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18 인도산 꿀
“어? 어둠 괴물들…?! 공격당하고 있었어?”
게이트 통과의 부작용인 마력 멀미 때문에 한참 헛구역질을 하던 유나가 주변의 상황을 파악하고는 바로 등에 메고 있던 활을 빼들었다.
우웅! 웅! 우우웅!
이어서 피라미드처럼 생긴 황금색 마력구 세 개가 신나연의 앞에서 저글링을 도는 것 마냥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전투에 앞서 그녀의 마력을 충전하는 행위였다.
“오빠…, 아니 공대장님!”
“일단 날려!”
자신을 부르는 유나의 목소리에 민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구경만 하고 있기에는 상황이 그만큼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자신의 눈앞에서 죽어나가는 병사들만 벌써 셋이나 볼 수 있었다. 회복 능력도 아무런 효용이 없었다.
“흡!”
아무것도 없던 유나의 활시위로 그녀의 마력으로 구성된 바람의 화살이 세 발 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거리를 재는 것처럼 한쪽 눈을 지그시 감던 유나가 그대로 시위를 놓았다.
퍼어억!
커다란 소리와 함께 땅 위의 군인을 붙잡은 채 날개를 펄럭이며 비상하던 비행 괴물이 몸체에 큰 구멍이 연달아 뚫리며 땅으로 추락했다.
9성 영웅답게 공격의 위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신나연의 마력구도 마력 충전을 끝내고 허공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붉은 빛이 레이저처럼 하늘을 가로질렀고, 빛에 스친 어둠 괴물들이 괴성과 함께 추락했다.
“저는…. 딱히 할 게 없겠는데요?”
장검을 들고 괴물들과의 거리를 가늠하던 시라누이 마이가 머쓱한 얼굴로 무기를 내렸다.
근접전이 펼쳐진다면 모를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자신이 활약할 상황이 많지 않았다. 근접전이 펼쳐져도 문제였다. 눈앞에 보이는 녀석들은 비행 괴물들이 대다수인 까닭에 단숨에 끝내지 못한다면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하늘을 날게 되는 수가 있었다.
“그냥 저랑 같이 원딜 들이나 보호해요, 언니.”
탱커인 현아와 타냐도 마찬가지.
캡틴 아메리카처럼 방패를 던져서 적을 쓰러뜨리는 방법도 있기는 했지만, 그랬다가는 전투 중에 본인이 던진 방패를 찾으러 다녀야 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나올 수도 있었다.
차라리 원거리 딜러들을 보호하며 그녀들의 최대한의 화력을 낼 수 있도록 돕는 게 훨씬 나은 전투 방식이었다.
“GGW 공격대다!!!”
공포의 악마와도 같았던 커다란 비행 괴물 몇이 순식간에 죽어나자빠지는 모습에 모래자루 및 건물 더미에 엄폐하고 있던 인도 병사들의 시선이 잠깐 한쪽으로 쏠렸다.
그리고는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다.
“살았어! 살았다고…!”
“와아아아아!!!”
영문은 알 수 없지만, 이 근방의 괴물들이 모조리 우르르 몰려온 까닭에 상황이 굉장히 위험하게 흘러가고 있던 참이었다.
그나마 주둔지에 배치된 영웅들이 직접 나서서 괴물들의 주공을 막아내고 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방어선이 무너져도 진즉에 무너졌을 상황이었다.
그래도 오래는 버티지 못할 거라는 게 지휘관들의 예상. 철수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고 있을 정도였다.
영웅들의 체력에도 한계는 있었고, 몬스터들의 숫자는 그보다 더욱 많았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사방에서 쉴 새 없이 몰려드는 괴물들의 공세 때문에 게이트 근처에 배치되었던 병력들은 영웅들의 도움조차 받지 못하고 병사들끼리 엄폐물을 끼고 지금처럼 시간벌이로 전투를 이어나가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 GGW 공격대가 던전 공략을 마치고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강력한 우군의 등장이었다.
“파괴의 교향곡 돌리고, 빨리 정리하자. 지젤은 병사들 위주로 보호막 걸어주고 재량껏 상황 봐서 궁극기 사용하던가 해.”
“저는 부상병들 위주로 치유할게요.”
켄달이 말했다.
영웅의 능력은 일반인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정 이상의 강력한 능력이라면 그래도 효과를 볼 수 있기는 했다. 그리고 9성 영웅인 켄달의 회복 능력은 부상병을 살리는 데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알았어, 켄달은 그쪽을 부탁할게.”
민국이 뒤쪽의 동료들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스태프 대신 단검을 꺼내든 민국은 본인이 직접 나서서 괴물들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숫자가 워낙 많았기에 자신도 한 손 거들 생각이었다.
