 후, 키가 큰 미녀가 민국을 발견하고는 후다닥 달려왔다.
“어?!, 가, 강채영이야!”
“둘이 약혼한다는 거 사실이었어?”
“강채영이 임신해서 한민국 영웅이 책임지겠다고 약혼하는 거잖아. 와…. 진짜 멋있어.”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주위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칭찬에 가까운 목소리에 채영은 눈앞의 남자가 자신의 것이라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며 민국의 옆에 앉았다.
“많이 기다렸어?”
“아뇨, 그리고 어차피 던전 정보 검색하던 중이라서 심심하지도 않았어요.”
“던전 정보?”
민국의 대답에 채영의 눈동자가 자연스레 태블릿으로 향했다.
그녀 역시 영웅인 터라 민국의 검색하는 던전의 정체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곧 그녀의 눈이 반짝 떠졌다.
“던전? 어라? 여기 칠보산 쌍곡 던전이네? 여기를 공략하려고? 지금 【A - 4】 난이도로는 르네상스 클랜의 던전을 공략하고 있던 참 아니었어?”
“슬슬 팀원들이 공략에 익숙해지는 것 같아서 공략 던전을 변경할까 해요. 아무래도 상위 괴물들을 맞상대하려면 좀 더 다양한 전투 경험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어…. 그래, 그렇겠다.”
그리고 이어지는 민국의 대답에 채영은 속으로 GGW 팀원들의 명복을 빌었다.
기껏 네임드의 전투 패턴에 익숙해 질라하니 새로운 어둠 괴물을 공략해야 한다니. 그녀들의 고생이 훤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공대장이 있기 때문에 그녀들의 기량이 늘어나고, 또 인류가 안전해지는 것이었다.
“아무튼 이제 나가요.”
“응? 응.”
손을 내미는 민국의 모습에 채영이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임신을 한 이후 민국은 채영에게 좀 더 많이 신경을 써주는 모습이었다. 지금처럼 깜짝 데이트를 신청할 때도 있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채영은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런데 어디 가려고 갑자기 만나자고 한 거야? 물어봐도 돼?”
그렇게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걸으면서 채영이 물었다.
일단 갑자기 나오라고 해서 꾸미고 나오기는 했는데 목적지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뭐, 민국과 함께라면 그냥 주변의 공원만 걸어도 좋았다.
“백화점이요.”
“…백화점?”
동그랗게 뜬 눈으로 이유를 묻는 것 같은 채영의 얼굴에 민국이 웃으며 말했다.
“네. 반지 맞추러 갈 겁니다.”
“바, 반지…?! 정말?!”
민국의 옆에 바짝 붙어있던 채영이 감동이 그득한 눈으로 민국을 바라보았다.
어쩜 이렇게 마음에 쏙 드는 남자가 있는지…. 나중에 아기가 태어나면 아빠가 이렇게 자상한 사람이었다고 빨리 자랑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네. 라온 백화점에 마력의 결정을 깎아서 반지를 만들어주는 브랜드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 그거 나도 알아! ‘에스랑떼’ 말하는 거지?”
채영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에스랑떼. 지구상의 보석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마력 결정만의 영롱함을 살려 목걸이나 반지와 같은 장신구를 만들어내는 고급 브랜드로 여성들 사이에서는 꼭 가지고 싶은 장신구 브랜드로 인기가 높은 곳이었다.
강채영 역시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여자인지라 에스랑떼 제품을 몇 개나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가격은 굉장히 비쌌다.
일단 장신구를 제작하기 위해 트라이에 들어간 영웅들이 마력의 결정을 흡수하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나와야 했기 때문에 마력의 결정을 버리면서 장신구로 만드는 셈이기 떄문이었다.
때문에 가장 하위 라인이라 할 수 있는 루버 라인만 하더라도 기본 가격이 몇 백 만원에 달했다.
