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234화 (234/486)

EP.234 본인도 몰랐던 과거

“아…. 미치겠다. 진짜 이 일을 어떻게 해야 되냐….”

세정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만약 서로의 사이가 좋았더라면 자신의 인생도 크게 달라졌을까? 분명 그랬을 터였다. 지금의 한민국은 대한민국이 주목하는 최고의 영웅 중 한 명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침대에서 한숨만 푹 내쉬던 세정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가 중천에 있었지만 기자들 때문에 회사는 연차를 쓴 상황이었다.

거실로 나가자 누군가가 TV를 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아빠인가?’

이 시간에 집에 있을 사람이면 아빠밖에 없었다.

슬쩍 티비 화면을 쳐다보니 동생인 민국이 화면에 나오고 있었다. 어릴 때도 잘생겼는데, 영웅으로 각성한 이후 정말 외모가 물이 올랐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무튼 민국은 방송에서 누군가를 가르치고 있었다. 전에 민국이 출연했던 ‘금쪽같은 내 영웅’이라는 프로그램으로 한세정 역시 본방 사수한 적이 있던 프로였다. 그리고 소파에는 그녀의 엄마가 일자로 누워 있었다.

“어…. 엄마? 회, 회사 안 갔어요?”

엄마를 본 세정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휴가 냈다.”

TV 에서 시선도 돌리지 않은 채 답하는 짤막한 대화에는 많은 뜻이 담겨져 있었다.

그런 엄마의 반응에 세정은 자신의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아빠는 자신과 민국이 철전지 원수처럼 다퉈서 집을 나간 것으로 알고 있지만 엄마는 왜 민국이 집을 나갔는지 그리고 가족들과 연락을 끊었는지에 대해 그 연유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어색한 시간이 십 여분 가량 흘렀을 때였다.

“민국이 약혼식 말이다. 가볼 생각이다.”

엄마의 말에 세정은 심장이 철렁했다. 바닥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네.”

“명색이 부모인데 언제까지 연 끊고 살 수도 없고….”

뿐만 아니라 이런 중요한 자리에서 부모님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분명 한민국의 가족사에 대해서도 말이 나올 게 틀림없었다.

더욱이 민국은 한국의 어둠 괴물 방위에 큰 역할을 차지할 거라 기대되는 영웅. 게다가 상대는 그 강채영이었다. 부모 된 입장으로 자식의 얼굴에 먹칠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후우…. 민국이가 다시 연락을 한 것을 보면 어느 정도 마음이 풀어진 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 너도 각오 단단히 하고 있어.”

“…네.”

“행여나 옛날 얘기와 관련해서 조금이라도 말이 나오면 무조건 민국이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알고 있어요.”

대답이 끝나기가 깊은 한숨이 들려왔다. 그런 엄마의 모습에 세정은 자신의 가슴에 돌덩이를 얹은 것 같았다.

괜한 호기심에 실수만 하지 않았더라면….

성욕이 몸을 지배한다는 고3이 아니었더라면….

자신이 조금만 더 자제했더라면…. 막장 드라마 속의 가족과 같은 상황이 자신들에게 닥치지는 않았을 텐데….

하지만 아무리 후회를 해도 일은 벌어진 지 수 년이나 흐른 상황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서로 모른 척 지내오면서 감정의 골이 얼마나 깊어졌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는 척도 안 하겠지?’

오래 전, 자신을 벌레처럼 보던 민국의 시선이 떠오르자 세정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몸을 떨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녀의 핸드폰은 아까부터 쉴 틈이 없을 정도로 요란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 * *

꺄아아아악!

“빠르게 전멸합니다. 다시 트라이 갈게요!”

멀리서 들려오는 팀원들의 비명 소리에 민국은 지체 없이 팀원들에게 전멸 사인을 내렸다.

거신 사나스의 트라이를 성공시킨 GGW 공격대는 계속해서 쌍곡 던전의 네임드들을 상대해 나갔다.

하지만 공략에 투자한 시간에 비해 진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민국의 기준이었지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눈이 돌아갈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강채영 : 뭐? 현재 6 네임드까지 잡았다고?]

그건 레이드에 잔뼈가 굵은 강채영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한민국과 오현아 그리고 그녀까지 이렇게 셋만이 함께하는 채팅방에는 매일 마다 현아가 던전의 공략 상황을 실시간으로 올렸고 그럴 때 마다 채영은 이 내용이 사실이 맞는지에 고개를 갸웃해야 했다.

