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297화 (297/486)

EP.297 새의 탑(2)

준비는 완벽했다.

트라이를 하면서 신체적으로 크게 다친 이도 없었고, 계속된 일정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들어 하는 이도 없었다.

기어스코어 수치를 가지고 있는 영웅 장비들의 상태 또한 깔끔했다.

“드디어 출발이네요. 후우…. 오늘은 몇 번이나 죽을까요?”

새의 탑을 앞에 두고 유나가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근처에 있던 클랜 직원 중 한 명이 유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녀는 곧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모습이었다.

이들에게 있어 죽음은 너무나도 친숙한 단어였기 때문이었다.

“못해도 열 번? 그 정도는 죽겠지.”

“고작 열 번이요? 공대장님 성격이라면….”

“레이드를 더 하고 싶어도 못할 걸? 우리가 전멸 한 다음에 부활석으로 되살아나서 가루다까지 가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은데?”

“아…….”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한 시간은 족히 올라가야 해.”

그렇게 대답을 정예린은 품에서 담배를 한 대 빼어 물었다.

간헐적 흡연자인 그녀에게 담배는 거의 장식용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불을 붙여야만 떨리는 다리를 진정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많은 괴물들을 상대했고, 쓰러뜨려야 왔지만 오늘 자신들이 상대할 괴물은 동남아시아에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던 최악의 존재.

어둠 괴물의 정점에 있다는 가루다였다.

그렇게 정예린이 긴장을 풀기 위해 담배를 태우는 동안 유나는 멍하니 새의 탑을 바라보며 그녀의 옆에서 담배가 전부 타들어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정예린이 마지막으로 한 모금 빨았을 때….

“공대장님께서 모두 모이래요!”

켄달과 지젤이 돌아다니며 주둔지 여기저기서 각자의 볼일을 보고 있던 공대원들을 전부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인 공대원들을 향해 민국이 말했다.

“한 시간 뒤, 탑에 진입하겠습니다.”

“네!”

“넵, 공대장님!”

미리 예고했던 대로 바로 가루다 공략이 시작되는 것이다.

가루다 공략을 앞두고 GGW 공격대를 위한 거창한 출정식 같은 건 없었다.

생각보다 본격적으로 새의 탑이 공략되면서 십이 재앙과의 전투를 앞에 두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일부 라오스 정부 관계자들이 찾아오기는 했었다. 하지만 새의 탑을 찾아온 그들은 GGW 영웅들에게 말 한 마디 걸지 못했다.

십이 재앙과의 싸움을 앞둔 영웅들의 날카로운 분위기 때문이었다. 민국 역시 자신과 별 관계가 없는 정치인들을 위해 시간을 낭비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한세정 : 오늘 가루다랑 싸운다면서? 무조건 몸조심해야 돼. 알았지?]

[신지민 : 스승님, 힘내세요! 무사히 돌아오셔야 합니다!]

[샤오란 : 부활석이 존재하니 걱정은 하지 않겠다만…. 가루다는 지휘관은 개체. 어떤 힘을 지니고 있을지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

핸드폰에는 수많은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전부 민국과 인연이 있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가장 많이 메시지를 보낸 이들은 활짝 웃는 아기를 프로필 사진으로 둔 인물이었다.

[강채영 : 가루다 공략이라니! 진짜 나도 함께 했어야 했는데…. 아무튼 소영이가 요즘 들어 아빠 찾으니까 빨리 끝내고 와. 벌써 몇 개월째 출장이야?]

[김태연 : (사진)(사진)]

그렇게 잠시 지호와 소영이의 얼굴을 보던 민국은 핸드폰을 가방에 넣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탁자 위에 정돈되어 있는 기어 스코어 장비들을 하나, 둘씩 몸에 걸쳤다.

“오늘은 가볍게 패턴 파악부터 해야 되려나….”

장비를 착용하며 민국은 오늘의 목표를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아무런 정보도 없는 괴물인 만큼, 민국은 가루다가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또한 어떤 위력적을 스킬을 사용하는 지 조금도 알지 못했다.

세계 영웅 협회 또한 마찬가지.

과거 동남아에서 있었던 전쟁 기록에서 가루다에 대한 내용들이 있기는 했다만 오늘의 레이드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였다.

결국 시작부터 몸으로 때워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런 민국의 예상대로….

“헤엑, 헤엑!”

“여기 엘리베이터 설치 안 되는 거야?”

첫 날, GGW 공격대의 가루다 트라이는 빠른 전멸 후 탑을 오르는 것으로 끝이 났다.

* * *

“가소로운 것들…!”

가루다의 뒤로 새의 형상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이어서 뾰족한 깃털들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영웅들에게 날아들었다.

“지젤, 보호막!”

“새, 새벽의 방패!!!”

