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295화 (295/486)

EP.295 새의 탑(2)

“후…. 내가 이럴 줄 알았지.”

드넓은 대전.

커다란 옥좌에 앉은 가루다가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었다.

자신의 보금자리이자 근거지인 던전의 마력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밖을 내다보니 수많은 인간들이 개미처럼 움직이는 모습이 들어왔다. 침입이었다.

아주 호언장담하며 허세를 부리던 가이낙스가 갑자기 연락이 끊겼을 때부터 그러니까 다시 말해 공허의 틈 속에서 소멸했을 때부터 느낌이 심상치 않기는 했다.

그런데 인간의 영웅들이 자신의 공간으로 쳐들어오다니….

가이낙스 놈이 무슨 짓을 하려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인간들이 자신을 노리고 있는 건 분명해 보였다.

“브레이크의 실패 덕분에 가만히 있던 까닭일까? 이거 내가 너무 우습게 보인 모양이네.”

가루다의 귀 옆에 달린 꽁지깃이 빨갛게 물들었다.

던전 브레이크의 실패 때문에 힘이 많이 빠졌다지만 인간의 영웅 따위를 손봐주는 건 일도 아니었다. 자신은 공허의 뜻에 따라 인간계를 정복하는 열두 명의 지휘관 중 하나. 그리고 공허의 종족 중 하나인 슈가빈의 지배자였다.

투둑, 툭!

분노한 그녀의 마력에 영향을 받아 천장에서 돌 부스러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 아차.”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돌먼지에 가루다는 재빨리 자신의 마력을 풀었다. 시선을 돌리자 낡은 탑의 외형의 바로 눈에 들어왔다.

“에휴, 전부 내 잘못이지.”

가루다가 자신의 고개를 푹 숙였다.

이건 전부 무리해서 감행했던 던전 브레이크의 실패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탑을 유지하는 마력이 부족해지면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나마 탑을 지키는 네임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천만 다행이라 할 수 있을 정도.

하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인간들에게는 충분한 본보기가 그리고 재앙이 될 터였다.

“모두 와라.”

잠시 후, 가루다가 머무르고 있는 대전으로 다양한 외형을 지닌 괴물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가루다의 마력에서 태어난 이들로 새의 탑을 관리 및 방어하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가루다는 던전 브레이크의 실패로 마력이 부족한 와중에도 자신의 마력을 한계까지 짜내 이들을 존재를 유지했었다.

지금까지는 마력의 소모를 최소한으로 만들기 위해 존재만 유지하고 봉인을 했었지만, 이제는 그 봉인을 풀 차례였다. 그렇게 모여든 네임드들을 향해 가루다가 말했다.

“인간들이 쳐들어왔다.”

“슈가빈의 지배자시여…. 제가 직접 나서서 인간들을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강철 갑주를 입은 리자드 맨이 가슴을 쿵쿵 두드리며 무릎을 꿇었다.

탑의 세 번째 네임드 ‘강철의 카르툰’이었다. 그는 몇 년 전 인간들의 최정예라 불리는 공격대를 상대로 백 번이 넘도록 승리를 거둔 경험이 있었다.

이어서 일곱 번째 네임드이자 20대의 인간 여성의 모습을 한 탑의 마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호. 인간들의 말을 빌리자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덤비는 셈이군요.”

“그들의 탑의 중간도 오르지 못하고 포기할 겁니다.”

“중간? 흥! 내가 지키는 1층도 뚫지 못할 거다!”

가루다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탑의 네임드들은 하나 같이 승리를 장담했다.

다들 인간들을 죽이고 그들의 마력을 흡수할 생각으로 가득했다. 인간들의 손에 본인들이 당하리라고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게 지금까지 새의 탑을 공략하려고 했던 인간 영웅들은 모두가 탑의 중간도 오르지 못하고 공략을 포기했다. 그들의 강력한 힘을 조금도 당해내지 못한 까닭이었다.

“후후후.”

그런 네임드들의 반응에 가루다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운 좋게 가이낙스는 쓰러뜨린 모양이지만 새의 탑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던전이 아니었다.

하지만….

“1네임드 클리어, 총 트라이 횟수 42회. 이 정도면 양호한 건가?”

새로이 새의 탑을 공략하는 영웅들은 그들이 기존에 상대했던 인간들과는 많은 것들이 달랐다. 일단 전투 능력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아무튼 다음 네임드로 이동하겠습니다.”

공략에 들어간 지 닷새 만에 1네임드를 클리어 하는데 성공한 민국은 바로 다음 층으로 향했다.

