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62 GGW를 찾는 이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쿠왈라룸푸르에 도착하자 말레이시아 총리가 공항까지 나와 민국과 GGW 공격대의 영웅들을 반겼다.
사십대 후반의 여성이 울컥한 얼굴로 허리를 꾸벅 숙이는 모습에서 민국은 이 땅의 사람들이 어둠 괴물로 인해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말레이시아는 어둠 괴물과의 최고 격전지 중 한 곳이지.’
통계에 의하면 어둠 괴물과의 전쟁이 벌어지기 전만 하더라도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인구는 대략 4억 명이 넘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수가 6천만이 채 되지 않았다. 참고로 이제는 어둠 괴물의 땅으로 변해버린 필리핀 사람들까지 포함된 숫자였다.
거기에 말레이시아와 인접했던 인도네시아도 국토 대부분이 괴물들의 땅으로 변해버렸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들이 얼마나 큰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지 그리고 어떤 불안감에서 살아왔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닙니다, 저는 영웅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왔을 뿐입니다.”
그렇게 나이 든 총리의 손을 잡고 일어난 민국은 자신의 말대로 바로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메단으로 향했다.
정말 조금의 지체도 없이 바로 던전을 공략하러 떠나는 민국과 GGW 공격대의 행보에 커다란 환영회를 준비했던 총리가 오히려 깜짝 놀랐을 정도였다. 그리고 요새도시 메단에 도착한 민국은 바로 말레이군의 호위를 받으며 페마탕 던전으로 향했다.
퀘스트 기간이 만료되기까지 남은 시간을 생각하면 조금도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이 페마탕 던전은 총 열두 개체의 네임드가 존재하는 던전이야. 【A - 1】 난이도 던전 중에서도 제법 긴 편에 속하는 던전이지.”
“열 두 마리라니….”
“여기 오기 전에 생각한 건데…. 오빠, 우리가 과연 이 던전을 두 달 안에 공략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최유나가 눈동자를 굴리며 물었다.
한 번도 공략을 해 본 경험이 없는 【A - 1】 난이도의 던전에서 등장하는 8 등급 괴물을 상대해야 하는 레이드였다. 그것도 대략 닷새에 한 마리 꼴로 트라이를 성공시켜야만 아슬아슬하게 던전 타이머를 맞출 수 있었다.
“물론. 그리고 이번 공략은 무조건 성공해야 돼.”
하지만 민국은 한 달 안에 페마탕 던전을 클리어하고 또 다른 【A – 1】 난이도 던전을 공략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이 사실을 유나가 알았더라면 기겁을 넘어 기절초풍을 했을 게 틀림없었다.
“그러면 부탁드리겠습니다.”
던전 게이트를 앞두고 GGW 공격대가 진입할 준비를 하자 말레이시아 군복을 입은 장성이 비장한 모습으로 경례를 했다. 그리고 민국 역시 당연하게 장성을 향해 경례를 했다.
“그쪽도 건투를 빕니다.”
GGW 공격대가 페마탕 던전을 공략하는 동안 말레이 군은 어둠 괴물들과 전투를 벌여 이 주변의 안전을 확보하는 한 편, 공격대가 머무를 전진 기지를 세울 계획이었다.
그리고 이번 작전에는 말레이시아 군 뿐만 아니라 동남아 국가의 여러 공격대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그만큼 【A – 1】 난이도 던전은 동남아시아의 안전을 크게 위협하는 던전으로 반드시 공략이 되어야만 하는 던전이었다. 그리고 페마탕 던전은 원래 중국의 텐센스가 공략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텐센스 역시 자국의 【A – 1】 과 【S】 난이도의 던전 때문에 공략 일정이 자꾸만 미뤄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GGW 공격대가 대신이라도 공략을 해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한민국이 지휘하는 GGW 공격대의 레이드 능력은 이미 쉴더급 공격대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했다.
그렇게 GGW 공격대의 페마탕 던전 공략이 시작되었다.
* * *
“타냐! 시선 끌어! 켄달은 현아가 부활하면 바로 버프 넣어주고!”
“알았어요!”
민국의 지시에 따라 타냐가 방패를 휘둘러 자신에 대한 네임드의 적대감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 사이 붉은색의 빛 무리가 사망한 현아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피닉스 나이트의 스킬인 두 번의 날갯짓이 발동되는 현상이었다.
기어스코어가 무려 1170 넘는 장비를 보유한 그녀지만, 【A – 1】 난이도의 8 등급 괴물은 정말 만만치 않았다. 지금도 그랬다.
네임드의 강력한 공격에 뷘드셴 자매들이 힐 업을 하며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네임드의 강력한 공격을 허용한 현아가 바로 사망해 버린 것이다. 고인물 수준의 힐러인 민국조차도 어떻게 반응하지 못한 그야말로 푹찍의 상황이었다.
“네임드의 덫 조심해! 그거 밟으면 무조건 사망이야!”
“딜러들은 후방으로 붙어!”
