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92 새의 탑(2)
서울의 라온 호텔.
대한민국 최고의 호텔이기도 한 이곳의 연회장은 현재 파티가 한창 중이었다.
한국의 경제를 지탱하는 라온 그룹과 러시아 기업의 협력을 기념하는 자리로, 국내 기업 간의 인맥도 다질 겸 라온 그룹의 초청을 받은 여러 기업의 사람들도 함께 자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로즈 그룹의 영애 조수영도 있었다.
“…….”
붉은색의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파티에 참석한 굵직굵직한 경제인들의 얼굴을 하나씩 확인하고 있었다. 훗날 그룹을 운영하면서 관계를 맺을지도 모르는 이들. 이 참에 얼굴을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사람들을 관찰했을까?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
조수영이 고개를 돌리니 라온의 관계자이지만 오늘 파티에는 참석하지 않는다고 알려졌던 인물이 자신을 향해 새초롬한 미소를 짓는 걸 볼 수 있었다.
라온 그룹의 후계자, 김태연이었다.
“…집에 있는 줄 알았는데 용케 왔네?”
조수영이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도 그럴게 오랜만에 보는 친구의 얼굴이었다.
“몸도 어느 정도 추스르기도 했고, 회장님께서 이 기회에 바깥 공기 좀 쐬라고 하셔서.”
“지호는?”
“지금 강남에 있어. 회장님이 보고 싶어 하셔서 파티 끝나면 비서 통해서 데리고 올 거야.”
강남이라는 말에 조수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곧 그녀의 입에서 알겠다는 탄성이 흘러 나왔다. 강남에는 지호의 배다른 누나이자 강채영의 딸인 한소영이 있었다.
“조금 아쉽네, 나도 한 번 보고 싶었는데.”
이제는 대한민국의 수호자라 불리는 한민국의 아들인 지호는 벌써부터 큰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만약 평범한 일반인이었다면 벌써 방송계 쪽에서 들이대고 남았을 터. 하지만 한지호의 외가는 대한민국의 경제를 주름잡고 있는 라온 그룹이었다.
그리고 태연은 조용조용한 성격만큼이나 친분이 없는 외부인은 쉽게 대하기 힘든 똑 부러지는 성격의 여성이었다.
“언제 시간되면 강남에 한 번 놀러오던가?”
대답과 함께 능글맞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친구의 태도에 조수영은 짜증이 난다는 듯 코를 찡긋했다. 자기도 아이를 가지던가 해야지 참…. 이래서 아이가 없는 여자는 서러운 법이었다.
“칫. 빨리 GGW 공격대를 국내로 부르던가 해야지….”
“해외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영웅들을 귀찮게 왜 부르고 그래?”
“…오호라, 남편이 보고 싶지 않다 이거지?”
“남편은 보고 싶지. 하지만 내 남편에게 기웃거리는 암고양이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데?”
“뭐, 뭐야?”
조수영의 눈이 초승달처럼 가늘어졌다.
예전의 조용했던 성격의 모습은 전부 자신에게 어울리는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만들었던 이미지였던가? 아니면 아이를 낳고 나서 사람이 부드러워졌나?
아무튼 전과는 다른 친구의 모습이 살짝 어색하면서도 친근하게 느껴졌다.
“휴우. 이 모습을 한민국 영웅이 봐야 하는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조수영의 모습에 태연이 눈웃음을 치며 히히 웃었다. 일적으로 김태연을 아는 사람이라면 깜짝 놀랐을 법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두 친구는 오랜만의 만남을 기념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웅성웅성
라온 그룹과 로즈 그룹 후계자의 만남은 근처에 있던 이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둘 사이에 끼어들려고 하는 이들은 없었다. 재벌 그룹끼리도 순위가 있듯 라온과 로즈는 대한민국 재벌 순위 1, 2위를 달리는 그룹이었다.
게다가 김태연과 조수영이 개와 고양이처럼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친분을 다지는 사이라는 건 재벌가 사이에서는 제법 널리 알려진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파티에는 한국의 재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에게 볼일이 있는 이가 한 명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들을 만나기 위해 파티에 참석한 인물이었다.
“헬로?”
불청객의 등장에 김태연과 조수영, 두 여성의 고개가 돌아갔다.
이어서 조수영의 시선이 자연스레 김태연에게 향했다. 외국인으로 보이는 이 여성은 자신이 아니라 그녀에게 볼일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 증거로 가슴에 이번에 라온 그룹과 협력을 맺은 가즈롬 그룹의 심벌이 보였다. 보아하니 가즈롬 그룹의 호위 역으로 이 자리에 참석한 영웅으로 보였다.
“누구…?”
그리고 상대의 정체를 확인한 김태연의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졌다.
