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298화 (298/486)

EP.298 새의 탑(2)

“슈가빈 무리들이 나오기 직전, 어그로 관리가 안 되고 있어!”

“상대는 멍청한 괴물들이 아니야! 어그로가 잡히지 않으면 바로 딜러와 힐러들을 노린다고! 둘 중 한 명은 무조건 어그로를 잡고 있어야지!”

“주의할게.”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민국의 지적에 현아와 타냐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켄달과 지젤. 너희 둘은 너무 쉽게 공격을 허용했어. 가루다가 가장 먼저 노리는 목표가 누구야?”

“힐러들….”

“그걸 뻔히 알면서도 상대의 공격에 당해주면 어떻게 해? 당연히 피했어야지?”

공대장의 말에 지젤은 ‘그걸 어떻게 피하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자신들을 지적하고 있는 눈앞의 힐러는 트라이 초반 가루다가 기습적으로 깃털을 날렸을 때를 제외하면 지금껏 한 번도 가루다의 깃털 공격을 당한 적이 없었다.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서 지젤이 할 수 있는 행동은 하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지젤과 켄달 다음은 딜러들의 차례였다.

김소정을 필두로 딜러들 역시 모든 멤버들이 민국에게 한 소리씩 들었다. 그렇게 조금 전에 있었던 전투의 피드백이 끝나고 나니 시간은 어느새 부활 후 삼십분이 지나고 있었다.

높게 솟은 탑의 뒤로 해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오늘 트라이는 여기까지 해야겠네.’

그렇지 않아도 부활 후유증 때문인지 속이 메스꺼웠다.

일정을 강행하면 밤에도 트라이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장 세계가 멸망하는 게 아닌 이상 그런 일정은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한, 두 번 더 트라이를 한다고 해서 못 잡는 녀석을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자신들의 비수는 조금씩 가루다의 턱 끝에 다가서고 있었다.

열흘이 넘는 시간 동안 가루다를 상대로 전투를 벌이면서 GGW 공격대는 조금씩 가루다의 능력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 가루다의 공격에 익숙해지면서 그에 따라 대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증거로 GGW 공격대는 매 트라이 때 마다 안정적으로 가루다 전투의 2 페이즈에 진입하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3 페이즈에 들어서면 괜히 우왕좌왕하다가 전멸로 이어지곤 하지만….’

딱히 별 생각은 들지 않았다.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2 페이즈가 그런 식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렇게 경험을 쌓아나가다 보면….

《가루다를 쓰러뜨리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죠.》

‘그래. 잡을 수 있겠지. 아무튼 크리스마스 전까지 잡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크리스마스? 왜요? 민국님?》

‘적어도 기념일에는 가족들이랑 보내야 하지 않겠어?’

그렇지 않아도 강채영에게 크리스마스 전까지 돌아간다고 말을 해둔 상황이었다.

《에헤이. 크리스마스가 무슨 기념일입니까? 민국님께서 가루다를 쓰러뜨리면 그 날이 바로 기념일이 될 텐데요.》

‘하?’

자연스럽게 아부를 하는 뿌우의 모습에 민국은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누군가에게 동경 받고, 기대가 되고,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이 땅은 자신이 사랑하는 인연들이 살고 있는 세계였다.

‘그러니까 하루라도 빨리 십이 재앙 놈을 처리해야지.’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이 세계로 온 이유였다.

* * *

GGW 공격대의 가루다 공략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영웅과 괴물의 싸움은 굉장히 격렬했다. 그리고 그 여파는 새의 탑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실제로 최상층에 도착한 GGW 공격대가 본격적인 전투에 들어갈 때면 흔들리는 새의 탑에서 커다란 파편들이 아래로 떨어지기 일쑤였다.

그 때문에 재수 없게 다친 직원이 R’s 클랜만 하더라도 네 명이나 되었다.

[15일째 가루다 공략에 들어가는 GGW 공격대, 전투의 향방은 아직 알 수 없어….]

[피곤한 얼굴의 한민국 영웅, 가루다 레이드는 162 번째 트라이 진행 중.]

GGW 공격대의 십이 재앙의 공략은 전 세계인들의 관심을 받았다.

당연했다. GGW의 새의 탑 공략은 어둠 괴물과의 전쟁 이후 최초로 인간 공격대가 어둠 괴물의 지휘관을 상대로 날린 선빵이었다.

물론, 과거에도 십이 재앙 공략이 없던 건 아니지만 과거의 전투 중 직접적으로 십이 재앙을 맞상대한 공격대는 단 한 곳도 없었다. 대부분 십이 재앙의 심복만을 상대하다가 포기했을 뿐이었다.

