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316화 (316/486)

EP.316 인도산 꿀

한국에서 인도까지의 비행은 생각 이상으로 길었다.

아무래도 위험한 영공을 멀리 돌아가기 때문으로 보였다. 그렇게 11시간의 비행 끝에 민국과 R’s 클랜의 일행들이 뭄바이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끼이익, 끼익!

A380의 거대한 동체를 지탱해주는 큼지막한 랜딩 기어와 활주로가 마찰하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멍하니 있던 이들이 하나, 둘씩 고개를 들어 올리는 모습이었다.

“으아아아…. 드디어 도착이다! 정말 지겨워 죽는 줄 알았네.”

세 시간 전부터 심심하다고 칭얼거리던 현아가 창밖을 보며 기지개를 켰다. 민국 역시 고개를 좌우로 꺾으며 몸을 풀었다. 그 역시 비행이 지루했던 건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굳은 몸을 풀던 도중이었다.

현아가 입고 있는 얇은 티 안으로 그녀의 봉긋한 가슴이 민국의 눈에 들어왔다. 비행을 하면서 사람들 몰래 몇 번이나 주물럭거렸던 가슴이었다.

홀로 새의 탑을 방문했을 때와는 달리 인도인 미녀 스튜어디스와의 뜨거운 인연은 아쉽게도 없었다.

“쩝.”

항공사에서 공격대의 여성 영웅들에게 잘 보이려고 했던 모양인지, 기내를 서비스하는 이들을 모두 스튜어디스가 아닌 스튜어드들로 구성한 까닭이었다.

아무튼 지금까지의 원정 중 가장 길었던 비행.

다들 좁은 공간에서 벗어나 땅에 내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조용했던 기내가 활기찬 분위기를 띄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착한 뭄바이 공항은 비행기가 거의 없이 한산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의외로 멀쩡한 모습이었다.

“막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질 줄 알았는데요?”

“그러면 정말 큰일이지. 게다가 전투가 벌어지면 항구와 공항은 최우선 보호 구역 중 하나라고.”

중국과 함께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인도.

이 곳 뭄바이만 하더라도 칠백만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는 까닭에 군인과 영웅들이 최선을 다해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만큼 뭄바이의 위치가 중요하기도 했고.

“처음 뵙겠습니다, GGW 공격대 여러분. 저는 시바 공격대의 공대장을 맡고 있는 라니 락슈미바이입니다.”

“시바 공격대의 딜러 알리아 라비입니다.”

“GGW 공격대의 한민국입니다.”

공항에 도착하자 두 명의 여성이 민국과 GGW 멤버들을 반겼다. 기존에 연락을 받았던 시바 공격대의 이들이었다.

인도의 전통 복장이라 할 수 있는 사리를 입은 라니 락슈미바이의 외모는 민국이 과거 던전 브레이크를 해결하던 도중 간단히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는 비수뉴 공격대의 영웅들이 떠오르게 만들었다.

‘그리고 현재 비슈누 친구들은….’

인도의 북부이자 수도인 델리, 정확히 말하면 델리 주도의 뉴델리 방어전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인도의 유일한 쉴더급 공격대인 까닭에 인도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수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외에도 민국은 정부 관계자들과 십여 명의 군인들과도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다들 인도를 도와주러 왔다는 사실 때문인지 온 몸에서 호의가 느껴졌다.

그렇게 자신들을 반겨주는 이들과 가볍게 대화를 나눴던 민국의 눈이 라니 락슈미바이에게 향했다.

“현재 인도르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두 시간 전, 어둠 괴물 무리의 공격이 있었지만 격퇴하는 데 성공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 외에 오염된 대지의 확산으로 인해 【S】 난이도 던전이 한 곳 더 생겨났다고 보고가 들어와 현재 사실 확인 중에 있습니다.”

무려 12시간에 가까운 비행을 했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로를 풀 생각도 없이 본인들이 맡을 예정인 임무 구역인 인도르에 대해 물어보는 민국의 행동에 라니 락슈미바이는 깜짝 놀라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자신이 보고받았던 내용들을 전부 이야기했다.

“그러면 【S】 난이도 던전이 총 열한 곳인가…?”

민국의 혼잣말에 락슈미바이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말로 【S】 난이도 던전이 다수 존재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인도르 근처에서만 【S】 난이도 던전이 열 곳 가량 존재했지, 인도 전역으로 따지면 【S】 난이도 던전은 현재 사실로 확인된 곳만 무려 백여 군데가 넘었다.

‘만약 임시 던전의 타이머가 길지 않았더라면 인도는 이미 몬스터들의 손에 지배당하고 있었겠지.’

아무튼 던전 타이머가 길다는 것.

이것이 인도인들이 자신들의 고향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였다.

물론 인도 내에서는 【S】 난이도의 처리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현재 세계에서 전투 능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GGW 공격대가 도착했으니 어떻게든 방법이 보일 것 같았다.

