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299화 (299/486)

EP.299 새의 탑(2)

“하, 진짜 상황 애매하네.”

가루다를 앞에 두고 민국은 단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기어스코어 1170 짜리의 무기인 이 단검은 새의 탑을 공략하다가 얻은 전리품이었다.

그 때는 별 생각 없이 챙긴 물건이었는데, 지금의 상황을 생각하면 정말 신의 한 수나 다름없는 행동이었다. 장비 빨이라도 어쨌든 눈앞의 괴물에게 조금 더 강력한 데미지를 넣을 수 있을 테니까.

‘그렇다고 저 괴물을 쉽게 쓰러뜨릴 수는 없겠지만….’

딜러라면 모를까, 지금의 자신은 회복의 능력을 사용하는 힐러에 불과했다.

만약 가루다의 생명력이 0.9% 정도 남아 있었으면 깔끔하게 전투를 포기했을 터였다. 아쉽기는 하지만 자신 혼자서는 절대로 감당해 낼 수 없는 생명력이었으니까.

하지만 0.09%다. 게다가 높은 스펙의 장비도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혹시? 라는 생각에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차피 손해 볼 것은 없으니까.

게다가 민국에게는 수많은 가상현실게임을 통해 갈고 닦은 컨트롤이라는 게 있었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 쌓은 전투경험도 적지 않았다.

‘결국….’

괴물의 공격을 피하고 단검을 찔러 넣으면 길고 길었던 전투를 끝낼 수 있었다. 그리고 가루다의 공격 패턴은 머리 뿐 아니라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문제는 정타던 스치던 일단 한 대 맞으면 끝이라는 것.

탱커조차도 몇 방 버티지 못하는 괴물 중의 괴물이다. 그런 와중에 딜러보다도 방어 능력이 떨어지는 힐러 클래스는 스치면 일단 사망이라고 보면 되었다.

“뭐…. 죽으면 다시 트라이 하면 되는 거고.”

민국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단검을 역수로 쥐고는 앞으로 내밀었다.

그런 민국의 모습에 가루다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신기하다는 듯 쳐다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상대할 가치를 조금도 느끼지 못한 모양인지 가루다가 귀찮다는 듯 자신의 날개를 펄럭였다. 깃털 세 개가 민국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리고 민국이 놀라운 반사 신경으로 깃털을 피하는 순간….

콰아앙!

커다란 폭발과 함께 지면에 원형의 크레이터가 만들어졌다.

직접 맞았더라면 결코 무시하지 못했을 위력이었다. 하지만 민국은 깃털이 만들어낸 폭발을 추진력으로 삼아 가루다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놀랐을 거다.”

그런 민국의 중얼거림대로 가루다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지는 게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민국은 이미 단검을 휘두를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목표는 불룩하게 나와 있는 가슴. 그리고 단검을 휘둘렀다.

카캉! 캉!

하지만 회심의 일격에 가까운 민국의 공격은 얇은 막에 의해 가로막혔다. 곧바로 민국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직 보호막이 남아 있다고…? 생명력이 0.09%밖에 없는데?’

다행히 가루다의 보호막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단검 공격을 막아내자마자 바스라지면서 사라진 것이다. 보아하니 공격대의 영웅들이 전멸하는 잠깐 사이에 힘을 회복했던 모양이었다.

‘아무튼 시간을 끌면 곤란하겠네.’

가루다의 보호막이 생겨나면 자신의 공격력으로는 파괴하는 게 힘들어 보였다.

결국 내가 죽던 저 놈이 죽던 속전속결로 과감하게 전투를 진행해야 할 것 같았다. 그 때 민국이 있던 자리로 날카로운 무언가가 훑고 지나갔다.

“으헉?!”

가루다의 발톱이었다.

가까스로 단검을 내미는 초인적인 반사 신경이 아니었다면 단숨에 몸이 세 동강이 났으리라.

그렇다 하더라도 민국의 생명력은 무려 40% 가량이 사라져 있었다. 공격을 허용한 것도 아니고, 스친 것도 아니었는데.

‘미친….’

말 그대로 운이 좋았던 셈이었다.

[오?]

자신의 공격을 막아내는 민국의 모습에 가루다가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괴물의 커다란 앞발이 계속해서 민국을 향해 날아들었다. 벌레처럼 가볍게 찍어 눌러서 죽일 의도가 다분히 담겨 있는 공격이었다.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가루다의 공격을 이겨내지 못한 지면이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도 민국은 필사적으로 몸을 날리며 가루다의 공격을 피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거라 먹어랏!”

기회를 포착한 순간 마력을 폭발시키며 가루다를 향해 달려들었다. 순간적으로 가루다에게 접근한 민국이 단검에 마력을 담아 길게 내리그었다.

[엇?!]

