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307화 (307/486)

EP.307 인도의 고민

“와, 진짜로 갔네? 역시 카우킹 애들이 뚝심 있고 우직하다니까?”

거울 모양의 통신구로 충돌 소식을 들은 가루다는 박수를 치며 감탄을 터뜨렸다.

혹시나 싶어서 던져본 말이었는데, 자신의 말대로 이렇게나 완벽히 움직이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우직하지만 멍청한 놈들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쓰읍, 인도 일 때문에 여기도 인간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재수 없으면 인간들의 목표가 될 수도 있겠어.]

인간들과 전쟁을 벌이면서도 자신들의 세력을 구축하느라 여념이 없었던 다른 공허 종족들도 움직임을 멈추고 미노스와 메를린의 충돌에 촉각을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모든 공허 종족이 충돌에 큰 관심을 보이는 건 아니었다.

넓은 대양과 깊은 심해를 차지하고 있는 태평양의 리바이어선을 포함해 이미 자신들의 영역을 구축하는데 성공한 쉬다인, 플래스트와 같은 놈들은 인도의 충돌에 별 관심이 없는 모습이었다.

“속으로는 신나게 박수를 치고 있겠지? 이왕 부딪친 거 서로 뒤져라하고?”

하지만 그런 이들의 속셈을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그래야만 전쟁이 끝난 이후의 라이벌이 하나 사라지는 셈일 테니.

아무튼 인간들의 포위 전선에 미노스 녀석이 받고 있었던 압박감은 그녀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던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미노스가 이렇게나 빠르게 인도에 터전을 잡을 리 없었다. 그리고 다행이기도 했다.

‘아무리 카우킹과 무플런의 사이가 좋지 않더라 하더라도 메를린이 있다는 걸 알면 미노스도 굳이 인도에 터전을 잡으려고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공허 세계라면 모를까 지구에서의 전력 손실은 본인들에게 있어 엄청난 손해.

굳이 부딪힐 이유가 없었다. 더욱이 카우킹과 무플런의 세력은 서로의 우위를 쉽게 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설마 나, 카우킹 애들에게 신뢰받고 있었나?”

순간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인도 쪽 화면 틀어봐.”

쪼오옥!

예전의 위용을 자랑하는 대전의 옥좌에 비스듬히 누운 가루다는 공허 마력으로 만들어낸 콜라를 마시며 커다란 통신 거울을 바라봤다.

미노스에게 받은 1억 5천만 크론의 공허 마력으로 가루다는 무너지기 일보직전이었던 새의 탑을 멀쩡하게 수리를 할 수 있었다. 엉망이었던 하층과 중층도 현재는 완벽히 수리가 끝나 있었고, 각 층을 지키는 보스도 불러내었다.

그 때문에 새의 탑을 감시하고 있던 라오스가 기겁을 하며 뒤집어지기는 했지만, 새의 탑에서 떠날 생각이 없는 가루다가 그런 인간들의 반응에 신경을 쓸 리 없었다.

“크…. 역시 구경은 불 구경과 싸움 구경이 최고라니까?”

인도의 상황을 비춰주고 있는 그녀의 통신 거울에는 미노스와 메를린을 따르는 어둠 괴물들의 싸움이 적나라하게 나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인간 영웅 및 군대의 모습도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갑자기 등장한 불청객에 시선이 돌아간 어둠 괴물들의 집중 공격에 인간들의 부대 몇 개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고 나니 지금은 움직임이 조용한 모습이었다.

보아하니 괴물들끼리 싸우는 것을 지켜보며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려는 것 같았지만….

“너희들이 아무리 지켜 본다한들 충돌의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있겠어?”

때려 맞출 수는 있겠지만, 확신은 할 수 없을 게 분명했다.

70년 전쟁사에서 공허 종족끼리의 충돌은 이번이 두 번에 불과했으니까. 심지어 첫 충돌은 대양의 심해에서 일어난 일이라 인간들이 알 수도 없었다.

그렇게 팝콘과 콜라를 먹으며 괴물 대전을 보고 있을 때였다.

[뭐야? 멀쩡하네? 히히힝!]

“……씨발.”

영상이 전환되면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가루다의 얼굴이 볼썽사납게 일그러졌다.

[오랜만에 만나자마자 욕이라니, 크흥! 이거 너무한 것 아닌가?]

목소리의 주인공은 한 때 그녀와 비밀 동맹을 맺고 있었던 중국의 바이콘이었다.