‘굳이 클래스 변경을 하지 않더라도….’
던전을 공략하면서 남아돌던 힘과 체력의 결정들을 다수 흡수했던 만큼 이 정도쯤은 무리가 없었다. 게다가 자신의 기량이라면 지금 눈에 들어오고 있는 일반 괴물 정도는 가볍게 찜 쪄 먹을 자신이 있었다.
아무튼 던전 공략이 성공적으로 끝난 만큼 오늘 휴식을 취하고 내일 공략을 이어나가려고 했는데….
주둔지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려면 일단 이 주위부터 제대로 좀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던전의 상황을 생각하면 이 괴물들은 전부 무플론 부족의 녀석들일 터.
“괜히 메를린의 시선을 끌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과 함께 민국은 단검을 들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생각을 길게 이어나가기에는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았다.
* * *
3만 정도의 인도 군과 GGW공격대 및 R’s클랜의 영웅을 포함해 70명이 조금 넘는 인도 영웅들이 배치된 주둔지로 몰려든 어둠 괴물들은 무려 13만이 넘는 숫자였다.
처음에는 괴물들의 숫자가 이 정도로 많지 않았다.
하지만 좀비 떼들이 몰려드는 것 마냥 어느 한 곳에서 전투가 이어지자 그것을 느낀 주변의 괴물들이 모조리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갑작스러운 어둠 괴물들의 대대적인 공격에 인도르 있던 사령부도 비상이 떨어졌을 정도. 하지만 인도르의 사령부는 고원의 주둔지로 한 명의 지원군조차 보내지 못했는데, 그 쪽 역시 전투가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치열했던 인도르 서쪽 고원의 전투는 다행이도 인간들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인명 피해는 적지 않았지만, 몰려든 괴물들을 모조리 몰살시켰다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전과였다. 그래서인지 병사들의 표정은 그리 어두운 편이 아니었다. 이러한 희생들이 너무나도 익숙하기 때문에 보이는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
민국의 눈이 주변에 널린 괴물 사체들을 해체하는 이들에게로 향했다.
한 시간 전 쯤, 전투가 완전히 종료가 되었다. 현재는 지금처럼 수거 팀이 나서서 전장을 정리 중에 있었다.
던전 내부의 경우와는 달리 외부에서 쓰러뜨린 괴물 사체들은 괴물의 몸을 이루는 마력이 분해되기 전, 지금처럼 해체가 가능했다. 그리고 해체된 괴물의 신체는 더 이상 마력이 분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괴물 사체는 인간 사회에서는 볼 수 없거나 혹은 보기 힘든 성질을 지닌 것들이 많아 다양한 부분에서 사용이 되었다.
물론, 해체하는 이들이 가장 찾기를 원하는 것은 다름 아닌 마력의 결정이었지만.
“공대장님, 저희들은 가만히 있어도 될까요?”
민국의 뒤에서 한 여성이 물었다.
클랜의 지원 팀장이었다. 그녀의 뒤로 수거 복장을 대충 걸쳐 입은 이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클랜 내에서 해체 및 수거 임무를 하는 이들이었다.
“…수거 작업에 들어가시게요?”
“그냥 가만히 있기도 좀 뭐해서요. 게다가 저런 전리품 하나하나가 공대장님과 영웅들의 성과물이잖아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돈이라는 말.
괴물들의 사체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고, 주둔지 밖에 널브러져 있는 괴물 시체들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흐음…….”
민국은 커다란 괴물 사체에 달라붙어서 전기톱을 휘두르는 인도인들을 바라봤다.
그런 이들의 숫자가 적지는 않았지만 죽은 괴물들이 워낙 많았던 터라 괴물들의 분해되기 전까지 죽은 사체의 반도 해체할 수 있을까 싶었다.
‘얼마 안 되는 돈인데….’
굳이 끼어들어야 되나 싶은 생각이었다. 그보다는 클랜 직원들에게 휴식을 주는 게 낫지 않을까?
그 때 다른 생각이 민국의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전투에 뒤늦게 참가하기는 했지만, 이번 전투에서 보여준 자신들의 기여도는 적지 않았다. 아마도 인도르의 본부에서도 이번 전투의 공적을 어떻게 나눌지 골치를 싸매고 있을 터.
그리고 민국은 자신들의 공적으로 사체의 일부를 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그 사체에서 나온 부산물들을….’
영웅들과 수거팀 및 지원팀에게 8:2로 분배할 계획.
그렇지 않아도 이 먼 곳까지 함께하는 이들의 사기를 어떻게 높여야 할 지 생각하던 참. 그리고 포상은 역시 돈이 최고였다.