“시라누이 마이! 네임드가 외우는 주문을 방해해!”
GGW 공격대의 앞을 가로막은 페마탕 던전의 첫 네임드는 본인의 생명력이 떨어질 때 마다 무시무시한 브레스, 무려 3분 동안이나 밟은 이의 움직임을 마비시키는 덫, 해제하는 순간 주변의 동료들에게 큰 광역 피해를 주는 독 등 다양한 능력으로 GGW 공격대를 위협했다.
그리고 처음 경험하는 네임드의 강력한 공격 패턴에 GGW 공격대의 영웅들은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사망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정예린 사망!”
“뭣 때문에 죽은 거야?! 일단 브레스 끝나면 부활시킬 거야!”
그래도 GGW 공격대에는 현아의 피닉스 나이트와 함께 민국이 보유한 위그드라실의 스킬까지.
전투 중 부활이 가능한 스킬이 두 개나 있었다. 때문에 팀원들의 실수 한두 번 정도는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크르르….]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지던 도중 네임드의 눈이 순간적으로 본진을 향했다. 당연히 민국이 그런 네임드의 움직임을 놓칠 리 없었다.
“모두 긴장해!”
아니나 다를까 현아를 몰아붙이던 괴물이 잽싸게 몸을 돌리더니 딜러와 힐러들이 모인 자리를 향해 자신의 입을 쩍 벌렸다. 괴물의 커다란 입 안에서 붉은색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모두 뭉쳐! 그리고 켄달!”
“생명의 권능…!”
그런 괴물의 행동에 맞춰서 켄달이 기다렸다는 듯 본인의 레전드리 클래스인 ‘재생의 별’이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회복 스킬 ‘생명의 권능’을 사용했다.
이어서 푸른색 마력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꽃이 영웅들이 모여 있던 자리에 하나, 둘씩 피어오르더니 주변을 생명의 마력으로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모두 버텨!”
“지젤 보호막 걸어줘!”
“걸고 있어…!”
곧 네임드의 무시무시한 브레스가 영웅들을 재로 만들어버릴 기세로 뿜어졌다.
하지만 GGW 공격대의 영웅들은 켄달이 사용한 강력한 회복 스킬로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 괴물의 불꽃에 상처를 입을 때 마다 생명의 권능을 통해 바로바로 상처가 치유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트라이가 이어지는 동안 딜러들도 조금씩 전투 경험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더욱 위력적으로 네임드를 공격하고 있었다.
“유나야! 옆구리를 노려! 등은 제대로 된 타격을 주기 힘들어!”
“알고 있어요! 하지만 공격 시야가 나오지 않아요!”
“내가 만들어 줄게!”
소정이 대검을 크게 휘두르며 괴물의 등을 강타했다.
제법 따끔한 모양인지 괴물이 반응을 보이며 살짝 몸을 틀었다. 그리고 그 틈으로 원거리 딜러들의 공격이 폭격처럼 날아들었다.
그렇게 데미지를 때려 넣는 딜러 중에는 공격대 영웅들 중 가장 최근에 ‘눈의 여왕’이라는 레전더리 클래스를 손에 넣은 정예린의 활약이 제일 눈부셨다.
게다가 눈의 여왕은 화염 계통의 공격에 대한 위력을 낮춰주는 스킬도 보유하고 있어 GGW 공격대는 관련 네임드의 공격에 대한 생존율 또한 대폭 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A - 1】 난이도 던전인 페마탕 던전의 8등급 네임드들은 단순히 무식하게 강력한 놈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어떤 괴물들을 특별한 방법으로만 데미지를 주며 쓰러뜨려야 했다.
“공허 파동포 찾아!”
“여기! 여기 마력 충전됐어요!”
페마탕 던전의 4 네임드인 헬카니안이라는 괴물이 그랬다.
헬카니안과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에는 공허 파동포라는 정체 모를 무기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는데, 영웅들이 헬카니안을 공격하다보면 축적된 데미지에 따라 공허 파동포가 충전이 되었다.
그렇게 충전이 된 공허 파동을 찾고 그것을 사용해서 네임드에게 데미지를 입혀야 했는데….
“발사…! 명…!”
“이, 씨앙…! 정예린 나와! 너 쏘지 마! 원거리 딜러가 대체 왜 저걸 못 맞추는 거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공허 파동포 자체가 영웅 두 명이 들어야 할 정도로 괼장히 크고 무거웠던 데다가 고양이처럼 생긴 헬카니안의 움직임이 너무나도 신출귀몰하고 패턴을 예측하기가 힘들어 네임드를 명중시키는 일이 제법 어려웠다.
게다가 헬카니안의 공격에 의해 공허 파동포가 전부 고장이 나기 전에 네임드를 쓰러뜨려야 했다.
