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328화 (328/486)

〈 328화 〉 달콤한 유혹

* * *

퍼어억!

섬뜩한 충격음과 관자놀이를 한 대 얻어맞은 허유림은 자신의 몸이 크게 휘청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봊 됐다…!’

자신에게 접근하는 그림자를 보면서 가까스로 가드를 올려봤지만, 그녀의 정신은 거기까지였다. 어느새 다가온 애꾸눈의 이족 보행 괴물이 그대로 허유림의 목을 꺾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씨발, 조졌네.’

자신이 바라보던 보던 시야가 돌아가기 전, 허유림이 했던 마지막 생각이었다.

“아아아악!”

잠시 후, 던전 게이트의 밖에서 되살아난 허유림은 비명과 함께 주위에 널려 있는 돌무더기들을 발로 뻥뻥 걷어찼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마력이 섞인 그녀의 난동에 주위가 엉망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

외국인 영웅이 짜증을 내는 모습에 주위를 경계하고 있던 인도군의 시선이 자연스레 허유림에게 집중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휘관들의 질책이 이어지자 병사들은 다들 몸을 돌리는 모습이었다.

트라이에 실패한 영웅들이 이런 식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게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닌데다가 괜히 시비라도 걸리게 되면 본인들만 손해였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땅을 걷어차는 허유림의 행동은 양반 축에 속했다. 정말 정신이 나갔거나 성질이 더러운 이들은 주위에 있는 병사들을 상대로 화풀이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허억, 허억, 허억. 어휴, 씨발….”

그렇게 한참을 날뛰면서 주변을 엉망으로 만든 한유림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하나 꺼내들었다.

아직 레이드가 진행 중인 터라 다시 던전에 진입할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전투가 끝난 이후,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마력이 소모된 부활석이 완전히 깨지고 나면 새롭게 부활석을 설치한 후 재진입을 해야 했다.

조금 전의 난리 때문인지 주변의 인도 병사들이 힐끔힐끔 자신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지만, 허유림은 얼굴에 철판을 깔며 담배를 태웠다.

“아, 무조건 잡았으면 좋겠는데…….”

허유림은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자신이 죽기 전, 네임드의 생명력이 9%? 10% 정도였던가? 살짝 애매한 상황이기는 했다.

탱커 혼자서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쉽지 않은.

‘그래도 타냐 루스가 9등급 영웅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자신의 실수가 조금이라도 희석되려면 이번 트라이에 반드시 네임드를 잡는데 성공해야 했다. 아무리 꼴사나운 모습을 연출해도 괴물만 잡아내는 데 성공할 수 있다면 만사형통이었다.

“후우.”

허유림은 담배 연기와 함께 한숨을 내뱉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꽉 막힌 가슴은 뚫리지가 않았다. GGW가 쉴더급 수준의 공격대라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자신도 국내에서 랭커 축에 속하는 탱커였다.

물론, 한 자릿수는 아니고 20위권 내의?

그만큼 나름대로 한가락 하는 수준의 탱킹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뭐, 천외천이 따로 없었다. 심지어 임시 던전의 놈들은 GGW 팀원들의 말에 의하면 반 쪼가리에 불과한 녀석들로 막상 【A ­ 1】 난이도의 네임드 수준도 못된다고 했다.

그리고 GGW 멤버들이 그런 말을 할 때 마다 허유림은 자신의 자존감이 찌그러지는 느낌이었다.

‘이게 【S】 난이도의 던전. 그리고 쉴더급 공격대는 이런 놈들을 때려잡는다는 건가…. 미쳤네, 진짜.’

다시 한 번 담배를 빨아들인 허유림은 퉤 하고 침을 뱉었다.

자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 정도 수준의 영웅은 되지 못할 것 같았다. 아니, 한민국과 같은 공대장 밑에서라면 가능할지도?

확실히 한민국의 상황 판단 능력과 리딩 능력은 나름 베테랑 축에 속하는 본인이 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무언가가 달랐다. 더욱이 세세한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지시를 내리는 모습을 보다보면 몸이 절로 달아오를 정도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전황을 읽는 눈이 굉장히 정확했다. 마치 그의 말대로만 행동한다면 그 어떤 네임드도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러시아, 브라질, 일본 등 다수의 국적으로 이루어진 그 친구들이 한민국 공대장의 말에 불구덩이 속이라도 들어갈 기세를 괜히 풍기는 게 아니었어.”

단순히 잘생긴 남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성별을 가볍게 뛰어넘을 정도로 한민국의 기량이 월등했기 때문이었다. 전투 능력은 두 말할 나위도 없었고.

