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88 새의 탑
【S】 난이도인 태국의 넝카이 던전은 넝카이 주에서 북동쪽으로 차를 타고 두 시간 남짓 가면 도착할 수 있었다.
방탄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민국은 쉽게 부서진 전차나 고철이 된 장갑차 등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어둠 괴물과의 전쟁이 만들어낸 상처였다. 처음에는 놀랐지만, 워낙 많이 본 광경이라 그럴까? 지금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시아에서도 군사 강국에 속하는 한국과는 달리 태국은 영웅 전력도 군사 전력도 그리 대단치 못한 곳이었다. 때문에 어둠 괴물이 나타났던 전쟁 초기에는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랬던 상황이 좋아진 것은 어둠 괴물과의 전쟁에서 국토가 폐허가 된 미얀마 정부가 치앙마이부근에 망명 정부를 세운 이후.
과거 버마라 불렸던 미얀마는 군사력 면에서는 적어도 태국 보다는 한 수 위에 있는 국가였고, 어둠 괴물과의 실전도 제법 겪은 이들이라 버마가 태국의 북동 전선에 합류하고 난 이후에야 태국은 지금의 국토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어둠 괴물과의 전선은 미얀마 군이 던전 관리 및 국내의 몬스터 소탕은 태국군이 나눠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당연히 태국 내에서도 가장 위험한 던전인 넝카이 던전에도 태국군이 배치가 되어 있었다.
그것도 숫자가 제법 많았는데, 몬스터의 출몰이 잦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정부 관리에게 듣기로는 8연대와 15연대가 넝카이 던전을 수비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고 했다.
아무튼 넝카이 던전은 민국과 GGW 공격대가 그저께 공략에 성공한 【A - 5】 난이도 던전과는 반대쪽에 위치해 있었는데 새의 탑을 기준으로 하면 넝카이 던전이 새의 탑과 좀 더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새의 탑이 생기기 전 태국은 베트남과 라오스 그리고 미얀마와 손을 잡고 연합 전선을 펼쳤어요.”
현재 GGW 공격대를 태운 버스에서는 김소정에 의한 역사 시간이 한창이었다.
사건의 시발점은 지젤이었다.
공대장인 민국의 브리핑이 끝나고 다들 편히 쉬며 넝카이 던전까지 가려는 찰나 지젤이 태국의 역사에 대해 김소정에서 반복해서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지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역사 시간을 만들었는데, 막상 태국 전쟁과 관련해서 질문을 던졌던 주인공은 현재 머리를 앞으로 꾸벅이는 모습이었다.
“……으.”
그리고 지젤이 조는 모습을 지켜보던 민국이 눈살을 찌푸렸다.
입에 고인 침이 머리를 꾸벅이다가 새어 나와 그녀의 가슴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조용히 손을 뻗어 손수건으로 그녀의 가슴을 닦아준 민국은 다시 소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때 연합군을 애먹였던 개체가 있었는데 그 녀석이 바로 가이낙스입니다.”
김소정이 버튼을 누르자 버스의 앞에 설치된 화면에 가이낙스가 모습이 나타났다.
‘라크스와 비슷하게 생겼군.’
덩치만 보면 가이낙스가 조금 더 크기는 했다.
하지만 라크스가 여성체, 가이낙스가 남성체라는 것을 생각하면 크기의 차이는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오래 전에 찍힌 사진이지만, 가이낙스의 외형은 공략 영상 속에서 등장했던 녀석이랑 생김새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뭐, 동일 개체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굳이 차이점을 찾자면 현실의 녀석이 좀 더 우락부락한 느낌이었다.
‘아무튼 뿌우의 말에 의하면….’
가이낙스라는 놈은 가루다, 라크스와 마찬가지로 공허의 여러 종족 중 하나라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라크스는 아류 그리고 가루다와 가이낙스라는 놈은 공허의 종족 중에서도 순혈에 속하는 놈들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가이낙스가 라크스보다는 더 강력한 놈인 모양이었다.
그 증거로 라크스의 던전은 난이도가 【A – 5】로 측정되었고, 넝카이 던전은 【S - 9】 난이도라 평가받고 있었다. 물론 라크스는 【A – 5】 난이도에서 만날 수 있는 수준의 괴물이 아니긴 했다.
그렇게 민국이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김소정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기존의 괴물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가이낙스 때문에 연합군은 많은 희생을 내고 물러나야 했어요. 그러다가 태국의 전쟁 영웅인 민트 차리다가 가이낙스를 기습하자는 의견을 내었고….”
