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87 새의 탑
“이 건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죠.”
“네? 아, 알겠습니다.”
“넵!”
실버급 마력의 결정의 판매 여부를 두고 의견 충돌이 팽팽하게 일어나자 민국은 결정 판매에 대한 것은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어차피 판매하려고 해도 소문이 돌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테니까요. 당장 우리가 돈이 급하게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래.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정산된다니까?”
정예린과 타냐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의 말대로 어차피 당장 팔고 싶다고 해봤자 그럴 수 있는 물건도 아니었다.
게다가 급하게 팔게 되면 제값도 받을 수 없었다. 거래 가능한 실버급 마력의 결정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는 희귀한 물건이었다.
민국의 눈동자가 천상의 빛처럼 은은한 은빛을 내는 마력의 결정으로 향했다.
‘마음 같아서는 강채영에게 주고 싶지만…….’
공대장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공격대의 전리품을 처분할 권리는 없었다.
그래도 적당한 가격이면 자신이 구매해서 강채영에게 줄 생각이었다. 공격대 전리품인 만큼 공격대 내규상 정해지는 시세보다 40%는 싸게 구매할 수 있었다.
사실 인류의 전력 증가를 위해서라면 은퇴한 영웅보다는 현역으로 뛰고 있는 영웅에게 주는 게 옳은 일이었다.
‘하지만.’
민국은 얼굴도 모를 8성 영웅보다는 가족인 강채영이 강해지는 게 훨씬 더 마음이 끌렸다.
‘지금의 한국이야 별 위험이 없다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
지금처럼 GGW 공격대가 해외의 던전을 공략하는 동안 국내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터지거나 어둠 괴물의 공격이 닥칠 가능성도 제로인 게 아닌 이상 말이다.
더욱이 강채영은 본인의 몸 뿐 아니라 딸인 한소영까지 같이 지켜야 했다. 그렇게 민국은 유나가 조심스레 챙기는 실버급 마력의 결정을 가만히 보다가 몸을 돌렸다. 일단 통장에 돈이 얼마가 있는지부터 확인을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 * *
팀원들이 자유 시간을 보내는 동안 민국은 아침부터 영웅 패드로 넝카이의 던전 공략 영상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영상을 보는 민국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생각보다 영상이 몇 개 없네.”
아무래도 【S】 난이도라는 위험한 던전인 까닭에 트라이를 시도한 공격대가 몇 없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그래도 쉴더급에 들어가는 공격대는 공략 정보를 몇 개 가지고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클랜을 통해 연락을 해봤자 원하는 정보를 얻으려면 시간이 제법 걸릴 터였다.
그 때 방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김소정이었다.
“공대장님, 여기요.”
“…이게 뭔데요?”
민국은 자신에게 서류를 내미는 소정의 얼굴과 그녀의 손에 들린 종이 몇 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침에 태국의 공대장 분이 주시더라고요. 지금까지 넝카이 던전을 트라이했던 공격대의 구성과 그녀들이 사용했던 전술 그리고 트라이 결과라고 해요. 네임드에 대한 정보도 담겨 있고요. 아, 공략 영상도요.”
“이게요?”
민국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것 치고는 종이 몇 장에 불과한 데…. 하지만 종이를 한 장 넘겨보니 영웅 패드로 호환할 수 있는 마력 USB가 눈에 테이프로 고정이 된 것이 보였다.
이 세계에서는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USB였다. 물론, 그 안에 담긴 내용은 평범하지 않았지만.
“이런 것도 미리미리 준비를 해 주다니…. 이 친구들이 우리에게 미안했긴 했나 보네요.”
“당연히 미안해해야죠. 저희들이 아니었으면 하마터면 큰 일이 일어날 뻔했는데요. 게다가….”
김소정이 지퍼로 자신의 입을 채우는 시늉을 했다.
“입도 다물어주기로 했는데요.”
그녀의 말대로 민국과 GGW 팀원들은 태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그들이 저질렀던 이번의 실수를 조용히 넘기기로 했다.
만약 이 일이 세계로 퍼져나간다면 태국 입장에서는 국가의 위신이 실추되는 것은 물론이고, 세계 영웅 협회의 도움을 받기가 까다로워지기 때문이었다. 사실 정부 관계자들이 두려워하는 건 후자였다.
“공격대 전력이 부족한 태국 입장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세계 영웅 협회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국내의 던전 관리가 불가능해졌다.
더욱이 태국의 영토에는 넝카이 던전과 같은 【S】 난이도의 던전이 존재했다. 과거 십이 재앙 중 하나인 가루다와의 전쟁에서 생겨난 던전이었다.
“그런데 세계 영웅 협회 입장에서도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기 않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이 공격대를 지원해 줘야 하지 않나요?”
“정 안되면 그 지역을 포기하고 방어선을 다시 짜는 방법도 있거든요. 실제로 몇 개의 나라가 그런 꼴을 당했고요.”
“……와우. 그건 좀 놀라운데?”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고 해도 희생자가 한두 명이 아닐 텐데 그런 방법을 사용한다고?