예상치 못한 민국의 공격에 가루다가 당황하며 몸을 틀었지만, 푸른색의 섬광이 길게 그어지는 건 막을 수가 없었다.

0.09%였던 생명력이 0.06%로 변했다.

‘히끅?!’

자신이 입은 데미지를 느낀 가루다는 머리를 한 대 텅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상대가 약한 인간이어서 다행이지 제대로 일격을 허용한 공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마터면 자신의 목숨이 날아갈 뻔한 상황이었다.

‘빨리 전투를 끝내야겠어.’

등 뒤로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그만큼 상황이 좋지 못했다.

상대가 인간 공격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인간의 영웅들은 여러 명이 모이지 않으면 크게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타격을 줘서 휴식을 좀 길게 가지려고 했는데….]

지휘관답게 숨기고 있던 비장의 한 수가 있던 모양이었다.

방심을 거둔 가루다는 번개처럼 발을 뻗어 민국의 몸체를 꽉 붙잡았다. 상대를 움직이지 못하게 한 이후 부리 공격으로 목숨을 끊을 생각이었다.

‘젠장…’

민국 역시 가루다의 부리 공격이 자신에게 가장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뭐, 지금의 자신에게 있어서 어떤 스킬이던 다 치명적이겠지만….

아무튼 몸을 날려서 가루다의 부리 공격을 피하려고 했는데 방심을 하지 않은 가루다는 몸을 날리는 민국의 움직임까지 따라와 가볍게 붙잡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눈앞을 메우는 가루다의 부리를 보며 민국은 다음 번의 트라이에 대한 생각을 떠올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건 어떻게 해도 피할 수가 없는 공격이었다.

그 때였다.

‘어…?!’

가루다와 실랑이를 벌이면서 시간을 끄는 동안 스킬 하나의 쿨 타임이 돌았다.

그 스킬의 이름은 리바이벌. 반사적으로 민국이 자신에게 리바이벌 스킬을 걸었고, 뒤이어서 가루다의 부리가 빗줄기처럼 민국을 심장에 틀어박혔다.

“크헉!!!”

고통에 찬 비명과 함께 인간의 몸에 생명력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가루다가 발에서 힘을 빼자 인간 남자가 쿵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뻥 뚫린 가슴에서 피가 엄청난 속도로 흘러 나왔다.

[후우….]

그렇게 미동도 하지 않는 남자의 모습을 보던 가루다는 자신의 어둠 마력을 거둬들였다.

사방에 퍼져 있던 붉은색의 입자들이 가루다에게 몰리기 시작했고, 잠시 후 가루다가 있던 자리에 붉은색의 깃털이 머리카락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여성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씨발, 간신히 이겼네.”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여성은 욕설과 함께 풀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인간의 모습보다는 본체가 더욱 편하긴 했지만, 인간계에서 공허의 마력을 소모하는 본체보다는 이 모습이 훨씬 빠르게 마력을 보충할 수 있었다.

“이 자식들 진짜 마음먹고 달려드는 거 같은데…. 다른 십이 재앙 놈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이놈들이 새의 탑을 공략하지 못하도록 난동이라도 부려줄 것이지.”

힘겨웠던 전투는 자신의 승리로 끝이 났다.

하지만 정말 운이 좋았던 전투였다. 만약 운이 따르지 않았더라면?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자신에게 일격을 날렸던 영웅이 남자 영웅이 아니라 인간 영웅 중 딜러라는 존재였다면?

목숨을 잃은 자신의 영혼은 분명 공허의 틈에서 헤매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 이후의 운명은 불을 보듯 뻔했다

“보나마나 공허의 양분이 되겠지….”

슈가빈의 종족이 인간의 땅에서 모두 목숨을 잃었으니 공허의 틈에서 자신의 빼내줄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루다는 어떻게든 지금의 위기를 넘겨야 했다. 적어도 일족이나 다름없는 순혈의 슈가빈을 만들어낼 때까지 말이다.

“놈들의 실력이 제법이지만…. 아직까지는 괜찮아. 버틸 수 있어.”

그렇게 가루다가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동안 리바이벌 스킬이 발동된 민국은 천천히 눈을 뜨고 있었다.

원래라면 3초 내에 강제적으로 부활하는 스킬이지만 강화된 리바이벌의 효과로 민국은 본인의 원하는 타이밍에 부활을 결정할 수 있었다.

때문에 민국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가루다가 방심할 때까지 기다렸다. 가루다의 공격에 의해 뻥 뚫렸던 가슴은 어느새 치유된 지 오래였다.

“…….”

힐끗 눈을 뜬 민국은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역시 스킬 강화가 최고네.’

