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25 달콤한 유혹
인도르 서쪽 130km에 위치한 주둔지.
“음….”
“아침 아침은 조금 그렇지 않아?”
인도의 식량 사정이 별로 좋지 않은지라 어쩔 수가 없었다.
인구가 적은 나라도 아닌데다가 비축된 식량이 많은 것도 아니었으니. 군사 지원 대신 보내주는 외부 국가들의 지원이 아니면 인도의 상황은 더더욱 더욱 끔찍했을 터였다.
GGW 공격대도 준비를 많이 해왔지만, 나중을 생각하면 식량은 최대한 아껴야 했다.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보다는 못하지만 군대에서 먹던 짬밥과 비슷한 수준인데, 뭐.’
그래도 민국이 아무 불평 없이 식사를 끝내자 다른 이들도 불만을 크게 드러내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오전의 식사가 끝나자마자 공격대들의 출동 준비가 시작되었다.
어둠 괴물들의 진출로 생겨난 오염된 대지를 빠르게 걷어내려면 근방의 임시 던전들을 모조리 소탕을 해야 했다. 중요한 것은 임시 던전 속에 숨어 있는 네임드들의 처리.
‘괴물들의 외부 활동이 줄어든 지금이 녀석들을 처리할 적기겠지.’
일주일 전에 있었던 대전투.
그 때의 피해 때문일까? 다행히 이 근방에서는 수 천, 수만씩 몰려다니는 괴물 무리들이 보이지 않았다. 던전 내부로 몸을 감췄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녀석들이 외부에서 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했다.
‘그래야만 시간을 벌 수 있으니까.’
아무튼 녀석들도 그 때의 피해를 회복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만큼 엄청난 전투였었다.
“그러면 오늘도 수고하세요, 한민국 공대장님.”
다른 팀원들이 출동 준비를 하는 동안 민국은 다른 공격대의 공대장들과 일정 회의를 시작했다.
그렇게 30분 정도의 짧은 회의가 끝나자 한 미녀가 친밀감을 과시하며 말했다. R’s 클랜의 1군을 지휘하고 있는 조선아 공대장이었다.
동시에 인도의 영웅들이 부러움이 담긴 눈으로 조선아를 바라봤다.
그런 상황을 보며 민국은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자신을 친분을 과시하려는 조선아의 속셈이 눈에 훤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뭐, 어울려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어차피 조선아와는 지금보다도 더욱 친해질 필요가 있었다. 큐우♡의 퀘스트 때문에라도 말이다.
“조선아 1군 공대장님도요.”
그녀의 장단에 맞춰줄 겸 민국이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어서 들려오는 자그마한 숨소리들. 난 데 없는 황홀경에 다들 얼굴을 붉히며 놀란 눈을 하는 모습이었다.
여성 영웅들의 이런 모습을 볼 때 마다 민국은 정말 사람은 외모가 최고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면 예전 세계의 미남들은 전부 이런 눈빛과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었던 건가….
‘이래서 잘생긴 놈들은 죄다 죽어야 한다니까. 나 빼고.’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1군 공대장과 인사를 나누고 몸을 돌릴 때였다. 자신을 보다가 시선이 마주치자 딴청을 부리는 한 영웅이 눈에 들어왔다. 유다희였다.
‘어젯밤의 일이 제법 충격적이었겠지.’
여자가 남자를 따먹은 것도 아니고, 반대로 따였다. 그것도 심하게. 심지어 오르가즘을 이기지 못해 침대에 분수까지 터뜨린 그녀였다.
그렇게 둘이 알 수 없는 이상야릇한 분위기를 풍기자 조선아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어머? 둘이 무슨 썸 타는 거야? 분위기가 왜 이래?”
“음…. 유다희 딜러장님이 제가 부끄럽나 본데요?”
“앗? 아, 아니! 그, 그건 아니…고요.”
“뭐야? 유다희, 안 어울리게 왜 그렇게 수줍수줍해? 한민국 공대장님에게 잘 보이려고 그러는 거야? 에이, 남자들은 그런 거 싫어한다니까? 용기 있게 나서야지.”
“뭐, 유다희 미녀장님 같은 미인이시면…, 싫어할 남자가 있을까요?”
민국이 살짝 웃으면서 말을 하자 오히려 유다희를 놀리던 조선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다가 민국의 윙크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 세상에? 정말로요?”
“아으…….”
“이야, 우리 다희 좋겠네?”
그렇게 장단을 맞추며 장난을 치는 둘의 모습에 유다희는 얼굴이 타들어갈 것처럼 붉어진 채 고개를 푹 숙였다.
