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229화 (229/486)

EP.229 준비

“네가 약혼이라니…. 그러면 결혼도 하는 거겠지?”

“히히, 당연하지. 이미 민국이한테 확답도 받았다고.”

현정의 물음에 현아는 아이와도 같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영웅학교에서 한민국을 만난 이후, 그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자신의 존재에 익숙해지게 만든 다음에 서로가 함께하는 미래를 만들겠다는 그녀의 계획은 결국 성공으로 끝이 나는 모양이었다.

물론 정식 영웅이 되고 난 이후 영웅학교에서는 볼 수 없었던 한민국의 재능이 빛을 발하면서 수많은 여자들이 민국에게 달라붙을 때만 하더라도 자신의 위치에 위협을 느끼며 질투심을 표출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런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그의 마음 안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나 혼자만 가질 수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것이 욕심이라는 것은 현아도 인정하는 바였다.

더군다나 민국의 정력은 도저히 자신 혼자서는 감당을 할 수가 없었다. 하루면 모르겠지만 이삼일만 지나도 몸이 축날 게 분명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함께 민국을 감당해줄 여자가 필요했다.

‘아이는…. 셋? 넷? 쌍둥이면 더 좋겠다.’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면서 현아는 민국과 함께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여성 영웅은 아이를 가지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다고 하지만 딱히 걱정이 드는 건 아니었다.

이미 강채영이 임신하는데 성공했고, 관계를 할 때 마다 자신을 정액범벅으로 만드는 민국의 왕성한 정력을 생각하면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민국의 아이를 당장 갖는 건 힘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실망스럽다는 생각도 없었다. 민국에게 자신이 필요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도 오 년 내에는 아이를 가질 생각이었다.

“부럽네요. 저는 바빠서 남자를 만날 시간도 없는데….”

현아가 상념에 잠겨 있는 사이, 한 여성이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오현정의 비서였다.

“만날 남자는 있고?”

그런 비서의 넋두리에 오현정이 놀리듯 물었다. 바로 날카로운 대답이 들려왔다.

“시간이 있어야 만날 남자를 만들던가 하죠. 그래도 돈은 제법 모았으니…. 재력을 이용하면 어떻게 한 명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제대로 된 애를 찾아야지….”

“그렇게 가리고 가리다가 결국 노처녀로 늙는 겁니다. 누구처럼 말이죠.”

비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현정의 이마에 십자 혈관의 도드라지게 튀어 나왔다. 그 노처녀가 누구를 말하는지는 너무나도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세 여인은 하하 호호 대화를 나누며 현아의 약혼을 축하했다. 그리고 이는 축하할 만한 일이었다.

어둠 괴물과의 전쟁과 함께 무너진 성비로 인해 여자가 남자와 결혼 약속을 하는 건 당연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카르텔과 함께 일부다처제가 허용되었음에도 말이다.

특히나 잘생기거나 유능한 남자와 인연을 맺으려면 크게 성공을 해야 하거나 마력을 각성해 영웅이 되어야만 했다.

그렇게 일반적인 남자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 대상이 대한민국 아니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남자 영웅인 한민국이라니….

“한민국 영웅이 좀 더 일찍 태어났어야 했어. 그러면 현아가 아니라 내가 꼬셔보는 건데….”

오현정이 부럽다는 듯 말했다. 문득 한민국과의 뜨거운 시간이 떠올랐다. 결코 잊을 수 없는 황홀의 극치나 다름없던 시간이었다.

“아아, 진짜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면 저도 꼽사리 끼듯 한 자리 차지할 수 있었겠죠?”

이어서 정말로 아쉽다는 표정을 짓는 비서의 모습에 현정은 조금 전 까지의 상상을 접고는 콧방귀를 뀌었다.

“응? 무슨 소리? 내가 한민국 영웅 와이프라면 너는 반드시 밀어낸다.”

“하? 나 없으면 클랜 업무에 크게 지장이 가는 거 아시죠? 말씀 조심하셔야합니다?”

“어휴….”

끝까지 지지 않는 비서의 모습에 현정이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다가 대견한 얼굴로 자신의 동생을 바라보았다.

‘마냥 남자 뒤만 졸졸 쫓아다니는 철없는 애인 줄 알았더니….’

어느새 이렇게 커버린 것일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동생은 유망주 수준에 불과했던 영웅이었다. 하지만 민국이 공대장을 맡은 GGW공격대에서 조금씩 성장을 하더니만 이제는 대한민국의 에이스급 탱커로 성장해 있었다.

거기에 피닉스 나이트라는 레전더리 클래스를 보유한 것도 모자라 8성 영웅에 【A - 4】 난이도의 던전 공략까지 성공시킨 업적까지 달성했다.