게다가 그 비난은 대체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지만 이 세계에서 태어나 오랜 기간을 살아온 김소정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어요. 세계 영웅 협회도 전력의 여유가 있는 건 아니거든요. 그렇다고 영웅이 철인들도 아니고….”
결국 말을 잘 들으면 던전 처리에 도움을 주겠지만 사고를 치면 과감히 버리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국가 입장에서도 협회와 척을 지는 일이 생기는 건 무조건 피하는 편이예요. 쉴더급 공격대의 도움이 필요한 나라는 영웅 전력이 강한 몇 개의 나라를 제외하면 전부거든요. 특히나 【S】 난이도가 있는 던전은…. 아시겠죠?”
소정의 말에 민국은 고개를 주억였다.
확실히 【S】 난이도의 던전은 쉴더급 공격대가 아니면 공략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최상위 【A】 난이도를 밥 먹듯 공략하는 수준이 아니라듯 아무리 트라이를 해 봤자 전멸만 반복되는 무의미한 헤딩만 될 테니까.
이 세계 영웅들의 어설픈 리딩과 트라이 때문은 아니었다. 물론, 그 영향도 없잖아 있겠지만. 스펙이라 할 수 있는 영웅 등급의 차이가 컸다.
아무튼 이러한 것들과 함께 브레이크가 일어나기 일보직전이었던 【A - 5】 난이도의 던전을 깔끔하게 처리해줬다는 사실 때문일까?
태국의 정부 관계자와 영웅들은 조금 과장하자면 민국과 GGW 영웅들이 한 번 헛기침을 하면 난리가 날 정도로 호들갑을 떨며 반응했다.
“대장님의 시간을 많이 빼앗았네요. 그러면 저는 내일 있을 원정 준비를 하러 가볼게요.”
“네, 수고해주세요.”
소정의 뒷모습을 보던 민국은 태국측이 전해준 정보들을 참조해 넝카이 던전의 네임드와 관련해 자신들이 사용할 전술을 세우기 시작했다. 확실히 영웅 패드로 검색하면 찾을 수 있는 일반 정보들보다는 질과 양적인 면에서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민국이 네임드의 트라이 영상을 보며 머리를 쓰던 도중이었다.
《크…. 9 등급 괴물이네요. 내일 원정은 어떨 것 같습니까, 민국님?》
영웅 패드에서 대각선으로 떨어진 위치에 메시지 창이 뿅 나타나더니 뿌우가 자신의 등장을 알렸다. 말투를 보니 심심했던 모양이었다.
“내일 붙어봐야 알겠지. 그래도 공략에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네.”
《네? 9 등급의 놈들인데요? 왜요?》
“우리 애들이 레이드를 하루 이틀 해 본 것도 아니잖아? 게다가 특수 개체가 아닌 일반 녀석들 중에는 전에 경험했던 공격 패턴과 비슷한 류의 공격을 하는 녀석들이 제법 있어. 이런 건 패턴 연습을 할 필요조차 없거든.”
《오오….》
감탄 섞인 멘트를 내뱉는 뿌우를 보며 민국은 피식 웃었다.
서당 개 삼 년도 아니고 트라이 삼 년이다. 이 정도면 네임드의 패턴만 봐도 저 놈이 어떤 식으로 공격을 해 올 지 알 수 있어야 했다. 그리고 이게 반복이 되면 고임들이 되는 거고, 그것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자신처럼 석유로 불리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일반 녀석들은…….’
공략에 크게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길어봤자 20트 내면 전부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이 되었다.
하지만 특수 개체는 영웅들의 패턴 적응도에 따라 공략 시간이 많이 갈릴 것 같았다.
그래도 팀원들의 적응력을 생각하면 특수 개체를 처리하는 데도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릴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한 놈이 문제였다.
‘가루다의 심복이라는 가이낙스.’
민국의 눈동자가 영웅 패드로 향했다. 영웅 패드의 화면에는 쉴더급 공격대인 골덴 이글의 영웅들과 가이낙스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결과는 골덴 이글의 패배.
이어서 비슷하면서도 무언가가 다른 트라이 영상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그렇게 영상을 보며 민국은 하나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더러운 랜덤 패턴.”
가라이와 마찬가지로 이 녀석의 전투는 명확히 정리를 내릴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공격 패턴에 규칙이 없었으니까.
아무래도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춰서 임기응변식으로 대응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민국의 중얼거림을 들은 뿌우가 아는 척 메시지를 만들어냈다.
《그 녀석은 기계처럼 공허에 영혼을 빼앗긴 놈이 아니라 공허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거든요.》
“…어? 그게 무슨 뜻인데?”
《민국님이 좋아하시는 게임으로 예를 들어서 말하자면 PVP? 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공허의 종족과 민국님의 PVP. 장르는 레이드고요.》
뿌우의 메시지를 보며 민국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해가 되면서도 안 되는 느낌이었다.
“……그럴 정도로 놈의 공격 패턴이 완벽히 다른 것은 아니던데?”