한민국의 품에 안겨서 앙앙거렸던 어젯밤의 일이 떠오르자 머릿속에서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민국이 화제를 돌리듯 말했다.
“아, 요즘 1군의 【A】 난이도 공략 현황은 어떤가요?”
“그냥….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죠.”
“그런가요? 난이도가 한국에 비해 떨어진 텐데요?”
“그렇다 해도…. 공략이 익숙하지 않아서요.”
조선아 공대장이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끄러웠기 때문이리라.
확실히 인도의 【A - 3】 난이도는 한국을 기준으로 하면 【A - 5】 난이도 수준이나 될까 싶은 던전이었다. 혹은 그 이하의 난이도. 설령 【A - 5】 난이도 수준이라 하더라도 동급 난이도의 던전 중에서도 쉬운 축에 속하는 편일게 분명했다.
그러나 인도의 임시 던전을 공략하는 R’s 클랜 1군의 공략 속도는 그리 빠른 편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다양한 던전을 공략해야 되고, 그 안에서 등장하는 어둠 괴물들의 종류가 한두 개체가 아니기 때문으로 보였다. 그리고 이는…….
‘공격대의 절대적인 경험 부족이지.’
공략 횟수를 놓고 보면 굉장히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클랜 1군의 던전 공략 경험은 대부분 한국에서 동일 던전만을 상대로 쌓은 경험이었다. 다시 말해 다양한 몬스터를 상대한 경험이 없었다.
조선아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멋쩍어 하는 것이고. 생각보다 임시 던전 처리에 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래서는 조금 곤란해.’
어둠 괴물과의 전쟁은 GGW 공격대 혼자서 하는 게 아니었다. 십이 재앙과 같은 강력한 놈들은 자신들이 처리할 수 있다 하더라도 아래 단계의 난이도는 다른 이들이 알아서 척척 치워줘야 했다.
하지만 이 세계 영웅들의 레이드 전술은 너무나 고리타분했고, 옛날 느낌이었다. 실력은 있지만 그 실력을 제 방향으로 발휘하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우리 말고 1군의 스펙 업도 필요한데….’
인도까지 GGW 1군을 부른 이유는 따로 없었다.
이 기회를 이용해 이들도 스펙 업과 경험을 쌓으라는 것. 그리고 민국은 큐우♡의 퀘스트 때문에라도 이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이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조만간 미팅 한 번 갖도록 하죠.”
“미팅이요?”
“네, 시간을 두고 공격대 인원을 서로 교체해서 트라이를 다니는 식으로 레이드 노하우를 교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 오옷?”
민국의 제안에 조선아가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2, 3군 멤버들을 1군 레이드에 참여시켜서 경험을 쌓게 해주는 건 역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일이었기에, 그녀들의 자존심이 상할 리도 없었다.
쉴더급 공격대인 GGW는 메모리아 1군을 넘어선 한국 최고의 공격대였으니까. 게다가 수많은 던전을 공략한 GGW 경험과 노하우는 공대장이라면 누구나 알고 싶은 것들이었다.
‘게다가 그 한민국 공대장과 함께 레이드를 하는 건데…….’
팀원들이 반대할 이유는 조금도 없을 것 같았다. 오히려 환호를 지르면 질렀지.
조선아는 민국을 바라봤다.
아무튼 자신들에게는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본인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격을 달리한다는 한민국 공대장의 리딩을 다시 한 번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덤으로 상위 레이드에 참여한 기여도에 따라 운이 좋다면 고급 장비를 획득할 수도 있었다. 돈이 많아서 살 수 없다는 장비들 말이다.
“폐가 되지 않는다면…. 저희 입장에서야 당연히 찬성이죠.”
조선아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인도 영웅들은 그런 한국 영웅들의 대화를 부럽게 바라볼 뿐이었다.
* * *
사람의 몸집보다도 더욱 커다란 도끼가 하늘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이어서 타냐가 자신의 방패를 들어 올렸다.
콰아아아앙!
도끼와 방패가 부딪치면서 거대한 충격파를 만들어냈고, 충격파는 곧바로 근처에 있던 딜러들을 덮쳤다.
우웅! 우! 우우우웅!
하지만 미리 대비를 하고 있던 지젤의 보호막이 딜러들을 보호하는 모습이었다.
짧은 타이밍에 근접 딜러들에게 보호막을 씌워야 했기 때문에 원거리 딜러 및 힐러들은 무방비 상태로 노출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역시 소정이 언니 뒤가 뭔가 편안하다니까?”
“뭐야? 내 덩치가 크다는 거야?”
“아니, 언니 대검이 너무 마음에 든다고요.”
다들 근접 딜러들의 뒤로 몸을 피했기 때문이었다.