때문에 엄밀히 말하지만 십이 재앙과 싸우고 있다는 표현은 GGW 공격대만이 쓸 수 있는 수식어였다.

●160트가 넘도록 가루다랑 싸우고 있는 거면…. 그래도 공략 가능성이 보인다는 거 아닌가?

〇그러게. 영웅들이 괜히 자기 목숨 내놓고 시간 때우는 것도 아닐 테고….

●아는 언니가 미얀마 주둔지에 있는데요. GGW 공격대 현재 2 페이즈 공략 들어갔대요.

〇그 말 사실인가요?

〇GGW가 정말 대단하긴 대단하네요. 그 재앙급 괴물을 상대로 페이즈를 넘기다니….

●한민국 오빠, 제발 무사히 돌아오세요. ㅠㅠㅠㅠ

새의 탑 공략과 관련해서 국민들의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도 남달랐다.

GGW 공격대 자체가 평범한 길을 걸어온 공격대도 아니었을 뿐더러 지금껏 한민국이 해냈던 업적 또한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가루다는 계속된 던전 브레이크의 실패로 힘이 조금 약해진 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는 괴물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쉴더급 공격대가 아니면 전투를 시도해 볼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강력한 놈이지만….

어쨌든 마냥 상대가 되지 않는 전투는 아닌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GGW 공격대와 가루다의 싸움은 그 결과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전투였다.

그나마 GGW 공격대를 품에 안고 있는 R’s 클랜의 단장 오현정만이 현지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지만, 언론의 계속된 질문에도 그녀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섣불리 말을 꺼내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그렇다고 국내에 있는 기자들 입장에서는 새의 탑이 있는 미얀마로 떠날 수도 없는 노릇. 결국 현지에서 전해오는 티끌만한 정보를 토대로 어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기다리는 것이 그들이 그리고 국민들이 기대할 수 있는 전부였다.

* * *

“지젤! 보호막 준비해!”

“곧 깃털 타이밍? 오케이, 알았습니다!”

트라이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점점 익숙해지는 전투 속에서 민국과 영웅들은 이제 무난하게 3 페이즈까지 진입하는 수준까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래도 가루다를 벼랑 끝까지 몰아넣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늘 있던 네 번째 트라이에서는 슈가빈 무리들로 인해 진영이 무너진 상황에서 가루다의 깃털 공격이 펼쳐지며 전멸, 다섯 번째 트라이는 가루다의 부리 공격을 탱커가 아닌 시라누이 마이가 대신 얻어맞으며 허무하게 끝이 났다.

그리고 부활석으로 되살아난 이들은 굳은 얼굴의 민국을 힐끔 보며 엄살을 부렸다.

“와, 진짜 조금만 실수해도 답이 안 나오네.”

“그러게요. 잡을 수 있는 것 같은데 안 잡히니 스트레스가….”

의도가 뻔히 보이는 팀원들의 엄살에 민국은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부터는 피드백을 해봤자 크게 의미가 없었다. 다양한 전투 상황을 경험하며 빠르게 대처하는 능력을 키워야 할 뿐.

‘어느 정도는 내가 도와줄 수 있지만….’

이는 본인 스스로가 깨달아야 하는 영역이었다. 자신이 리딩을 한다 하더라도 막상 상황이 닥치면 늦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면 다시 트라이 가겠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일곱 번째 트라이.

“아아아악!!!”

“잡을 수 있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전투가 부드럽게 풀리면서 민국과 영웅들은 공략 도중 처음으로 가루다의 생명력을 10% 아래까지 떨어뜨리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미안, 미안해! 내가 좀 더 버텼어야 했는데…!”

“슈가빈 무리들이 나왔을 때, 마력을 좀 더 아껴야 했어. 마지막에 회복 능력을 폭발시켜야 하는데 마력이 너무 부족해.”

“그 전에 살짝 쉬면서 마력을 세이브하는 건 어때?”

“그러면 슈가빈 무리 떄문에 죽지 않을까?”

“그 타이밍에 딜러들은 다들 포션 하나씩 준비해 줘. 그렇다고 두 병 마시고 마력 역류에 걸리지는 말고.”

그리고 조금 전의 아쉬웠던 트라이 때문인지 영웅들은 서로 모여 조금 전 있었던 전투를 떠올리며 본인들끼리 피드백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렇게 탑 아래서 GGW 소속 영웅들이 가루다 공략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을 무렵, 탑 최상층에 있는 가루다는 철렁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크, 큰일 날 뻔했다.”

