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83 새의 탑
“우, 우리 완전히 똥 밟은 거 아니에요?”
“쉿. 조용히 해 봐.”
최유나의 겁먹은 표정에 김소정이 조용히 손가락에 입을 가져다 대었다. 상황이 심각한 건 사실이었지만, 공대장인 민국이 아직 태국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바로 국내로 복귀해야 하는 건가?’
하지만 그녀 역시 불안한 건 매한가지였다.
GGW 공격대가 아무리 쉴더급 공격대라 할지라도 GGW 혼자서 던전 브레이크를 감당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심지어 폭발 예정인 던전은 【B】 난이도도 아닌 【A】 난이도의 던전이었다. 만약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면 이 근방 전체가 오염된 땅으로 물들게 분명했다.
‘그리고 오염된 땅에서 나타날 임시 던전들은….’
적어도 수천 개 이상은 될 터였다.
베트남과 중국에서 있었던 일들이 떠오르자 그녀 아니, GGW 공격대 전원의 눈동자가 심각한 얼굴을 한 민국에게 향했다. 어쨌든 공격대의 결정은 공격대장이 내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자신들의 공대장은 현명한 결정을 내릴 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A】 난이도 던전의 폭발이 얼마 남지 않았고, 태국 공격대는 현재 던전의 6네임드까지 공략에 성공했다고요? 던전의 총 네임드는 아홉 마리고요?”
“그, 그렇습니다.”
태국 관리가 허리를 넙죽 숙였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기 때문이었다. 태국에서 제일가는 공격대가 몇 번이나 던전을 공략했지만, 번번이 공략에 실패한 지금 그녀들이 믿을 건 쉴더급 공격대인 GGW 밖에 없었다.
그리고 태국 관계자들을 보며 민국이 얼굴을 찌푸렸다.
‘대체 무슨 생각이야?’
제 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 수준이 되기 전에 외부의 도움을 요청했을 터였다. 베트남만 하더라도….
“씨발.”
생각해 보니 걔네들도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고 세계 영웅 협회에서 도움을 요청했었다. 민국과 눈이 마주친 태국 영웅들이 미안하기라도 한 듯 슬그머니 고개를 숙이며 시선을 피했다.
보아하니 자기네들의 실력을 믿고 던전을 공략했던 모양인데, 아무튼 일이 잘 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민국님?》
‘뭘 어떻게 해? 여기서 죽을 일 있어? 빨리 던전 타이머 초기화 시켜야지.’
이건 답이 정해진 상황이었다.
아무리 자신이라도 수십, 수백 개의 임시 던전을 동시에 공략하는 건 불가능했다. 아무튼 한시가 다급했다.
“일단 던전에 대한 정보는 이동하면서 듣도록 하죠. 문제의 던전은 어디에 있습니까?”
“저, 저희들이 안내할게요.”
태국 영웅들 중 가장 실력자로 보이는 여성이 민국의 옆으로 빠르게 달라붙었다.
“일곱 번째 네임드를 공략중이라고 했죠? 그 녀석에 대해 간단히 설명 부탁드릴게요.”
일단 공략이 된 네임드들의 정보는 알 필요가 없었다. 딱히 상대할 녀석들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공대장으로 보이는 태국 영웅은 빠르게 자신이 아는 것 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문제의 던전은 【A - 5】 난이도의 던전이었다.
【A – 5】 난이도라 하면 7 등급 어둠 괴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던전으로 국내의 랭커 클랜이라면 손쉽게 공략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태국의 공격대 중에서는 극소수의 공격대만이 7 등급 네임드를 상대할 수 있었다.
“그런데 7 등급 개체치고는 이상할 정도로 강한 느낌이었어요. 실제로 저희들은 몇 번이나 문제의 던전을 공략한 적이 있는데, 이번만큼은…….”
아무리 트라이를 해도 네임드를 쓰러뜨릴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심지어 전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공격 패턴을 사용하기까지 했어요. 기존의 패턴들도 뭔가가 더 위협적이었고요.”
그런 태국 공대장의 말에 민국과 나란히 걸으며 이야기를 듣던 현아가 슬그머니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무리 강력해봤자 7등급 몬스터. 레이드 수준이 떨어지는 태국이라면 모를까 쉴더급 공격대인 자신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될 놈이 아니었다.
“강력해요?”
하지만 민국은 태국 공대장의 말을 허투루 흘려듣지 않았다.
이들은 전부터 문제의 던전을 관리하던 클랜의 공격대라고 했다. 다시 말해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도 던전의 네임드를 상대하는데 익숙한 이들이라는 말이었다.
그런 이들이 사태가 이 정도로 진행이 될 때까지 던전을 공략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면 확실히 뭔가가 수상했다.