“나, 나타샤 레니에?”
눈앞의 영웅은 영웅들 사이에서 하얀 사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전설적인 영웅이었다.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인물로 러시아의 전쟁 영웅이자 쉴더급 공격인 붉은 전차 공격대의 메인 공대장을 맡고 있는 여성이었다.
“뭐, 뭣?!”
그제야 상대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본 조수영도 당황한 얼굴로 김태연을 흘겨보았다.
나타냐 레니에라면 한국에서도 국빈급 대우를 받는 영웅이었다. 아니, 애당초 그녀가 가즈롬 그룹의 호위를 내세워 비밀리 한국을 방문한 것 자체가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그런 두 여인의 반응에 나타냐가 킥킥 웃으며 말을 이었다.
“두 분께서 놀라는 모습을 보니 제 변장과 비밀 방문이 제법 성공적이었나 보네요.”
“그, 그래요.”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답을 한 태연이 나타샤의 노란색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다시 되물었다.
“하지만 저희들의 놀라는 모습을 보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시지는 않으셨을 텐데요?
참고로 가즈롬과의 일은 전부 회장님께서 전담하고 계십니다.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예요.”
“아뇨. 저는 그런 일 때문에 당신들을 찾은 게 아니랍니다.”
나타샤의 대답에 태연이 가장 먼저 한 생각은 러시아와 메모리아 공격대와의 협력이었다.
하지만 강채영도 은퇴한 마당에 메모리아 공격대와의 협력을 위해 나타샤 레니에가 직접 한국을 방문한다? 잘 수긍이 가지 않는 이야기였다.
‘설마…?’
그 때 하나의 생각의 그녀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며 김태연의 미간이 좁혀졌다.
“딩동. 당신의 남편이자 GGW 공격대의 영웅인 한민국 영웅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답니다. 당연히 그 쪽 여성에게도 볼일이 있고요.”
“어, 음…. 제가 R’s 클랜의 구단주이기는 하지만…. 한민국 영웅은 노터치라는 거 아시죠?”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에 조수영은 핑계를 먼저 대며 발을 뺐다.
그렇다고 완전히 거짓도 아니었다. 클랜보다 위대한 영웅이 바로 한민국이었으니까.
실제로 R’s 클랜은 GGW 공격대의 스케줄 관리 및 전리품 처분과 같은 잡다한 일들을 대신해주며 수수료만을 챙길 뿐 그 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두는 기조였다.
알아서 잘 활동을 하는데다가 괜히 한민국의 심기를 거슬렀다가 그가 클랜에서 나가기라도 하면 기껏 찾은 황금기가 다시 폭삭 무너질 수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타냐 레니에가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두 분께서는 제 이야기를 한민국 영웅에게 전달해 주셨으면 합니다.”
진지한 9성 영웅의 얼굴에 김태연과 조수영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왠지 느낌이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나타냐 레니에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금부터는 두 분께서도 비밀로 하셔야 할 이야기입니다. 며칠 전,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에서 미노스의 움직임이 체크되었습니다.”
그리고 혼란을 이유로 정확한 사실을 숨긴 러시아의 지원 요청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오현정은 순조롭게 태국의 넝카이 던전을 공략하는 GGW의 일정을 방해하기 않기 위해 러시아의 요청을 거절했다.
“미노스라면…. 십이 재앙?”
“잠깐만요. 쉴더급 공격대라면 미국도 있지 않나요? 미국이라면 당연히….”
“안타깝게도 미국은 실버백의 움직임을 핑계 삼아 쉴더급 공격대의 파견을 거절했습니다.”
이게 하얀 사신이라 불리는 나타냐 레니에가 직접 한국을 찾은 이유였다.
* * *
[비, 빌어먹을 놈들…!]
가이낙스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공허의 마력을 집중했다. 그의 날개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브레스였다.
콰우우우우우!!!
공허의 종족인 슈가빈의 강력한 불꽃이 인간 영웅들을 재로 불사르기 위해 사방을 불태웠다.
“이제 몇 번 경험하니 이 브레스도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
“그러면 보호막 밖으로 한 걸음?”
“…너나 던져 줄까?”
하지만 GGW 공격대의 영웅들은 새벽의 방패 안에서 여유롭게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클리어 경험이 점점 쌓이기 시작하면서 가이낙스 레이드의 숙련자에서 고인물로 점점 바뀌어가는 것이다.
“3, 2, 1! 메인 탱커 어그로 먼저 잡고 딜러들 달라붙어!”
브레스가 끝나고 민국의 지시가 이어졌다.
하지만 영웅들은 민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알아서 척척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그런 영웅들을 보며 민국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넝카이 던전을 처음으로 공략한 이후, 민국은 태국 관계자들의 초대 요청에서 불구하고 주둔지에서 머무르며 넝카이의 던전을 반복해서 공략했다.