“사체를 해체하고 싶다고요? 당연하지요. 그렇지 않아도 그와 관련해서 여쭤보려던 참입니다.”
“수가 많아서요?”
“그렇습니다. 인도르에서 해체반이 올 수 있는 상황도 아니거든요.”
민국의 물음에 주둔지의 최고 책임자는 인도르에서도 인원이 없다며 말을 늘어놓았다.
어차피 R’s 클랜의 이들이 전투 내내 주둔지에서 놀고먹은 것도 아니고, 최전선에서 엄청난 화력을 뿜어내며 적들의 주공을 막아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GGW 공격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GGW 공격대가 있었기에 아군의 후방이 무사할 수 있었다.
‘측면과 후방으로 돌아갔던 괴물 무리들이 그대로 시체로 변했다지?’
주둔지의 책임자이자 인도 군의 장성은 휘하 장교의 보고를 떠올렸다.
9성 영웅으로만 이루어진 쉴더급 공격대.
지구 최강의 전력이라는 소문처럼 후방을 공격했던 일 만에 가까운 괴물들이 정리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했다. 하물며 후방을 공격했던 이들은 상대가 까다롭다는 비행체였었다.
‘특히나….’
붉은색의 마력이 하늘에 흩뿌려 지는 순간 영웅들이 신체적으로 몇 단계는 더 발전한 것 마냥 괴물들을 모조리 쓸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는 단검을 들고 괴물들을 학살하던 눈앞의 영웅도 포함되어 있었다.
“허가는 받았습니다, 널려 있던 괴물들의 사체를 해체하시고 수거하시면 됩니다. 단, 안전에 조심해 주세요.”
“와?!”
“가자!!!”
민국의 이야기를 들은 이들은 환호성과 함께 장비를 챙겨 들고 달려 나갔다. 사체들의 등급을 생각하면 영웅들과 8:2로 나눈다 하더라도 못해도 개인 당 몇 억씩은 만질 수 있는 돈이었다.
“뭐야? 벌써부터 지원팀 챙겨주는 거야?”
현아가 민국에게 물었다. 민국이 어깨를 으쓱였다.
“응, 원정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는 일이잖아? 그리고 원정이 계속되는 동안 오늘 같은 전투가 몇 번이나 더 벌어질 지도 알 수 없는 거고.”
오랜 전쟁으로 죽음의 냄새에 익숙해진 이들이라 해도 흉폭한 괴물들을 눈앞에서 맞닥뜨리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무서움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 민국은 그 중 하나의 방법으로 이들을 위로하고픈 마음이었다.
“확실히 사기가 오르기는 하겠네. 다들 돈 때문에 인도까지 온 사람들이니까…. 그런데 영웅들은?”
“나중에 【S】 난이도 던전 한 번 돌아주게.”
“【S】 난이도를?”
“응, 그렇게 어렵지 않잖아? 정 안되면 【A – 1】 정도로 찾아보고.”
이어지는 민국의 대답에 현아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더 경험을 해봐야 알겠지만, 가루다가 말했던 대로 임시 던전의 난이도는 일반 던전과 비교했을 때 상대하기가 한두 단계는 쉬운 느낌이었다.
어차피 영웅들에게는 얼마 되지 않는 푼 돈.
민국이 지원팀과 전리품을 나눈다 하더라도 그녀들을 신경조차 쓰지 않을 터였다. GGW 공격대도 마찬가지. 오히려 그것보다는….
“날도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우리 슬슬 들어갈까?”
현아가 짙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그리고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민국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단검을 들고 날뛰었던 까닭에 여자가 많이 당기기는 했다.
“타냐와 시라누이 마이도 함께 불러.”
오늘은 거유 스페셜로 갈 생각이었다.
“…세, 셋이나?”
“둘로는 못 버틸 것 같은데? 나, 지금 화가 아주 많이 났거든.”
현아의 눈이 아래로 향했다. 옷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하는 물건의 형태가 그녀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그녀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확실히 민국이 이렇게까지 나오면 자신을 포함한 두 명의 여성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게 분명했다.
이미 몇 번이나 몸으로 경험한 적이 있던 까닭에 현아는 무모하게 덤벼들고 싶지 않았다. 며칠 간 일정이 없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GGW 공격대는 당장 내일 임시 던전의 공략을 이어나가야 했다.
“셋, 좋아. 지, 지금 바로 불러올게.”
현아가 빠르게 몸을 돌려 타냐와 시라누이 마이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 그런 현아의 뒷모습을 보며 민국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게 한 편 더! 그러면 즐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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