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231화 (231/486)

EP.231 준비

‘어어…? 이게 뭐지?’

누구보다도 먼저 전리품 상자를 확인한 현아는 자신의 눈을 가늘게 떴다.

영롱하게 빛나는 보라색의 결정을 기대했건만 상자 안에는 처음 보는 양피지만 달랑

들어있었다. 마력의 결정은 물론이고, 흔히 볼 수 있는 하위 기어 스코어의 장비 아이템도 보이지 않았다.

‘이거 조진 것 같은데….’

때문에 전리품 상자를 열었던 천호동 럭키 걸은 느낌이 싸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던전 공략은 어째 제대로 망한 느낌이었다. 앞선 네임드를 통해서도 퍼플급 마력의 결정을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양피지가 초대박 아이템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대가 전혀 들지 않았다.

“어? 언니, 상자가 왜 이렇게 휑해요? 다른 거는요?”

“…몰라. 안에 이거 하나밖에 없더라.”

유나의 물음에 힘없이 대답을 한 현아가 터덜터덜 민국에게 다가가 전리품 상자에서 발견한 양피지를 건넸다. 모두의 시선이 민국의 손에 들린 양피지로 향했다.

“저게 뭐예요?”

“아아…! 예전에 저것과 비슷한 생김의 아이템을 본 적이 있는데. 쓰읍, 늙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아까 몬스터한테 너무 세게 얻어맞아서 기억 세포가 죽은 거 아니에요?”

진심어린 디스와 함께 팀원들이 양피지의 정체에 대해 추측을 시작했다.

그 때 기억을 더듬던 타냐가 탄성을 터뜨리며 말했다. 러시아의 클랜에서 활동했을 때 저것과 비슷한 아이템을 본 기억이 있었다.

“아! 아이템 혹은 클래스 조합식입니다.”

“조합식? 에이, 좋다 말았네. 이번 공략은 완전히 허탕 쳤네. 최고 득템이 뭐가 있지?”

“머리에 쓰는 뚜껑이요. 그런데 기어스코어 1082짜리의 하위 아이템이라 경매장에서도 거의 안 팔릴 물건이에요.”

그런 타냐의 말에 이어서 GGW 팀원들이 아쉬운 목소리를 내었다.

“조합식이면…. 쓰레기 아니야? 우리 럭키 걸님. 운 빨 다 됐나봐?”

“이러면 다음번에는 내가 한 번 상자를 열어 볼까?”

전리품 상자를 열었던 현아는 자신이 죄인이라도 된 것 마냥 고개를 푸욱 숙이고 있었다.

무려 【A - 4】 난이도의 던전에서 등장하는 마지막 네임드를 쓰러뜨렸음에도 불구하고 얻은 게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게 전리품 상자의 조합식은 대부분이 효율이 떨어지는 것들에 불과했다. 그나마 괜찮다고 평가를 받는 조합식도 GGW 공격대의 전력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팀원들의 생각과는 달리 민국은 힐끗 조합식의 내용을 확인해보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새벽의 성처녀.

며칠 전 민국이 뿌우와 함께 대화를 나눴던 레전더리 클래스의 조합식이었다.

‘참 일 처리는 잘 한단 말이야.’

카오스의 똘마니인 뿌우는 자신의 임무를 완벽히 수행했다.

큐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늘의 던전 공략에 큰 소득이 없던 이유는 전부 큐우♡가 아이템을 가지고 갔기 때문이었다. 조합식의 대가로 말이다.

“지젤.”

“응?”

지젤을 부르자 그녀가 기대감이 어린 눈으로 민국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남미 여성 특유의 탱탱한 엉덩이가 남자를 유혹하듯 좌우로 흔들렸다.

“설마 오늘…. 어?!”

왠지 쓸데없는 이야기가 나올 같다는 느낌에 민국은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에 들린 조합식을 지젤에게 던져주었다.

이어서 꺄악하는 소리와 함께 지젤이 허둥지둥 조합식을 받았다.

“이걸 나한테 왜? 그냥 쓰레기 아니야?”

“쓰레기? 글쎄다…. 한 번 확인해 봐.”

“이것을?”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민국의 행동에 지젤은 심드렁한 얼굴로 조합식을 펼쳤다.

아주 드문 확률로 전리품 상자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지만 조합식의 비효율성에 대해서는 귀가 따갑게 들은 바 있었다.

【B】 난이도 이하의 던전이나 공략하는 3, 4성 수준의 영웅이라면 이런 조합식이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8성 영웅인 자신에게 있어 조합식의 존재는 아무런 쓰임새가 없었다.

하지만….

“이, 이게 뭐야?!”