조금 전의 전투는 정말로 위험했었다. 아직도 관자놀이에 식은땀이 흘렀을 정도로.

“진짜 운 좋게….”

회복 능력을 사용하는 년들의 마력이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공격에 방패를 든 년이 죽지 않았더라면….

죽는 건 인간들이 아니라 자신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 씨발. 진짜 내 꼴이 왜 이렇게 됐지?”

가루다의 눈이 대전으로 향했다.

조금 전까지 전투가 벌어졌던 최상층의 공간은 격렬했던 전투의 흔적으로 가득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탑의 마력이 엉망이었던 전장을 원래의 상태로 되돌렸다.

“아, 씨발….”

동시에 자신의 몸에서 방울 하나가 톡 터지는 느낌에 가루다는 얼굴을 찌푸렸다. 엉망으로 된 전장을 원래로 되돌리는 것도 자신의 마력이 사용되는 일이었다.

가루다는 조금 전의 전투를 복기했다.

깃털 세례, 슈가빈의 부리, 살아있는 무리들 등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인간들에게 퍼부었다. 그리고 인간들은 자신의 공격을 당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인간들의 성장은 무서울 정도였다. 자신들의 목숨을 담보삼아 하나, 둘씩 자신의 공격에 대처하기 시작하더니만 이제는 거의 대등한 수준으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슈가빈의 여왕이라 불리는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 지는 불을 보듯 뻔해 보였다. 인간들의 손에 소멸된 그녀의 심복처럼 그리고 새의 탑 하층에 있던 피조물처럼 말이다.

“그건 곤란해.”

가루다는 자신의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선명하게 빛나는 그녀의 붉은 눈동자는 삶의 의지로 가득했다.

나는 공허의 종족 중 하나인 슈가빈의 여왕. 내가 죽는 건 곧 슈가빈의 멸종을 의미했다. 그렇기 때문에 가루다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야 했다.

게다가 영웅들의 손에 목숨을 잃는 건 단순한 죽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만약 자신이 영웅들에게 죽으면 원래의 영혼은 공허의 틈에 붙잡힐 테고, 새의 탑의 지배자였던 가루다는 프로그래밍 된 기계처럼 인간들과 전투를 벌일 터였다.

그러다가 재수라도 없게 새의 탑이 무너지면…?

자신은 공허의 틈에 영원히 떠도는 신세가 될 터였다. 본인의 존재마저 잊은 채 말이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야.”

거대한 새는 뒤뚱거리며 원을 그리듯 넓은 대전을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곰곰이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생각했다.

그러나 뾰족하게 떠오르는 방법이 없었다. 이제는 바이콘이나 버니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늦었을 터였다.

“그렇다면…….”

인간들에게 투항할까?

거기까지 생각을 한 가루다의 미간이 주름이 잡혔다. 날개로 뒤덮인 그녀의 피부에 닭살이 오돌토돌 올라오기 시작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건 무리지.”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렇게 가루다는 투항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 * *

“5%!”

“마력 오링! 물약 빨아!!!”

“아, 쓰읍! 아까 먹었는데!!!”

온 몸이 상처로 가득한 현아가 이를 꽉 깨물었다.

피로 물든 손이 방패를 꽉 쥐었다. 그런 현아의 눈에 온 몸이 망가진 가루다가 보였다. 이어서 괴물의 머리 위로 뜬 숫자를 확인한 현아가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죽어도 버텨!!! 얼마 남지 않았어!”

“딜! 딜!!!”

민국도 정신없이 회복 능력을 사용하는 한 편 스태프를 휘둘러 가루다를 공격했다.

마지막 트라이의 버프는 역시나 위대했다. 어째저째 무난하게 가루다의 공격을 막아내더니만 어느 순간 이런 상황이 되었으니까.

‘잡을 수 있어…!’

엄밀히 말해 상황은 좋지 않았다.

탱커의 생명력은 바닥이었고, 딜러들은 지쳤으며, 힐러 역시 탈진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가루다 역시 한계에 다다른 모습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기회를 놓치면 언제 가루다를 잡을 수 있을 지 알 수 없었다. 당장 내일이 될 수도 그 이후가 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인간과 괴물은 젖 먹던 힘까지 끌어 올려 발버둥을 쳤고, 서로에게 치명상을 남겼다. 그리고…….

“후우….”

드넓은 대전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민국이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내들었다. 그런 민국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괴물의 생명력은 고작 0.09%에 불과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즐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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