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2화 〉 달콤한 유혹
* * *
후우우우웅!
강한 마력의 폭풍이 주위에 있던 영웅들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 넘겼다.
【S 5】 난이도의 던전에서 마주할 수 있던 십이 재앙, 그 가루다에게서 얻을 수 있었던 골드급 마력의 결정이 만들어내는 폭풍이었다.
자격을 갖추기 전이라면 아랫단계의 마력의 결정을 흡수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현상이 벌어졌겠지만, 지금처럼 10성 영웅이 될 자격을 갖추고 나면 응축된 마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
“와, 와, 와….”
“드디어…!”
거센 폭풍에도 불구하고 GGW 팀원들의 눈은 다들 민국에게 향해 있었다.
지금 그녀들은 역사적인 순간을 목격하고 있었다. 인류 최초의 10성 영웅이 탄생하는 모습이었다. 때문에 다들 지금의 광경을 기억하려는 듯 눈 하나 깜박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다들 넋을 놓고 폭풍의 중심부에 있는 민국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사방으로 퍼진 마력을 자신에게로 흡수하듯 갈무리한 민국이 짧은 숨과 함께 번쩍 눈을 떴다. 그렇게 거센 바람이 잦아들자 곧바로 현아가 쪼르르 민국에게 달려가서 물었다.
“어때? 뭔가 달라진 것 같아?”
“그냥…. 조금 더 강해진 느낌? 확실한 건 잘 모르겠는데?”
민국의 자신의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며 내부를 관조했다.
확실히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는 마력의 양이 조금 늘어난 것 같기는 했다. 게임식으로 표현하자면 자신의 힐량이 소폭 상승한 것 같은 느낌?
‘나쁘지는 않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바로 민국은 자신이 장착한 스킬 스톤과 레전드리 클래스 ‘유그드라실’의 궁극기를 확인했다. 아쉽게도 스킬들의 효과는 바뀐 것이 하나도 없었다.
‘10성이라고 해서 뭔가가 대폭 바뀌는 것은 없나 보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조금 아쉬운 결과였다.
그래도 한 자릿수에서 두 자릿수 등급으로 변하는 시발점이었기에 각성이라도 하듯 뭔가 크게 달라질 것들이 있을까 싶었는데….
이게 전부라면 차라리 스킬 강화석을 다수 손에 넣는 게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기초 체력이라 할 수 있는 힐량의 상승은 큰 도움이 될 테지만, 기대감이 너무 컸던 모양이었다.
‘이럴 때 뿌우 녀석이 있었더라면….’
지금 자신이 이뤄낸 업적을 강조하면서 괜찮을 보상의 퀘스트 하나라도 뜯어냈겠지만, 아쉽게도 뿌우 녀석은 현재 잠이 들어 있었다.
“슬슬 깨워서 퀘스트를 뽑아내던가 해야지. 뭔가 아쉽네.”
“응?”
“어? 아, 아무것도 아니야. 어쨌든 10성 영웅이 되었으니 달라진 능력을 시험해 봐야겠지? 그러면 바로 트라이를 진행해볼까?”
10성 영웅으로 각성은 했지만, 그렇다고 던전 공략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두 마리 이상의 어둠 괴물을 상대해야만 이 임시 던전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그렇게 내부로 다시 향하면서 김소정이 말했다.
“후방 서포트만큼은 정말 확실해 지겠네요. 힐러진 세 분이 전부 궁극기를 보유한데다가 공대장님은 10성이시기도 하니….”
더욱이 인도의 임시 던전은 본래보다 난이도가 두세 단계는 하락한 곳.
조금 과장해서 GGW 공격대의 멤버들은 레이드 시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사망하게 되면 본인의 기량을 의심해 봐야 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소수 어둠 괴물들만이 사용하는 전멸기는 잘못 걸리는 그대로 찍이었다.
“빨리 현아와도 딜러장도 10등급 영웅이 되어야지.”
민국이 말했다.
실버급 마력의 결정을 몰아받고 있는 그녀들도 곧 10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제는 골드급 마력의 결정이었지만, 예전에 받은 여유 분이 한 개 더 있는데다가 조만간 가루다에게서 마력의 결정을 또 하나 얻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탱, 딜, 힐러진 중 한 명씩 10등급으로 승급하고 나면 조금씩 활동 범위를 넓힐 생각이었다.
‘일단 일차적인 목표는…….’
퐁디셰리에 있다는 무플런의 심복인 찬드라니암이었다.
놈을 잡아야지만 벵갈만과 안다만 해역의 수송로를 확보할 수 있었고, 그리고 나서야 동남아 지역의 식량을 인도로 들여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인도인들을 괴롭히고 있는 식량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었다.
그렇게 던전 안쪽으로 길을 뚫던 도중 네임드가 등장했고, 트라이가 시작되었다.