“부럽네.”

그런 실력자 미남과 함께 하는 레이드를 생각하며 허유림은 픽 웃었다.

“…그나저나 이 새끼는 대체 뭘 하고 지내는 거야?”

마침 죽은 김에 외부로 나왔겠다, 허유림은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미소를 짓는 한 남자와 함께 찍은 배경사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이돌로 활동할 예정인 허유림의 남자 친구였다.

남자의 수가 적은만큼 남자들이 아이돌로 데뷔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기본 이상은 해야 했기에 어느 정도 잘생긴 이목구비를 지니고는 있어야 했다. 그리고 허유림의 남자친구도 제법 또렷한 인상을 지닌 미남 축의 소년이었다.

게다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연하.

덕분에 소개로 만나 얼마나 애지중지하며 공을 들였는지 눈물 없이는 그 노력에 대해 이야기하기 힘들 정도였다. 지금도 그와 만나면서 허유림은 못해도 달에 오천 만 원 이상은 남자 친구에게 투자하고 있었다.

‘뭐, 그만큼 쪽쪽 빨아먹기는 했지만.’

금전이 많이 오가기는 했지만, 7성 영웅인 그녀에게는 크게 부담되는 돈은 아니었다. 그래도 허유림은 그 남자에 대해 제법 진심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어느 정도 돈을 모으고 나면 영웅에서 은퇴, 남자 친구와 결혼 생활을 보낼 예정이었다. 남자 친구 역시 그렇게 이야기를 했었고. 허유림이 이번 인도 원정에 나선 이유 역시 목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아, 성질 나오게 하네. 가뜩이나 꼴사납게 뒈지는 것도 짜증나는데.”

아무튼 그렇게 사랑을 키워왔던 남친이 인도로 원정을 온 후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 설마 자신이 없는 동안 다른 여자가 꼬리라도 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에 가슴도 답답한 느낌이었다.

[허유림 :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돼?]

치밀어 오르는 욕설을 자제하면서 메시지를 보내봤지만, 답장이 올 리 만무.

순간적인 충동에 남자에게 가는 자동이체를 끊어버리려고 했지만, 차마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었다. 그 행동의 결과는 곧 남자와의 인연을 끊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했으니까.

아무리 호구가 된 느낌이라 해도 아이돌 수준의 남자를 만난다는 건 영웅이라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개새끼. 진짜 한국에 돌아가서 보자…. 만약 다른 여자라도 생겼다면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연락이 되지 않는 남자친구를 원망하며 허유림이 다시 한 번 품에 있던 담배를 꺼내들어 물 때였다. 갑자기 부활석이 진동하더니 그녀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푸른색의 입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던전 내에서 사망했던 누군가가 되살아나는 과정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허유림은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드가 어떻게 끝났던 간에 혼자만 뒤진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허유림은 마력의 입자들이 모여들면서 만들어내는 여성의 얼굴을 확인했다.

“어…?”

부활석의 힘으로 되살아난 이는 GGW의 막내인 최유나였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휘휘 흔드는 유나를 향해 허유림이 다가갔다.

“유나야, 괜찮아?”

등급의 차이는 있었지만, 자신이 나이도 많았던 데다가 최유나의 성격이 활발하고 털털했기에 그녀 입장에서는 그나마 GGW 멤버들 중 대하기가 가장 편한 멤버였다. 실제로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기도 했다.

“레이드는 어떻게 됐어?”

“어, 언니? 아! 잡았어요. 그리고 저는 마지막에 놈의 공격에 휩쓸려서 죽었고요. 아우….”

자신의 실수를 자책이라도 하는 모양인지 유나가 본인의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잡았어? 어휴…. 다행이다.”

그리고 허유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죽음에 대해 가볍게 넘어갈 가능성이 높았다.

그녀는 GGW 공격대의 공대장인 한민국의 얼굴을 떠올렸다. 여성에게 보호받아야 하는 약하디 약한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상황이 역전이 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이상하게도 한민국 앞에서는 뱀 앞의 개구리래도 된 것 마냥 맥을 출 수가 없었다. 더욱이 그가 화를 낼 때면 공기까지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나 실수로 죽었을 때….”

허유림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다시 되물었다.

“공대장님이 화 많이 냈어?”

“어, 아뇨? 딱히? 공대장님보다는 다희 언니가….”

“아아.”

유나의 대답에 허유림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뭐, 충분히 이해되는 행동이었다. 임시 던전을 공략하는 트라이가 진행될 때 마다 1군 들만 계속 죽어나가고 있었으니 간부 입장에서 부끄러웠겠지.