마력이 일렁이며 두터운 보호막이 깃털들을 가로막았다. 이어서 깃털들이 기관총처럼 지젤이 만들어낸 보호막을 두들겼다.

민국이 깃털 날리기라고 명명한 가루다의 공격 패턴 중 하나로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보호막으로 커버하려고 했다가 순식간에 공격대가 전멸해 버린 무지막지한 위력의 공격이었다.

“진짜 더럽게도 세네.”

순식간에 찌그러지는 새벽의 방패를 보며 지젤이 쯧 혀를 찼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유나를 향해 물었다.

“진짜로 힘이 빠진 게 맞는 거야? 내가 보기에는 아주 쌩쌩해 보이는데?”

“응, 힘이 빠졌기 때문에 이런 위력인거래.”

“…미친.”

지젤의 입에서 자연스레 욕설이 흘러 나왔다.

커다란 새처럼 생긴 가루다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황당함과 두려움으로 물들었다.

만약 저 괴물이 원래의 상태였다면 궁극기를 사용했어도 전부 박살날 거라는 이야기였다. 당연히 공략은 꿈도 못 꾸지 못했을 터였다.

“모두 흩어질 준비해!”

깃털 세례가 조금씩 약해지는 모습에 민국이 영웅들을 향해 외쳤다. 그런 민국의 눈이 현아와 타냐, 두 탱커에게 향했다.

“타냐가 어그로 잡고, 현아가 지원. 부리 공격은 절대로 얻어맞으면 안 돼. 오현아, 커버 타이밍 알고 있지?”

“걱정하지 마.”

“오케이. 믿는다?”

“보호막 끝날겁니다! 5, 4…!”

짧은 브리핑과 함께 보호막이 사라지는 순간 괴물의 어그로를 잡기 위한 타냐의 몸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불곰 나가신다!”

그리고 기합과 함께 가루다의 앞까지 달려간 타냐는 그대로 방패를 앞세워 포탄마냥 몸으로 가루다와 부딪쳤다.

[캬아아아악!]

충격이 적지 않은 지 가루다의 입에서 분노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는 앞발로 자신에게 충격을 준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어그로가 쉽게 잡힌 모양이네.’

깃털 날리기를 사용한 가루다는 어그로가 초기화 되었다.

때문에 가루다를 공략하던 초반에는 무턱대고 공격을 했다가 딜러가 사망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나오곤 했었다.

그렇게 타냐가 안정적으로 어그로를 쌓는 동안 민국은 열심히 타냐의 생명력을 회복시켰다.

가루다의 생명력이 아직 60%나 넘게 남아 있는 2 페이즈. 다행히도 아군 힐러들의 마력 상황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이제는 다들 전투가 익숙해지는 모양이네.’

처음 가루다를 공략할 때만 하더라도 공격대의 움직임은 정말 엉망 그 자체였다.

일단 십이 재앙이라는 이름에 겁을 먹은 까닭에 레이드를 진행하면서 자신의 지시조차 제대로 따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가루다 트라이를 시작한 지 100트가 넘은 지금은 무난하게 2페이즈를 넘길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시간으로만 따지면 가루다 공략에만 근 열흘이 넘도록 트라이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정말 그 동안 정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거의 뼛속까지 각인되어버린 가루다의 두려움을 없애고, 영웅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느라 정말 별의별 짓은 다한 것 같았다.

아직도 움직임이 마음에 드는 수준은 아니지만….

그건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영웅 자체의 실력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전투를 이어나가기에는 충분한 수준이니 크게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실력이 떨어진다는 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기준일 뿐.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공감이 가지 않는 이야기겠지.’

회복 능력으로 탱커를 치유하던 민국의 눈이 딜러들에게 향했다. 탱커가 이렇게 시선을 붙잡고 있으면 딜러들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됐다.

그런 민국의 생각대로 가루다의 측면으로 파고든 김소정이 괴물의 날갯죽지를 노리고 대검을 휘둘렀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의 마력이 섞인 검이 휘둘러지면서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었다.

[캬아아아아악…!]

가루다에게 타격을 입힌 소정은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고, 날뛰는 가루다의 몸체로 원거리 딜러들의 공격이 쏟아졌다. 그리고 가루다가 분노에 찬 눈으로 딜러들을 노려다보면 탱커들이 마력을 내뿜어 가루다의 시선을 빼앗았다.

깔끔한 연계 플레이.

하지만 이 공격으로 빼앗은 가루다의 생명력은 0.1%가 채 되지 못했다.

다시 말해 이와 같은 플레이를 밥 먹듯 자연스럽게 이어나가야만 가루다를 쓰러뜨릴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것도….

[오만한 놈들! 감히 나에게 덤벼?!]

