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82 새의 탑
수요일 새벽 신안.
바다 너머로 노을이 지기 시작할 무렵 산기슭 너머로 괴상한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그러지는 게이트 안에서 인영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성공적으로 신안 소금 던전의 공략을 끝낸 GGW 공격대의 영웅들이었다.
“후우…!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 생각보다 빨리 무너뜨렸다. 그 던전의 마력 한계에 대해 쓴 사람 누구죠? 그 사람 이론 정말 맞는 것 같지 않아요?”
민국이 신안 소금 던전을 무너뜨리기로 결정을 내린 지 닷새.
난이도가 난이도인만큼 난징 던전을 뺑뺑이 돌았을 때와 비교해 제법 여유롭게 공략을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민국과 팀원들은 본격적으로 공략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신안 던전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레이드 경험과 장비 스펙이 높아지면서 빠르게 던전을 공략하기도 했지만, 이 주위에는 신안 소금 던전을 제외하면 【B】 난이도 수준의 조무래기 던전만 가득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민국은 대구 시청 던전을 무너뜨렸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신안 던전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저,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던전이 무너지는 모습을 구경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던 민국의 곁으로 소금 던전을 지키는 부대의 중대장이 화들짝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처음 병사들에게 보고를 받았을 때만 하더라도 그녀는 부하가 장난을 치는 농담인 줄 알았다.
쉴더급 공격대의 전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었지만, GGW 공격대가 본격적으로 던전 공략에 들어간 지는 기껏해야 며칠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거짓이 아니었다. 정말로 그녀의 눈앞에서 【A - 2】 난이도의 던전이 무너지고 있었다.
“어, 어어…. 어…….”
그 모습을 보며 중대장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에 가까운 소리만을 반복해서 내뱉었다.
몬스터를 뱉어내는 던전의 게이트가 모래성처럼 스르륵 무너지며 사라지는 모습은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었다.
“군인 분들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경외감을 담아 경례를 하는 군인들을 보며 민국은 고개를 꾸벅였다.
비록 취사병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현역으로 복무를 했던 까닭에 민국은 군인들이 얼마나 부조리한 대우를 받으며 힘겹게 생활하는 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어둠 괴물과의 전쟁으로 인해 생명경시 풍조가 만행한 이 세계에서 군인들은 더더욱 고생을 하고 있었다. 적어도 전의 세계에서는 괴물들을 상대로 총을 쏠 일은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소금 던전이 무너졌으니 10 중대 분들도 복귀를 하시는 겁니까?”
돌아갈 준비를 하는 클랜의 직원들을 보며 궁금증이 든 민국이 중대장을 향해 물었다. 백여 명이 조금 넘는 군인들이 이 소금 던전을 관찰하고 관리하고 있었다.
“아닙니다. 명령이 떨어져야죠.”
“아…….”
중대장의 대답에 민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군인다웠다.
아무튼 위험 던전이 무너졌다는 사실 때문인지 부대의 분위기는 굉장히 화기애애했다.
간혹 가다 던전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를 상대로 전투를 벌일 일도 없었고, 명령이 떨어지면 안전한 곳으로 복귀 또한 할 수 있기 때문으로 보였다.
아무튼 자신들이 이곳을 떠나도 백여 명이 넘는 군인들은 새로운 명령이 하달될 때까지 이곳을 지키고 있을 모양으로 보였다.
‘뭐, 별일 없겠지.’
안전 장벽과는 거리가 제법 있었지만, 전차 두 대에 4성 영웅도 둘이나 배치되어 있으니 몬스터가 나타나도 별 문제는 없을 터였다.
게다가 이 주위에는 【B】 난이도 수준의 던전 밖에 없었다. 설령 몬스터가 등장한다 하더라도 중대 전력으로 충분히 아작낼 수 있는 허접한 놈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그 때 클랜의 수거 팀장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지원 팀장의 모습이 들어왔다. 마침 좋은 생각이 민국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팀장님. 혹시 고기나 술 좀 있을까요?”
“고기나 술이요?”
갑작스러운 민국의 물음에 지원팀장이 의아한 얼굴로 민국을 바라보았다.
클랜은 지원팀은 클랜 소속의 공격대가 원활하게 던전을 공략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당연히 그 중에는 영웅들의 식단 관리도 끼어 있었다.
“뭐, 찾아보면 있을 겁니다. 공대장님의 뛰어난 능력 때문에 저희들의 예상보다 공략 일정이 훨씬 빠르게 끝이 났거든요.”
“그거 필요 없는 거죠? 제가 좀 써도 될까요?”
“네? 원래라면 나중에 다시 사용하는 거긴 한데…. 공대장님께서 사용하신다고 하면 당연히 드려야지요. 그런데 고기는 양이 굉장히 많을 텐데 지금 드시려고요?”