그 이후는 민국도 잘 알고 있었다. 영웅 학교에서 배운 기억이 있었다.
사실 이 몸의 원 주인이 배운 것이긴 하지만….
이 세계에 온 지 4년이나 넘었으니 이제는 이 몸이 완전히 내 몸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무튼 민트 차리다의 뜻을 따르는 동남아시아의 모든 영웅들이 가이낙스를 습격, 엄청난 피해 끝에 결국 가이낙스를 잡는데 성공했다고 했다.
그리고 동남아 4국의 영웅 전력이 아직도 별 볼 일없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가이낙스는 잡았지만 민트 차리다 역시 그 때의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고, 이 외에도 주력 영웅들은 전부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의 전투는 정말 처절했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달려든 인간들 때문에 오히려 죽음과 익숙한 가이낙스가 겁에 질릴 정도였으니까요.》
시야 우측이 꾸물거리더니 메시지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메시지를 본 민국이 머릿속으로 생각을 떠올렸다.
‘그 때 너도 있었어?’
《네, 하지만 저는 구경꾼에 불과했습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거든요. 그리고 시공간의 벽을 사이에 두고 열심히 외쳤죠. No! No! No! 너네는 가면 안 돼!》
‘…….’
어디선가 들어본 멘트에 민국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책장속의 유령…. 그 영화 아닌가?
《하지만 그녀들은 제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었죠. 아무튼 그녀들은 용감했습니다. 무리인 걸 알면서도 가이낙스를 죽이겠다는 목적을 위해 계속해서 달려들었죠. 하지만 개죽음이었어요.》
‘그래도 한 나라의 전쟁 영웅인데 개죽음이라니?’
뿌우가 만들어내는 메시지를 보며 민국이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그녀들은 죽었지만, 가이낙스는 죽지 않았으니까요.》
‘…….’
그렇게 대꾸를 하면 내가 할 말이 없잖니. 아무튼 그녀들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이낙스를 몰아낸 것으로도 존경받을 가치가 있었다.
실제로 가이낙스가 쓰러지고 몇 년 지나지 않아 가루다 역시 새의 탑으로 기어들었으니까.
《아무튼 어둠의 괴물을 소멸시키려면 그의 공간이나 다름없는 공허의 세계를 파괴해야 합니다.》
‘그 말뜻은 가이낙스가 보스로 있는 던전을 무너뜨리라는 거겠지?’
뿌우의 말에 민국은 전에 정리한 생각을 떠올렸다.
《네.》
‘그러면 녀석은 이번에야 말로 완전히 소멸되겠네.’
그리고는 피식 웃었다. 불가능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영상을 가지고 몇 번이나 머릿속으로 트레이닝을 돌려본 결과 자신과 GGW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크! 역시 카오스님의 전사이신 민국님!! 이 뿌우! 민국님만 믿습니다! 가이낙스 따위 민국님이 멈춰! 하면 놀라서 넙죽 머리를 박을 겁니다.》
빠르게 꾸물거리며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뿌우를 보며 민국은 픽 웃었다. 이 녀석. 요즘 들어서 아부의 수준이 제법이었다.
하기야 처음 이 세계에 왔을 때와 달리 지금의 민국은 12 재앙의 심복도 공략할 수 있는 수준의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 모든 게 불과 4년 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아무튼 가이낙스 소멸시키면…. 알지?’
민국이 힐끔 메시지가 있는 곳을 쳐다보며 생각을 떠올렸다.
마침 눈길이 가는 곳에 정예린이 앉아 있었는데, 자신을 쳐다봤다고 생각한 것일까? 동태눈으로 멍한 표정을 하던 그녀가 깜짝 놀라며 자세를 단정히 하는 게 보였다.
그런 정예린에게 미소를 지어준 민국은 다시 뿌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물론이죠.》
가라이를 쓰러뜨렸을 때 민국은 퀘스트 보상으로 마력의 결정 다수와 다이아 티켓을 얻을 수 있었다.
그와 함께 【S】 등급의 레전드리 클래스 ‘위그드라실’의 클래스 스톤까지 함께 보상으로 받았다. 그리고 이번에 GGW가 공략할 가이낙스는 가라이와 동급의 녀석이었다.
그리고 뿌우와 큐우♡는 가라이 때와 마찬가지로 넝카이 던전을 성공적으로 공략하면 레전드리 클래스 스톤을 주겠다고 퀘스트 보상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민국이 노리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가이낙스를 쓰러뜨리는 게 아니라 던전 자체를 무너뜨리면….’
