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334화 (334/486)

〈 334화 〉 공포와 부정한 뱀

* * *

“케랄라 주의 안전이 확보되면 퐁디셰리로 진출할거라지?”

“예. 몇 번이나 언급했던 대로 퐁디셰리의 악마와 붙을 생각으로 보입니다.”

“…그렇군.”

루브리나 장군은 주먹을 꽉 쥐었다.

퐁디셰리의 악마, 찬드라니암. 무플런의 심복이라 알려진 검은색의 애꾸눈 뱀은 퐁디셰리의 오수두 호수에 터전을 잡고 그 근방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다.

놈을 공략하기 위해 몇 번의 대규모 작전이 이뤄졌지만 괴물의 강력함을 이기지 못하고 전부 패퇴, 오수두 호수 근처에서 사망한 영웅과 군인들의 숫자가 못해도 5만은 넘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현재 오수두 호수는 몬스터의 둥지가 되어 그들만의 왕국을 이루고 있다고 했다.

“GGW 공격대의 승산은?”

“…믿는 수밖에요.”

부관의 대답에 루브리나 장군은 후 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쉴더급 공격대이자 10성 영웅들이 포함되어 있는 GGW 공격대의 전투력은 전 세계에서도 가장 강력한 수준. GGW 공격대가 실패한다면 오수두 호수의 탈환은 자신들의 전력으로는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한참의 고민 끝에 루브리나 장군이 입을 열었다.

“우리도 GGW 공격대와 연계해서 움직인다. 케랄라의 방비는 11 보병사단이면 충분하겠지.”

“바로 움직일 준비를 하겠습니다.”

영웅들의 활약으로 오염된 대지를 걷어내는데 성공하고 케랄라 주의 안전이 확보되면 10 군단의 전력이 이곳에 묶여 있을 필요가 없었다.

남은 임시 던전들을 처리하는 영웅들을 보조할 병력만 있으면 되었다.

‘10군단의 화력이 부족한 수준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군단급 규모의 군대, 오수두 호수의 공략은 충분히 시도할 수 있는 수준의 화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고슴도치 전략으로 한 자리에 짱 박혀서 접근하는 몬스터들을 향해 포탄만 발사했던 까닭에 장비들을 움직일 기름도 충분히 있었다.

‘적어도 30일 정도는 작전이 가능할 터.’

언제까지나 몬스터들의 공격을 방비할 수만은 없는 노릇.

GGW 공격대를 따라 오수두 호수를 탈환하고 차근차근 어둠 괴물들을 자신들의 땅에서 몰아내야 했다. 그렇게 전역 지도를 보는 노장의 눈이 번뜩였다.

* * *

햇볕이 내리쬐는 고원.

민국은 시간이 날 때 마다 태블릿에 적어놓은 공격대의 현황 메모를 확인했다. 계속된 【S】 난이도 던전의 공략에 힘입어 공격대의 10성 영웅은 팀의 반수인 다섯이나 되었다.

현아와 김소정에 이어서 타냐 루스 그리고 막내 신나연이 그 주인공이었다.

황당하게도 민국이 다음 10성 영웅으로 팀의 부 탱커인 타냐를 이야기했을 때, 국내에서는 말이 제법 많이 나왔던 모양이었다.

[GGW 공격대의 10성 영웅에 대해 우려해야 할 점은?]

[러시아 국적인 타냐 루스의 10성은 과연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메모리얼 클랜과 타냐 루스의 계약은 고작 2년밖에 남지 않아. R’s 클랜과의 임대 기간도 내년 여름이 끝으로 알려져.]

[2년 뒤에 떠나는 10성 영웅?]

러시아라는 타냐의 국적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국내에서는 외국인보다는 한국인 영웅을 10성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들끓었던 모양이었다. 덕분에 R’s 클랜과 오현정이 고생을 엄청나게 한 모양이지만….

‘쓸데없는 참견이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을 민국이 신경 쓸 리 없었다.

애당초 민국이 타냐를 10성으로 승급시키려는 이유가 팀의 탱커진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십이 재앙을 포함한 어둠 괴물들의 상위 네임드를 상대하려면 그 무엇보다도 괴물들의 공격을 받아내야 하는 탱커의 스펙이 중요했다.

후 순위로 신나연을 선택한 이유 역시 포지션 분배와 함께 그녀의 딜링 실력이 원거리 딜러 중에서는 가장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신나연이 한국이라서가 아니라 말이다.

아무튼 인도 남부의 네 개 주를 순회하면서 【S】 난이도 던전을 찍먹한 결과가 10성 영웅 다섯이라는 지금의 상황이었다.

“이 정도라면….”

슬슬 십이 재앙의 심복들과 힘 싸움을 벌여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전투력의 차이가 얼마나 날지는 모르겠지만, 마냥 준비만 하면서 간만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욱이 쉴더급 공격대가 하나, 둘씩 인도로 오면서 카우킹과 무플런도 행동을 달리한 모양인지 인도 북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이번 달에만 여섯 번이나 충돌했다지?’