지원팀이 보관하고 있는 고기의 양은 공격대 영웅들과 함께 클랜 직원들이 함께 먹을 양이었다. 때문에 못해도 백 인분은 훨씬 넘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민국과 대화를 나눴던 중대장은 뭔가 촉이 온 듯 관심이 없는 척 하면서 귀를 쫑긋 세웠다.
군대 배급이야 뻔한 수준인데다가 이곳 신안 소금 던전은 도시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터라 고기와 같은 육류를 접하기가 쉽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아무튼 고기와 술 전부 여기에 있는 군인 분들에게 기증을 하고 가도록 하죠.”
“그 많은 걸 전부요?”
“네. 혹시 문제가 생기면 대금은 저에게 청구하시면 될 거예요.”
“아휴, 까다로운 재무팀 친구들도 한민국 영웅님이 그랬다고 말하면 아무 말도 못 할 겁니다. 아무튼 바로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민국의 말에 손을 휘저으며 너스레를 떤 지원 팀장이 바로 사람들을 불러 고기와 술을 내렸다. 그 중에는 쉽게 보기 힘든 소고기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잠시 후, 술과 고기를 발견한 군인들이 특유의 요란한 괴성으로 한민국의 이름을 목 놓아 외치기 시작했다.
* * *
[속보) 신안 소금 던전 파괴!]
[쉴더급 공격대는 달랐다. 닷새 만에 신안 소금 던전을 무너뜨린 GGW 공격대…!]
GGW 공격대가 신안 소금 던전의 공략에 들어간 것은 일반인들도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GGW 공격대가 던전 타이머를 초기화시키기 위해 신안 소금 던전을 공략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신안 던전은 아주 위험한 【A – 2】 난이도의 던전인 까닭에 쉴더급 공격대라 할지라도 이렇게나 쉽게 던전을 무너뜨린다는 것은 상식상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때문에 갑자기 속보처럼 터져 나오는 신안 소금 던전 소식에 많은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너무나도 뜬금없이 던전이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속보에 자조지종을 깨닫고는 사람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다.
대구 시청 던전과 마찬가지로 신안 소금 던전은 국내의 안전을 크게 위협하는 던전이기 때문이었다.
“우와아악! 한민국 만세…!”
“나이스! 신안까지 갈 필요 없어졌다!!!”
그렇게 만세를 부르는 이들 중에는 신안 소금 던전을 관리하던 이화 클랜과 최근 소금 던전에서 개고생을 했던 메모리아의 영웅들도 끼어 있었다.
던전을 관리하면서 받게 되는 지원금은 줄어들겠지만, 그것보다는 신안까지 원정을 갈 필요가 없다는 게 영웅들에게는 더 큰 행복이었다. 게다가 신안 던전을 공략하면서 낭비되는 부활석도 적지 않았다.
[9성 영웅 오현아, “소금 던전이요? 공대장 지휘가 워낙 뛰어나니 생각보다 쉬웠어요.”]
[따뜻한 남자 한민국, 던전을 무너뜨리고 던전을 지키던 군인들에게 고기와 술 선물! “고생을 하시는 군인 분들을 보니 뭐라도 해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신안 던전까지 무너뜨리는데 성공하며 국민들은 더욱 GGW 공격대를 칭송하기 시작했다.
[오현정 R’s 클랜장, “GGW 공격대의 다음 일정은 태국의 넝카이 던전 공략을 진행할 예정. 이는 쉴더급 공격대의 의무.”]
하지만 장기간 원정을 떠났다가 국내에서 고작 이 주가량만을 머무르고 태국으로 향하는 GGW 공격대의 행보는 여러 정치인들의 불안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쉴더급 공격대가 국내에 머무르고 있어야…….”
그리고 한 정치인의 인터뷰가 전파를 탔다.
열심히 포장을 해서 말을 하기는 했지만 결국 국민들의 안전을 핑계 삼아 쉴더급 공격대인 GGW가 국내에 머무르고 있어야 한다는 뜻을 넌지시 내비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치인들의 행보는 뿌우에게 퀘스트를 받고 태국 원정을 준비하고 있던 민국의 분노를 제대로 자극했다.
“국내가 위험하다고요? 그렇기 때문에 저와 팀원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그 위험하다는 신안 소금 던전을 무너뜨렸던 겁니다. 대구 시청 던전도 신안 소금 던전도 무너진 마당에 국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한 던전이 어디 있습니까?”
R’s 클랜의 하우스.
기자들을 불러 모은 민국이 불쾌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하지만 민국의 말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영웅들의 의무는 단순히 어둠 괴물의 손에서 인류의 땅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더 높고 더 먼 곳을 바라보며 괴물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한민국 공대장님! 그것이 대체 무엇입니까?”