정확한 타이밍에 딜링과 힐링의 로스 없이 빠르게 움직여야 했지만, 수많은 레이드를 경험했던 이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플레이였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충격파의 영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정도 피해쯤은 힐러들의 회복 마법으로 가볍게 치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인간 방패라도 된 듯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던 시라누이 마이의 엉덩이를 한 대 툭 때린 민국이 팀원들을 향해 외쳤다.
“본진 이동! 포지션은 B로! 이제 곧 2페이즈 시작될 거야!”
“예썰!”
“무브! 무브!!!”
소란스럽게 떠들어대면서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GGW 공격대.
그렇게 본인도 자신의 포지션으로 움직이면서 민국은 흘깃 전투 결계의 한 부분을 바라봤다. 결계의 밖에서 정예린이 조마조마한 눈으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몬스터의 상대를 위한 특별한 임무 때문에 결계의 밖에 서 있는 게 아니었다.
전투 자체에 아예 참가하지 않은 것. 그렇다고 정예린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었다. 단지 명함은 【S】 난이도지만 약하디 약한 네임드들을 상대로 공략 인원을 줄여가면서 민국이 자체적인 페널티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래야 전투 감각이 유지 되지.’
더불어 팀원들에게 긴장감을 불어넣어줄 수도 있었고 말이다.
인원 한 명이 빠졌다는 것은 그 빈자리를 본인들이 메꿔야 하기 때문. 게다가 민국은 조만간 클랜 1군과의 인원 교류를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의 트라이를 그 때는 위한 연습이었다.
새롭게 손발을 맞출 R’s 클랜의 1군 들은 초반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바닥 온다! 1조 진입 준비!”
괴성과 함께 거대한 어둠 괴물의 마법이 전장의 한 부분으로 향했고, 싱크 홀이라도 생긴 듯 바닥이 무너져 내리며 어두운 공간이 만들어졌다.
“1조! 신나연, 빨리 움직여!”
“가고 있습니다!!!”
싱크 홀이 생겨나자마자 김소정과 신나연이 거침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들이 맡은 임무는 1분 안에 등장하는 몬스터 무리들을 모조리 쓸어 버린 후, 오브젝트를 작동시키고 다시 전장으로 귀환하는 것.
그래야만 눈앞의 괴물이 강력한 위력의 전멸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아쉽게도 전멸기의 파괴력이 상상 이상으로 대단했던 터라, 궁극기를 위시해서 때울 수 있을 수준은 아니었다. 이미 한 번 그랬다가 전멸을 경험했던 민국과 영웅들이었다.
때문에 이렇게라도 기본적인 파훼 정도는 해줘야 했다. 물론, 상대가 【S】 난이도에서 등장하는 네임드라는 것을 생각하면 누워서 떡 먹는 수준에 불과했다.
“네임드 생명력 62%! 잠깐 딜 중지! 천천히 딜 해! 딜금! 딜금! 1조 애들 밖으로 나온 이후에 딜 한다!”
그런 것들을 제외하면 녀석들을 공략하는 데 있어 문제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자리에 있는 영웅들은 명실공히 대한민국 아니, 세계 최고의 실력과 스펙을 자랑하는 이들이었다. 그렇게 민국은 하나, 둘씩 실버급 마력의 결정을 얻기 위해 【S】 난이도 던전을 공략해나갔고, 그로 인해 인도르 서부 지방의 오염된 대지들도 천천히 걷혀지기 시작했다.
* * *
“방어선을 외부로 밀고 나갈 수는 없겠소? 샤르마 콜리 공대장?”
인도의 총리가 두 손을 마주 잡으며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자 인도의 쉴더급 공격대 비수뉴, 그녀들을 지휘하고 있는 샤르마 콜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불가능합니다. 지금의 영웅 전력으로는 현재의 방어선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으음…. 남쪽의 마디아프라데시 주까지 전선을 넓히는 것도 힘들다는 것이요?”
“그렇습니다. 뉴델리를 방어하는 것도 힘든 상황입니다. 더욱이….”
주변국의 랜드리스 지원도 점점 텀이 길어지고 있었다.
항공 수송기들이 컨테이너를 뿌리다가 어둠 괴물들의 공격에 의해 추락하는 사고 때문이었다.
항공 지원이 올 때 마다 주둔 병력 및 공격대들이 나서면서 시간을 끌고 했지만, 주위에 모인 괴물들의 숫자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 사실을 인도의 총리 역시 모르지 않았다.
“인도르 서쪽에서 대규모의 전투가 벌어진 것은 알고 있겠지요?”
“물론입니다.”
샤르마 콜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며칠 전, 올라온 보고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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