가이낙스의 공격 패턴이 랜덤성이 강한 것은 맞지만 영상의 전투를 반복해서 본 결과 최소한의 페이즈 구분은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뿌우가 메시지를 만들어냈다.
《함부로 공허의 마력을 남발했다가는 공허의 틈에 끌려갈 수 있거든요. 그러면….》
메시지 창이 꾸물꾸물 칼 모양처럼 변하더니 목을 슥 긋는 제스처를 했다.
“응? 공허는 놈들이 온 세계가 아니었어? 그런데 공허의 마력을 남발하면 죽는다고?”
《뭐, 민국님의 말이 맞는 말이기는 한데…. 공허는 인간계와는 많이 다른 세계거든요. 아무튼 공허의 종족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공허에게 잡아먹히는 일이예요.》
“…….”
뭔가 의미심장한 뿌우의 메시지에 민국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말해서 눈앞의 녀석이 말하는 내용이 무슨 일인지 아직도 잘 이해가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딱히 신경이 쓰인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공허의 세력을 동정할 것도 아니고.
아무튼 이번 원정의 목적은 하나였다.
‘새의 탑’의 상황을 체크하며 넝카이 던전을 공략하면서 가이낙스를 쓰러뜨리는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넝카이 던전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게 민국의 계획이었다.
* * *
다음날 오전 8시 30분.
민국과 GGW 공격대의 영웅들은 공략 스케줄에 맞춰서 넝카이 던전으로 출발하기 위해 호텔 앞으로 모였다.
“아, 미안, 미안.”
그리고 그 중 가장 늦게 모습을 드러낸 이는 현아였다. 하지만 그런 현아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거나 타박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얼굴이 반질반질하게 빛나는 현아를 보며 다들 부럽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어젯밤 내내 민국에게 시달리는 현아의 교성이 호텔을 울린 까닭이었다.
명색이 고급 호텔이기는 하지만 GGW 공격대가 머물렀던 넝카이 호텔의 방음은 빈 말이라도 해도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리고 지젤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그렇게 하다가 뼈 삭아요, 언니.”
“나는 자고 싶은데, 우리 신랑님이 놔주지를 않아서 어쩔 수 없었어. 너도 힘 좋은 남편 있으면 알게 될 걸?”
“…언니 지금 저랑 싸우자는 거죠?”
뻔뻔한 현아의 대답에 지젤이 자신의 뒷목을 붙잡았다.
아무튼 현아를 부러워하는 영웅은 GGW의 이들만이 아니었다. 태국 영웅들이 현아와 민국을 보며 얼굴을 붉히더니 서로 뭐라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저 분들은 왜 저래요?”
우연히 그런 태국 영웅들의 행동을 목격한 유나가 옆에 앉은 맏언니 김소정을 향해 물었다. 하지만 대답은 김소정이 아니라 타냐의 입에서 나왔다.
“남자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태국은 예로부터 남자들은 여성화 성향이 굉장히 강한 나라인데 그 영향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어 얼마 되지 않는 남자들은 죄다 레이디보이가 되는 걸 선호한다고 합니다.”
“…레이디보이요?”
“간단히 말해서 남자가 여자로 성전환 했다는 거야.”
“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소정의 말에 유나는 여자가 된 남자를 상상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남자로 태어나면 사회에서 이득을 보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주위에서 왕처럼 떠받들여 주는 것은 물론이고, 군대도 갈 필요도 없는데다가 나라에서는 남성 지원금 및 여러 가산점도 받을 수 있었다.
여기에 아이라도 한 명 낳게 되면 평생 동안 육아지원금도 탈 수 있었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급락하는 인구를 어떻게든 늘어나게 하려는 정부의 필사적인 노력 때문이었다.
당연하지만 이는 세계 여러 나라의 공통의 현상이었다.
그런 사회적 이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자가 여자가 되기를 희망한다? 유나를 솔직히 말해 그런 것을 희망하는 남자의 생각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정예린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정신이 나갔네. 브레이크가 터져서 여군들이 어둠 괴물과 싸우다가 끔찍하게 죽는 걸 봐야 아, 내가 정말 남자로 태어난 게 엄청난 행운이었다고 생각할 텐데.”
유나가 다시 물었다.
“…지금도 어둠 괴물들과 소모전은 벌어지고 있지 않나요? 태국이 그렇게 안전했나?”
“남자들은 원래 안전한 곳에서 살잖아. 아무튼 쓸 데 없는 소리 그만하고, 다들 브리핑 문서 확인했지?”
쓸 데 없는 이야기를 끝내는 소정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을 공략하기 전 던전에서 등장하는 네임드에 대한 공부는 영웅이라면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공대장인 민국이 마지막으로 버스에 오르면서 GGW 공격대를 태운 방탄 버스가 태국군의 호위를 받아 넝카이 던전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조금 늦었습니댜.
그러면 즐감하세요!
아, 그리고 노피아 추천하는 소설 있나여? 베스트 골라보면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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