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57 국민 영웅
새의 탑.
인류의 주적인 어둠 괴물의 사령관급 존재라 할 수 있는 가루다의 본거지나 다름없는 이 드높은 탑은 수많은 나라들이 주시하는 아주 위험한 던전 중 하나였다.
던전의 추정 난이도는 무려 【S - 3】 이상.
이어서 십이 재앙인 가루다는 9 등급을 넘어서 10등급 네임드라 일컫는 괴물이었다.
현재 인류 최강의 공격대라 불리는 미국의 화이트 하우스 공격대가 【S - 9】 의 던전을 가까스로 공략에 성공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새의 탑은 지금 인류의 전력으로는 공략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곳이라 할 수 있었다.
때문에 던전 브레이크로 가루다의 힘이 약화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새의 탑을 공략할 엄두를 조금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안전을 위해서는 이 지옥의 마굴과도 같은 던전을 반드시 무너뜨려야 했다.
바로 인류의 가장 큰 골칫거리이자 삶의 터전을 망가뜨리는 오염된 대지 혹은 공허의 대지라 불리는 죽음의 땅을 만들어내는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키는 장본인들이 가루다와 같은 십이 재앙이기 때문이었다.
당연하지만 이 새의 탑은 주변에 위치한 태국, 베트남, 라오스의 공격대가 철저하게 감시를 하고 있었다.
“베트남에 한국의 공격대가 다수 온다는 소식 들었어?”
“베트남에? 왜? 던전 브레이크 때문인가?”
새의 탑을 감시하던 라오족 여성 영웅 티다가 동료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라오스에서 북동쪽에 위치한 나라인 대한민국은 자신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력한 영웅 전력을 보유한 국가였다.
그리고 티다는 한국의 남자 영웅이자 베트남의 국가적 영웅인 한민국의 열렬한 팬이었다. 잘생긴 그의 사진을 보는 순간 운명적인 사랑에 푹 빠져버린 것이다.
“라온 그룹에서 베트남에 마력석 생산 공장을 세우려나봐.”
“라온이라면…. 메모리아? 그러면 한민국 영웅도 오려나?”
“한민국 영웅은 메모리아가 아니라 R’s 라는 클랜 소속이야. 그러면 안 오지 않을까? 그리고 한민국 영웅이 온다고 해도 우리 같은 이들이 만날 기회나 있겠어?”
“…그렇겠지?”
티다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같은 영웅이라지만 한국의 영웅과 라오스 영웅의 위치는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그녀는 라오스에서도 제법 실력이 있다고 소문이 난 영웅이지만 기껏해야 【A】 난이도 8, 9 등급의 던전 정도나 공략할 수 있는 실력을 지니고 있을 뿐이었다.
중국이나 한국처럼 영웅 전력이 높은 국가를 기준으로 하면 기껏해야 랭커 클랜의 2군에 불과한 수준인 것이다.
“우리나라도 뛰어난 실력의 공대장이 하나 나와야 하는데….”
티다의 동료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한민국과 GGW 공격대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시피 공대장의 실력이 좋으면 공격대에 속한 영웅 전체가 큰 폭의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때문에 다수의 국가들은 실력 있는 공대장을 육성하거나 영입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라오스 역시 리딩이 가능한 공대장급 영웅을 키워내기 위해 영웅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나라로 재능 있는 영웅들을 유학 보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떠난 영웅들 중 라오스로 다시 돌아온 영웅은 한 명도 없었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그러게. 아! 이왕이면 남자 영웅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괴물의 트라이를 끝내면 남자 영웅이 포상으로 힘껏 안아주고 그러는 거지.”
“GGW의 한민국처럼?”
“…GGW 공격대에 속한 이들은 매번 한민국 영웅이 안아주고 그러겠지?”
“그렇지 않을까? 한국의 영웅인 강채영을 생각해 봐.”
“어? 그런데 강채영은 GGW 공격대가 아니잖아?”
던전이 아무리 위험하다 해도 그것을 감시하는 건 제법 지루한 일이었다.
탑을 공략하기 위해 내부로 진입하는 게 아니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몬스터들이 나타나는지 혹은 수상한 마력의 움직임이 없는지를 감시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그녀들이 맡은 임무는 아무 변화가 없는 던전 게이트를 주구장창 관찰하는 것에 불과했다.
처음 임무를 맡았을 때야 십이 재앙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에 짓눌려 잔뜩 얼어붙은 채로 게이트를 관찰하지만 그것이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또 한 달이 지날 때쯤이면 그 때의 긴장감은 온 데 간 데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지루한 시간을 때우는 데 있어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음담패설이었다.