홰를 치듯 날개를 펼친 가루다가 발을 뻗어 타냐의 몸을 붙잡았다. 타냐가 낑낑거리며 몸을 빼내려고 했지만, 커다란 괴물의 힘을 당해내기란 무리였다.

이어서 가루다의 머리가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괴물이 노리는 목표는 현재 어그로를 잡고 있는 탱커 타냐의 심장. 그리고 하늘의 포식자가 먹이를 노리듯 가루다의 부리가 타냐의 몸을 꿰뚫었다.

콰지직!

하지만 가루다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부리가 타냐의 몸을 꿰뚫기 일보 직전에 현아의 방패가 공격을 막아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위기를 넘긴 민국이 딜러들을 향해 외쳤다.

“다리부터 공격해!!!”

카앙! 캉!

스킬을 앞세운 딜러들의 공격이 동료를 붙잡고 있는 가루다의 발로 쏟아졌다. 그런 영웅들의 행동에 가루다의 얼굴이 구겨지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놈들…!]

빠르게 이들의 방패 같은 역할을 하는 영웅을 죽여 버리고 휴식을 취하려고 했는데….

오늘 따라 쉽사리 죽어주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니, 최근 들어 이 놈 들과의 전투가 점점 길어지는 모양새였다. 그만큼 자신의 공격을 조금씩 대처해내고 있는 것이다.

콰아아아앙!

결국 다리로 붙잡은 인간을 멀리 던져버린 가루다는 계획을 바꿔서 탱커 대신 근처에 있는 딜러를 노렸다.

하지만 조금 전 자신을 방해했던 탱커가 앞을 가로막자 다시 얼굴을 구겨야 했다. 전투를 쉽게 끝내려고 했는데, 아까부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인간 영웅들을 자신의 눈앞에서 치워버리려면 방패를 든 년들부터 시체로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꺄아아악…!”

“힐러 사망!”

GGW 공격대의 가루다 레이드는 3 페이즈에 진입하자마자 실패로 끝이 났다.

3 페이즈에 들어서자마자 가루다가 불러낸 슈가빈 무리 때문에 잠시 탱커의 시선이 끌린 사이 가루다가 깃털을 날려서 뷘드셴 자매가 죽여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힐러 둘이 사망한 이상 트라이는 끝이라 할 수 있었다.

아무리 민국의 회복 능력이 대단하다 하더라도 혼자서 모든 데미지를 커버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젠장…!”

“또 실패네.”

뷘드셴 자매가 죽었지만 살아남은 이들은 열심히 가루다를 상대로 무기를 휘둘렀다. 하지만 힐러들의 도움 없이 가루다의 막강한 공격을 막아내기란 역부족이었다.

[흥!]

자신의 공격을 영웅들이 감당해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가루다는 분노한 얼굴로 영웅들을 찢어발겼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전투에 얼마나 짜증이 났는지 가루다의 행동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했다.

“빌어먹을 새대가리 새끼!”

“다음에 두고 보자…! 아아아아아악!!!”

하지만 그런 가루다의 행동에 겁을 먹은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전의만 더욱 불태우며 마지막까지 무기를 휘두를 뿐이었다.

그렇게 영웅들이 하나, 둘씩 쓰러지자 괴물의 앞에는 마지막으로 민국만이 살아남아 있었다.

그리고 생명력이 30%가 넘게 남은 가루다를 보며 민국은 완드 대신 허리춤에 걸린 단검을 꺼내들었다. 가루다가 그런 민국을 가소롭다는 듯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마지막까지 발버둥을 치려는 모양인데, 저 남자 인간이 능력이 어떤 건지는 조금 전의 전투를 통해 완벽히 잘 알고 있었다.

“커헉!”

“이런….”

그리고 어렵지 않게 남자의 심장에 부리를 찔러 넣은 가루다는 곧 자신의 실수를 깨달을 수 있었다. 분명 저 남자는 전투 중 영웅들을 지휘하는 지휘관과 같은 역할을 했었다.

다시 말해 인간 영웅들이 매섭게 자신을 몰아붙일 수 있는 건 전부 저 놈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좀 더 괴롭혔어야 했는데, 너무 성급 했어.”

그런 의미에서 상대를 너무 쉽게 죽여 버린 것 같았다.

아무튼 전투가 끝나자마자 가루다는 쓰러지듯 바닥에 누웠다. 인간들과의 싸움에서 마력을 많이 썼는지 날갯죽지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회복이 되겠지만….

이렇게 인간 영웅 들이 계속 자신을 노린다면 소모된 힘을 회복하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결국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만들어야 했지만….

“일단은 쉬어야겠네.”

지금은 휴식이 먼저였다. 다행히 해가 넘어가는 시간. 오늘의 전투는 이게 마지막일 것 같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즐감하세요!!!

갑작스러운 재연재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공지에 이유를 적어놨습니다.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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