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03 인도의 고민
새의 탑 공략을 마치고 이틀 뒤, GGW 공격대는 서울 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때문에 서울 공항은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해외 원정을 떠났던 쉴더급 공격대가 몇 개월만에 귀환하는 것도 모자라 엄청난 성과를 냈기 때문이었다.
동남아의 【S】 등급 난이도의 던전을 소멸시킨 것도 모자라 십이 재앙인 가루다가 있는 새의 탑까지 쳐들어가 가루다의 뒤통수를 한 방 날리기까지 했다.
“안타깝게도 가루다를 쓰러뜨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최소 수 년 이상은 가루다가 활동을 할 수 없도록 큰 부상을 안겨주었습니다.”
“부상을 입었다고 알려진 십이 재앙조차도 엄청나게 강력했습니다, 때문에 저희들은 조금 더 완벽한 준비와 함께 재차 십이 재앙을 공략할 것이며…….”
공항에 모인 기자 회견장.
민국이 담담한 얼굴로 입을 열 대 마다 사방에서는 후레쉬와 함께 커다란 환호들이 연신 터져 나왔다. 예상대로 가루다를 쓰러뜨리지는 못했지만 그 무시무시한 십이 괴물에게 한 방 날려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아주 만족을 하는 모습이었다.
“아, 양심이 찔리는데…….”
인터뷰를 마치고 내려온 민국을 향해 현아가 가슴을 부여잡는 제스처를 했다. 그런 현아를 향해 민국이 피식 웃었다.
“그래서 진실을 이야기하려고? 이제까지 받은 게 있으면서?”
“…칫. 너무 진지하게 나오면 내가 할 말이 없잖아.”
죽일 수 있었던 십이 재앙의 목숨을 살린 것은 인류에게 있어 엄청난 이적행위라 할 수 있었다.
비록 GGW 공격대와 자신의 관계가 끈끈하다 하더라도 민국은 새의 탑을 내려온 이후부터 팀원들의 입을 막느라 제법 신경을 써야 했다.
“Oh…! Fuck! Yes! yes! yes!!!”
“아악! 앗! 악! 공대장님…! 오빠! 비밀! 무조건 비밀로 할게요! 아아아앙!”
다행히 몸으로 대화를 나눴던 팀원들은 가루다와 관련된 사실을 비밀로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해주기로 했다. 물론, 이 비밀이 언제까지 갈지는 알 수 없었다.
‘지금 당장은 가루다의 존재에 대해 조용히 넘어간다 하더라도…….’
어둠 괴물과의 전쟁이 어떻게 흘러가느냐에 따라 팀원들 사이에서도 분명 말이 나올 게 틀림없었다.
당연하지만 가루다는 그 전에 본인의 쓸모를 스스로 증명해야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행보는 짧지만 그다지 나쁘지도 않은 것 같았다.
[루다 : 어젯밤 미노스와 접촉.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미노스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크게 키울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한민국 : 그런데 왜 우크라이나에서 소동을 벌이는 거지?]
[루다 : 그건 정확히 듣지 못했습니다. 계속 알아볼까요?]
[한민국 : 그래.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바로 보고하고. 그리고 의심스러운 행동 했다가는 알지?]
[루다 : 네. 저도 사실 얘들하고 별로 안 친해요.]
오늘 아침, 민국의 핸드폰으로 온 메시지였다.
* * *
“하으읏?!”
뜨거운 교성과 함께 허리를 틀던 강채영이 번쩍 들어 올린 다리를 파르르 떨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쾌락의 늪을 허우적대던 그녀가 침대 위로 추욱 늘어졌다. 채영의 눈동자로 만족스러운 얼굴로 잠이 든 현아의 모습이 비춰졌다.
남편의 귀환에 맞춰 강채영의 집을 방문한 일반인, 김태연은 이미 실신한 지 오래였다. 오랜만의 회포를 푸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영웅의 체력을 일반인이 감당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해외 원정을 다녀올 때 마다 더욱 짐승이 되는 거 같아.”
“그래서 싫어?”
“아니.”
채영은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집에 오자마자 격렬하게 여자를 안아 주는 남편의 모습에 만족하지 않을 여자가 과연 누가 있을까?
“…너무 좋지.”
대답과 함께 채영은 민국의 품으로 안겨들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충만한 행복감을 느끼던 도중이었다. 문득 무언가가 생각이 난 채영이 고개를 들어 올리며 민국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태국에서 이상한 물건을 하나 보냈더라?”
“…이상한 물건?”
“응. 택배로 왔던데?”
택배? 내가 그런 걸 보냈던가? 잠깐 고민을 하던 민국이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러고 보니 잠시 잊고 있던 아이템이 하나 있었다. 라크스를 쓰러뜨리고 얻은 전리품으로 다른 전리품과는 달리 민국이 이번 원정 동안 벌었던 비용을 전부 지불하면서까지 구입을 했던 물건이었다.