온 몸이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긴장을 했던 팀원들도 1네임드를 쓰러뜨리고 나자 얼굴의 표정이 많이 풀린 모습이었다.

그리고 민국은 1네임드를 공략하면서 새의 탑에서 등장하는 네임드들의 스펙이 【S - 7】 혹은 【S - 8】 정도의 수준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의외로 난이도가 높지 않은데….’

이 정도 수준이라면 쉴더급 공격대가 공략을 전혀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부활석과 시간의 소모는 엄청나겠지만, 십이 재앙만 쓰러뜨릴 수 있다면 그 어떤 희생도 치를 수 있는 게 인간이었다.

아무래도 이는 전부 가루다의 힘이 약해진 것 때문으로 보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쉴더급 공격대가 아니라면 공략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수준이겠지만.

‘아니, 쉴더급이라 하더라도 모든 영웅이 9성이 아니라면 패턴을 버텨내기가 쉽지 않겠지.’

아무튼 입구에서 만난 네임드의 힘이 이 정도라면 가루다 역시 아무리 높게 잡아봤자 【S - 5】 난이도의 수준으로 생각이 되었다.

그러니까 10 등급 정도의 몬스터라고 예상을 하고 전투를 진행하면 될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타이밍을 더욱 놓칠 수 없지.’

만약 가루다가 던전 브레이크로 힘을 잃지 않았더라면 공략 준비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터.

어떻게든 이번 기회에 가루다를 잡아내야 했다. 그리고 10성 영웅이 될 준비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가루다는 던전의 브레이크의 실패 때문에 약해졌다지만 온전한 힘을 지닌 12 재앙을 상대하려면 지금의 스펙으로는 확실히 부족할 것 같았다.

“바닥! 바닥 피하고! 2파티는 1시로 이동! 최유나! 넌 그 자리에서 멈춰!”

“앞, 뒤, 앞, 앞! 무턱대고 공격을 피하지 말고 적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피하란 말이야! 정예린! 왼쪽 조심!”

민국의 지휘를 받는 GGW 공격대는 느릿하지만 계속해서 네임드들을 쓰러뜨리며 탑의 상층으로 향했다.

“이 정도면 할 만한 수준 아니야?”

“저는 우리 공대장을 믿고 있었다고요!”

그럴 때 마다 겁에 질렸던 영웅들 역시 조금씩 자신감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런 GGW 공격대의 행보에 강철 갑주를 입은 리저드맨이 쓰러졌고, 탑의 한 층을 지키던 거대한 새 역시 굴복했다. 그리고 인간들의 손에 네임드들이 쓰러졌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 마다 가루다의 꽁지깃은 점점 빨갛게 물들었다.

* * *

“이거 정말로 공략이 되고 있는 거 맞겠지?”

R’s 클랜의 지원팀장이 말했다. 동기가 말했다.

“보고도 못 믿는 거야?”

“아, 아니. 그 새의 탑이 공략이 되고 있다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서. 지금 세계가 난리난 거 알지?”

“난리가 날만 하지. 아무튼 하루에도 부활석이 수십 개나 깨지고 있는 상황이야. 게다가 전리품도 가져오고 있고…. 믿고 싶지 않아도 정말로 공략이 되고 있는 건 분명해. 게다가 영웅 패드에도 공략 정보가 업데이트 되고 있다던데?”

“하, 알고 있다니까…. 다만 믿기지 않을 뿐이라고.”

동기의 말에 말을 걸었던 지원팀장은 허탈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태극기와 함께 장미가 새겨진 방패 모양의 엠블럼이 박힌 옷을 입은 여성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R’s 클랜의 직원들이었다. 그 밖으로는 새의 탑을 단단히 포위하고 있는 미얀마와 베트남 군인들이 있었다.

행여나 몬스터가 나타날 경우 그들을 퇴치하는 역할을 맡은 부대였다.

“이 방패는 어디로 옮겨야 하지?”

“일단 저쪽으로 옮겨서 기어 스코어부터 측정해.”

새의 탑 공략에 들어간 GGW 영웅들은 탑 내부의 네임드 혹은 몬스터들을 쓰러뜨리며 여러 아이템들을 가져오고 있었다.

하나같이 쉽게 보기 힘든 엄청난 마력을 지닌 물건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물건 때문에 GGW 공격대가 정말로 새의 탑을 공략중이라는 사실이 세계로 알려지고 있었다. 새의 탑 공략이 단순한 쇼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증거였으니까.

‘…….’