“오…! 10성 영웅의 회복 능력은 뭔가 다른 느낌인데?”
“괜한 착각이야. 크게 달라지는 건 없어.”
“아닌데, 있는 것 같은데?”
운 좋게도 이미 공략을 해 본 녀석이라 상대하기가 어렵지 않은 놈이었다.
때문에 장난을 치는 팀원들을 뒤로 하고 민국은 자신의 달라진 변화를 세세하게 체크했다.
바뀐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나중에 새로운 어둠 괴물을 마주했을 경우 클리어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각을 정확히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가루다를 제외한 다른 십이 재앙 혹은 그들의 심복을 상대로 전투가 벌어질 경우를 대비해서라도 객관적으로 본인을 포함해 팀원들의 능력을 체크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무의미하게 꼴아 박는 전투만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10성 영웅의 회복 능력이 괜찮은 수준이었다.
얼핏 9성이었을 때와 비교하면 회복 능력의 효과가 1.2 배 정도 높아진 느낌이었다.
이는 엄청난 수치 변화로 회복 능력을 직접 사용하던 민국 본인도 깜짝 놀랐을 정도였다. 게다가 소모된 마력의 회복 속도로 큰 폭으로 높아졌다.
이런 수준이라면 레이드가 장기전으로 이어진다 하더라도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거 나쁘지 않은데?”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고생을 한 보람이 있지.
민국의 시선이 현아와 김소정에게 향했다. 현재 GGW 공격대 내에서는 이 두 영웅이 10성을 앞두고 있었다.
늦어도 일주일 내면 충분히 승급이 가능했다. 그리고 나면 다른 이들의 승급이 줄줄이 이어질 터였다.
그렇게 팀원들의 스펙이 높아지게 되면 공격대가 공략할 수 있는 네임드의 스펙트럼도 분명 넓어질 테고, 그 중에는 십이 재앙들도 포함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좋아, 하나하나씩 차근하게 잡아보자고.’
카우킹과 무플런은 여전히 자기들끼리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고, 그나마 위험한 놈이라 생각되는 바이콘은 가루다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 상황.
자신의 제물이 될 놈들의 운명을 생각하면서 민국이 입 꼬리를 비틀며 웃었다.
* * *
“GGW 공격대의 한민국 영웅이 10성이 되었다고 해.”
“…뭐?”
캡틴 가드니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화이트 하우스의 공격대장인 라비아 맥퀸은 팀의 메인 탱커인 미리암 로스의 말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뭐? 10성이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10성이라는 게 존재했어?”
“9성이 있으니 당연히 10성도 있었겠지. 실버급 마력의 결정 그 윗 단계가 존재할 거라는 추측은 예전부터 있었잖아?”
“아, 아니. 그렇다 해도…….”
그 윗 단계가 어떤 마력의 결정인지는 초강대국인 미국도 알지 못했다. 그렇게 눈을 끔뻑이는 라비아를 향해 미리암 로스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골드급 마력의 결정으로 밝혀졌어. 이미 증거 사진까지 나왔고. GGW 공격대가 새의 탑을 공략하면서 얻어낸 성과물이라고 해.”
“새의 탑…?”
십이 재앙인 가루다의 본거지인 던전.
그리고 GGW 공격대가 작년 말, 근 한 달이 넘도록 새의 탑을 두들겼던 건 라비아 맥퀸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 공략…. 실패한 게 아니었어?”
“거기까지는 나도 모르지. 하지만 골드급 마력의 결정을 획득한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못해도 가루다의 심복 혹은 날개 정도는 꺾어버린 모양이지.”
“그렇긴 하겠네.”
그렇다고 해서 10성 영웅이 되는 방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실버급 마력의 결정은 9등급 특수 개체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었고, 전 세계에서 그 괴물들을 잡을 수 있는 공격대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심지어 등급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적어도 수십 개에 달하는 실버급 마력의 결정을 흡수해야 했다. 그것도 자신의 클래스에 어울리는 마력의 결정으로 말이다.
다시 말해 못해도 9등급 특수 개체를 몇 백 마리 이상 때려잡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GGW 공격대는 그것을 해낸 모양이야.”
“…미친년들이네.”
“정확히 표현하자면 미친년들과 미친놈 한 명이지.”
그렇게 말을 하면서 미리암 로스는 ‘그러니까 십이 재앙 둘이 부딪치고 있는 인도까지 가서 어둠 괴물과 싸우고 있는 거겠지’라며 말을 덧붙였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라비아 맥퀸은 자신에게 들어온 정보들을 다시금 떠올렸다.
‘충돌의 여파라고 했던가?’
인도의 임시 던전들은 일반적인 던전 브레이크에서 볼 수 있는 임시 던전들과는 많이 부분에 다르다는 모양이었다.