그에 반해 GGW 멤버들은 처음 공략하는 던전임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놈들을 몇 번이라도 상대해 본 것 마냥 빠르게 레이드에 적응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타냐 루스 탱커의 말로는 다양한 네임드를 상대해 본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서 적응이 된 것이라고 했다.

‘그에 반해 우리들은…….’

국내에서 담당하고 있는 던전들은 누구보다도 빠르게 공략할 자신이 있었지만, 그 외의 새로운 네임드들을 상대로는 버벅일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패턴의 괴물들을 상대한 경험이 적으니까.’

때문에 이러한 영웅 교류의 취지들이 이해가 되기는 했다. 아무튼 웃는 얼굴에 침도 못 뱉는다는 속담처럼 이따가 본대와 합류하게 되면 유다희에게 앞으로 잘하겠다고 한 마디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이런 것들도 다 사회생활이지.’

잠시 후, 품에서 부활석을 꺼내든 유나가 부활석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설치가 끝난 것을 확인하며 손을 탁탁 털었다.

“그러면 들어갈까요, 언니.”

“어? 어. 내가 해도 됐는데…….”

“누가 하면 어때요. 그리고 【S】 난이도 던전 트라이에 들어가면 부활석 설치는 매번 제가 해서 익숙해요.”

유나의 너스레에 허유림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계속되는 1군 멤버들의 사망에 오늘의 교류가 정말 불편할 자리가 될 수도 있었는데, 그래도 최유나 같은 후배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공대장과 유다희의 눈치를 보느라 기분이 잡쳤을 것 같았다.

거기에 남자 친구랑 연락이 되지 않는 것까지 감안하면….

‘최악의 하루가 되었겠네, 씨이발.’

상상만 해도 속이 뒤집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던전으로 진입한 둘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음을 옮겼다. 물론, 걷는 게 아니라 뛰면서.

“우리가 몇 놈이나 잡았지?”

“이번에 잡은 애들까지 다섯이었던가? 아! 여섯이요. 공대장님 말로는 던전 크기를 생각해봤을 때 한두놈만 더 잡으면 클리어가 가능할 것 같다고 하시는데….”

“지금 길 뚫고 브리핑 중이겠지?”

“아마도요. 일단 빨리 가서 브리핑 들어야죠.”

“에휴.”

유나의 말에 허유림은 한숨을 내뱉었다.

또 어떤 이상한 능력을 지닌 괴물이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을 지 벌써부터 골치가 아파왔다. 특히나 탱커는 어둠 괴물의 특수한 능력 뿐 아니라 놈의 공격 패턴까지 읽어야 했기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 더더욱 많았다.

‘머리 나쁜 년은 죽었다 깨어나도 탱커는 못할 거야.’

조금 전, 어둠 괴물과 싸웠던 장소는 엉망이 되어 있었다.

시체는 어느새 사라진 지 오래. 보상 상자가 열려 있는 것을 보면 공격대는 이미 다음 네임드로 향하는 길을 뚫고 있거나 뚫은 모양이었다.

“빨리 가야겠다.”

한민국이 기다리고 있을 생각에 허유림은 조금 더 속도를 높였다.

얼마나 깔끔하게 청소를 했는지 달리는 동안 한 마리의 몬스터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아…!]

‘뭐지?’

허유림의 귀로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비명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누군가가 자지러지는 야릇한 소리였다. 전장이 동굴 지형이라 그런지 소리가 웅웅거린 터라 정확한 파악이 힘들었다.

콰드드드득!

소리가 들리자 마자 급하게 몸을 세우는 바람에 지면이 엉망이 되었지만, 허유림이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빠르게 주위로 고개를 돌렸다.

‘설마…!’

아군이 몬스터의 손에 붙잡혀 워킹걸이라도 된 건 아니겠지?

“저쪽이야!”

그 때 다시 한 번 야릇한 신음이 들려왔고, 허유림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빠르게 몸을 날렸다. 유나가 바짝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길게 이어지는 동굴의 통로를 지나 허유림이 다급하게 소리가 들리는 공동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아흑! 앗! 아아악!”

자신이 어느새 환상에라도 걸린 것일까?

‘뭐, 뭐야…?’

개처럼 엎드린 유다희의 위로 한민국이 올라타서 허리를 흔들어대는 모습이 허유림의 눈에 들어왔다.

아니, 이건 환상이 분명했다. 가정파괴범 수준의 커다란 대물이 강인했던 유다희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으니까.

일단 현실에는 저런 대물이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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