“여자들은 다 아는 브랜드인가 보네요? 결혼반지로 검색을 해보니까 되게 유명한 브랜드더라고요.”
“뭐, 상위 공격대 영웅들치고 마력의 결정을 따로 구입해서 에스랑떼 의뢰 한 번 해 본 애들도 없을 걸?”
“…누나도 해봤어요?”
민국의 물음에 채영이 픽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중요한 날에만 한 번씩 끼는 그린급 결정으로 만든 반지가 집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창 잘 나가던 시절 팀원들과 의견을 모아서 제작했던 반지였다.
“그렇기는 한데 우리 약혼반지라면 나는 루버라인이라도 좋아.”
마음이 중요한 거지 반지의 가격이 중요할까?
여자의 로망이라 할 수 있는 반지 선물을 민국에게서 받을 수 있다면 집에 있는 그린급 결정으로 만든 반지 따위는 중고 장터에 내다 팔아도 상관이 없었다.
그런 채영을 향해 민국이 말했다.
“아, 반지는 직접 제작할 생각이에요. 아무튼 에스랑떼에서 의뢰를 맡겨봤다면 누나한테 도움을 받으면 되겠네요. 그렇지 않아도 저도 우리 약혼 기념해서 오늘 반지 의뢰를 맡기려고 했거든요.”
“제작된 걸 안사고?”
채영의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곧 그녀의 얼굴이 또다시 감동으로 물들었다.
“우으…. 감동이다. 씨, 아니. 고운 말.”
흥분한 까닭에 자신도 모르게 험한 말이 나오려던 입술을 손으로 살짝 두드린 채영이 민국을 보며 말했다.
“진짜 내가 많이 사랑해줄게.”
의뢰라고 말을 꺼낸 것을 보아하니 마력의 결정을 따로 가지고 나온 모양인데….
GGW 팀원들과 함께 자신의 약혼반지를 만들기 위해 급하게 던전을 공략하고 마력의 결정을 가지고 나온 모양이었다.
* * *
백화점에 도착한 두 남녀는 바로 목적지로 향하지 않았다.
데이트 겸 구경이나 할 겸 1층부터 백화점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의견을 꺼낸 것은 바로 민국이었다.
‘여자가 대다수인 것을 제외하면….’
그리고 처음 보는 브랜드로만 가득한 것을 제외하면 백화점의 모습은 민국이 익히 알고 있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재미있는 것은 백화점의 최상층인 8, 9 층에는 기어 스코어의 영웅 무기를 팔고 있다는 점이었는데, 그 때문에 실제 영웅 라이센스를 받은 영웅들만이 출입이 가능했다.
살짝 호기심이 동하기는 했지만 명품이라고 해봤자 채영을 통해서 최상층에서 파는 장비들이 플래티넘 티켓 수준의 장비들이라는 것을 듣고는 관심을 접었다. 자신과 GGW 공격대 수준으로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장비들이었다.
“와, 이거 예쁘다.”
“우리 이것도 살까?”
예상지 못한 백화점 데이트에 신이 난 강채영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백화점을 헤엄쳤다. 돈에 구애받지 않는 수준의 재력을 지닌 여성답게 마음에 드는 물건은 바로바로 구입을 하는 모습이었다.
때문에 민국은 그런 강채영의 쇼핑을 구경하면서 가끔씩 그녀의 충동구매를 막아야 했다. 그렇게 한참이나 백화점을 쏘다니던 둘은 갑자기 느껴지는 허기에 백화점 내의 프랜차이즈 식당으로 향했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서 물을 마시는 민국을 보던 채영이 살짝 눈치를 보며 물었다.
“나 때문에 힘들었지? 아, 너무 오랜만에 쇼핑을 나와서 자제를 못했네….”
시간을 보니 두 시간 가까이나 돌아다닌 것 같았다. 남자가 화를 내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런 강채영의 걱정과는 달리 민국은 오늘의 백화점 데이트가 퍽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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