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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소녀 전쟁-336화 (336/486)

〈 336화 〉 공포와 부정한 뱀

* * *

[캬아아아아악!]

찬드라니암은 영웅들의 공격을 받아내면서도 쉴 새 없이 민국을 노렸다.

공포와 부정의 능력을 사용해 주위의 영웅들을 멀리 떨어지게 만들게 한 다음에 민국에게 달려들거나, 전장 곳곳에 놓인 독 항아리릍 동시에 터뜨리거나. 자신의 커다란 몸체를 이용해 다수의 영웅들을 후려칠 때도 녀석의 눈동자는 언제나 민국을 향했다.

“귀찮게 하네.”

뻔히 보이는 의도였지만, 놈의 공격만큼은 웃으면서 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잠깐이라도 방심하면 벼락과도 같은 속도로 독 이빨이 날아들었다. 상대는 십이 재앙의 심복, 민국의 스펙으로는 녀석의 이빨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치명상이었다.

‘나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좋지만….’

덕분에 딜러들은 손쉽게 데미지를 때려 넣고 있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딜러들의 공격이 몇 초 더 이루어진다고 해서 당장 놈을 쓰러뜨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녀석의 움직임을 경계하느라 제대로 된 리딩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공격대의 동료들이 알아서 움직여줬으면 좋겠지만….

놈의 공격이 이어질 때 마다 김소정이 바삐 지시를 내리고 있었지만, 딱히 도움이 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A】 난이도 하위 레벨 수준이라면 몰라도, 현재 GGW 공격대의 수준을 봤을 때 본인들끼리 알아서 찬드라니암의 패턴을 해결할 정도는 아니었다.

“장판!”

찬드라니암이 미끄러지듯 똬리를 트는 모습을 보며 민국이 외쳤다.

이어서 놈을 중심으로 원 모양의 독 바닥이 깔렸다. 탱커마저도 버틸 수 없는 강력한 독기였기에 어그로를 잡고 있던 현아와 타냐도 뒤로 물러선 모습이었다.

그리고 독 바닥은 시간차를 두며 외곽으로 깔려 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독 바닥이 이동이라도 하는 것 같은 움직이었다.

당연히 밟으면 사망.

2,3 초 내에 정화 스킬과 함께 회복 능력이 들어가면 살아날 수도 있겠지만, 힐러들도 독 바닥을 피해서 움직여야하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독 바닥에 사라졌다 생겨나는 잠깐의 짧은 타이밍에 열 명의 영웅들이 독 바닥을 피해 앞으로 미끄러지듯 뛰어나갔다. 처음 몇 번은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 몇 번이나 독에 중독되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지만, 지금은 스케이트를 타듯 자연스럽게 장판을 피하는 이들이었다.

역시 레이드는 반복된 연습과 경험이 최고였다.

[캬아악! 캬악!]

곧바로 찬드라니암이 자신의 상체를 크게 휘둘러 달려드는 영웅들을 뒤로 날려버렸다. 그러면서 찌익! 독침을 내뱉었다.

“으헛?!”

자신에게 날아오는 놈의 독침에 민국은 폴짝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리고는 슬라이딩을 하듯 다시 몸을 날렸다.

세 번의 침 중 두 개가 자신에게 향했던 까닭이었다. 진짜 씨발 새끼였다. 아까부터 노골적으로 자신을 노리는 것 같더니만…. 이 정도면 자신이 탱커를 해야 할 기세였다.

* * *

“…아, 노골적으로 노리고 있었는데, 그걸 당했네.”

민국은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을 노리는 찬드라니암의 스탠스를 확인하고 몇 번이나 공격을 회피했던 민국이었다.

가상현실 모바일 게임인 ‘우주 소녀 전쟁’에서도 소녀들이 아닌 플레이어를 노리는 네임드의 공격 패턴은 적잖게 있었다.

때문에 갑자기 어그로가 자신에게 튄다고 해서 잘 진행되고 있던 레이드의 흐름을 깨거나 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능력으로 충분히 대처 가능한 수준의 공격이었다. 오히려 팀원들이 더 당황하면서 큰 사고가 터질 뻔 했지만 가까스로 그 문제도 어떻게 커버할 수 있기는 했었다.

문제는 녀석의 집요함이 상상 이상이었다는 것이었다. 108갱도 아니고, 시시때때로 자신을 노렸다.

“괜히 독사가 아니었어.”

결국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자신을 노리고 들어온 독니에 결국 사망, 트라이는 전멸로 끝이 났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아쉽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클리어 각이 보인 것도 아니고.

‘이게 몇 번째 트라이였더라?’

찬드라니암의 던전에서 등장하는 일반 네임드들을 전부 쓸어버리고 놈의 트라이에 들어간 지도 벌써 닷새 정도가 흘렀다. 대략 열흘 정도 퐁디셰리에서 발이 묶여 있는 셈이었다.