아무튼 중간에 던전 타이머 문제로 인해 메모리아 공격대가 던전을 한 번 초기화 시키면서 처음부터 다시 던전을 공략해야 하는 일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민국과 GGW 공격대는 본격적으로 던전 공략에 들어간 지 이십 여일이 지난 지금 쌍곡 던전의 9 네임드인 에프락시스 까지 전부 공략에 성공하고 마지막 네임드인 ‘심연의 추적자 - 오를라스’를 공략을 진행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우리 파티에서 발판을 잘못 밟아서 오롤라스의 습격이 이뤄졌어. 그 때문에 팀원들이 사망했고.”

부활석을 통해 던전의 입구에서 되살아난 멤버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리고는 이번 트라이에서 2팀의 팀장을 맡은 정예린을 바라보았다. 팀원들의 시선이 그녀가 본인의 입을 몇 번 벙긋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미안. 기억 게임에는 성공했는데, 급하게 움직이느라 바닥을 잘못 밟았어.”

“으으, 제 실수입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는 예린에 이어 시라누이 마이가 자신의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사실 정예린은 실수를 한 게 전혀 없었다. 기억 게임이라는 패턴에서 정예린의 판단은 정확했다. 하지만 시라누이 마이가 급하게 움직이다가 함정 발판을 밟으면서 오롤라스의 습격을 당한 것이다.

“제가 실수로 흰색 발판을 밟지만 않았더라면….”

그렇게 말을 하면서 시라누이 마이가 자신의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의 옆에 놓인 기다란 장검 때문인지 팀원들은 시라누이에게서 마치 할복을 앞둔 사무라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아야 했다.

어차피 전멸한 연유에 대해 알고 싶었을 뿐이지, 동료를 타박할 생각은 없었던 까닭에 근처에 있던 여성들은 바로 괜찮다며 시라누이를 일으켜 세웠다.

그래도 정예린과 시라누이 마이는 우물쭈물하며 민국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어쨌든 공격대가 전멸한 것은 자신들 때문이었다. 민국이 괜찮다는 듯 그런 두 여인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됐어, 실수는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거잖아? 아무튼 기억 게임에 성공했다면 오롤라스의 추적을 따돌릴 수 있다는 것일테고. 그렇다면 이제 다 잡은 거나 다름없어.”

그렇게 말을 하며 민국은 손뼉을 치며 팀원들을 불러 모았다.

60번? 혹은 70번 정도 트라이를 했을까? 아무튼 많은 시간을 투자한 공략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슬슬 던전 클리어의 끝이 보이고 있었다.

‘골치 아픈 녀석들이 많이 등장하는 던전이었지.’

쌍곡 던전의 삼대장이라 불리는 거신 사나스와 에프락시스도 난이도가 제법 있는 편이었지만 이 외에도 몇몇 네임드들은 새로운 패턴으로 팀원들을 고생시켰다.

더욱이 마지막 네임드인 ‘심연의 추적자 – 오롤라스’는 민국의 기준에서 제법 까다롭게 느껴지는 괴물이었다.

그도 그럴게 오롤라스를 트라이를 하는 동안에는 반드시 공격대를 두 파티로 나눠서 오롤라스의 추격을 따돌려야 하는 패턴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팀원들이 한쪽으로 모여 오롤라스의 도망을 치게 되면 최소한 반 수 이상의 팀원이 오롤라스의 습격으로 인해 사망해야 했다. 결국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민국은 두 파티로 나눠서 패턴을 진행해야 했고, 이는 곧 트라이의 횟수가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아무리 통신기를 이용한다 해도 자신이 직접 팀원들의 상황을 파악할 수 없던 터라 결국 팀원들에게 모든 것을 맡겨야만 했다. 전멸 횟수가 많은 이유 역시 그 때문이었다.

‘그래도 방법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오롤라스의 추격을 따돌리는 기억 게임.

전장의 바깥으로 숨은 오롤라스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 영웅들은 정해진 순서대로 발판을 밟아야 하는 공격 패턴이었다. 당연히 오롤라스가 습격하기 전에 발판이 빠르게 점멸하면서 영웅들에게 어떻게 발판을 밟아야 하는 지 힌트를 주기는 했다.

문제는 점멸했던 발판을 순서대로 정확하게 밟아야 한다는 점이었는데, 그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게다가 초반에는 세 개의 발판만 밟아도 오롤라스의 감각을 어지럽히며 습격을 피할 수 있었지만, 트라이 막바지에는 무려 열 개가 넘는 발판을 정확하게 밟아야 했다.