지원팀장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어두컴컴한 푸른색으로 도배된 커다란 탑이 그녀의 동공을 가득 메웠다.

32층으로 한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는 서울 라온 타워보다도 배는 높은 탑. 이 탑을 가리켜 세계의 사람들을 이렇게 말했다. 새의 모습을 지닌 악마가 살고 있는 공간이라고.

실제로 동남아시아에서만 1억에 가까운 목숨을 앗아간 괴물이 새의 탑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십이 재앙 중 하나인 가루다.

전쟁이 시작된 후 지금껏 그 누구도 대적한 적이 없다는 그 괴물을 경력만 따져보면 자신보다도 훨씬 적은 영웅들이 현재 공략 중에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난 아직도 이 새의 탑이 공략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 나 참….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다가 갑자기 라오스로 향한다는 소식에 무슨 일이라도 터졌나 싶었는데…….”

뜬금없이 십이 재앙을 공략하겠다는 말과 함께 GGW 공격대는 정말로 새의 탑 공략에 들어갔다.

한민국 공대장이 덤덤한 얼굴로 공략과 관련된 내용을 꺼냈을 때 자신이 얼마나 놀랐는지는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였다.

아무튼 GGW 공격대는 며칠 째 새의 탑 공략에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그것도 단순히 트라이를 몇 번 시도해 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가루다와 얼굴을 맞댈 기세였다. 실제로 영웅들의 대화에 의하면 탑의 네임드를 반 이상 쓰러뜨렸다는 모양이었다.

동기가 지원팀장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아무튼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탑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전리품을 관리하는 게 다지. 영웅들이 좀 더 힘내주기만을 바라자고.”

“아, 그래. 부활석 문제는 없겠지?”

지원팀장의 말에 그녀에게 말을 걸었던 동기가 몇 번 눈을 깜빡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내일 오후에 300개가 들어올 예정이고, 모레 태국 쪽으로 해서 800개의 부활석이 다시 도착할 예정이야.”

“그 정도라면 큰 문제없겠지. 다른 건 몰라도 부활석 만큼은 모자라지 않게 준비해야 돼.”

“알아알아. 나 뿐 아니라 여기서 일하는 녀석들도 그 사실을 모르는 년은 아무도 없을 걸? 부활석 관리만큼은 철저하게 하는 중이니까 걱정….”

심상치 않은 느낌에 말을 이어나가던 동기의 목소리가 조금씩 작아지기 시작했다.

파지직!

이어서 들려오는 소리에 두 여성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새의 탑으로 들어설 수 있는 마력 게이트가 급작스럽게 요동을 치고 있었다.

“이건….”

잠시 후,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부활석이 깨졌다. 하지만 죽음에서 되살아난 영웅들은 서로를 얼싸안고 괴성에 가까운 환호를 지르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클랜의 지원팀장이 말했다.

“아무래도 트라이에 성공한 모양인데? 일단 기어 스코어 측정 장비부터 준비하자고. 오늘 밤은 조금 바빠지겠어.”

“그래야 겠네. 아무튼 이걸로 오늘 몇 개째 부활석이 깨진 거지?”

“스물세 개. 앞으로 대여섯 개 정도 더 깨지면 오늘 일정이 종료되겠지만…. 지금 공략에 성공했다면 이대로 일정을 종료할 수도 있겠네.”

열심히 손가락으로 계산을 하던 동기가 말했다.

“스물 세 개라…….”

그런 동기의 답변에 지원팀장의 팔뚝이 오돌토돌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GGW 공격대의 영웅들은 오늘 하루만 그만큼 죽음을 경험하고 되살아났다는 말이었다. 정신이 멀쩡할 리 없었다. 물론, 그것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영웅이라고 불리는 것이겠지만….

‘평범한 사람이라면 진즉에 미치고 남았을 테지.’

그래도 마력을 각성한 덕분인지 영웅들은 대부분 죽음과 관련된 정신력이 굉장히 강한 편이었다. PTSD와 같은 장애도 겪지 않는 편이었다.

물론, 그런 영웅들도 두려워하는 건 있었다. 몬스터에게 마력이 오염되는 워킹 걸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새의 탑에서는….

[꺄아아악! 악! 악! 히윽?!]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을 꺼내며 빙결 마법으로 민국과 영웅들을 괴롭혔던 탑의 마녀가 혀를 쭉 빼내며 능욕을 당하고 있었다.

그렇게 탑의 일곱 번째 네임드이자 마녀 유이라를 쓰러뜨린 민국은 조금씩 새의 탑의 지배자이자 십이 재앙 중 하나인 가루다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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