“그렇다면 나한테 좋은 소리를 들을 줄 알았어? 이 배신자 새끼야? 진즉에 통신 차단을 했어야 했는데, 존재감이 없어서 까먹고 있었네?”

바이콘을 바라보는 가루다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중요한 순간에 자신의 뒤통수를 때렸던 녀석이 당연히 곱게 보일 리 없었다. 덕분에 주인님을 만날 수 있기는 했지만….

아무튼 녀석은 나쁜 놈이었다. 그렇게 적대감을 풍기는 가루다에게 바이콘은 장난스러운 몸짓과 함께 말했다.

[에이, 우리 사이에 너무 화를 낼 필요는 없잖아? 나도 그 때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고.]

“…통신 끊는다.”

[어, 어? 잠깐만. 히히힝! 그 때 있었던 일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5천만 크론. 그러면 내 말을 들어줄 생각이 나겠지?]

통신구를 돌리려던 가루다가 손을 멈칫했다. 거부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마력이었다.

‘인간들과 전쟁을 치르면서 가난했던 건 나뿐이었나? 분명 지구 정복의 공헌도에 따라 차지할 수 있는 땅도 많아진다고 들은 것 같은데….’

미노스도 그렇고 이 놈도 그렇고.

‘아니면 우리 슈가빈이 약소 종족이니까 그런 걸지도.’

다들 몇 천만 크론씩 공허 마력을 턱턱 내놓는 거 보면 기분이 이상하고도 묘했다. 하지만 부럽지는 않았다. 자신은 진한 생명의 마력을 지닌 인간을 알고 있었으니까.

아무튼 잠깐 이야기를 듣는데 오천만 크론이라면 많이 남는 장사였다.

비스듬하게 누워있는 자세를 고쳐 앉은 가루다는 종이컵에 남아 있는 콜라를 한 모금 쪽 빨고는 거울의 바이콘을 바라보았다.

“할 이야기가 뭔데?”

[킁! 인도에서 벌어지는 일, 알고 있지?]

“…….”

설마 자신과 미노스의 일을 알고 있는 건가?

바이콘의 말에 가루다가 긴장어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가루다는 조용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시다시피 미노스하고 메를린이 붙었다. 공허 세계에서도 원수나 다름없는 둘이 붙었으니 이 싸움은 분명 금방 끝나지 않을 거야. 동의하지?]

“뭐…. 그렇겠지.”

가루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공허 세계에서도 두 종족은 몇 번이나 전쟁을 일으킨 바 있었으니까.

게다가 그녀가 알기로는 전전대 카우킹 족장은 무플런의 왕에게 그리고 전대 무플런의 왕은 카우킹 부족장에게 목숨을 잃은 사실도 있었다. 넓은 공허 세계를 진동시켰던 내용이었다.

때문에 이유를 불문하고 카우킹과 무플런은 한 하늘을 보고 살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설마 그 싸움에 끼려는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히히힝! 역사를 바꿀 커다란 변화는 무모함에서 시작되는 법이지.]

“…헛소리 말고. 나는 움직일 생각이 조금도 없어. 던전 브레이크 실패에 쉴더급 공격대 때문에 소멸할 뻔도 했다고.”

게다가 인도와는 조금도 엮이고 싶지 않았다.

카우킹의 미노스가 자신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리 없을 테니까.

인도에서 메를린의 존재를 눈치 챈 미노스의 커다란 분노에 무플런이 자리를 잡고 있을 줄을 몰랐다는 말로 어떻게든 무마시켰던 게 불과 며칠 전의 일이었다.

때문에 써야 할 곳이 많았던 남은 공허 마력도 죄다 돌려주기까지 했다.

그런 상황에서 미노스가 인도에서 자신의 존재를 발견한다? 화가 난 녀석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무플런을 상대하는 것 만큼이나 자신을 죽이려 들 게 분명했다.

[푸르릉! 그래도 슈가빈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이 어디 가는 건 아니지. 아무튼 이건 우리의 세력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거야, 뭐…. 그렇겠지?”

가루다는 말끝을 흐렸다.

녀석이 무슨 계획을 획책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 계획을 알아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만 주인 아니 남자 영웅인 민국에게 상을 받을 수 있었다. 덤으로 생명의 마력도.

‘…휴.’

슈가빈의 여왕이 인간 따위에게 무릎을 꿇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밤마다 잠이 들 때면 인간의 거대한 물건이 생각이 나 미칠 것 같았다.

잠깐 분위기가 바뀐 가루다의 모습에 바이콘은 그녀가 자신의 계획에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생각을 하며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소와 양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둘 다 한 세력 하는 놈들이니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겠지. 그건 인정하지?]