“이번에 교대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일주일동안 집에서 안 나올 거야.”
“왜?”
“히히. 알면서 왜 물어?”
동료의 짓궂은 물음에 티다가 수도에 있을 자신의 남자를 떠올리며 히죽 웃었다. 그러더니 곧 얼굴을 찌푸렸다.
“설마 내가 없다고, 나 말고 다른 여자에게 싸지르지는 않았겠지?”
“그거야 모르지. 일단 가면 정액량부터 확인해 봐. 세 달 동안 하지 않았다면 그래도 제법 나오지 않을까? 평소와 같은 양이면….”
“가만 두지 않을 테다. 내 남자를 유혹한 여자랑 같이…. 콱!”
말은 그렇게 해도 티다는 실제로 자신의 집에서 자신의 돈으로 생활하고 있을 남자가 다른 여자랑 잤다는 걸 확신하고 있었다.
남자들은 원래 그런 이들이었고, 거기에 신경만 쓰면 자신만 이상한 여자가 될 뿐이었다.
“아! 이번에 돌아가면 우리 교환할래?”
“교환? 음…. 사진 있어?”
동료의 제안에 그녀가 솔깃한 얼굴로 물었다.
두 라오족 영웅은 자신들의 위치에 걸맞게 각각 남자 두 명을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그 남자들도 여러 여성들을 카르텔로 거느리고 있었다.
하지만 두 영웅들은 새의 탑의 한 존재가 자신들의 음담패설을 듣고 있을 거라는 건 꿈에도 생각지 못하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내가 이런 꼴이 되어버리다니….”
새의 왕 가루다.
붉은색의 깃털이 인상적인 여성이 크게 숨을 내뱉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넘치는 공허의 마력으로 화려했던 대전은 초라하게 변한지 오래였다. 찬란하게 타오르던 그녀의 깃털 또한 색이 살짝 바래 있었다.
하지만 가루다를 상심하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외관이 아니었다.
암묵적 동맹이라 할 수 있던 녀석인 바이콘을 포함해 자신과 동급이라 할 수 있는 존재인 12재앙 녀석들이 그녀를 무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다른 이들과의 연락이 끊긴지도 굉장히 오래된 참이었다. 때문에 새의 탑을 찾는 이들은 그녀의 권속이라 할 수 있는 네임드들뿐이었다. 그리고 그 숫자는 고작해야 둘에 불과했다.
“나쁜 말 자식. 내가 네 놈에게 선물한 여자 영웅이 몇 명인데…!”
가루다가 자신의 얼굴을 구기며 입술을 깨물었다.
동맹이었던 바이콘은 그녀의 마지막 발악이라 할 수 있던 던전 브레이크가 실패한 이후 자신의 연락조차 받지 않고 있었다. 물론, 다른 이들과의 교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머? 완전히 망했잖아?]
[어쩜 좋아? 이러다가 우리 가루다, 혼자 공허로 돌아가는 거 아니야? 만약에 공허로 쫓겨날 것 같으면 나한테 미리 연락 좀 해줘. 그 모습을 내가 꼭 봐야 할 것 같거든?]
그녀와 사이가 굉장히 나쁜 태평양의 리바이어선이나 잉글랜드에 자리 잡고 있는 버니의 얄미운 목소리를 떠올리면 차라리 지금처럼 혼자인 것이 훨씬 나았다.
하지만 가루다 역시 평생 이렇게 수모를 당하고 살 생각은 없었다.
던전 브레이크의 실패로 그녀가 지니고 있던 상당량의 마력이 허공으로 사라졌지만, 그녀는 조금씩 자신의 마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만약 지금의 상황에서 인류의 공격대가 새의 탑을 공격해오면 꽤나 난처한 일이 벌어지겠다만….
“아니지. 오히려 인간 녀석들이 새의 탑으로 오게 되면 나한테 좋은 건가?”
그 인간들을 잡아먹고 공허의 마력을 큰 폭으로 회복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들 중에는 자신의 던전을 공략할 수 있는 용기 있는 녀석이나 실력자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튼 이대로라면 5, 6년가량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나마 예전의 모습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때는 자신의 기운을 영구적으로 소모하더라도 인간계로 빠져나가 자신에게 치욕을 준 인간의 영웅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생각이었다.
“특히….”
가루다의 얼굴이 냉혹하게 변했다.