조합식을 확인한 지젤이 입을 쩍 하고 벌렸다. 그런 지젤의 반응에 민국은 자신의 입 꼬리를 들어 올렸다.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반응이었다.

“뭔데?”

그런 지젤의 반응에 옆에 있던 쌍둥이 언니 켄달이 고개를 갸웃하며 조합식의 내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도 심상치 않은 지젤의 반응에 의아한 얼굴이었다.

“어, 어어…?”

그리고 뒤늦게 조합식을 확인한 켄달 역시 크게 탄성을 터뜨렸다. 그런 뷘드셴 자매의 심상치 않은 반응에 심드렁하게 있던 팀원들이 후다닥 양피지의 내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새, 새벽의 성처녀? 레전더리 클래스?”

“와아! 이거 초대박 아니야?!”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쉬움이 가득했던 얼굴들이 눈을 반짝 빛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빠르게 영웅 패드로 클래스에 대한 정보를 검색했던 유나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와아?! 대박! 대박!!! 이거 세계에서도 세 명밖에 없다는 레전더리 클래스예요!”

“클래스 조합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겠는데? 새벽의 기사라면 모를까 나머지 클래스들은 쉽게 획득할 수 있는 클래스 아니야?”

“어, 맞네?!”

“새벽의 기사도 국내에서 얻을 수 있는 던전이 있어요!”

조건만 갖춰지면 어렵지 않게 레전더리 클래스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생각에 멤버들이 소란스럽게 떠들어 내기 시작했다. 이어서 클래스 정보를 확인하던 김소정이 말했다.

“이거 힐러 클래스잖아? 그러면 공대장님이….”

“응? 공대장님은 이미 레전더리 클래스잖아요.”

“아, 맞다.”

정예린의 지적에 소정이 가볍게 손뼉을 쳤다.

프랑스의 제국 근위대와 함께 베트남의 던전 브레이크를 해결하면서 민국은 ‘위그드라실’이라는 레이드 중 사망한 팀원을 한 번 되살릴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레전더리 클래스를 손에 넣은 바 있었다.

“그러면….”

“남은 두 명의 힐러가 새벽의 성처녀로 전직해야 한다는 건데….”

모두의 시선이 지젤에게 향했다. 그러고 보니 민국이 가장 먼저 조합식을 건네 줬던 이가 바로 그녀였다.

“어엇? 나?”

자신을 바라보는 팀원들의 시선에 지젤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나한테 주는 거야? 아니, 주, 주시는 거예요?”

그리고는 감동한 눈으로 민국을 바라보았다.

같은 GGW 공격대라는 틀에 묶여 있다 하더라도 그녀와 켄달은 어디까지나 이방인에 불과한 영웅이었다.

일단 한국인도 아니었을 뿐더러 계약 기간만 끝나면 R’s 클랜은 그 어떤 것도 그녀들에게 요구를 할 수 없었다. 분명 그런 것을 민국이 모르지는 않을 텐데….

무려 레전더리 클래스를 자신에게 건네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지젤을 향해 민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상위 난이도를 공략하려면 지금보다 더 강력한 스킬은 필수잖아? 특히나 강력한 적을 상대로 오랫동안 트라이를 이어나가려면 힐러진의 스펙 상승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그렇기는 하지만….”

지젤이 말꼬리를 흐렸다. 분명 일리는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실천으로 옮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새벽의 성처녀라는 레전더리 클래스의 가치를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다.

그렇다고 조합식을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일단 조합식은 한 번 조합을 하고 나면 사라지는 소모품에 불과했다.

“대신 알지? 30%.”

“…아아, 쓰읍. 이거 돈이 모자라겠는데?”

“나도 도와줄게.”

인상을 찌푸리는 지젤을 향해 켄달이 나서며 말했다.

이건 지젤을 위해서라도 무조건 구입해야 하는 아이템이었다. 그러나 레전더리 클래스의 가치를 생각하면 두 여성이 지금까지 모은 돈을 합친다 하더라도 30%에 해당하는 돈을 지불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였다.

더욱이 어둠 괴물과의 전면전이 곧 시작될 거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좋은 스킬을 지닌 클래스의 가격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조합식만 구입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었다. 클래스 조합에 필요한 네 개의 클래스 스톤 역시 구입을 해야 했다.

“아, 이거 무조건 사야 되는데…….”

지젤이 힐끗 민국의 눈치를 보며 아쉬운 말투로 말했다.

공대장인 그라면 분명 좋은 방법을 알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합식을 자신에게 준 것이 아닐까?

“우리 계약기간 일 년하고 반 남았나?”

그리고 그런 지젤의 시선을 받은 민국이 슬쩍 계약기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민국은 이런 상황이 있을 거라는 것을 이미 예상하고 대비책을 세워뒀었다.

“…그, 그런데요?”

