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05 인도의 고민
한국에서 편히 휴가를 보내던 도중 날아온 가루다의 급보.
“그래서 GGW 공격대에 대한 정보를 미노스에게 알렸다고?”
[네, 미노스 녀석이 꼬치꼬치 캐묻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어요.]
“거짓으로 이야기했겠지?”
자신이 상대할 보스급 존재인 십이 재앙들에게 공격대의 전력을 노출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놈들이 경계를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가루다의 떨떠름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조금 속이기는 했는데…. 그래도 80%의 진실은 섞어야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당한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었거든요.]
“…….”
[그리고 주인, 아니 GGW 공격대의 전력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미노스 녀석이 당장 인간 영웅들의 전력을 업신여기고 우크라이나에서 사단을 일으킬 기세였다니까요?]
그녀의 이야기를 듣던 민국의 이마에 골이 파였다.
‘그건 많이 곤란하지.’
민국은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떠올렸다.
미노스의 꿈틀거림이 살짝 잠잠해졌다고는 하지만 혹시나 하는 긴장감 속에 세계의 시선이 우크라이나에 집중되고 있었다.
그 증거로 우크라이나에는 두 개의 쉴더급 공격대와 함께 다수의 공격대가 긴장감 속에 배치되고 있었다.
만약 그런 상황에서 미노스가 난리를 부리기 시작하면? 호전적인 성격의 러시아를 중심으로 어둠 괴물과의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될 거라는 건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전쟁이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대한민국과 자신들에게까지 크게 영향이 미칠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전쟁에서 안전한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타냐가 러시아에 있다.’
공격대의 부 탱커인 타냐 루스는 오랜만에 가족들도 볼 겸 현재 고향에 가 있었다.
그런 타냐의 고향은 러시아의 브란스크. 슬쩍 영웅 패드를 사용해서 검색을 하니 브란스크에 대한 설명과 도시의 위치가 바로 나타났다.
러시아 서부에 위치한 인구 17만의 조그마한 도시.
그리고 하필이면 우크라이나와는 불과 100Km 밖에 떨어지지 않아 있었다. 만약 미노스와 전면전이 벌어지기 시작하면 브란스크가 영향권에 들어갈 건 불을 보듯 뻔했다.
직접적인 공세 지역은 아니더라도 길 잃은 몬스터 무리들이 도시들을 덮치는 건 역사적으로도 빈번히 있었던 일이니까.
‘러시아 군대의 화력과 타냐의 실력을 생각하면….’
웬만한 위험은 혼자서도 헤쳐 나갈 수 있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아무튼 지금까지 잠잠했던 미노스가 갑자기 활동을 시작하려는 이유를 알아야 했다. 만약 미노스 녀석이 전면전을 시작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민국은 당장 타냐를 호출할 생각이었다.
그래야만 녀석의 앞을 막을 수 있었다.
‘아직 십이 재앙을 상대하기까지는 장비 수준이 부족한 것 같지만….’
레전드리 클래스의 능력을 적재적소에 사용하고 부활석을 대량으로 때려 박다 보면 해결책이 나오긴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미노스는 무슨 생각으로 지금 활동을 시작하려는 거지? 설마 전면전을 생각하고 있는 건가?”
[어….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얘기가 조금 많이 길어질 텐데요. 새의 탑까지 한 번 오실래요?]
“엉? 지금 거기까지 언제 가? 그냥 여기서 이야기 해. 어차피 전화비도 안 나오잖아?”
큐우♡가 SEX 코인을 사용해서 특별히 제작한 휴대폰인 터라 통신료가 나올 리 없었다.
[으…….]
이어서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시무룩한 목소리에 민국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가루다의 설명이 이어지자 민국은 그에 귀를 기울였다.
[공허 종족이 어째서 지구를 공격하는지는 알고 계시죠?]
“어느 정도는.”
민국은 가루다가 목숨을 살려달라고 구걸했을 때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공허의 종족이 지구를 침입한 이유는 공허라는 존재의 명령도 있었지만, 위험한 공허 세계에서 벗어나 안전한 지구에 자신의 터전을 마력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십이 재앙이라 불리는 괴물들은 공허에서 넘어온 종족의 대표 격인 이들이었다.
[그런데 위험한 공허 세계에서 호전적으로 생활하던 공허 세력들이 지구에서 만났다고 갑자기 사이가 좋아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요? 마주치기만 하면 공격부터 하는 놈들인데?]
“그렇게나 서로 사이가 안 좋아?”
[네. 아무것도 없는 공허에서는 서로를 잡아먹어야지만 종족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십이 재앙을 필두로 하는 공허 세력 놈들이 지구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인가? 평화를 만끽하기 위해?
[지구로 와서 서로의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손을 잡거나 데면데면하게 지내고는 있지만…. 아무튼 사이가 좋은 건 절대로 아니라는 거죠.]