자신의 계획을 계속해서 방해하는 것도 모자라 가라이를 죽이는 데 가장 큰 일조를 한 인간 남자. 그 남자만큼은 가만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 * *
영웅들의 대구 해방 작전은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관심에 비해 그 성과는 굉장히 적었다. 기껏해야 【B】 난이도에 불과한 던전을 하나 무너뜨렸을 뿐인데, 그만큼 던전을 무너뜨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이 지역의 던전은 공허의 마력을 굉장히 많이 품고 있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한두 번의 공략으로는 던전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게다가 오염된 땅에 위치한 던전이 보유한 공허의 마력은 나무줄기처럼 복잡하게 연결이 되어 있기도 합니다. 때문에 지금 민국님이 공략하시는 던전이 마력을 다한다 하더라도 다른 던전에서 공허의 마력을 끌어올 수 있기 때문에 바로 무너지지도 않을 겁니다.》
‘…바퀴벌레와도 같은 생명력이로군.’
뿌우의 말에 민국은 얼굴을 찌푸렸다.
이 녀석의 얘기를 들어보면 자신이 지금까지 몇 번이나 던전을 무너뜨렸다는 사실이 정말 기적처럼 들릴 정도였다.
《그래도 던전이 가지고 있는 공허의 마력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처음이 어렵지 던전 하나를 무너뜨리는데 성공하고 나면….》
“그 던전에 공허의 마력을 빼앗긴 다른 던전도 빠르게 무너뜨릴 수 있을 테지?”
《그렇습니다, 민국님.》
그런 점에서 현재 GGW 공격대가 공략하고 있는 【A - 2】 난이도의 대구 시청 던전은 던전이 지닌 공허의 마력을 많이 소모시켜야 하는 이들의 목적에 아주 적합한 던전이었다.
네임드들의 강력함에 따라 던전의 소모하는 공허의 마력이 크게 차이가 났기 때문이었다.
‘겸사겸사 스펙 업도 할 수 있고….’
그리고 대구시청 던전에서 획득할 수 있는 장비들은 평균 기어스코어 1150 수준의 장비들.
네임드도 8 개체나 존재하는데다가 무려 4마리가 특수개체인 까닭에 퍼플급 마력의 결정도 제법 괜찮은 확률로 얻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새로운 레전드리 클래스는 아직 소식이 없나?”
민국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A - 2】 난이도의 던전을 공략하면서 민국은 레전드리 클래스의 궁극기라 할 수 있는 새벽의 방패와 파괴의 교향곡과 같은 공격대 스킬의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었다.
거기에 오현아의 두 번의 날갯짓이나 자신의 부활 스킬도 경우에 따라 상당한 효율을 자랑했다. 일단 트라이 도중 실수나 위기 상황이 생겨도 한 번은 버텨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민국은 이미 다음으로 선택할 레전드리 클래스의 스펙을 머릿속으로 점찍어 놓은 상태였다.
‘힐 업기를 지닌 클래스로 골라야지.’
그러면 부활, 광역 보호막, 폭발적인 힐 업까지.
공격대의 힐러 구성은 전부 완성이라 할 수 있었다. 여기에 버프 계통의 보조 클래스나 하나 있다면 딱 이겠지만, 없어도 크게 아쉬울 건 없었다.
지금은 파괴의 교향곡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레전드리 클래스를 보유하지 않는 팀원들은 아직도 많이 있었다.
《어, 음…. 그게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쩝.”
오늘도 똑같은 뿌우의 대답에 민국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 녀석들도 무제한적으로 퀘스트를 뿌리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크게 닦달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계속해서 던전을 공략하게 되면 언젠가는 퀘스트를 받을 수 있을 테고, GGW 공격대는 대구 시청 던전을 공략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당장은 레전드리 클래스가 없어도 【A – 2】 난이도의 던전을 공략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었다.
퍼플급 마력의 결정을 통해 능력치를 흡수하고 9 등급 영웅이 되기 위해 【S】 난이도 던전을 공략하기 전까지만 레전드리 클래스를 획득할 수 있으면 되었다.
‘그렇게 9 등급 영웅이 되고 나면….’
슬슬 이 세계의 최종 보스라 할 수 있는 십이 재앙 녀석들의 공략을 시작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민국의 가장 처음 목표는 베트남에 있는 새의 왕 가루다였다.
던전 브레이크를 통해 가루다가 약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만큼 민국은 가루다가 제 힘을 찾기 전에 그 괴물 녀석을 끝장낼 계획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참! 그러면 즐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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