“전쟁의 끝입니다. 저는 그리고 영웅들은 기나긴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겁니다. 어둠의 괴물이라는 존재가 없었던 평화로웠던 세상을 되찾기 위해 말입니다! 그리고 할 수 있습니다! 전쟁? 끝낼 수 있어요!”
환상처럼 들리는 민국의 말에 기자들의 얼굴이 충격과 경악으로 변했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어둠 괴물과의 전쟁을 끝내겠다고 선언한 이는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태국의 【S】 난이도 던전인 넝카이 던전을 공략하는 것은 던전을 공략하고 벌 수 있는 돈? 명예? 이런 게 욕심이 나서가 아닙니다. 돈? 저도 굉장히 많습니다.”
농담처럼 한 얘기였지만 농담이 아니었다.
수많은 던전을 공략하면서 쌓인 분배금은 계산조차 되지 않을 정도였다. 가장 최근에 공략했던 난징 던전의 의뢰 대금만 하더라도 몇 대는 놀고먹을 수 있었다.
게다가 와이프는 국민 영웅이자 서울에 빌딩 몇 채를 보유한 강채영이었고, 또 다른 한명은 라온 그룹의 3세이자 재벌녀인 김태연이었다.
“말이 이상한 곳으로 새기는 했는데 네, 까놓고 말해서 【A】 난이도? 【B】 난이도? 아무리 공략해봐야 무슨 소용입니까? 초기화된 던전 타이머가 그대로 멈춥니까? 어차피 다시 돌아갈 텐데요?”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지.”
기자들도 그런 민국의 말에 격하게 공감을 했다.
“한민국 영웅의 말이 맞아. 전쟁을 끝내려면 머리를 잡아야지. 게다가 영웅들의 숫자는 계속해서 감소하는 추세잖아?”
“영웅만 그런 게 아닐 걸? 성비가 깨진 이후로 인류의 숫자 역시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어. 이대로라면 어둠 괴물들의 손에 무너지기 전에 우리 사회가 먼저 박살이 날 걸?”
이런 것들을 전부 감안하면 GGW 공격대의 행보를 제안하는 정치인들의 행보는 말도 안 되는 억지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제발 본인들의 안전 때문에 공격대의 해외 원정과 관련해 가타부타 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말을 마친 민국은 티비에서 봤던 늙은 여자의 모습이 떠오르자 짜증스럽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갑자기 열이 확 뻗쳐오르는 것 같았다.
“우리는 【S】 난이도의 던전을 무너뜨리고, 지구 곳곳에서 영역을 넓히고 있는 십이 재앙을 쓰러뜨려야만 우리는 이 전쟁을 승리로 끝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역할을 해낼 겁니다. GGW의 팀원들과 함께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쓸데없는 짓을 한 정치인에게 경고까지 크게 날렸다.
“아! 한 번만 더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올 경우, 저는 위약금을 물어내고 클랜과 공격대를 나갈 겁니다.”
“예? 예?”
“하, 한민국 공대장님!”
심상치 않는 민국의 말에 기자들이 침을 꿀꺽 삼켜 넘겼다. 그리고 민국은 대답대신 자신의 말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그리고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지 않는 나라로 이민을 가서 그곳에서 뜻이 맞는 동료들과 어둠 괴물들을 쓰러뜨릴 겁니다. 아…. 제국근위대가 좋겠네요. 프랑스 친구들과는 몇 번이나 호흡을 맞춰본 적이 있으니까요.”
당연하지만 민국의 이러한 인터뷰는 국민들의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자신들의 안전 때문에 영웅의 행보에 사사건건 참견하려는 정치인들의 행보는 많은 이들이 전부터 꼴사납게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거기에 인터뷰를 본 프랑스는 국민투표까지 벌여가면서 한민국 영웅을 환영한다는 뜻을 밝히기까지 했다.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만큼 강력히 민국을 원한다는 뜻이었다.
당연하지만 이런 프랑스의 움직임은 국민들의 큰 분노를 일으켰고, 이 화살은 전부 바보같은 정치인들에게 쏟아졌다.
그렇게 국내에 큰 폭탄을 떨어뜨린 민국은 인터뷰를 끝내고 이틀 뒤, GGW 의 팀원들과 함께 태국으로 향했다. 가이낙스가 있다는 넝카이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메콩강을 끼고 있는 넝카이 주에 GGW 공격대가 도착했을 때 민국은 넝카이 던전을 공략하기에 앞서 조금 황당한 소식을 전달받아야 했다.
“네?! 타이머의 폭발이 닷새밖에 남지 않은 【A】 등급의 던전이 이 근처에 있다고요?”
태국에 던전 브레이크가 임박해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참 성공. 그러면 즐감하세여~!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