몸의 컨디션은 물론이고, 생명력도 최대였다. 사망하기 전까지 걸려있던 버프들도 그대로 유지가 되고 있었다. 그런 버프 중에 파괴의 교향곡의 포함되어 있는 건 당연지사.

거기에…….

“제길, 오늘은 여기까지 했으면 좋겠는데….”

가루다는 전에 마주쳤던 슈가빈의 아종 라크스처럼 인간의 몸으로 변해 있었다.

그렇다면 무기를 사용해서 데미지를 주는 것도 더욱 쉬울 터였다. 민국의 눈이 가루다의 머리 위로 향했다. 0.06%. 가루다의 생명력은 조금 전과 동일했다.

다시 말해 급소 한 방이면 끝이라는 이야기였다.

죽은 척 하던 민국이 가루다의 옆모습을 훑었다. 가루다는 양 갈래로 머리를 땋은 인간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신기할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였다.

인간이나 어둠 괴물이나 미적인 감각은 비슷한 모양이었다. 생각해보면 라크스 역시 상당한 미녀였던 것 같았다. 그렇다고 라크스처럼 가루다를 따먹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상대는 어둠 괴물의 지휘관이자 보스급인 십이 재앙. 아주 위험한 존재였다.

“전투가 너무 길어져서 그런가? 생각보다 마력 회복이 너무 더딘데?”

그런 민국의 귀로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 걱정을 하는 가루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민국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가루다의 목숨을 끊기 위한 단 한 번의 완벽한 타이밍을 노릴 때였다.

“…그런데 저 녀석의 시체는 왜 안 사라지는 거지?”

의아함을 느낀 가루다가 민국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가늘게 눈을 뜨고 있던 민국의 눈동자가 가루다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어, 어어억?!”

“씨발?!”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킨 민국이 가루다를 향해 달려들었다. 가루다 역시 멀쩡해진 민국의 모습을 보고는 당황이 가득한 얼굴로 손을 허우적댔다.

“케엑?!”

그러다가 괴상한 비명을 내뱉었다.

깃털을 날려서 민국을 막을 생각이었는데,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그녀의 팔에는 조그마한 솜털조차 없었다.

그러는 사이 가루다에게 접근하는데 성공한 민국은 자신의 단검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새파랗게 물든 단검이 서늘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대체 어떻게 살아난 거야?!”

의아한 목소리와는 달리 민국을 향해 휘두르는 가루다의 팔은 붉은색의 마력이 섞여 있었다. 탱커가 아닌 힐러라면 가볍게 머리를 터뜨릴 수 있는 위력이었다.

카칵! 캉!

그리고 이어진 공방.

잠시 후, 단검을 앞으로 겨누고 있는 민국과 팔에서 피가 뚝뚝 흐르는 가루다의 모습은 조금 전의 싸움에서 누가 더 우위에 서 있는지 가볍게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0.02%.

“후우….”

자신의 상태를 보며 얼굴이 일그러지는 가루다를 보며 민국은 가볍게 숨을 내뱉었다.

인간 형태의 가루다는 다행히 약한 편이었다. 그리고 특별한 능력 없이 인간처럼 몸으로 부딪쳐서 덤비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인간 형태에서는 본신의 능력을 하나도 사용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리바이벌로 체력이 쌩쌩한 자신과는 달리 가루다는 계속된 싸움 때문에 벌써부터 숨이 거칠어지는 게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잡았다.”

이건 이긴 전투나 다름없었다. 그제야 민국은 가루다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으으……”

죽은 척 할 때도 잠깐 느꼈지만, 생각보다 더 괜찮은 외모였다.

자신을 향해 표독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것도 뭔가 마음에 들었다.

‘저런 얼굴을 무너뜨리는 것이 진정한 섹스지.’

몸매는 두 말할 것도 없었다.

본능적으로 민국의 시선이 가루다의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의상을 만들어낼 마력까지는 없었던 모양인지 덕분에 민국은 가루다의 알몸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아무튼 이제는 끝이었다.

상태가 멀쩡하면 모를까, 눈앞의 가루다는 시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그렇다고 본신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전에 자신의 단검이 가루다의 심장을 꿰뚫을 테니까.

“…….”

가루다도 그런 자신의 상황을 알고 있는지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런 씨발…. 젠장…. 하필이면 인간의 몸일때….”

기적이 있지 않고서야 자신의 운명이 여기까지라는 것은 본인도 짐작하고 있으리라.

그렇게 가루다가 몇 번이나 자신의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녀의 얼굴에서 여러 감정들이 느껴졌다.

그리고 민국이 가루다의 숨통을 끊기 위해 조심스레 다가갔을 때였다.

“사, 살려주세요, 용?”

“…어?

십이 재앙 중 하나인 가루다가 민국을 향해 무릎을 꿇고는 손을 비벼대기 시작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민국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헉 늦어서 죄송합니다.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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