“재계약하자.”

* * *

사흘간의 던전 공략을 마친 민국은 바로 R’s 의 클랜 하우스로 향했다.

그렇게 클랜장실에 공격대장인 한민국을 포함해 메인 탱커인 오현아와 뷘드셴 자매까지. 총 여섯 명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런 조합식이 존재했을 줄이야.”

레전더리 클래스의 조합식을 확인한 오현정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랫동안 이 세계에 몸담고 있었고 여러 조합식을 눈으로 확인한 바 있었지만, ‘새벽의 성처녀’와 같이 희귀한 레전더리 클래스의 조합식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 현정의 반응에 현아가 의기양양한 태도로 자신의 가슴을 내밀었다.

“그래서 지젤 영웅께서 이 조합식을 구매할 예정이고요?”

“네. 그런데….”

자신을 바라보는 클랜장의 시선에 지젤이 멋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돈이 모자랐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리고 민국이 끼어들었다.

“대금의 지불을 최소한으로 하고 계약 기간을 늘리는 것으로 조합식을 구매할 계획입니다.”

“…그런가요.”

민국을 힐끗 본 현정이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솔직히 말해 이 조합식을 판매한다면 클랜의 보유 자금이 아주 풍족해질 터였다. 특히나 지금은 클래스 스톤의 가격이 하늘을 꿰뚫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레전더리 클래스의 가치가 아깝기는 했지만….

그 대신 부유함과 많은 부활석을 얻을 수 있다면 딱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더욱이 클랜 하우스 수리와 함께 새롭게 입단할 영웅들의 지원으로 인해 클랜은 많은 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뭐, 어쩔 수 없죠.”

그래도 GGW 공격대가 클래스 스톤을 원한다면 클랜 입장에서는 요구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어차피 GGW 공격대가 성장하는 것 자체가 클랜에게는 도움이 되는 일이었고, 괜히 욕심을 냈다가 한민국과 척을 지는 건 멍청한 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러면 계약 기간과 지젤 영웅의 연봉을 조절하기로 하죠.”

그렇다고 상대가 GGW 소속 영웅이라 해서 호구처럼 모든 것을 내 줄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오현정은 지젤의 계약과 관련해서 계약 기간과 세부 조건들의 수정을 이어나갔고, 그것도 모자라 그녀의 쌍둥이 언니인 켄달 역시 본인의 계약 기간을 크게 늘려야만 했다.

“레전더리 클래스…!”

“축하해.”

그리고 나서야 지젤은 새벽의 성처녀를 조합할 수 있는 조합식을 획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여러 문제들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일단 하이 프리스트와 알케미스트는 어렵지 않게 클래스 스톤을 구할 수 있는 까닭에 투자 겸 저희들이 직접 지원을 해드리도록 할게요. 하지만 집중 치료술사는….”

“현재 가격이 2340만 달러입니다.”

어느새 검색을 끝냈는지 현정의 비서가 바로 대답했다.

“…며칠 사이에 엄청 올랐네. 아무튼 그것까지는 지원이 힘들 것 같습니다.”

“아, 그 정도만 해도 괜찮아요.”

지젤이 바로 말했다.

【A - 4】 난이도의 던전을 공략하는 GGW 공격대의 실력이라면 던전을 몇 번 돌면 얻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런 지젤의 반응에 오현정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상위 영웅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을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뭐,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새벽의 기사는 어떻게 구할 생각이죠?”

현정의 말이 이번에는 민국에게로 향했다. 저 조합식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새벽의 기사였다. 하지만 새벽의 기사는 여타 다른 클래스와는 달리 쉽게 구할 수 있는 클래스가 아니었다.

“무려 【A】 등급 유니크 클래스 아닌가요? 그 정도라면 경매장에도 매물이 없을 텐데요?”

“아, 그렇지 않아도 칠보산 쌍곡 던전에서 새벽의 기사 클래스 스톤이 나온다 하더라고요.”

“…네? 뭐, 뭐라고요?”

“운이 좋았습니다.”

차분한 목소리로 답하는 민국의 모습에 오현정의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그녀의 옆에 있던 비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메모리아 클랜을 통해 칠보산 쌍곡 던전의 공략 허가를 받아낸 것이 불과 어제의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 【A - 4】 난이도의 던전을 공략하면서 새벽의 기사가 필요한 레전더리 클래스 스톤의 조합식을 획득했다? 짜고 치는 고스톱도 이 정도로 아귀가 잘 맞아떨어지지는 않을 터였다.

‘…이거 정말로 인생 2회 차 아니야?’

다른 영웅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민국을 향해 많은 이들이 장난삼아 말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오현정은 왠지 그 말이 거짓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 정도로 지금의 상황이 말이 안 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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