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7화 〉 달콤한 유혹
* * *
“디, 딜러장님. 딜러장님은 혹시 【S】 난이도 던전에 가보셨어요?”
잔뜩 겁을 먹은 허유림의 물음에 유다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
정말 멍청한 질문이었지만, 긴장 때문인지 막상 질문을 던진 허유림은 본인의 물음에 무엇이 잘못됐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심정만큼은 충분히 이해가 갔기에 유다희는 조그마한 한숨과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눈앞에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흉흉한 마력의 게이트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살짝 찌그러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니. 【S】 난이도는커녕 【A 1】 난이도도 안 가봤어.”
심지어 유다희는 【A 1】 난이도 아니, 【A 2】 난이도의 던전도 한 번밖에 경험한 적이 없었다.
한창 국토 회복이 유행했을 때 대구의 오염된 대지를 걷어내던 도중 슬쩍 시도해봤던 공략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시는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하고 처참한 기억으로 이어졌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모른 채 미친년처럼 뛰어다니다가 죽었었지.’
정말 허무했던 결과였었다.
그 때의 기억 때문일까? 유다희는 GGW 공격대와의 이번 레이드 교류가 그리 탐탁지 않았다. 서로 비슷한 수준이라면 모를까 서로의 기량 차이가 극명하게 났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GGW 공격대를 이끄는 공대장은 그 유명한 한민국이었다.
“…….”
한민국의 얼굴을 떠올리자마자 유다희는 자신도 모르게 몸이 꼬이는 느낌을 받았다. 절로 다리가 후들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한민국과의 뜨거운 시간은 그녀의 뇌리에 깊게 박혀 있었다.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겠지.’
남자에게 깔리는 것도 모자라 몸이 쾌락을 이기지 못해 분수까지 터뜨리면서 괴성을 질러댔던 시간이었다. 그만큼 강렬했던 쾌락의 시간은 남자 영웅인 한민국이 아니면 선물해 줄 수 없는 경험이었다.
더군다나 민국은 자신의 안에 몇 번이나 진한 정액을 싸 넣었다.
운 좋게 임신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괴물들과 싸우느라 격렬하게 움직이다 보면 필연적으로 수정이 잘 될 리 없었다. 마력 흐름 또한 안 좋은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보지에 플러그를 꽂고 오기는 했다. 효과가 얼마나 있을 지는 미지수였지만….
아무튼 레이드의 난이도를 생각하면 스펙이 떨어지는 자신들이 고생할 건 불을 보듯 뻔했다. 그것이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뜨거운 시간을 보냈던 남자 앞에서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유다희는 오늘의 일정이 죽을 만큼 싫었다.
“후우….”
그에 반해 GGW 공격대 멤버들은 【S】 난이도 던전을 앞에 두고 다들 너무나도 편안한 모습들이었다.
이것이 쉴더급 공격대의 여유인가? 서로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는 모습에서는 긴장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공대장의 리딩만 따르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마음을 비운 유다희의 눈에 설치된 부활석이 푸른빛의 마력을 내뿜으며 발동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부활석의 설치가 끝났으니 이제는 본격적인 트라이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진입하겠습니다.”
공대장인 민국의 지시와 함께 탱커가 먼저 게이트 내부로 몸을 던졌다.
잠시 후, 유다희도 게이트로 진입했다. 굉장히 크고 넓은 동굴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폐쇄형 던전이었다. 다행히 영웅들의 진입을 알아차리고 덤벼드는 녀석은 없었다. 아니, 한 놈 있기는 했던 모양인데 자기 몸 만큼이나 커다란 방패를 든 영웅의 발에 찌그러진 모습이었다.
이어서 민국이 말했다.
“오늘 레이드의 메인 탱커는 타냐 루스입니다. 부 탱커는 허유림 탱커가 맡겠습니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허유림의 요란한 인사에 브리핑을 하려던 민국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요. 【S】 난이도 던전이라 해도 인도 상황 알잖아요?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거예요. 평소대로 하던 만큼만 하시면 됩니다.”
“네, 넵! 열심히 하겠습니다!”
허유림의 모습을 보며 유다희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긴장을 많이 했다는 모습이 태도에서부터 느껴졌다.
한민국은 때문은 아니었다. 예전에 1군 멤버들과 함께 레이드를 했을 때는 이 정도까지 긴장하지 않았으니까. 아무래도 【S】 난이도라는 이름에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
더군다나 오늘 함께하는 멤버들은 GGW 팀원들.
허유림이 R’s 클랜 1군의 메인 탱커로 영웅들 사이에서도 제법 이름을 알리고 있는 탱커라지만 쉴더급 공격대 앞에서는 명함조차 내밀기 힘들었다.
‘거기에 등급의 차이도 크게 나니….’
그녀들의 영웅 경력만 비교하면 허유림이 더 오래되기는 했다.