‘분명 마력의 결정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클랜장에게 배달을 부탁했는데…….’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그게 택배로 도착을 한 모양이었다. 거래가 가능한 실버급 마력의 결정이 말이다.
“그거 어디에 있어?”
민국이 바로 물었다.
“…왜, 왜? 중요한 물건이었어?”
갑자기 심각한 얼굴을 하는 민국의 모습에 채영은 본인이 잘못이라도 한 것 마냥 기가 죽은 채 민국을 바라봤다. 남편의 것이라 생각하고 내용물을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포장이 아주 단단하게 되어 있던 것 같았다.
“아, 서재. 서재에 있어.”
때문에 포장을 뜯지도 않고 민국의 서재에 두었던 기억이 났다.
강채영의 말에 민국은 바로 서재로 향했다. 채영도 알몸으로 민국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서재에 있는 택배를 확인한 민국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마력의 결정 – 쥬얼리 용]
그렇지 않아도 값비싼 물건인 까닭에 마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열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상자에 보관을 하기는 했었다.
그 때문에 클랜에서도 마력의 결정이라고 생각했을 뿐, 내용물 자체는 확인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심지어 용도도 본인들 마음대로 생각을 한 것으로 보였다.
‘실버급 마력의 결정을 쥬얼리 용으로 사용한다라…….’
아마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보석이 되지 않을까?
“어머….”
어느새 다가온 채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소리 내어 웃었다.
“우리 남편, 태국까지 가서 내 생각 한 거야? 던전에서 얻은 마력의 결정까지 구입해서 보낼 정도로?”
“당신 생각을 한 것은 맞는데…. 쥬얼리로 제작하게?”
“음…. 퍼플급 마력의 결정으로 만든 악세사리는 이미 있으니까. 원래의 모습대로 장식장에 예쁘게 보관해 놓을까? 당신이 준 선물이라고 이름표까지 딱 붙여서?”
강채영의 말에 민국은 자신의 뺨을 긁적였다.
아무래도 사랑스러운 첫째 와이프는 이것이 퍼플급 마력의 결정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일까?
살짝 장난이 치고 싶어졌다.
“그냥 보관해두기에는 조금 아깝지 않을까?”
“하긴 그렇긴 해. 아무래도 퍼플급 마력의 결정은 쉽게 구할 수 없는 물건이잖아? 장식장에 놓고 SNS에 올리기라도 하면 좋아요가 엄청나게 찍힐 걸?”
“흐음…. 확실히 사람들의 관심이 엄청나긴 하겠네.”
“그래도 역시 쥬얼리로 제작하는 게 낫겠지?”
“그것도 나쁘지 않지. 진짜 엄청나게 비싼 물건이 되기는 하겠다. 그런데….”
민국이 잠깐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직접 확인은 안 해봐? 내가 태국에서 보내온 선물인데?”
“아!”
탄성과 함께 채영이 상자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는 힘주어 열려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 퍼플급 결정 아니랄까봐 단단한 상자에도 넣어놨네. 살짝 마력 사용했는데도 끄떡도 안하는데?”
“실력이 죽은 거 아니고?”
“무슨…. 내가 은퇴한 지 조금 됐어도 실전 경험이라면 당신보다 백배는 더 많거든? 아…. 뭐 【S】 등급으로 따지면 내가 지겠지만.”
곧 채영의 손이 퍼렇게 물들었다. 이어서 콰직하는 소리와 함께 잠겨 있던 상자의 걸쇠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상자는 더 이상 못 쓰겠네. 그나저나 당신도 진짜….”
“왜? 마음에 안 들어?”
“그게 아니라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어서 그래. 무슨 퍼플급 마력의 결정을 택배로 보내고 그래?”
강채영의 타박에 민국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제대로 설명을 안 해서 그런가? 나도 클랜에서 택배로 보낼 줄은 몰랐어.”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그리고 별 생각 없이 상자를 열었던 강채영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영롱한 빛을 내는 마력의 결정을 확인하고는 돌이라도 된 것 마냥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한참 뒤에 정신을 차린 그녀가 이빨을 딱딱거리며 물었다.
“이, 이거 뭐야? 시, 실버급이야? 미쳤어, 미쳤어. 아니 어떻게 이런 걸 가지고 왔어?!”
“어떻게 가지고 오기는…. 【S】 난이도 던전 공략하고 주워왔지.”
“하?! 당장 흡수를 했어야지. GGW 공격대가 강해져야 대한민국이 안전해지고, 또 우리 소영이랑 지호가 안전해지지!”
“그렇기는 조금 아쉬워서. 그리고 소영이랑 지호는 당신이 지켜주잖아? 그래서 가지고 온 거야. 이건 귀속이 아니라 거래가 가능한 물건이거든.”