지구에는 빠르게 그리고 강력하게 성장할 수 있는 영웅이라는 존재들이 있으니…. 십이 재앙들끼리 일종의 전략적인 협력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서로 정확히 땅을 나누면 너희들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아? 십이 재앙의 세력권을 생각하면 얼추 비슷한 것 같은데?”
[그럴 리가요. 같은 종족이라고 해도 종족 특성에 따라 세력권을 굉장히 넓게 가져가야하는 이들이 있어요. 그에 반해 대지의 지력을 급속도로 소모시켜 유목민처럼 움직여야 하는 녀석들도 있고요. 결국 공평하게 지구의 땅을 나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죠.]
“너희 슈가빈들은?”
문득 그런 궁금증이 들어서 물었다.
[…슈가빈은 해안가 절벽만 있으면 되요.]
“그런데 왜 라오스에 터를 잡은 거지?”
[원래는 베트남의 해안 도시인 하이퐁을 터전으로 삼으려고 했는데…. 리바이어선 녀석이 자꾸 공격을 해서요. 어쩔 수 없이 내륙으로 피신을 한 거죠.]
참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종족인 모양이었다. 그러니 목숨만이라도 살려달라고 자신에게 구걸을 했겠지만.
아무튼 가루다의 계속된 설명의 이하면 카우킹의 미노스가 유목민처럼 돌아다니는 종족이라고 했다. 종족을 번식하는데 있어 땅의 지력을 많이 소모하는….
‘하지만 쉽지 않을 텐데?’
민국은 미노스의 위치를 떠올렸다.
그가 자리를 잡은 우크라이나는 동쪽으로는 러시아, 서쪽으로는 독일과 폴란드 그리고 남쪽으로는 터키라는 영웅 전력이 강력한 국가들의 도움을 받고 있는 나라였다.
아무리 미노스 녀석이 강력하다 하더라도 영웅 전력이 상위권에 속해 있는 나라들과 동시에 전쟁을 벌인다면 결코 무시못할 피해가 발생할 터였다.
일종의 양패구상이 나올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렇다 해도 결국 승자는 미노스겠지.’
그건 안보나마나 뻔했다.
【S – 5】 난이도 수준의 던전에서 등장하는 최종 네임드. 일종의 10등급 이상으로 추정되는 십이 재앙을 때려잡는 건 GGW를 제외한 다른 공격대의 전력으로는 굉장히 힘든 일이니까. 민국도 별로 자신이 없었다.
‘기어 스코어도 전술적인 기량도 모든 게 모자라.’
인류 최후의 보루라는 쉴더급 공격대라 해도 【S - 9】 난이도조차 고전을 하는 판국이니…. 그 이상의 던전은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그나마 화이트 하우스나 텐센트, PLA, 붉은 전차와 같은 쉴더급 중에서도 베테랑에 속하는 이들 정도는 되어야 십이 재앙의 심복이라 불리는 놈들과도 한 판 붙어볼 만 할 것 같았다.
그렇다 해도 승리는 장담할 수 없겠지만. 아무튼 그 이하의 쉴더급은 일단 탈락. 같은 쉴더급이라 해도 미국의 골덴 이글과 같은 전력이 떨어지는 곳은 일반적인 【S - 9】 난이도의 던전도 공략이 힘들어 보였다.
아무튼 주변 상황을 생각하면 미노스가 우크라이나에서 세력을 넓히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동유럽에 배치된 전력도 전력이지만 그곳에서 문제가 일어나면 서유럽과 영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거기에 전쟁이 크게 확산되기라도 하면 GGW를 포함한 다른 공격대들이 우크라이나로 호출될 건 안 봐도 뻔한 일.
민국의 이야기를 들은 가루다가 말을 이었다.
[네, 황소 녀석도 그걸 고민하더라고요. 괜히 혼자서 싸워봤자 결국 다른 놈들만 도와주는 셈이니까요.]
“그래서 미노스 놈은 어떻게 움직이기로 했지?”
드디어 나오는 본론에 민국은 휴대폰에 귀를 기울였다.
[어…. 본거지를 몰래 옮기기로 했어요.]
“…뭐?”
예상치 못한 대답. 멍한 표정을 지은 민국이 다시 한 번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본거지를 몰래 옮긴다니?”
[지금 있는 자리는 영 좋지 않은 자리니 세력을 넓히기 편한 곳으로요. 아프리카처럼 자신들의 활동을 제지하지 못하는 땅으로 옮기라도 했죠.]
“…영웅 전력이 낮은 곳으로 이동하라는 말이로군.?”
[네. 그래서 인도를 추천해줬어요.]
“인도?”
가루다의 말에 민국은 바로 인도의 영웅 및 군사 전력을 떠올렸다.