‘냄새가 나지?’
《킁킁. 그렇습니다. 구린내가 아주 술술 풍깁니다. 가라이 녀석을 상대할 때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지 않았습니까?》
뿌우의 말을 들으며 민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라이가 아니더라도 ‘가루다의 자식’이었던가? 아무튼 베트남의 던전 브레이크 때만 하더라도 동급 난이도에 비해 까다로운 패턴의 녀석들이 최종 보스로 등장했던 적이 있었다.
문제의 던전은 넝카이에서 서북쪽으로 한 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여, 여기 입니다.”
“던전 방어 병력이…. 이게 전부인가요?”
던전에 도착한 민국이 문제의 던전까지 안내한 태국 공대장에게 물었다.
게이트가 괴이하게 흔들리는 문제의 【A – 5】 난이도 던전은 각성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초보 영웅 몇 명만이 지키고 있었다.
보아하니 국민들의 혼란을 염려해서 아직까지도 비밀을 유지하고 있던 모양인데….
‘저러다가 던전이 터지면 국민들은 아무 것도 모른 채 몬스터들을 피해 도망가야 되는 거 아닌가?’
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꼭 지적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이건 태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넝카이에서 메콩강을 건너면 라오스가 위치해 있었다. 실제로 자신들이 우연히 넝카이에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또 다른 재난이 동남아시아와 인류를 위협했을 터였다.
던전 게이트를 앞에 두고 GGW의 영웅들이 민국에게 모여들었다.
“빠르게 정리할게. 다들 알다시피 던전은 닷새 뒤에 폭발할 예정이야. 그리고 던전 내에 남은 네임드는 총 세 마리. 난이도는 다들 알고 있지?”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세 마리면 여유 있네? 하루에 한 마리씩만 잡아도 충분하겠어?”
“맞아요. 우리 빨리 정리하고 넝카이의 가이낙스? 그 놈 때려잡으러 가요.”
현아가 체조를 하듯 몸을 쭉쭉 펴며 말했고, 유나도 호들갑을 떨며 동의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긴장하지 말고 여유를 가지려는 베테랑의 모습들이었다. 그리고 던전의 공략이 시작되었다.
* * *
“확실히…….”
“이거 7등급 괴물 맞아?”
던전에 진입한 민국과 영웅들은 빠르게 던전 내부를 주파해 문제의 네임드를 상대했다. 그렇게 다섯 번의 트라이를 하고 이들이 느낀 소감은 하나였다.
7등급 괴물 치고는 공격 패턴이 이상할 정도로 까다롭다는 것. 거기에 이상할 정도로 피부가 단단해 7등급 영웅의 마력으로 공격을 하면 무기가 잘 박히지도 않았다.
‘난징 던전 수준의 괴물은 아니지만….’
적어도 눈앞의 녀석은 7 등급 수준이라 할 수 있는 녀석이 절대 아니었다. 8 등급 아니지만 7 등급 특수 개체보다는 강한 놈 같았다.
게다가 전멸기까지 있어 공격 타이밍에 오브젝트를 사용해 방해하지 않으면 아무리 강한 영웅이라도 살아남기가 힘들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이 전멸기 패턴이 기존에는 없던 패턴이라는 점이었다.
“태국 친구들이 【A - 5】 난이도 던전도 공략 못했다기에 살짝 비웃었는데…. 나중에 사과해야겠다.”
공허의 마력을 뿜어내는 괴물을 보며 현아가 웅얼거렸다.
“모두 모여 봐.”
이어서 민국이 부활석으로 되살아난 팀원들을 불렀다.
눈앞의 녀석은 듣는 것 이상으로 더 까다로운 녀석이기는 했다. 하지만 다섯 번 정도 트라이를 하면서 민국은 괴물의 패턴 종류를 전부 파악할 수 있었다.
“패턴 파악도 끝났겠다. 슬슬 저 녀석 잡고 다음 네임드로 넘어가야겠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GGW 공격대는 9성 영웅들이 모인 쉴더급 공격대.
7 등급 네임드를 상대로 다섯 번이나 트라이를 했다는 것 자체가 기분 나쁠 일이었다. 눈앞의 녀석이 7 등급 치고는 강한 녀석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첫 번째 오브젝트 담당은 최유나, 두 번째는 정예린.”
“네!”
“알겠습니다, 공대장님.”
“그리고 세 번째는 시라누이 마이. 네 번째는 우리 딜러들의 딜량을 생각하면 굳이 정할 필요 없겠지?”
그렇게 민국은 다시 한 번 자신이 세운 전술을 팀원들에게 빠르게 설명하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트라이가 시작되었다.
[캬아아악…!]