R’s의 기대주라 불렸던 그녀가 현역으로 있었을 때보다도 더욱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만, 던전이 위험한 거 알지? 몸조심하는 거 잊지 말고. 그리고 한민국 영웅 너무 괴롭히지 말고.”

“걱정 마. 이래 뵈도 GGW의 메인 탱커라고. 그리고 괴롭히는 건….”

현아가 하려던 말을 입으로 굴렸다. 솔직히 말해 민국이 자신들을 힘들게 했지, 그 반대는 없는 것 같았다.

“하기야….”

“그러고 보면 한민국 영웅도 참 대단합니다. 그렇게까지 던전을 공략하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요.”

말끝을 흐리는 현아의 모습에 두 여인이 고개를 주억이며 공감했다.

그만큼 현아가가 속해 있는 GGW 공격대의 스케줄은 일반적인 공격대와는 차원을 달리했다.

다른 이들은 비슷한 등급의 던전을 보름에 한 번씩 공략한다는데, 현아가 소속된 GGW 공격대는 연속으로 【A - 4】 난이도의 던전을 두 번씩 클리어 할 때까지 하루 이상 쉬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빠르게 경험과 실력을 쌓을 수 있었다지만….’

이 역시 한민국에게 잘 보이려는 여성 영웅들의 속마음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더군다나 민국의 포상은 공격대의 모든 인원들이 바라는 것이기도 했다.

“덕분에 영웅 협회에서도 기대가 꽤 큰 것 같아. 메모리아으 강채영이 은퇴를 선언하면서 이시연 협회장의 얼굴 표정이 진짜 말이 아니었는데, 너희들 때문에 요즘 걱정을 던 모양이더라고.”

“진짜 강채영 영웅이 임신했다고 은퇴 이야기가 들려왔을 때는….”

“사람 몰골이 아니었지.”

현정이 쯧 하고 혀를 찼다.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딜러인 강채영이 활약하기 시작한 것이 무려 십 년 전의 일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그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강채영을 대신할 영웅을 키워내지 못했다. 메모리아 1군의 선수들이 있다지만 그녀들은 강채영 만큼의 특별한 무언가를 가지지 못했던 것이다.

그나마 두 번의 던전 브레이크를 경험하면서 상위 영웅으로 올라선 한민국의 존재가 있어서 다행이지 그마저도 없었더라면 진짜 어둠 괴물 방어 전략에 큰 차질이 생겼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좋은 건 아니었다.

무려 두 번의 던전 브레이크가 터지면서 전면전의 불안감이 고조되는 가운데도 불구하고, 타국으로 떠나는 국내 영웅들의 숫자는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격대의 전력을 따져보면 지금보다 강채영이 막 데뷔했던 십 년 전이 훨씬 좋았다.

“…요즘도 외국으로 많이 나가죠?”

“뭐, 우리나라가 그렇게까지 영웅들을 대우해주는 곳은 아니잖아? 난이도가 높은 던전은 많고, 보수는 적고. 그래도 우리 클랜은 다행이야.”

“한민국 영웅의 존재 때문에 다른 클랜으로 이적하는 이들도 없고, 오히려 입단을 원하는 영웅들이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그에 반해….”

하지만 네임드 영웅들을 보유하지 못한 중소 클랜들은 난리도 아니었다. 심지어 2탱 5딜 3힐이라는 공격대 구성을 제대로 갖추지도 못한 채 레이드를 나서는 곳도 적지 않은 모양이었다.

“빨리 이 개 같은 전쟁이 끝나야 할 텐데….”

좋지 않은 국내의 상황을 떠올리며 현정이 손가락으로 담배를 돌리며 말했다.

백년 까지는 아니지만 그에 가깝게 계속되고 있는 전쟁이었다. 하지만 십이 재앙이라는 존재가 건재한 이상 전쟁이 언제 끝날지는 기약도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튼 GGW 공격대가 【A - 4】 까지 공략에 성공했으니…. 내년에는 상위 던전을 몇 개 받아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랭커 클랜 타이틀도 다시 되찾아 올 수 있을 것 같고.”

현정의 비서가 다행이라는 말투로 말했다.

과거의 명문이었던 R’s는 네임드 공대장이었던 박다영의 은퇴 이후 계속해서 내리막길을 겪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랭커 클랜이라는 타이틀 마저도 빼앗겼는데, 기대도 하지 않았던 GGW 공격대가 급성장을 하면서 클랜의 1군과 엇비슷한 아니 조금 더 대단한 레이드 전력을 갖추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1군 전력의 공격대를 두 곳이나 보유한 R’s 에게 상위 던전의 공략 허가를 내주지 않을 리 없었다. 그리고 던전에서 나오는 전리품들은 전부 클랜의 몫 이었다.

