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08 인도의 고민
인천에서 비엔티안으로 가는 비행은 보통 다섯 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그러나 비엔티안 행은 평균 여섯 시간이 넘는 장거리 비행이 되곤 했는데, 이는 어둠 괴물이 나타날 경우 항로를 조정해야하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라오스에는 새의 탑이 존재해 비행 괴물의 출현이 잦은 편이기도 했다. 한창 던전 브레이크가 터졌을 때는 군용기를 제외한 민간 항공기는 그쪽 영공을 지나다닐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GGW 공격대에게 교육이라도 당한 모양인지 그 이후로는 비행 괴물의 출현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아무튼 혹시 모를 공격을 피해 지금이야 베트남 남쪽으로 항로를 빙 둘러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만약 어둠 괴물이 나타날 경우 대응할 만한 수단이 여객기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었다. 승객 중에 실력 있는 영웅이 탑승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백 퍼센트 사망이었으니까.
그런 면에서 민국이 탄 비행기는 괴물의 공격에서 안전한 비행기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탑승 영웅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는 노릇. M7330 - 401 편은 시간은 걸리지만 안전한 항로로 비행하고 있었다.
‘바이콘이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킬 장소는 고비 사막.’
가루다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민국은 한숨을 쉬었다.
고비 사막은 면적이 130만 제곱킬로미터가 넘는 거대한 암석지대였다.
만약 바이콘이 고비 사막에서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키면 힘겨운 전투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만약 브레이크 시작부터 모든 전력을 집중시켜 공세를 취할 수 있다면 일이 쉬워질 수 있겠지만, 지금은 전 세계의 시선은 인도로 향해 있었다.
게다가 고비 사막에는 영웅들이 오랫동안 던전 공략을 할 수 있는 기반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영웅들도 먹고는 살아야하니.’
보급도 한계가 있을 터. 결국 고비 사막의 던전 브레이크는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또한 영리하게도 바이콘은 인도 뿐 아니라 가루다에게도 손을 내밀어 베트남에서도 시선을 끌어달라고 요청을 했다.
물론, 가루다는 바이콘이 보낸 공허 마력을 날름 먹어치울 생각으로 보이지만.
‘만약 바이콘의 의도대로 가루다가 움직였다면…….’
아프리카에 이어 내몽골도 어둠 괴물의 손에 넘어갔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았다.
그리고 바이콘은 내몽골을 중심으로 북쪽의 바이칼 호스로 진격 러시아의 광활한 삼림을 손에 넣었을 터였다.
‘그렇게 되면 전선이 엄청나게 넓어지겠는데? 그러면 러시아는….’
발등에 불이 떨어지다 못해 집에 불이 붙은 모양새가 될 터였다.
바이칼 호수 근처에 있는 러시아의 도시 이르크추크만 하더라도 40만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니까. 중국도 난리가 나는 건 마찬가지.
청더시를 중심으로 바이콘의 포위망을 구성한 상황에서 북부 지역이 전부 위험지역으로 변해버리기 때문이었다. 과거 유목민들의 침입에는 고비 사막이 천해의 요새가 되어주었다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없었다.
몽골쪽에서 넘어오는 괴물들이 본토로 밀려들어올 건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거 인도 쪽보다 중국이 더 큰 일이 난 거 아니야…?’
민국이 그렇게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상하며 해결책을 고심하던 중이었다.
주위가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잠이 든 승객들을 위해 승무원들이 조명을 끄는 것 같았다.
‘오후 11시 출발 비행기였던가?’
티켓을 확인하니 23시 05분 출발이었다. 탑승객들이 피곤할 만한 시간이었다.
비행기의 전체 객석 중 네 자리밖에 되지 않은 일등석은 자신이 앉은 곳을 제외하면 전부 불이 꺼져 있었다.
조금의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탑승한 승객 자체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 때였다.
“소등해 드릴까요?”
흰색과 푸른색이 섞인 항공사 제복을 입은 미녀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민국이 일상생활에서 쉽사리 볼 수 있는 표정. 자신의 환심을 사려는 여성들이 짓는 미소였다.
가슴의 명찰을 확인하니 이정인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마력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일반인. 그러나 칠흑색 머리카락이 제법 잘 어울리는 미녀였다. 관리를 열심히 하는 모양인지 제복을 통해 드러나는 몸매도 나쁘지 않았다.
‘현실이었으면 남자 좀 많이 꼬였겠는데?’
거기에 눈매가 살짝 위로 올라간 것이 매력적으로 보이면서도 색기까지 느껴졌다.
아무래도 퍼스트 클래인 만큼 외모가 빼어난 여성을 배치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인기가 가장 높은 객실 승무원은 스튜어디스가 아닌 스튜어드겠지만.
굳이 제복을 입은 남자의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빛만 약하게 해주세요.”