영웅들의 등장에 뱀처럼 생긴 괴물의 눈동자가 의기양양하게 타올랐다.
벌써 몇 번이나 인간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조금만 더 이렇게 시간이 끌면 자신은 이 공허의 틈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탐스러운 먹잇감들이 있는 인간계를 마음껏 누비는 미래가 펼쳐지는 것이다.
[캬륵! 캬륵!]
그렇게 인간들을 상대하던 뱀이 자신의 입을 쩍 벌렸다. 공허의 종족에게서 부여받은 이 힘으로 단숨에 인간들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맹독 브레스! 최유나! 정화의 구 준비!”
“지금 가고 있어요! 모두 뭉쳐요!”
강력한 독이 인간 영웅들을 휩쓸었다.
하지만 인간들은 전부 멀쩡한 모습이었다. 뱀은 코웃음을 치며 다시 날카로운 이빨과 꼬리로 인간들을 공격했다.
이번에는 운 좋게 살아남은 모양이지만 자신은 공허의 마력이 충전되면 계속해서 브레스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분 뒤.
[캬아아악?! 캬륵!]
공포와 전율이 뱀 괴물의 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위기의 경고등이 괴물의 머릿속에서 빠른 속도로 깜빡였다.
“19%! 마이! 정화의 구 위치 체크해! 세 번째 브레스 곧 올 거야!”
“켄달! 이번 타이밍에 생명의 권능 올려! 그리고 브레스 끝나면 교향곡 사용해!”
“네!”
“알겠습니다!”
민국은 침착하게 명령을 내렸다.
눈앞의 괴물은 알려진 정보가 굉장히 많은 괴물이었다. 갑자기 괴물이 강력해 졌다 하더라도 게임으로 치면 노말 모드가 하드 모드로 변한 수준에 불과했다.
결국 밑바탕은 똑같다는 말이었다. 새롭게 추가된 패턴인 전멸기만 주의하면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는 녀석이고, 민국은 앞선 트라이를 통해 전멸기에 대응하는 방법과 타이밍을 완벽히 익힐 수 있었다.
“파괴의 고향곡!!!”
마지막이 될 것 같은 괴물의 브레스를 성공적으로 흘려낸 GGW 의 영웅들이 자신의 마력을 폭발시키며 뱀 괴물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단단한 마력이 담긴 딜러들의 무기가 뱀 괴물의 몸통을 두드리자 기괴한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캬아아악…!]
새롭게 힘을 얻은 이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아픔에 뱀 괴물의 시선이 자신을 공격한 영웅들에게 향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타냐의 마력이 뱀 괴물을 자극하자 눈이 돌아간 괴물이 매섭게 그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콰드득!
영웅 패드에 나타나는 괴물의 생명력이 0에 가까워질 때쯤 김소정의 대검이 괴물의 머리통을 박살냈다. 이어서 신나연의 마력 구에서 발사된 빛이 괴물의 몸통과 머리를 분리시켰다. 확인 사살이었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생각보다 쉽게 잡았네요.”
“구체의 위치를 파악하고, 침착하게만 대응하면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는 녀석이었어. 아무튼 다들 고생했어.”
그렇게 말한 민국은 영웅 패드로 시간을 확인했다. 본격적으로 공략에 들어가고 정확히 세 시간이 흘러 있었다.
‘빨리 잡기는 했는데….’
여유를 부릴 상황은 아니었다.
태국의 관계자와 공격대장은 이 던전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기 전까지 닷새가량이 남았다고 했다. 하지만 브레이크가 정확히 닷새 뒤에 터질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바로 안으로 진입하자.”
전리품 상자에서 아이템들을 챙긴 민국은 팀원들과 함께 단전의 안으로 향했다.
꼬불꼬불한 길 사이로 새끼 뱀이나 리저드 맨들이 나타나 영웅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괴물들은 나타나는 족족 김소정이 불꽃의 마력으로 태워버렸다.
당연히 네임드도 아닌 일반 개체가 9성 영웅의 마력을 감당해 낼 리 없었다.
“언니, 멋져요!”
리저드 맨 세 마리를 단번에 잿더미로 만들어버리는 김소정의 능력에 유나가 손으로 고깔 모양을 만들며 소리쳤다.
그에 어울려주듯 소정이 예쁜 척 손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넘겼다.
전에는 빛나는 은발이었던 그녀의 머리카락은 레전드리 클래스인 ‘불꽃의 광채’의 마력에 영향을 받는지 새빨갛게 물이 들어 있었다. 불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절로 생각이 나는 모습이었다.
‘머리카락만 색이 바뀐 게 아니지.’
그리고 민국은 자신만이 볼 수 있는 김소정의 아랫부분을 떠올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즐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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