충돌로 인한 던전 내 네임드들의 약화, 그리고 터질 염려가 거의 없을 정도로 기한이 길어진 던전 타이머가 대표적이었다. 확실히 마력의 결정을 얻는데 아주 좋은 배경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상황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 한국의 R’s 클랜을 제외하면 그 어느 국가도 공격대를 지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인도의 상황이 아주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적어도 천 명 이상의 영웅이 사망했다지?’
그 중 상위 영웅이라 할 수 있는 6,7 등급의 영웅들도 백여 명 이상이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십이 재앙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도 아닌데 그만큼의 희생자가 나온 것이다.
때문에 각국의 정부는 자국의 영웅 전력을 보존하기 위해 인도의 지원 요청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로 떠나서 벌써 두 달 가까이 활약하고 있는 GGW 공격대를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니, 미쳤다고 해야 하나?
그 때였다.
이름난 화가가 그린 것처럼 완벽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연한 초록색의 눈동자가 라비아의 눈에 들어왔다. 뭔가 결심을 한 것처럼 비장함이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라비아가 괜스레 불안감 느낌이 들 때였다.
“우리도 가자.”
“…어디를?”
“인도. 언제까지 이곳에 틀어박혀 있을 거야?”
미리암 로스의 말에 라비아 맥퀸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그곳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알고서 이야기를 하는 걸까? 아니, 정부는 어떻게 설득을 하고? 또 다른 팀원들은?
가고 싶다고 해서 무턱대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눈앞의 여성은 막무가내였다.
“인도에 가면 실버급 마력의 결정이 지천으로 널려 있을 거라고.”
“그래서?”
“그것들을 전부 흡수한 다음에 골드급 마력의 결정을 얻게 되면? 우리도 10성 영웅이 될 수 있어. 그러면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있는 실버백도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아아…….”
라비아 맥퀸의 입에서 기가 막힌다는 신음이 새어나왔다.
정말로 기가 막히기는 했다. 사람이 어쩌면 이렇게 단순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곧 미리암의 시선을 피했다. 화이트 하우스의 임무가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었기에, 본인들이 인도로 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단 공격대의 이름이나 마찬가지인 화이트 하우스의 허락이 있어야 했고, 국민적인 공감대 또한 얻어야 했다. 쉴더급 공격대인 자신들이 무턱대고 인도로 떠났다가는 현재 관리하고 있는 던전에 문제가 생길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년들이 도움이 될 리도 없고.’
미국에는 자신들 말고도 쉴더급 공격대가 두 곳이나 더 있었다.
하지만 화이트 하우스가 맡은 던전 관리를 대신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뭐, 골덴 이글과 같은 경우는 거의 이름만 쉴더급이라 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했고 말이다.
그녀들은 옐로스톤에 자리 잡고 있는 실버백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된 던전을 맡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높은 위험성 때문에라도 다른 클랜이 결코 대신할 수 없는 관리였는데, 다른 쉴더급 공격대라 할지라도 불가능에 쉽지 않은 임무였다.
“일단 가자, 이건 어둠 괴물들을 끝장낼 수 있는 기회야. 언제까지 던전이 무너지기만을 기도하면서 끝없는 레이드만 반복할거야?”
“…어둠 마력의 다 사라질때까지?”
“라비아!”
“아, 알았어. 알았어.”
계속된 미리암의 재촉에 라비아는 자신의 이마를 슬쩍 문질렀다.
뭐, 확실히 좋은 기회기는 했다. 인도의 상황이 정말이라면 쉽게 10성 영웅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셈이니까. 게다가 GGW 공격대의 선례도 있었다.
쉴더급 공격대인 GGW가 거짓말로 발표를 했을 리도 없을 테니….
아무튼 그런 것들은 전부 감안하면 미리암 로스가 이렇게까지 흥분한 것도 이해가 되기는 했다. 라비아가 한숨과 함께 말했다.
“일단…. 윗선에 한 번 물어보기는 할게. 미리암, 너도 알겠지만 우리는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몸이야. 미국의 던전이 그리고 미국 시민들의 안전이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고.”
기왕 이렇게 된 거 윗선에 한 번 의향을 물어볼 생각이었다. 윗선에서 거절을 한다면 미리암도 막무가내로 우기지는 않겠지.
그렇지 않아도 인도의 위기를 외면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참. 허락이 떨어져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며칠 뒤, 라비아의 예상을 완벽히 깨고 화이트 하우스의 인도 파견이 결정되었다.
이어서 레이드 강국이라 할 수 있는 국가들이 하나, 둘씩 쉴더급 공격대의 인도 파견을 진지하게 논의하기 시작했다. 10 등급 영웅의 탄생이 쏘아올린 작은 공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