그렇지만 7 등급인 허유림에 비해 GGW 멤버들은 전부 9 등급의 영웅들이었다. 국내에서 아니 세계에서도 오십 명이 안 되는 9 등급 영웅이 여기에 잔뜩 모여 있는 셈이었다.
그래서일까?
본인이 선배임에도 불구하고 GGW 멤버들을 대하는 허유림의 태도는 굉장히 공손했다.
“하, 하하….”
그리고 유다희는 헛웃음과 함께 허유림의 행동을 지켜봤다. 1군내에서는 폭군이 따로 없었던 그녀의 평소 행실에 떠오른 탓이었다.
민국도 잠시 허유림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브리핑은 이제 막 시작한 참이었다.
“딜러장은 김소정, 이어서 시라누이 마이와 유다희 영웅이 근접 딜러 포지션에서 전투를 치를 겁니다. 정예린과 최유나는 서포트 잘하고.”
“넵!”
“열심히 하겠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목소리.
민국의 눈이 이번에는 유다희에게 향했다. 그래도 그녀는 딜러장이라는 짬이 있는지, 【S】 난이도 던전을 앞두고도 그렇게까지 딱딱한 모습은 아니었다.
가볍게 포지션에 대한 브리핑을 마친 민국은 바로 던전을 청소하며 네임드를 찾기 시작했다.
‘그 전에 먼저 파악할 것은 던전의 수준.’
어둠 괴물들의 충돌로 생겨난 임시 던전은 알려진 정보가 전혀 없는 던전이었다. 때문에 던전의 난이도도 본인들이 직접 체크해야 했다.
그리고 민국에게 던전의 수준을 파악하는 것은 행위는 딱히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탱커들을 앞세우며 전진하다보면 자연스레 몬스터들이 모여들기 마련이고, 그놈들을 상대하다 보면 자연스레 네임드를 마주치지 않아도 던전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대략적으로나마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침입자의 기척을 눈치 챈 괴물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캬아아악…!
[아이스 에이지!]
무리를 지어 나타나는 괴물들을 향해 정예린의 지팡이에서 뿜어져 나온 냉기가 수십 갈래로 찢어지면서 날아갔다.
온 몸이 꽁꽁 얼 정도의 시린 냉기는 순식간에 괴물들의 팔과 다리를 마비시켰고, 당황에 빠진 녀석들을 향해 딜러들의 공격이 쏟아졌다.
만약 【S】 난이도 수준의 괴물이었다면 일반 몬스터라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공격 정도는 어떻게든 받아냈겠지만….
가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악!
놈들은 사방에서 날아오는 딜러들의 공격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며 얻어맞는 모습이었다.
간간히 공격을 쳐내거나 반격하는 녀석들도 있기는 했지만 소수에 불과했다. 게다가 공격이 막히는 것은 대부분 유다희의 공격이었다.
“【A 1】 수준은 안 되는 것처럼 보이고…. 그렇다고 하위 난이도도 아닌 것 같은데 대충 【A 2】 난이도 수준인가?”
임시 던전의 난이도 파악을 끝낸 민국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현재의 난이도가 그렇다면 놈들의 원래 수준은 【S 7】에서 【S 8】 사이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쨌든 특수 개체가 등장하는 던전, 운이 좋다면 오늘 원정을 진행하는 동안 은색 마력의 결정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클리어는 어렵지 않을 것 같고.’
GGW 공격대와 한 번도 손발을 맞춰 본 적이 없는 멤버인 허유림과 유다희가 포함되어 있었지만,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그녀들의 입장에서는 난이도가 살짝 높을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말하면 GGW 의 입장에서 오늘 던전은 쉬어가는 수준의 어렵지 않은 난이도의 던전에 불과했으니까. 이 정도 수준 차이면 두 여자가 실수를 하더라도 자신들이 충분히 커버해 줄 수 있었다.
* * *
‘씨이…발!’
자신의 앞에서 아가리를 벌리는 악어 괴물의 모습에 허유림은 필사적으로 방패를 들어 올렸다.
우두둑!
그러나 악어 괴물은 그런 허유림의 행동을 예상했다는 듯 그대로 도끼를 휘둘렀고, 강맹한 위력이 담긴 도끼는 가볍게 그녀의 방패를 걷어냈다.
이어서 날아든 괴물의 이빨이 순식간에 그녀의 팔을 뜯어버렸다.
“끄으으으윽…!”
절로 튀어나오는 비명을 참아내며 허유림을 이를 악물고 몸을 날렸다.
기회를 잡았다는 듯 악어 괴물이 계속 그녀에게 달려들었지만, 다행히 부 탱커 포지션에 있던 타냐가 어그로를 가져가면서 허유림은 괴물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힐 업! 부상부터 치료해!”