“이러다가 우리도 메모리아처럼 【A - 1】, 【A - 2】 난이도의 던전 공략 허가도 받는 거 아닌지 몰라.”

기대감이 담긴 언니의 목소리에 현아가 움찔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가능할 것 같기는 한데.”

이왕이면 그 시기가 많이 늦어졌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그도 그럴게 지금도 충분히 스케줄이 빡빡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시각 칠보산 쌍곡 던전의 공략을 위한 민국의 로비가 강채영을 통해 이뤄지고 있었다.

* * *

“칠보산 쌍곡 던전?”

핸드폰을 통해 들려오는 상대의 목소리에 메모리아의 공격대장은 자신의 영웅 패드를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그러자 칠보산 쌍곡 던전의 스펙이 상세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 최근에 공략했네. 한 달 정도는 여유가 있을 것 같은데….”

[잘 됐다. 그러면 여기 공략 허가 내줄 수 있지?]

“…공략 허가를 내달라고? 애도 있는 여자가…. 아!”

강채영의 말에 공격대장이 의아한 목소리로 내었다가 바로 탄성을 터뜨렸다. 짐작이 가는 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GGW구나? 한민국 공대장이 칠보산 던전을 공략하고 싶대?”

[응. 여기서 새벽의 기사 클래스를 얻고 싶다고 하더라.]

“…쉽지 않을 텐데.”

레어 등급의 클래스인 새벽의 기사는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칠보산 쌍곡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클래스 스톤이었다. 하지만 드랍률이 굉장히 낮았다. 메모리아 공격대 역시 지금까지 두 번밖에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굳이 얻을 필요가 있나…?”

게다가 새벽의 기사 클래스는 언데드 계통의 괴물에게 추가적인 데미지를 조금 더 준다는 것을 제외하면 일반 클래스보다 나은 점이 별로 없었다. GGW 공격대의 탱커진을 생각하면 획득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거야 나도 모르지. 뭐, 새벽의 기사는 핑계 같고. 내 생각에는 GGW 애들의 경험 때문에 새로운 【A - 4】 난이도의 던전을 공략하려는 것 같아.]

“아아…. 그럴 수도 있겠네. 그나저나 우리 강채영. 한민국하고 약혼한다고 이제 R’s 사람 다 된 것 같다? 언니는 조금 섭섭해?”

메모리아의 공대장이 투덜거리며 말했다.

오랜만에 연락을 해서 한다는 말이 공략 허가를 부탁하는 것이라니…. 뭐, 자신의 권한을 생각하면 충분히 들어줄 수 있는 거라지만.

[배겟머리 송사라고 들어봤니? 잘생긴 남자가 부탁을 하니까 도저히 알았다는 대답을 제외한 다른 말이 나오지 않더라니까?]

“에잇, 더러운 세상. 좋겠다? 그 잘생긴 한민국하고 결혼 할 예정이라? 너희 약혼 반지도 어마어마한 걸로 했다며?”

메모리아의 공격대장이 부러움이 잔뜩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한민국이 강채영의 약혼반지를 위해 에스랑떼에 퍼플급 마력의 결정을 맡긴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었다.

[응? 너도 남자 친구 있잖아?]

“깨졌어, 깨졌다고!”

이어서 되묻는 강채영의 목소리에 메모리아의 공격대장이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바쁜 스케줄 때문에 몇 번 만나지 못했더니 자신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면서 남자가 이별을 통보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던 그녀는 곧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는 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소리 질러서 아기 놀랐겠네. 아기는 잘 지내고 있지?”

[응. 우리 나무 아주 잘 자라고 있지.]

“…나무?”

[엄마 배에 뿌리를 딱 내리고 자라라고 지어준 태명이야. 어때?]

“괜찮네. 아무튼 엄마라니…. 부럽다.”

아이를 갖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여성의 꿈이자 로망이었다. 특히나 여성 영웅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아무튼 조만간 놀러갈게. 나도 한민국 영웅 소개시켜 주고.”

[쓰읍…. 꿍꿍이가 심상치 않은데?]

“왜, 나도 잘 되면 좋잖아. 우리 인연을 잊지 말아줘. 응?”

그렇게 강채영과 대화를 나누던 메모리아의 공격대장은 공격대 일정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칠보산 쌍곡던전의 공략 허가를 R’s 클랜 쪽으로 보냈다.

그리고 이는 고민할 필요도 없는 결정이었다.

“한숨 좀 돌릴 수 있으려나….”

메모리아의 공격대장이 다행이라는 듯 말했다.

국내 상위 난이도 던전의 대부분을 처리해야 하는 메모리아 1군의 빡빡한 공략 스케줄을 생각하면 【A - 4】 난이도의 공략 허가를 타 클랜으로 보내는 건 오히려 반길 만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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