“네, 그러면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잠깐 고민을 했는지 뒤늦게 나온 민국의 대답에 정인은 측면의 불빛을 조절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매번 하는 간단한 조작이었지만 오늘만큼 긴장이 되는 건 처음이었다. 사실 이 조작을 위해 그녀는 퍼스트 클래스를 담당하는 동기 한 명과 몇 번의 가위바위보를 해야 했었다.
그리고 승리자는 자신이었고.
몇 초가 걸리지 않는 금방 끝날 일이었지만, 정인은 느릿느릿하게 신중한 것처럼 좌석의 불빛을 조절하면서 곁눈질로 민국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귀엽네.’
당연히 그런 정인의 행동을 민국이 모를 리 없었다.
그래도 스튜어디스라는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는 모양인지 섹스어필은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듣기로는 전화번호를 준다거나 하는 여자들도 적지 않다고 하는데…. 비행기를 타면서 그런 경험을 했던 적은 없는 것 같았다.
눈앞의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채 정인은 오로지 민국의 얼굴에 푹 빠져 있었다.
두근두근.
자신의 심장이 이렇게까지 뛰는 건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것 같았다.
새하얀 피부에 오똑한 코, 아름다운 호를 그리는 입술과 빠져들 것만 같은 눈동자.
‘…진짜 잘생겼다.’
바라만 봐도 배가 부르고 행복하다는 말이 이러한 경험에서 나온 말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 남자의 매력은 잘생긴 외모만이 아니었다. 인류를 위해 어둠 괴물과 전투를 치르는 위험을 무릅쓰는 숭고한 희생정신, 국내 공격대 최초로 쉴더급 공격대라는 타
이틀을 받은 GGW 공격대의 공대장.
외모면 외모, 성격이면 성격, 능력이면 능력.
그 어느 하나도 빠지지 않는다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남자가 바로 한민국이었다.
게다가 민국이 401편에 탑승한 이유도 갑작스럽게 무언가가 변화된 새의 탑의 동태와 위험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와이프가 두 명이 있다고 했었지?’
완벽한 이 남자를 세계의 대단한 여자들이 가만히 둘 리 만무.
민국은 어린 나이임에도 두 번의 결혼을 하면서 세계를 뜨겁게 만들었던 주인공이었다. 나이를 생각하면 굉장히 일찍 결혼한 케이스에 속했다.
민국에게 사랑을 받는 행운의 주인공은 정인도 잘 알고 있는 유명인들인 김태연과 강채영.
태연은 대한민국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로즈 그룹의 후계자이자 미래의 회장이었고, 강채영은 대한민국의 레전드라 불리는 영웅으로 십 년이 넘도록 한국의 안보를 지켰던 국민 영웅이었다.
‘그런 이들이나 되니….’
한민국처럼 잘생긴 남자와 결혼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성 영웅들에게 밀려 일반 남자조차 만나지 못하는 자신과 다르게 말이다.
‘제길.’
갑자기 살짝 화가 치밀어 올랐다.
김태연과 강채영이 부러운 것도 부러운 것이지만 한민국을 보니 두 달 전에 헤어진 남자친구가 떠오른 탓이었다.
몸도 마음도 돈도 다줬는데…. 오랜 시간동안 비행을 해야 하는 직업이 문제였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동안 결국 남자 친구는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났고, 정인은 아무것도 못하고 비참하게 차였다.
자신의 남자를 빼앗은 상대방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수도 없었다. 하필이면 상대가 여성 영웅이기 때문이었다.
‘기승전 결국 영웅이지, 씨발.’
가소롭다는 듯 자신을 내려다보던 미녀의 모습이 생각나자 정인은 자신도 모르게 부득 이를 갈았다.
아무리 외모를 가꾸고 능력을 키워도 결국 남자가 선택하는 건 여성 영웅이었다. 마력을 각성한 그녀들은 쉽게 늙지 않으며, 많은 돈을 버는 고소득자였다.
그 뿐인가?
어둠 괴물이라는 부득이한 상황에서 남자를 지켜줄 수도 있으니 일반인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남성 영웅, 남성, 여성 영웅, 남성들이 키우는 개 그리고 그보다 못한 일반 여성. 그것이 이 사회의 주를 이루는 일반 여성들의 위치였다.
“큭, 큭큭.”
그 때 정인의 귀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민국이 자신을 보며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 순간 자신이 했던 행동을 떠올린 정인이 얼굴을 화악 붉혔다.
‘재미있는 사람이네?’
불빛을 조절하며 힐끔힐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거는 매번 느끼던 것이라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다른 이들이 보면 무례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미녀를 훔쳐보는 남자들의 모습처럼 이 세계는 자신이 미녀와 비슷한 위치에 있었으니까.
게다가 얼굴을 훔쳐보는 이정인의 외모도 나쁘지 않았고.
그런데 자신을 바라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얼굴 표정이 자유자재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뭐지?’