“팀장님, 출발 준비까지는 얼마나 걸리나요?”

민국이 다시 지원 팀장을 향해 물었다.

그녀는 과거의 던전 브레이크를 포함해 새의 탑 공략까지. GGW 공격대와 거의 2년 가까이 함께하고 있는 베테랑이었다.

“두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공대장님.”

그리고 공항 관계자와 몇 번의 대화를 하던 지원팀장이 바로 민국에게 보고했다.

준비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는 현재 A380 비행기에 실려 있던 R’s 클랜의 장비들이 하역 후, 다른 비행기로 옮겨지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뭄바이에서 인도르까지 거리가 제법 되었기에 다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할 예정이었다.

굳이 인도르로 곧장 가지 않고, 뭄바이를 들러야 했던 이유는 무플론의 세력이 광범위하게 자리 잡고 있는 인도의 동부를 비행기로 지나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서부 비행 역시 안전하지는 않았다.

때문에 민국과 GGW 공격대는 원래 31 기갑사단과 합류, 160번 도로를 타고 북상할 계획이었다. 그러면서 군데군데 자리를 잡은 【S】 난이도의 던전도 처리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문제가 생겼지.’

인도의 동북부를 연결하는 160번 도로에 카우킹의 심복이라 생각되는 괴물이 포함된 무리가 자리를 잡으면서 급히 계획이 변경된 것이다.

‘진짜 마음 같아서는 카우킹의 심복 녀석도 때려잡고 그 보상을 얻는 건데….’

당장 십이 재앙의 관심을 받는 일은 최대한 피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이번에는 팀원들과 함께 비행기를 이용해 인도르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덕분에 뭄바이에 대기하고 있던 31 사단 병력은 도로를 빙 둘러서 인도르로 향하고 있다고 했다.

“두 시간이라…. 시간이 애매하게 걸리네요.”

아쉬운 듯 말하는 민국의 모습에 옆에 있던 현아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12시간의 비행이 피곤할 법도 하련만…. 지금의 민국을 보면 바로 던전에 들어갈 기세였다. 시바 공격대 영웅들도 민국의 혼잣말을 듣고는 눈을 동그랗게 뜬 모습이었다.

“일단 두 시간 뒤에 출발하는 걸로 하고, 잠시 대기하도록 하죠. 그리고 라니 락슈미바이 공대장님.”

“라니라고 불러주셔도 됩니다.”

“네, 라니 공대장님. 시바 공격대의 예정은 어떻게 되죠? 함께 비행기를 타고 가시는 겁니까?”

“네. 현재 시바 공격대는 지원팀과 멤버 대부분이 인도르에서 대기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인도르에 도착하게 되면 GGW 공격대의 활동을 보조하면서 움직일 계획입니다.”

“아…….”

그녀의 대답에 민국은 자신의 뺨을 긁적였다.

보아하니 공대장과 그녀와 함께하는 일행만 따로 자신들을 안내하기 위해 뭄바이로 온 모양이었다. 성의는 고맙지만 조금 미안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인도 정부가 자신들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는 것이 느껴졌다.

* * *

“자, 빨리빨리 움직여!”

“아으…. 몇 시간이나 더 가야 해요? 하루 종일 비행기에 있었더니만 정말 죽을 것 같아요.”

한 팀원의 칭얼거림에 팀장급 여성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멀리 인도까지 온 년에게 화를 낼 수는 없는 노릇.

“두 시간이면 도착한다고 하더라. 아무튼 정신 차려. 1군의 유다희 영웅 알지? 다희 영웅님이 그러시는데 돌아가는 분위기가 바로 인도르에 도착하면 원정에 나갈 것 같다더라.”

“…한민국 공대장님이요?”

“그렇다고 봐야겠지. 공대장님 아니면 누가 우리 일정을 진행하겠어?”

“어, 어으…….”

영웅이라 피로라는 걸 전혀 느끼지 못하는 모양인가?

조금의 휴식도 없이 원정을 나갈 것 같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투정을 부렸던 팀원이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팀원의 행동에 보다 못한 팀장이 그녀의 뒤통수를 때렸다.

“정신 차려. 여기 놀러온 거 아니잖아? 지금도 북부에서는 죽어나자빠지는 사람들이 몇 명인데….”

“죄, 죄송합니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팀원이 바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다행히 주위에 영웅이 없어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 사단이 나거나 얼굴을 붉힐 뻔했던 사고였다. 그래도 팀원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너무 무리하면 애들이 퍼질 텐데….’

벌써부터 사기가 이만저만이 아닌 터라 팀장급 여성은 걱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

팀원들 대부분은 영웅들처럼 엄청난 사명을 가지고 인도에 온 애들이 아니었다. 단지 위험수당이 많기 때문에 온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혹은 GGW 공격대에 영혼을 빼앗긴 이들이거나. 하지만 그런 팀장의 걱정은 공격대가 인도르에 도착한 순간 스르르 녹아내렸다.