“…응?”
민국의 말을 듣던 강채영이 자신이 들은 내용을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흠칫 몸을 떨었다.
“뭐, 뭐라고?”
“당신도 실버급 마력의 결정 흡수하면 9성 영웅이 될 수 있잖아? 그래서 들고 왔어.”
그리고 9성 영웅이면 현실에 모습을 드러낸 웬만한 어둠의 괴물이면 가볍게 때려잡을 수 있는 초인이라 할 수 있었다.
* * *
실버급 마력의 결정을 놓고 한참을 고민하던 강채영은 결국 결정을 흡수하고 9성 영웅으로 올라섰다.
은퇴를 선언한 자신보다는 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영웅이 사용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한사코 거절했지만 소영이와 지호의 이야기를 꺼내자 어쩔 수 없이 결정을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하, 정말 이게 맞나 몰라. 현역으로 있을 때는 그렇게나 얻고 싶었던 마력의 결정인데…….”
강채영이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그 때문에 아쉬운 소리도 하고 국가적인 도움까지 받아 타국의 쉴더급 공격대에 합류, 몇 번 손발을 맞추며 9 등급 특수 개체를 상대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마력의 결정은 하늘이 점지해준다는 말처럼 몇 번의 도전에도 실버급 마력의 결정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고, 결국은 국내 최강이지만 8성 딜러로 남아야만 했었다.
그런데 은퇴를 한 지금에야 9성 영웅이 되다니…. 뭔가 기분이 이상하면서도 후련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다음에는 이렇게 가지고 오면 안 돼. 적어도 현역 애들이 사용해야 전투에 도움이 될 거 아니야?”
몇 번이나 주먹을 쥐었다 펴고, 변화된 마력의 흐름을 감지하며 움직이던 채영이 민국을 향해 말했다. 민국의 눈이 채영에게 향했다.
“현역 복귀 생각은 없고?”
“음…. 아직까지는?”
채영이 고개를 저었다. 복귀 생각이 완전히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영웅 일보다는 소영이와 지호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행복했다.
“그리고 지금은 당신과 GGW가 잘 해주고 있잖아? 다른 클랜들도 마찬가지고.”
던전 브레이크처럼 대한민국이 크나큰 위기에 빠지는 일이 아니라면 채영은 직접 자신이 나설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런 채영의 말에 민국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녀가 복귀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야기한 내용은 아니었다.
그렇게 한바탕 소란에 이어 와이프들과 시간을 보낸 민국은 다음 날 본가로 향했다. 강채영과 김태연도 함께였다.
결혼식 이후에도 그다지 왕래가 없었던 가족들과 관계를 돈독히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결혼을 했고, 자신의 가족들이라고 널리 알려진 만큼 기본적인 도리를 하려고 했을 뿐.
“어머니, 저희 왔어요.”
“부! 부!”
“어, 어쩜 이렇게나 예쁠까….”
하지만 제법 괜찮은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영이와 지호를 보자마자 부모님의 얼굴이 아주 환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어르신들에게는 손자, 손녀가 최고였다.
그렇게 부모님과 와이프들이 하하호호 웃으며 시간을 보낸 동안 민국은 한세정과 뜨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자, 잠깐만…. 나중에, 나중에 내가 해줄게. 응? 지금……. 히익?!”
집에 가족들이 있는 까닭에 잠시 반항을 하기는 했지만…. 역시 막장에 가까운 이 세계의 여자들답게 자신의 대물을 깊숙이 찌르는 순간 세정은 그대로 허물어졌다.
그 이후에도 민국은 신지민 패거리들 및 GGW 영웅들을 불러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딱히 국내에서는 쉴더급 공격대인 자신들이 나설 일이 별로 없던 데다가 국내로 복귀하고 이틀 뒤, 부 탱커라 할 수 있는 타냐가 휴가를 쓰고 러시아로 향했기 때문에 일정을 진행할 수도 없었다.
“한민국 영웅님, 광고 하나 들어왔는데 하시겠어요?”
“예능 프로그램 출현은 어때요? 비용이 제법 짭짤한데…….”
“예전에 ‘금쪽같은 내 영웅’ 프로그램 기억나시죠? 그쪽에서 섭외가 들어왔는데 어떻게….”
그리고 GGW 공격대의 타냐 루스가 출국, 남은 이들도 휴가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방송가에서는 어떻게든 민국을 섭외하기 위해 애를 썼다.
“아니요, 전부 거절할게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민국은 방송 출현과 같은 일보다는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태국 원정에 이어 새의 탑 공략까지. 몇 개월가량 떨어져 있는 동안 아기들이 크는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게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루다 : 주인님. 이거 일이 생각보다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데요?]
미노스와 관련해서 조사를 하던 가루다가 메시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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