때문에 민국 역시 자신도 이 패턴 때문에 고생을 제법 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도우미가 나타나면서 쉽게 오롤라스의 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어어? 기억 게임? 저 이런 거 굉장히 좋아해요!》

민국에게 카오스 상점의 존재와 함께 Sex 코인이라는 것을 알려준 큐우♡가 뿅하고 모습을 드러내며 기억 게임을 대신 클리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실수 한 번 없을 정도로 완벽한 모습이었다.

때문에 민국은 그런 큐우♡의 도움 때문에 쉽게 기억 게임을 클리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추격을 피하기 위해 나눠진 다른 쪽 파티는 기억 게임 때문에 몇 번이나 전멸을 한 것이다.

그래도 고생의 결과가 슬슬 보이고 있었다. 팀원들 전부가 어느 정도 기억게임에 익숙해지면서 기억게임을 통과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억 게임만 성공하면 쉽게 잡을 수 있는 녀석이야. 사실 나머지 패턴들이 더 어렵다고는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기억 게임이 제일 짜증납니다.”

“제 기억력이 별로 안 좋은 지 이번에 알았어요.”

어색하게 자신의 목덜미를 긁적이는 타냐와 유나의 말처럼 GGW 팀원들을 괴롭히는 건 전부 기억 게임이었다. 실제로 기억 게임만 클리어하면 오롤라스 녀석 역시 쉽게 공략을 끝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게 민국의 생각이었다.

“그런 면에서 우리 공대장님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능력도 뛰어난데 머리까지 좋다니…. 나는 머리 좋은 남자가 정말 좋더라.”

그런 민국의 옆으로 지젤이 슬그머니 달라붙더니 끈적끈적한 시선과 함께 민국의 쇄골 부위를 자신의 손가락으로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공대장님은 기억 게임에서 틀린 적이 없죠?”

김소정도 바로 동의했다.

“엣헴! 저 남자가 바로 제 남자입니다.”

“…저도 카르텔 소속인데요?”

그렇게 선망이 가득 담긴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팀원들을 보며 민국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사실 기억 게임은 내가 하는 게 아니라 큐우♡가 대신 해주고 있는 건데….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렇다고 해서 그 사실을 밝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시 트라이가 시작되었다.

던전에 진입해서 마지막 네임드인 오롤라스까지 가는 길은 영웅들이 전속력으로 달려도 십여 분은 넘게 가야 했다.

“아, 진짜 멀다.”

“던전 내에서는 왜 차량을 움직일 수 없는 거야?”

“기어 스코어를 지닌 영웅 장비가 아니면 포탈에 넣자마자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분해가 된다고 하잖아요?”

“그게 대체 무슨 원리야?”

때문에 민국과 팀원들은 중간 중간 나타나는 괴물들을 상대하며 오롤라스가 있는 곳까지 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결론적으로 시간 낭비를 하지 않으려면 최선을 다해 트라이에 임해야 했다.

“오롤라스의 공격 패턴은 이제 다 알고 있을 거야. 문제는 기억 게임인데…. 잘할 수 있지?”

“네! 이번에는 무조건 성공시킬게요.”

“그렇다고 너무 부담 같지 말고. 전멸하면 다시 트라이에 도전하면 되는 거니까.”

힘찬 대답과는 달리 바짝 굳은 정예린의 모습에 민국이 그녀의 뺨을 톡톡 두들기며 말했다.

그나마 멤버들 중 정예린의 기억력이 가장 좋았기에 기억게임은 그녀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정예린의 기억게임 성공률은 굉장히 높은 편이었다.

“자, 잡았다?!”

“꺄아아아아!!!”

“퍼킹 몬스터!”

결국 세 번의 트라이를 더 하고 나서야 민국과 GGW 공격대는 처음으로 심연의 추적자라는 오롤라스를 쓰러뜨리는 데 성공하며 쌍곡 던전의 공략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아.”

“네, 시드는 망입니다.”

아쉬운 것은 오롤라스의 전리품 상자에서 새벽의 기사 클래스를 얻지 못했다는 것. 하지만 클래스 스톤의 드랍률이 낮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렇게까지 실망할 건 아니었다. 어차피 노가다에는 장사가 없었다.

‘덤으로 쌍곡 던전에서도 퍼플급 결정을 얻을 수 있으니….’

그 뿐만이 아니었다.

쌍곡 던전에서는 팀원들의 스펙 업에 도움이 되는 기어 스코어 장비를 얻을 수 있기도 했다. BIS 템이라 불리는 최고의 장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어스코어가 1130 은 넘어가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스펙 업을 하다보면 【A - 4】 난이도를 넘어 【A - 3】 그리고 목표했던 【A - 2】 난이도의 던전을 공략할 수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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