인도르에 도착해서 보병 사단과 및 시바 공격대와 합류한 GGW 공격대는 바로 【S】 등급의 던전에 공략에 들어갔지만,

지원팀을 포함한 나머지 인원들은 주둔지를 세운 후,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윽시 우리 공대장님, 믿고 있었다고!”

“그런데 우리만 쉬는 건 좀 죄송한데…. 영웅 분들은 휴식도 없으시나?”

“상황이 좋지 않아서 GGW 멤버들만 바로 공략에 들어간 모양인가봐. 아무래도 【S】 난이도 던전이 이 곳에만 열 곳이 넘는다고 하니…….”

“아, 진짜 욕도 안나오는 상황이네.”

“괜히 세계의 지옥이라 불리고 있겠어?”

하지만 지원팀들의 꿀 맛 같은 휴식은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났다. 오염된 대지 근처에 세워지고 있는 주둔지를 발견한 몬스터가 무리를 이뤄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카라락! 칵칵!

음무워어어어!!!

인간보다 약간 더 큰 소 머리를 괴물들이 포효와 함께 주둔지로 달려들었다. 그런 몬스터의 움직임에 대기를 하고 있던 인도군도 바로 대응했다.

투투투투투! 쾅! 콰쾅!!!

콩알이 튀기는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폭발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총포 세례를 맞으면서도 괴물들은 끄덕도 하지 않으며 돌격해오는 모습이었다.

누군가의 지휘를 받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만큼 멍청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우직한 돌진이었지만, 그런 괴물들의 비정상적인 모습은 괴물들을 상대하는 군인 및 다른 이들에게 온 몸의 피가 바짝 마를 정도의 충격을 안겨다주고 있었다.

“발사!!!”

하지만 그러한 괴물들의 기세는 일렬로 늘어선 전차가 전차포를 발사한 순간 꺾였다.

포신에서 튀어나간 날탄들이 총탄도 버텨내던 괴물들의 신체를 말 그대로 걸레짝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음뭐워어!!!

전차를 발견한 괴물들이 전차를 부수기 위해 3, 40마리씩 무리를 지어 달려들기 시작했다. 본능에서 나온 움직임들이었다.

그러나 전차 근처에는 R’s 의 1군을 포함해 인도의 시바 공격대가 일찌감치 대기를 하고 있었다.

“저 새끼 잡아서 해장국이나 한 번 끓여볼까?”

우르르 몰려오는 소머리 괴물들을 보며 장미 방패단의 1군 공대장인 조선아가 입맛을 다셨다. 옆에 있던 도끼를 든 여성이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괜히 먹고 이상한 바이러스 걸려서 뒈지시는 거 아닙니까? 그냥 카레나 드시죠?”

“아, 카레는 진짜 내 입맛이 아닌데…. 그리고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나저나 저기 있는 인도 애들 말이야.”

“시바 공격대요?”

조선아의 눈이 한 쪽에서 대기 중인 인도 영웅들에게 향했다.

인도의 전통 무기인 차크람과 단검을 든 이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녀들을 바라보던 조선아의 눈동자에 호승심이 피어올랐다.

“그래. 쟤네들 수준이 어떻게 되더라?”

“듣기로는 메모리아보다 살짝 아래인 것 같은데…. 그래도 우리보다는 좋지 않을까요?”

“그래? 그러면 쟤들보다 더 많이 몬스터 잡지 못하면 오늘 우리 특별 훈련이다?”

“이런 미친…!”

“아, 공대장이 또 권력 믿고 횡포 부리네. 그러다가 진짜 칼 맞고 싶어서 그래요?”

조선아의 말에 주위에 있던 영웅들이 기겁을 토했다.

그렇게 시작된 백병전, 그리고 결과는 당연하게도 영웅들의 압승이었다. 마력을 뽑아내는 그녀들이 몇 번 무기를 휘두르기도 전에 소머리 괴물들은 목이 전부 달아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달려드는 놈들을 보면 괜히 소름이 돋기는 했지만.

“뒈져! 뒈져! 뒈져!”

“여기 한 마리…!”

애당초 던전에서 네임드 급 괴물들을 주로 상대하는 이들에게 일반 괴물들이 상대가 될 리 없었다. 게다가 다들 이런 전투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경험을 한 베테랑들이기도 했다.

그렇게 외부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동안.

“……뭐야? 여기 【S】 난이도 던전 맞아?”

“맞기는 한데…. 애들이 왜 이리 전부 나사가 빠진 것 같죠?”

던전 내부에서는 GGW 공격대가 얼떨떨한 모습으로 민국의 지휘에 맞춰서 던전을 공략해 나가고 있었다.

‘예상대로…….’

인도의 【S】 난이도 던전은 보상은 【S】 등급 수준 이었지만, 공략 난이도는 평소보다도 두, 세 단계나 더 낮은 느낌이었다. 개꿀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한편 연참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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