다행히 그 동안 큰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다른 쉴더급 공격대들이 【S】 난이도의 임시 던전을 공략하고 있다는 사실에 괜히 배가 아프기는 했다. 바로 그제만 하더라도 화이트 하우스가 실버급 마력의 결정을 손에 넣었다는 기사를 접하기도 했다.

아무튼 찬드라니암 공략만 지금까지 60번 정도는 한 것 같았다.

투자한 시간에 비해 공략 효율이 좋지 못했는데, 던전 내부를 이동하는 시간 때문에 전투 횟수가 많지 않았다.

‘진짜 웨이 포인트와 같은 기능이 그리워지네.’

이에 대해서도 뿌우와 큐우♡가 깨어나면 한 번 진지하게 논의를 해봐야 할 것 같았다. 만약 그런 능력이 생겨난다면 던전 공략의 효율이 몇 배는 늘어날 터였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공대장님?”

어느새 다가온 소정이 민국을 응시했다.

“음….”

소정의 뒤로 정예린과 함께 장비를 점검하는 팀원들이 보였다. 자신의 지시가 떨어지면 당장이라도 다시 던전에 진입하려는 모양새였다.

잠깐 그녀들을 보던 민국은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밖이 어둑어둑해지면서 마력의 결정으로 만들어진 발전기가 가동되는 라이트들이 하나, 둘씩 켜지고 있었다.

옛날에는 전기를 이용했다지만 어둠 괴물과의 전쟁으로 인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유지되지 못하면서 지금은 마력의 결정이 만들어 내는 에너지 자원이 인간 문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시간이 늦었는데…. 오늘 잡을 수 있을까?’

잠시 고민을 하던 민국은 곧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찬드라니암을 공략하면서 가장 베스트로 냈던 성적은 16%.

금방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수치로 보이겠지만, 안정적으로 20% 이하의 전투 기록을 반복해서 내는 게 아니라면 놈을 잡는 건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민국은 아직 놈의 공격 패턴을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일단 30% 이하로 생명력이 떨어지면 어그로를 무시하면서 지휘 역할을 맡는 영웅을 공격한다는 것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지만…. 언제 놈의 공격 패턴이 달라질지는 알 수 없었다.

때문에 더욱 높은 집중력이 필요했지만, 아침부터 트라이에 나섰던 팀원들도 슬슬 지칠 때였다.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았다.

‘쩝. 우주소녀전쟁을 플레이할 때는 네임드들이 플레이를 이용해서 함정을 팠었는데….’

과거의 화려했던 플레이가 떠올랐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주 소녀 전쟁처럼 찬드라니암을 상대로도 그와 비슷한 방법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확실히 한 번쯤 시도를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실패하더라도 부활석만 날리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오늘 당장 시도할 건 아니었다. 준비가 필요했다.

“오늘 일정은 여기서 마무리 짓도록 하지. 뒷정리 좀 부탁할게.”

“네, 맡겨주세요.”

일정 종료를 선언한 민국은 자신의 숙소로 돌아가 열심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수백, 수천 종류의 네임드를 상대하면서 사용했던 전략과 전술들이 민국의 머릿속으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찬드라니암을 노골적으로 자신을 노렸다.

십이 재앙의 심복이라는 타이틀 때문일까? 공격대를 어떻게 공략해야 쉽게 와해시킬 수 있는지 알고 있는 영리한 놈이었다. 그렇다면….

“어디 한 번 뒈져봐라.”

놈의 이빨이 자신을 노렸을 때 제대로 한 방 먹여줄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먼저 팀원들의 스킬 구성에 손을 좀 대야 할 것 같았다.

* * *

“또 오는군.”

휴식을 취하고 있던 찬드라니암이 슬쩍 감았던 눈을 떴다.

그녀는 던전의 공허 마력이 쑤욱 빠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던전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공허 괴물이 인간들의 손에 쓸려나간 것이다.

아직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전투가 길어지다 보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었다.

인간들이 정말 작정하고 쳐들어 온 모양인지 외부로 퍼져나간 오염된 대지를 통해 들어오던 마력의 수급량이 큰 폭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주변의 던전들도 동시에 공략당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

인간들의 공격이 본격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자신 혼자로는 감당이 힘들어질 정도로 돌아가는 상황이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무플런님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건만….

“그럴 수는 없지.”

무플런님은 현재 카우킹과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분은 자신을 믿고 던전을 브레이크 시키는 막중한 임무를 맡겼다. 충성스러운 찬드라니암은 그런 무플런님은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몇 시간이 흘렀을까?

찬드라니암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멀리 인간 무리들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바로 어제 자신이 쓸어버렸던 인간의 공격대였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개 같은 인간 놈이 보였다. 몇 번의 전투를 통해 그녀는 인간의 영웅들이이 저 남자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한민국.

영웅들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정체를 알아낸 인간 영웅이었다.