지금껏 본적이 없는 새로운 부류의 아이템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 * *
푸른 빛이 던전의 게이트를 감쌌다가 사라졌다. 부활석이 발동되는 장면이었다.
“모두 장비 챙기고 돌입 준비 하겠습니다.”
민국의 지시에 따라 모두들 본인의 영웅 패드를 챙기며 던전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그런 GGW 공격대의 영웅들을 보며 태국 군인들의 눈동자에는 복잡함이 교차했다. GGW가 최근 이름을 날리고 있다 해도 넝카이 던전은 미국의 쉴더급 공격대인 골덴 이글도 실패했던 던전이었다.
하지만 태국의 영웅 전력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넝카이 던전을 공략할 수 없는 만큼 그녀들은 GGW 공격대의 선전을 바래야 했다.
그렇게 민국과 영웅들이 던전에 진입하려던 찰나였다.
콰아앙! 쾅!
멀리서 폭음이 들려왔다. 잠시 후, 총을 든 군인들이 영내를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딘지 모르게 굉장히 익숙한 움직임이었다.
“무슨 일이죠?”
갑작스러운 소란에 민국이 지원 팀장을 향해 통신을 보냈다. 그리고 상황을 체크한 지원팀장이 빠르게 달려와 말했다.
“몬스터가 나타난 모양입니다. 민가 쪽으로 빠져나가기 못하도록 포위망을 구성하려는 것 같습니다.”
“몬스터요? 대체 어디서 나온….”
고개를 갸웃하던 민국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검붉은 색으로 일렁이는 던전의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몬스터를 불러낸 놈은 바로 이 녀석이 틀림없었다.
“혹시 저희들의 도움이 필요합니까?”
몬스터가 어떤 종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형종이라면 군인들의 희생 없이는 감당이 불가능 할 터. 공략이 조금 늦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들이 전투에 참여하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민국의 제안에 지원 팀장이 빠르게 태국의 지휘관과 접촉했다.
던전에 진입하려던 영웅들도 갑자기 벌어진 사고 때문에 행동을 멈추고는 주변의 분위기를 살피는 모습이었다.
바로 대화가 오갔고, 놀란 표정을 하다가 민국과 눈이 마주친 지휘관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민국은 태국 지휘관의 행동과 표정에서 그녀의 의도를 대충이나마 읽어낼 수 있었다.
‘던전의 공략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거겠지. 틀린 생각은 아니야. 아는지 모르겠지만, 던전의 마력을 조금이라도 소모시켜야 몬스터가 나타나는 빈도를 줄일 수 있어.’
게다가 이 곳에도 대형급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는 태국 영웅들이 배치되어 있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한다면 약간의 희생은 있을지 몰라도 몬스터가 외부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겠다는 목적은 달성할 수 있을 터였다.
바로 장비를 챙긴 민국이 진입 대기 중인 탱커를 향해 외쳤다.
“진입! 오현아, 타냐! 입구에 몬스터가 있을지 모르니 조심해서 들어갑니다!”
“예썰!”
그렇게 탱커들이 먼저 던전이 진입했고, 이어서 근접 딜러들이 게이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이십 여초가 지난 후 민국도 원거리 딜러와 함께 던전 안으로 진입했다.
“키이이익!”
던전에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지렁이와도 같은 생명체가 민국을 향해 달려들었다.
입이 얼굴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괴물로 톱니바퀴와도 같은 이빨이 몇 중으로 겹쳐져 솟아난 녀석이었다. 어둠의 괴물 중 웜이라 부르는 계통의 몬스터였다.
푸욱!
민국은 웜의 날카로운 이빨이 자신에게 닿기 전 가볍게 힐러 지팡이의 끝으로 웜의 몸을 꿰뚫었다. 이어서 마력을 사용해 웜의 몸체를 폭탄처럼 그대로 터뜨려 버렸다.
“최근에 골덴 이글이 던전을 공략했다고 하지 않았나?”
민국이 지팡이를 아래로 휘둘러 웜의 피를 떨쳐내며 물었다.
“네, 저는 그렇게 들었는데…….”
민국의 옆에 있던 켄달이 질문을 받고는 눈동자가 당황으로 물들었다.
가이낙스라는 놈이 제대로 환영회를 열어 주려는 모양인지 입구부터 몬스터가 가득가득했다. 그리고 민국이 통신기에 대고 말했다.
“블러드 아니 교향곡 돌리고 가겠습니다. 한 번에 쓸어버리도록 하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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