덕분에 민국은 4 네임드인 헬카니안을 상대로 딜러들이 공허 파동포를 다루는 데 익숙해지기까지 계속해서 전투 경험을 쌓아나가야만 했고, 그렇게 무려 일주일 시간 동안 92 번의 트라이 끝에 헬카니안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GGW 공격대! 드디어 페마탕 던전의 4 네임드인 헬카니안의 공략에 성공하다!]
[태국의 왈라이폰 장군. 페마탕 공략이 진행되고 있는 수마트라 반도에 태국군 이만 명 지원 결정.]
[GGW 공격대가 페마탕 던전 공략에 들어간 지 벌써 16일.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공략 속도라면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기 전에 공략에 성공할 수 있다고 예측.]
이런 GGW 공격대의 행보는 한국을 포함해 많은 언론들이 주시하고 있었다.
특히나 동남아 국가들은 이번 【A - 1】 난이도 던전 공략에 자신들의 운명을 걸고 있었다.
만약 페마탕 던전 공략이 실패로 끝나 던전 브레이크가 벌어지기라도 한다면 그나마 인간 세력으로 남아 있던 수마트라 반도의 땅을 완전히 포기하고 다들 말라카 해협을 건너 도망을 쳐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헬카니안을 상대로 일주일을 소모했던 GGW 공격대는 사흘 만에 5,6,7,8 네임드를 전부 쓰러뜨리는 기염을 토해내며 사람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 마지막 네임드가…? 얘는….”
“뭐야? 가라이잖아? 나이스. 이거 날로 먹게 생겼는데?”
페마탕 던전의 마지막 네임드를 확인한 민국이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루다의 심복이었던 가라이. 당연하지만 자신이 직접 공격대를 이끌어 공략에 성공한 녀석인지라 이 녀석에 대한 공략법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페마탕 던전 공략에 들어간 지 정확히 32일이 되는 순간 민국은 던전의 마지막 네임드인 가루다의 심복 가라이를 쓰러뜨리는 데 성공하며 던전의 타이머를 초기화 시키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 * *
GGW 공격대가 페마탕 던전의 타이머를 초기화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에 쿠왈라룸푸르에 있던 총리가 바로 요새도시 메단을 찾았다.
그녀를 불면증에 시달리게 만들었던 원흉이 드디어 해결이 된 것이다. 하지만 동남아시아의 위기는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페마탕 던전을 제외하더라도 반 년 내에 브레이크가 일어날 것이 확실시 되는 【A - 1】 난이도의 던전이 두 곳이나 존재했고, 일 년 후에 터질 것으로 예상되는 던전이 한 곳 더 있었다.
하지만 민국은 퀘스트 때문이라도 이 【A - 1】 난이도 던전을 전부 공략할 생각이었다.
“네? 아체 던전도 대신 공략해 주신다고요?”
메단에서 민국을 만난 말레이시아 총리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GGW 공격대는 불과 어제 한달 간의 전투 끝에 【A - 1】 난이도 던전의 공략을 끝낸 참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눈앞의 남자 영웅은 지금의 기세를 이어 수마트라 섬 최북단에 있는 아체의 【A - 1】 던전까지 공략을 진행한다고 했다. 그것도 바로 내일부터 공략에 들어간다고 했다.
당연하지만 아체 근처에 위치해 있는 【A - 1】 난이도의 던전 역시 아직 던전 타이머가 초기화 되지 않은 던전 중 한 곳이었다. 그리고 이 던전은 미국의 쉴더급 공격대인 ‘골덴 이글’이 공략을 진행하기로 예정이 되어 있었다.
“음…. 그러면 골덴 이글에는 저희들이 직접 이야기를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그 쪽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군부대의 지원 역시 부탁드리겠습니다.”
“어휴, 그거야 물론이죠. 아무튼 한민국 영웅님과 GGW 공격대의 은혜는 결코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총리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페마탕 던전을 초기화 시킨 이후부터 GGW 공격대는 인도네시아의 영웅이자 국빈으로 대우를 받을 예정이었다.
이 외에도 민국과 총리는 던전의 전리품 처리와 공격대 활동에 필요한 물품 지원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대화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난 총리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고된 트라이에 지치신 GGW 영웅 분들을 위해 전통 마사지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전통 마사지요?”
“그렇습니다, 다른 분들은 이미 마시지를 즐기고 계실 겁니다. 한민국 영웅님도 편하게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뭐, 그렇다면야….”
총리의 말에 민국은 고개를 주억였다.
어쩐지 아무도 연락이 없더라니. 그렇지 않아도 계속된 던전 생활로 몸이 찌뿌둥한 참에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여성 두 명이 들어와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생강차와 함께 가운을 건넸다.
그리고 민국은 옷을 갈아입고 준비된 침대에 상체를 기대어 앉아 생강차를 마시며 마사지사를 기다렸다. 잠시 후, 꾸벅 인사를 하며 들어온 마사지사들을 본 순간 민국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영웅…은 아니겠지?’
자신이 남자라 신경을 써주는 것도 아니고.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들을 이 자리에서 모아놓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참 성공. 그러면 즐감하세요~!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