그리고 놈은 아주 영리했다. 자신과 전투를 벌일 때 마다 시간을 끌며 자신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를 파악하고, 바로바로 그에 대한 대처법을 만들어냈다. 인간 영웅들이 자신과의 전투에서 빠르게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저 놈만 완전히 죽일 수 있다면 이 귀찮음도 해결이 될 텐데 말이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찬드라니암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번에도 찬드라니암은 놈들의 방심을 유도한 다음, 지휘관이나 다름없는 한민국을 단숨에 물어 죽여서 전투를 끝낼 생각이었다. 바로 어제처럼 말이다.

‘카오스의 더러운 마력이 아니었다면….’

저 벌레 같은 놈들의 얼굴을 두 번 다시 볼 일이 없겠지만, 놈들은 죽여도 죽여도 되살아나는 불멸자와 같은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둠 괴물들은 인간 영웅들이 지니고 있는 카오스의 능력에 대해 지금까지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이는 찬드라니암 역시 마찬가지.

계속 되살아난다 해도 자신들에게 큰 영향을 주지 못할 정도로 허약해 빠진 놈들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영웅들은 확실히 달랐다.

‘카오스의 더러운 마력을 무력화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저런 놈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웬만한 어둠 괴물들은 막아낼 방도가 없었다. 설령 던전 내에서 놈들을 물어 죽인다 해도 결국 카오스의 힘으로 계속해서 되살아나니 자신들의 힘만 노출되고 소모될 뿐이었다.

그렇다고 무리해서 던전을 뚫고 약해진 모습으로 인간계에 모습을 드러낼 수도 없었다. 그건 찬드라니암과 같은 괴물의 입장에서도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아무튼 그에 대한 의견 또한 무플런님에게 보고를 드려야 할 것 같았다. 이번 전투가 끝나면 말이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캬아아아악!]

찬드라니암은 공포와 부정의 힘을 사용해서 GGW 공격대를 공격했다.

“놈의 눈과 마주치지 마!!!”

괴물의 눈이 회백색으로 변하는 것을 확인한 민국이 외쳤다. 이 때 놈과 눈이 마주하면 자연스레 뱀 앞의 개구리라도 된 것 만약 공포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었다.

바로 앞까지 뱀의 독니가 들이닥쳐도 얼어붙은 몸이 움직일 리 없었기 때문에, 특히나 탱커가 공포 상태에 빠지기라도 하면 레이드는 그대로 끝이었다.

이어서 부정의 칼날이 전장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시시 때때로 날아오는 칼날은 레이드에 이골이 난 민국이라도 쉽사리 피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이는 결국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는 것을 의미했다.

한 방 한 방이 딜러나 힐러의 생명력을 30% 이상 날려버릴 정도로 강력했지만, 세 명의 힐러들이 역할을 분담해서 공격대를 치유한다면 한 명도 죽지 않고 살릴 수 있는 수준이기는 했다.

문제는 다른 패턴과 연계되어 부정의 칼날이 나올 때였지만….

‘그건 궁극기를 통해 해결하면 되는 문제니까.’

찬드라니암을 상대하는 트라이가 횟수가 예순 번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쯤이면 다들 놈의 일반적인 공격 패턴 정도는 눈 감고 피할 수 있을 정도여야 했다. 그렇게 조금의 쉴 틈도 없는 팽팽한 전투가 몇 십분 가량 지속되었다.

그리고 민국은 어느 순간부터 놈의 눈이 자신을 주시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 뻔한 수작인데?’

놈은 생각보다 이른 시간부터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 어제 재미를 좀 봤다고, 오늘도 똑같은 짓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이어서 민국이 자신의 스태프를 모로 세웠다가 눕히기를 반복했다. 얼핏 보기에는 회복 능력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을 확인한 영웅들의 움직임이 미세하게 바뀌고 있었다.

[캬아아아악!]

이윽고 오현아를 노리던 찬드라니암의 대가리가 갑작스럽게 민국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미 놈의 의도를 짐작하고 있던 민국은 자연스레 몸을 뒤로 빼면서 찬드라니암의 대가리를 땅에 박게 만들었다.

“지금이야!!!”

민국의 지시에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정예린이 자신의 마력을 잔뜩 끌어 올렸다.

화력을 포기하면서까지 장착했던 스킬 스톤의 효과로 찬드라니암의 머리 위로 짙은 푸른색의 거미줄 모양의 그물이 생겨났다.

“김소정!”

냉기의 그물이 찬드라니암의 대가리를 꽉 누르면서 놈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사이,

파괴의 교향곡이 발동되었다. 그리고 영웅들의 폭딜이 무방비한 상태에 놓인 찬드라니암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분노한 뱀의 눈동자가 민국을 향해 번뜩였지만, 민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찬드라니암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이 몸을 잡기에는 너무 뻔한 수작이었다고.”

생각이 있는 놈이라면 이제는 대놓고 자신을 노리지는 못하겠지. 그리고 공격대의 리딩에 방해를 받지 않는다면 놈의 공략은 필연적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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