이어서 힐러들의 회복 마법이 그녀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괴물에게 뜯겨져 나간 팔도 치유 마력으로 인해 재생이 되는 모습이었다. 온몸을 자극하던 무시무시한 통증 또한 몰핀이라도 맞은 듯 점점 무감각해져 갔다.
그렇게 몸이 회복되어가는 허유림을 향해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왔다.
“녀석의 이빨 공격을 조심해! 그리고 방패로 막아낸다 하더라도 도끼로 쳐낼 수 있으니 그 점도 염두하고 움직여!”
“알았어!”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는 타냐의 말에 허유림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전투에 돌입했다.
악어 괴물의 출혈 디버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교대로 탱킹을 가져가야 하는 터라 자신도 탱커 역할을 반드시 제대로 해내야 했다. 그래야만 녀석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허유림이 고생을 하는 동안 유다희도 정신을 바짝 차리며 쉴 새 없이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클랜 1군 공격대 소속으로 레이드를 다닐 때는 매번 딜량 부분에서 1, 2위를 차지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쉴더급 공격대인 GGW 공격대에서 유다희는 딜량 부분에서 압도적인 꼴지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 잌…!’
심지어 힐러인 민국이 기록하고 있는 딜량의 두 배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딜러와 힐러 클래스의 차이를 생각하면 자존심이 굉장히 상할 일이었다.
“돌진 온다! 모두 흩어져!!!”
온 몸을 웅크렸던 악어 괴물이 돌진하듯 도끼를 앞세우며 본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본진을 구성하고 있던 원거리 및 힐러 멤버들은 다들 흩어진 뒤였다. 악어 괴물의 돌진이 끝나자 탱커들이 어그로를 잡기 위해 괴물에게 달려들었고, 근접 딜러들 또한 그 뒤를 따라 열심히 발을 놀렸다.
민국은 그렇게 움직이는 이들을 보다가 외쳤다.
“모두 이쪽으로!!!”
이렇게 한 데 뭉쳐 있다가 녀석이 돌진을 하면 타이밍에 맞춰서 피해주면 되는 일이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저 녀석의 상태가 정상적이었어도 어렵지 않게 잡았겠는데?”
그런 민국에게 유나의 자신만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민국은 눈앞의 괴물에 대한 정보를 떠올렸다.
“쉽지 않았을 걸? 저 녀석이 정상이었다면 돌진 속도가 지금보다 세 배는 빨랐을 거야.”
“세, 세 배요? 아니, 지가 붉은 혜성이야 뭐야?”
괜히 투덜거리는 유나를 보며 민국은 가소롭다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
확실히 녀석의 부상이 없었더라면 팀운들이 전투 패턴에 익숙해지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을 녀석이었다. 하지만 악어 괴물의 다리에는 큼지막한 상처가 나 있었다.
‘여기가 무플런의 세력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놈의 상처는 카우킹 부족과의 전투에서 얻은 게 분명했다.
아무튼 다리를 다친 녀석의 기동력은 형편없는 수준이었고, 덕분에 아군은 놈의 공격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회피 타이밍이 조금 늦더라도 무난하게 공격을 피해낼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덤으로 유다희와 허유림도 빠르게 적응하는 모습이고.’
아직 부족한 부분은 차고도 넘쳤지만, 이는 한 두 번의 트라이로 고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특히나 위험 패턴의 객관적인 파악 및 무빙 관련해서는 훈련이 굉장히 많이 필요할 것 같았다.
뭐, GGW 공격대도 처음은 저랬으니 한두 번의 전투로 고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인도의 심각성을 감안하면 지금처럼 상위 레이드를 함께 하면서 자연스레 고쳐 나가야 할 점을 깨닫게 하는 수밖에 답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트라이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처음에는 우왕좌왕하며 민국의 입에서 이래저래 싫은 소리를 잔뜩 들은 유다희와 허유림이지만 그래도 레이드 짬밥이라는 게 어디 가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게다가 둘은 적어도 시키는 임무만큼은 제대로 해낼 수 있을 정도의 기량과 센스가 있었고, 전투 능력도 수준급이었다.
비록 악어 괴물의 이빨에 한쪽 팔아 날아가는 큰 부상을 입기는 했지만,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상대가 9등급 특수 개체라는 것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수준의 탱킹이었다.
그렇게 민국은 새롭게 합류한 이들과 함께 던전을 공략해 나갔다. 살짝 긴장하기는 했지만, 예상했던 대로 공략에 큰 문제가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면 슬슬 손을 좀 뻗어볼까….’
순조롭게 던전을 공략할 수 있다면 이제는 다른 퀘스트도 함게 진행할 시간이었다.
이어서 민국의 눈이 이국적인 외모를 지닌 한 여성에게 향했다. 허유림, 오늘의 목표물이자 큐우♡의 퀘스트 대상으로 점찍은 영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