오늘 날짜가 19일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사흘에 한 번씩 붙은 셈이었다.

그렇다고 쉴더급 공격대가 북부로 지원을 온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 안전하게 【S】 난이도 던전을 공략하느라 데칸 고원 근처의 중부 지방을 오갈 뿐이었다.

덕분에 십이 재앙 세력들의 중간에 끼다시피 한 뉴델리는 죽을 맛이라고 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수많은 이들이 죽어나가도 있었다.

아무튼 점점 충돌 횟수가 늘어나는 것이 놈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마치 결전을 준비하는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으음….”

잠시 고민을 하던 민국은 바로 휴대폰을 들어 가루다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러나 민국의 문자를 확인한 가루다는 평소와는 다르게 난처한 대답을 보내왔다.

[가루다 : 어…. 제가 지금 걔네들과 웃으면서 연락할 상황이 아니라서 정확한 상황 파악은 힘들 것 같아요, 주인님.]

[한민국 : 어째서지?]

[가루다 : 아니, 바이콘 새끼가 자꾸 제 행동을 이상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최근에는 제가 있는 새의 탑 근처까지 염탐꾼을 보냈더라고요? 하여튼 의심병 새끼….]

[한민국 : 염탐꾼?]

[가루다 : 바이콘의 발 빠른 심복인데, 9 등급 괴물 중에 발만 빠른 놈이 한 명 있어요. 진짜 걸리면 다리를 아작내는 건데…. 제가 아시다시피 마음대로 탑을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라서요.]

가루다의 문자를 보며 민국의 이마에 주름이 길게 만들어졌다.

‘좋지 않은데….’

아직 십이 재앙 중 한 놈도 처리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벌써부터 가루다가 스파이라는 것이 알려져서는 곤란했다.

[한민국 : 최대한 의심을 사지 않도록 해.]

[가루다 : 네, 그래서 십이 재앙의 움직임에 대해 은근히 물어보는 행위도 자제하고 있어요. 아, 최근 새의 탑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어 인간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척도 했고요.]

[한민국 : 탑 밖으로?]

문자를 보내고 나자마자 떠오른 기억에 민국은 나지막한 신음을 터뜨렸다.

일주일 전인가?

라오스를 포함해 동남아 지역이 크게 난리가 한 번 났다고 하더니만, 이 때문인 것 같았다. 보아하니 클랜 하우스로 조만간 동남아 국가들의 연락이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가루다를 공략하는 척 그녀와 한 번 접선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바이콘에 대한 대책도 세울 겸 말이다.

[가루다 : 그래도 그 두 년 놈들의 눈깔이 돌아간 것은 확실한 것 같아요.]

[한민국 : 음…. 오케이, 이쪽 일은 여기서 처리하도록 하지. 바이콘 일도 있고 하니 골드급 마력의 결정은 나중에 따로 받아가겠음.]

[가루다 : 아,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주인님. 바이콘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주시하고 있을게요. ^_^\]

이제는 인간들의 문명이기에 익숙해진 것인지 문자도 길게 보내는 녀석이었다.

아무튼 가루다를 통해 놈들의 움직임을 계속해서 체크했던 것이 따로 의심을 샀던 모양이었다. 가루다의 성향을 생각하면 확실히 이상하기는 했을 것 같았다.

본인 말로 십이 재앙 중에서도 왕따라고 했던 이가 갑자기 십이 재앙의 행동에 꼬치꼬치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니…. 확실히 이상하기는 했으리라. 일단은 가루다와의 연락은 자제해야 할 것 같았다.

“음.”

덕분에 카우킹과 무플런이 어떤 의도로 병력을 움직이는지에 대해서는 짐작할 만한 게 없었다. 하지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차피 하나였으니까.”

퐁디셰리의 청소.

정확히 말하면 무플런의 휘하 부하 중 하나인 찬드라니암을 공략하는 일이었다. 민국이 핸드폰을 들었다.

“루브리나 장군에게 오수두 호수를 공략하겠다고 이야기해줘.”

그리고 나흘 뒤, GGW 공격대가 퐁디셰리 근처의 오수두 호수에 도착했다. 물론 GGW 공격대 혼자만 온 것은 아니었다.

“전방에 중형 몬스터 다수! 대형 몬스터 셋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복합니다! 대형 몬스터 셋!”

“다 박살내 버려!!!”

별 모양의 계급장을 단 지휘관의 호령과 더불어 며칠 전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던 인도군의 탱크와 자주포가 불을 내뿜기 시작했다. 장갑차를 앞세운 보병들의 무기도 불을 내뿜었다.