확실히 동유럽에 비하면 인도는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는 지역이었다. 영웅들의 숫자는 적지 않은 편이지만 전력의 질이 조금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인도에도 비수뉴라는 쉴더급 공격대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비수뉴는 미국의 골덴 이글과 마찬가지로 이름만 쉴더급에 불과한 공격대였다. 그 증거로 비수뉴는 【S】 난이도 이상의 던전을 공략한 기록이 굉장히 적었다. 【A】 난이도의 던전에서는 패왕처럼 군림하고 있었지만….
그 뿐 아니라 인도는 땅도 넓을 뿐더러 주변에 영웅 전력이 강력한 국가들이 한 곳도 없었다.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중동은 말 할 것도 없을 뿐더러 가루다로 인해 엉망이 되어버린 동남아시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태국이 있다지만….’
러시아를 포함한 유럽의 전력과 비교하기엔 민망한 수준이었다.
확실히 어둠 괴물이 본인의 세력을 넓히는 데는 나쁘지 않은 장소라는 생각이 들 법했다. 게다가 인도는 카우킹이 유목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땅도 넓었다.
물론, 의문이 없는 건 아니었다.
“왜 하필 인도지? 인도에는 메를린이 있잖아?”
인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북동부의 상업도시 암라바티.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도시인 암라바티에는 일반적인 던전과는 궤를 달리하는 크기를 자랑하는 커다란 던전이 존재했다.
인류의 주적이자 어둠 괴물의 지휘관 중 하나인 메를린의 던전이었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전쟁에서 인도인의 반을 잡아먹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큰 희생을 불러온 어둠 괴물의 지휘관을 떠올리며 민국은 얼굴을 찌푸렸다.
‘설마 손을 잡지는 않겠지?’
십이 재앙이라는 괴물이 같은 장소에 머무르고 있다면 따로따로 처리하기가 까다로울 것 같다는 생각부터 든 까닭이었다.
[아, 그거요? 당연히 다 생각이 있어서 한 추천이죠.]
“그게 무슨 말이지?”
[미노스는 1차대전쟁 이후 자신의 보금자리에 머리만 박고 있던 까닭에 현재의 지구상황에는 조금 어둡거든요. 메를린이 인도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도 모를 걸요? 그러니까 인도의 위치를 보며 좋아했겠지만….]
“그런데?”
[미노스의 카우킹과 메를린의 무플런은 공허에서도 원수지간으로 유명한 종족이에요. 얼굴만 마주쳐도 종족 전쟁이 벌어질 정도죠.]
이어지는 가루다의 대답에 민국은 절로 헛웃음이 흘러 나왔다. 이 녀석, 그걸 노리고 미노스에게 인도를 추천한 게 틀림없었다.
[놈들의 세력이 약해지면 약해질수록 저에게는 좋은 일이니까요. 이것이야 말로 이이제이!]
“오, 그런 말도 쓸 줄 알아?”
[이래봬도 제가 지구 생활 60년이 넘었는데요, 저만큼 인간들과 티격태격한 십이 재앙도 없을 걸요? 문물교류도 조금 많이 했죠.]
“교류라는 단어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
어둠 괴물이 인간들에게 도움줬던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뭐, 그렇다고요.]
너스레를 떠는 가루다.
실제로 어떤 결과가 이어질지는 미지수였지만 아무튼 이러한 가루다의 행동은 마음에 쏙 들었다. 새의 탑에서 가루다를 죽이지 않고 살려두기를 잘했다는 생각이었다.
‘팀원들을 잠깐 소집해야겠네.’
새의 탑 공략 이후 GGW 팀원들은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가루다의 활약을 자신만 알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팀원들 중에서는 가루다에 대해 안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았으니. 그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가루다의 쓸모성에 대해 이야기를 해줘야했다.
그래야만 그녀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었다. 그렇게 민국이 앞으로의 할 일을 생각하는 도중 핸드폰 너머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약 미노스와 메를린이 한바탕 벌이게 되면…. 그건 전부 제 공로죠?]
“그래, 뭔가 필요한 거라도 있어?”
[네, 네! 정액이요! 정액!]
“……?”
기다렸다는 듯 들려오는 가루다의 대답.
민국은 고개를 갸웃했다. 가루다가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이해를 해보려고 노력을 해봤는데, 자신의 상식으로 생각을 이어나가는 건 뭔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 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어, 그러니까 민국님께서 새의 탑으로 오셔서 저에게 정액을…….]
“…그러니까 외롭다는 거야?”
어둠 괴물들도 발정기가 있나? 이어서 가루다가 말했다.
[그렇기도 한데…. 민국님의 정에는 강력한 생명의 기운들이 담겨 있어서 제가 그걸 공허 마력으로 치환해 힘도 회복하고 탑도 수리할 수 있거든요.]
가루다의 대답에 민국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자신의 정액에 그런 효능이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가루다의 안달난 목소리를 들으며 민국은 조만간 새의 탑을 방문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일단은 인도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봐야 할 것 같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음 화는 내일 올라감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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