그렇게 좌절, 분노, 해탈의 감정이 연이어 나타나더니 자그맣게 욕설까지 내뱉고 있었다. 자신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황당하면서도 웃긴 상황이었다.
“죄, 죄, 죄…. 죄송합니다.”
그런 민국의 반응에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정인이 화들짝 놀라며 허리를 꺾었다.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기분이었다.
‘미쳤어, 미쳤어!’
일반 승객을 상대했어도 문제가 되었을 일인데 무려 VVIP 에게 엄청난 실례를 저지른 것이다.
친구들이 종종 너는 생각이 얼굴과 행동에서 드러난다고 이야기했을 때 웃으며 넘기지 말 것을. 그런 습관 때문에 인생이 나락으로 추락하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렇게 물에 빠진 생쥐처럼 벌벌 떠는 정인을 보며 민국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상대가 스튜어드라면 모를까 자신은 여자 그것도 미녀에게 아주 관대한 남성이었다.
게다가 야심한 밤.
남자들의 로망이라는 스튜어디스를 상대로 슬쩍 작업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도 없잖아 있었다. 홀로 라오스로 향하는 일정인데다가 전문직 여성에게 자신의 존재감이 얼마나 통할 지 궁금하기도 했고.
“지금 급하게 할 일 있어요?”
“…네? 아, 아니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러면 실수는 용서해 줄 테니, 우리 잠깐 대화라도 할래요? 마침 심심했는데.”
“네? 네, 네?”
예상치 못한 민국의 제안에 정인은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바깥으로 고개를 돌렸다. 휴식을 취하러 간 모양인지 담당 동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비행에서 자신이 담당하는 퍼스트 클래스에 탑승한 승객은 한민국 혼자.
비즈니스나 이코노미는 다른 이들이 담당하기 때문에 자신이 나설 필요가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정인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문제가 있는 행동이었지만, 세계에서 가장 잘생긴 영웅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일반인에 불과한 나에게는 평생 찾아오지 않을 시간.’
하지만 스튜어디스가 퍼스트 클래스 석에 앉을 수는 없으니 그녀는 서서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타인이 보기에도 크게 이상하지 않은 자세였다.
“비행 일이 많이 힘든가요?”
“아, 아니요?”
“조금 전의 표정 변화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마음고생이 엄청 심한 것처럼 보였는데요?”
“아, 아으…. 그, 그게 갑자기 전 남자친구 생각이 나서요.”
“남자친구? 저처럼 잘생겼나 봐요?”
“네? 그렇게까지 잘생기지는 않았는데…. 아, 아, 아! 영웅님 말고 제 전 남자친구의 외모가….”
반쯤 얼이 빠진 얼굴로 정인이 옹알거리기 시작했다.
진짜 미남 앞에서는 말도 잘 안 나온다고 하더니…. 정말이었다.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인은 자신의 머리가 엉망이 된 것만 같았다.
방송을 통해 볼 수 있었던 민국의 이미지는 자신의 일에 타협하지 않는 날카로운 느낌의 남자였다.
‘금쪽같은 내 영웅’에서 무섭게 신지민을 가르쳤던 민국의 모습은 아직도 화제였다. 그러나 지금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민국은 유머러스하면서도 부드러운 남자였다.
게다가 자신의 실수에도 관대하게 넘어가는 대인배적인 모습도 보였다.
그래서일까?
정인은 처음 만난 남자를 상대로 별의별 이야기를 다 꺼냈다. 스튜어디스로 일하면서 경험하는 고충은 물론이고, 일반 여성이 받는 힘든 일 이어서 전남친의 일까지 말이다.
“진짜 연애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같아요. 다들 여자 영웅만 좋아하면 나 같은 일반인은 어디서 남자를 만나라고….”
짙게 푸념을 하는 정인을 보며 민국은 천천히 마력을 퍼뜨렸다. 그리고는 주변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이코노미 석이 있는 비행기의 후방에서는 움직임이 종종 느껴졌지만 퍼스트 클래스라 그런지 이 쪽으로 접근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남자들이 다 눈이 나쁜가 보네요. 이런 미인을 그냥 두다니.”
“하, 하하.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어요. 진짜 남자의 관심이 고프다니까요?”
혹시 모를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신한 자세를 유지하는 모습.
민국은 슬슬 그 벽을 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도중이었다. 민국의 손이 자연스레 정인의 허벅지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음 연재는 모르겠고...
일단 올리고 봅니다.
표지를 바꾸고 싶은데 400픽셀로 설정해도 자꾸 픽셀을 400으로 하라는 메시지만 떠서 화딱지 나서 안하는 중.
대체 뭐가 문제지 ㅠㅠ
그나저나 노벨피아 작품들은 다들 표지가 바람직하네요. 저도 바람직한 표지를 구해야 하는데 당장은 의뢰 넣는것도 힘들어서...최대한 빨리 전용 표지로 제작을 해보겠습니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