그러는 동안 민국을 포함한 GGW 공격대는 측면을 통해 던전에 돌입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슨…. 남부의 몬스터가 죄다 여기 몰려있는 느낌이네.”

“찬드라니암이 이곳에서 터를 잡은 지도 제법 오래되었다고 하잖아? 놈의 던전에서 삐져나온 놈들이겠지.”

정예린이 아는 척 말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이곳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으니까. 못해도 삼 만이 넘는 괴물이 우글거리는 것 같았다.

“아무튼 오염된 대지를 걷어내고, 이 근방의 어둠 괴물들을 전부 몰아내려면 찬드라니암은 반드시 잡아야 해.”

“후딱후딱 끝내도록 하죠.”

“그렇게 방심하다가 첫 네임드부터 꽥 하고 죽는 수가 있다? 가장 먼저 죽고 나면 진짜 개망신인 거 알지? 군인들도 그런 거 다 신경 쓴다고.”

“아…. 이왕이면 전에 공략한 경험이 있는 놈들이었으면 좋겠는데요.”

찬드라니암이 존재한다는 추정 난이도 【S ­ 5】 등급의 던전을 앞에 두고도 GGW의 멤버들은 다들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그만큼 자신들의 능력에 대해 그리고 자신들을 이끄는 민국에 대해 강한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난 동안에도 수십 문의 자주포와 탱크는 쉴 새 없이 불을 내뿜으며 자신들에게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땅바닥에 처박고 있었다.

물론, 놈들도 그냥 당하지만은 않았다. 이미 최전방에서 괴물과 병사들끼리 육박전이 벌어지면서 끔찍한 참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인도 영웅들이 마력을 사용해서 지원에 나서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소수에 불과했다.

그렇게 전투가 이어지던 도중, 중령 계급장 단 군인이 GGW 공격대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돌입 준비가 끝났습니다.”

“이동하자!”

군인의 말에 민국과 GGW 팀원들이 재빨리 방탄차량으로 올라탔다.

탑승이 끝나자마자 바로 시동이 걸렸고, 장갑차와 전차의 호위를 받은 차량이 빠른 속도로 측면을 돌아 몬스터 무리들을 돌파하기 시작했다.

아직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지만, 언제까지나 여기에 발이 묶여 있을 수는 없었다. 찬드라니암의 던전을 처리하지 않는 이상 놈의 던전은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해서 꾸역꾸역 몬스터를 뱉어낼 터였다.

퀴에에엑!

쿠륵! 쿠륵! 쿠르르륵!

측면으로 진입하는 군인 병력을 보고 다수의 괴물들이 그쪽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그곳은 지옥의 불구덩이로 대가리를 들이미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 공대장님, 놈들이 이리로 오는 데요? 병사들에게 맡길까요?”

“아니, 가볍게 몸이나 풀 겸 모두 쓸어버려. 어차피 방어진 구축 때문에라도 주위 녀석들을 청소해야 했으니까.”

민국의 지시와 함께 지옥의 업화와도 불길이 괴물들의 몸을 새카맣게 불태웠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의 마력을 검풍처럼 날려대면서 김소정이 가장 먼저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이어서 신나연을 포함한 원거리 딜러들의 공격이 이어졌고, GGW 공격대는 자신들에게 접근하는 몬스터들을 모조리 곤죽으로 만들어 버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을 호위하는 병력들이 따로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파괴력이었다. 하지만 영웅들이 트라이를 진행할 때 군인들의 호위를 괜히 받는 게 아니었다.

“던전을 중심으로 방어진을 구축한다! 본대가 올 때까지 버텨!”

목표 지역에 도착한 중령이 이를 악 물며 소리쳤다.

지금은 GGW 영웅들의 활약에 힘입어 안전을 유지할 수 있다지만 그들이 던전에 진입하고 나면, 자신들은 괴물들의 한복판에 그대로 노출이 되는 셈이었다.

그렇다고 물러날 수도 없었다.

GGW 영웅들이 던전 내에서 사망하고 나면 게이트를 빠져나와 현실에서 되살아날 텐데 사방에 괴물들밖에 없다면 끔찍한 사고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10 등급 영웅이라 해도 만약의 경우라는 건 있는 법이었다.

때문에 후속 공격대도 현재 일직선으로 길을 뚫으며 자신들을 향해 오고 있는 중이었다.

“부활석 설치 완료!”

“모두 진입 준비!!!”

요란한 포화와 괴물들의 비명이 사방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푸른색의 빛이 찬드라니암의 던전을 뒤덮기 시작했다. 이어서 민국이 소리쳤다.

“공격대 진입!”

탱커인 현아와 타나갸 먼저 던전의 연결 게이트를 넘었고, 뒤이어 공격대의 멤버들이 순차적으로 던전 내부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을 호송하는 위험한 임무를 맡았던 인도군 중령은 하나 둘씩 사라지는 영웅들을 향해 부디 이번 작전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경례를 올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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