계속해서 가이낙스를 때려잡고 던전에 내재된 공허의 마력을 소모시키기 위해서였다.
목표는 【S】 난이도의 넝카이 던전을 무너뜨리는 것.
그리고 벌써 몇 번이나 더 던전을 공략했을까? 민국은 던전이 무너질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가이낙스의 반응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안 돼…!]
처음에는 다시 등장한 자신들을 보며 여유 만만이었던 가이낙스의 표정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두려움으로 바뀌어갔기 때문이었다.
던전에 묶여 있는 존재인 만큼 가이낙스는 자신의 반복된 죽음 때문에 던전의 마력이 다해가고 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꼴좋다.》
《슈가빈이 겁을 먹는 모습이라니…. 이거 참 보기 드문 광경이네요?》
그런 가이낙스의 모습을 보며 뿌우와 큐우♡는 시시때때로 모습을 드러내며 가이낙스
와 자신들의 전투를 관람했다.
게다가 이렇게 모습을 드러낼 때면 가끔씩 선물 삼아 전리품 상자에 아이템을 넣어줄 때도 있던 지라 민국은 자신의 시야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면 둘이 자유롭게 떠드는 것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한 달 앞 둔 11월 중순.
[…….]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앞선 네임드들을 전부 박살을 내고 가이낙스의 앞에 도착한 민국은 오늘 따라 별 반응이 없어 보이는 가이낙스를 보며 때가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끝이네.”
처음의 투지는 온 데 간 데 없는 가이낙스의 모습은 인간의 시간으로 두 달 가량의 동안 수백 년은 늙은 모습이었다. 실제로도 녀석의 주황빛을 띄는 날개는 깃털이 듬성듬성 빠진 모습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가이낙스를 용서하거나 봐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 녀석을 잡고 던전을 무너뜨려야만 스킬 강화석을 얻을 수 있었고, 새의 탑을 공략할 계획도 진행을 할 수 있었다.
“녀석의 상태가 좋아보이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해서 방심은 금물이야. 생존기는 순번은 다들 기억하고 있지?”
“넵!”
많은 것을 생략한 브리핑에 힘차게 대답을 하는 이는 최유나와 타냐 그리고 신나연 뿐이었다.
“자자, 빨리 끝내고 밥 먹으러 가죠!”
“엇? 그러고 보니 벌써 네 시잖아? 공략 마무리하고 씻고 깔끔하게 밥 먹으면 되겠다.”
“오늘 저녁 메뉴 뭔지 아는 사람 있어?”
“해산물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요?”
“…또? 어휴. 김치찌개나 국밥 같은 건 안 나오나? 오늘 국밥에 소주 땡기는데….”
그런 팀원들의 모습을 보며 민국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워낙 여러 번 때려잡았던 녀석이라 그런지 다들 아주 여유만만이었다.
그리고 시작된 트라이.
[안 돼! 안 돼…!]
축 늘어져 있던 가이낙스는 생존의 본능 때문인지 막상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눈깔이 뒤집히며 매섭게 영웅들에게 달려들었다.
“이 미친 새대가리 새끼가…?!”
“보호막 들어갑니다! 2초 버틸 수 있어요!”
“8시 방향에 샤먼!”
“징표 찍었어요!”
하지만 가이낙스의 공격들은 이미 GGW 영웅들에게 현미경처럼 파헤쳐진 패턴.
민국과 영웅들은 효율적으로 본인들의 능력을 사용해가며 가이낙스의 공격을 막아냈고, 차분하게 괴물을 보호하는 공허의 보호막을 박살내기 시작했다.
[캬아아악! 캬아아악! 안 돼!]
영웅 패드에 표기되는 본인의 생명력이 점점 0 으로 다가갈수록 가이낙스는 괴성과 함께 점점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난 죽을 수 없어…! 제발! 가루다님! 가루다님…!]
하지만 그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건 뿌우와 큐유♡의 도움을 받는 민국뿐이었다.
그렇게 가루다의 심복이었던 영웅들의 공격을 감당해내지 못하고 결국 또 다시 목숨을 잃고야 말았다.
그리고 가이낙스를 쓰러뜨린 GGW의 영웅들이 전리품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을 때, 넝카이 던전 외부는 난리가 나고 있었다.
“오…! 신이시여!”
넝카이 던전의 게이트가 본인의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찌그러지고 있었다. 동남아 대 전쟁 때 생겨났던 【S】 난이도의 던전이 무너지는 현상이었다.
그리고 【S】 난이도의 던전이 무너지는 현상은 인류와 어둠 괴물과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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