“그런데?”

[히힝! 놈들의 충돌은 분명 이 지구에 어떻게든 영향을 끼칠게 틀림없다. 인간들이 말하는 오염된 대지가 생겨나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지. 나는 그 점을 노릴 거다.]

“…어?”

바이콘이 하려는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가루다가 어리둥절해하며 되물었다.

“오염된 대지를 이용한다고? 어떻게?”

[인도에 오염된 대지가 생겨나면 오염된 대지에 기겁을 하는 인간들이 어떻게 반응을 하겠어?]

“확산현상을 막으려고 들겠지?”

[푸르릉! 그래! 쉴더급이라 불리는 녀석들도 전부 인도로 몰려가겠지? 그 때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키는 거다.]

“오….”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바이콘을 보며 가루다는 탄성을 터뜨렸다. 얼핏 들어도 제법 괜찮아 보이는 계획이었다.

[게다가 이번 던전 브레이크는 청더시에서 일으키지 않을 거야. 청더의 움직임을 주목하는 인간들이 적지 않으니까.]

“그러면?”

[인간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 서쪽의 모래지대에서 브레이크를 시작할 거다. 히히힝. 인도의 충돌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을 테니 인간들이 사막의 움직임을 눈치를 챌 때면 이미 때는 늦어있겠지.]

“…….”

가루다는 살짝 눈을 감았다 떴다.

확실히 바이콘의 계획대로 진행이 된다면, 아프리카처럼 아시아에도 공허 세력이 확실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게 분명해 보였다. GGW 공격대의 전력이 대단하다 하더라도 지구에 완벽하게 구축된 공허 세력을 상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가루다가 천천히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세력을 구축하는 것도 아니고 보아하니 들러리가 되어 달라는 말 같은데…. 아시다시피 공짜로 도와줄 수는 없잖아?”

[공허 마력을 지원해줄게. 인도처럼 너도 베트남에서 시선을 끌어줬으면 좋겠군. 크흥! 이왕이면 넓은 범위로 말이지.]

“그러니까…. 그 마력을 사용해서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켜 달라?”

[그러면 좋겠지만, 그 정도 수준의 마력은 나도 지원해 줄 수 없거든? 그냥 아시아의 쉴더급 공격대 한 곳 정도의 시선을 붙잡을 수 있는 정도면 좋을 것 같아. 이왕이면….]

“GGW의 시선을 잡아 달라는 거겠지?”

[그래. 가장 최근에 새의 탑을 공략했다가 실패한 녀석들이니 다시 한 번 공략 기회를 잡으려고 하지 않겠어? 히힝!]

자신의 계획에 관심을 보인다고 생각한 것일까?

바이콘은 신이 난 계속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고심과 고심을 거듭하는 모습을 보이던 가루다가 바이콘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녀의 붉은색 눈동자가 선명하게 반짝였다.

“그래서 공허 마력은 얼마나 지원해줄 건데?”

* * *

서울 공항에서 라오스의 비엔티안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일주일에 두 편이 있다.

이 비행기를 이용하는 이용객들은 대부분 동남아 지역에 업무 차 방문을 하는 직장인들이었다. 이 외에도 중소 클랜 소속의 영웅들도 비엔티안행 비행기를 이용했다.

10대 클랜을 필두로 던전 공략이 대부분 안정화가 된 국내에서는 신생 클랜들이 마력의 결정 수급처를 뚫기가 힘들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해외에서 던전을 공략해 스펙 업을 하고 마력을 결정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원정을 떠나는 영웅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

그렇게 평소에는 탑승객수가 많지 않은 조용한 비행기지만 오늘 비엔티안으로 향하는 M7330 - 401 편은 뭐라 설명하기 힘든 열띤 분위기가 감돌도 있었다.

1등석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한 남자 때문이었다.

“저, 정말이야?”

“그래. 본인이 확실하다니까?”

“그냥 사업차 동남아시아를 방문하는 남자인 줄 알았는데….”

비행기가 이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복을 입은 스튜어디스들이 소란을 떨었다.

그럴 만도 한 게 현재 그녀들 사이에서 소란이 된 주인공은 대한민국의 영웅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로 알려진 한민국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민국은.

‘바이콘도 움직인다….’

제법 큰일이라며 호들갑을 떠는 가루다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라오스로 향하고 있었다. 겸사겸사 큰일을 해낸 가루다에게 상도 줄 겸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참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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