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9화 〉 라비아 맥퀸
* * *
“드, 드디어 나옵니다!”
“화이트 하우스의 영웅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미국의 쉴더급 공격대인 화이트 하우스는 이번 사고로 인해 이주 가량 던전에 고립이 되어 있었습니다.”
“라비아 맥퀸 영웅을 포함해 미리암 루스, 카밀라 벨! 아메리카의 히어로들이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다들 피곤이 가득해 보이지만, 건강에는 별 이상이 없어 보이는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미리암 영웅이 부상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만, 외견상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군요. 그래도 정밀 검사는 필요하겠지만요.”
“Thank You for GGW!”
던전의 무너지면서 화이트 하우스의 영웅들이 밖으로 빠져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종군 기자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그만큼 최근 십 년 내 최악의 사고가 될 뻔했던 사건이 이번 카우킹의 습격이었다.
다행히 GGW 공격대의 활약으로 별 피해 없이 구출이 가능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것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화이트 하우스를 습격한 이들 중 십이 재앙인 심복인 오발드가 끼어 있던 까닭에 정말 큰 일이 날 뻔했기 때문이었다. 막말로 GGW가 없었더라면 화이트 하우스는 던전에서 나오지 못하고 결국 그 안에서 최후를 맞이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 사실을 잘 아는 라비아 맥퀸 역시 그 점을 콕 찍어 이야기했다.
“한 공대장과 GGW 공격대의 활약이 아니었더라면 저희는 아마도 던전에서 죽은 목숨이었을 겁니다.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려 GGW의 영웅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메리카의 방패인 화이트 하우스의 목숨 값은 결코 싸지 않습니다. 화이트 하우스 클랜은 그리고 미국은 오늘의 사태에 대해 최고의 보답을 해드릴 겁니다.”
“당신들의 도움은 결코 잊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라비아 맥퀸의 인터뷰는 미국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고대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백마 탄 왕자님의 상황 아니야?
정말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지.
천만 다행이야. GGW 공격대가 없었다면 우리는 화이트 하우스라는 쉴더급 공격대를 잃을 수 있었어.
●한에게 미국의 시민권을 줄 수는 없을까? 그가 라비아 맥퀸과 함께 화이트 하우스의 공대장을 맡아줬으면 좋겠는데?
GGW 공격대 때문에 불가능할 걸? GGW의 멤버들은 한이 심혈을 들여서 키운 영웅들이라고 들었어.
미국에도 재능이 있는 영웅들은 많아. 한이라면 그들을 뛰어난 전사로 키워낼 수 있을 거야.
맞아, 우리에게는 한이 필요해.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화이트 하우스가 세계 최고의 공격대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GGW 공격대가 활동하는 지역이 아시아인 점도 있었지만, 그만큼 화이트 하우스가 오랜 기간 동안 세계 최강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와 라비아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인들은 화이트 하우스를 제외하고도 GGW 공격대라는 엄청난 실력의 공격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게다가 GGW는 십이 재앙이나 그들의 심복과도 전투가 가능한 수준의 공격대였다.
때문에 몇몇 시민단체에서는 GGW 공격대에게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대해 의뢰를 넣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인도의 사태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GGW 공격대를 불러오기란 불가능했다.
●그러면 화이트 하우스는 바로 본토로 돌아오는 건가?
듣기로는 인도에서 요양을 취하고 있다고 해. 아마도 계속해서 작전을 수행할 생각이겠지. 인도 상황이 급하기도 하고…. 임시 던전에서 고급 마력의 결정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거든.
역시 영웅들이네.
우리는 그녀들의 활약에 정말 감사해야 돼. 그렇지 않았다면 이 지구는 이미 괴물의 땅이 되었을 거야.
미 정부는 구출된 화이트 하우스의 영웅들을 바로 본국으로 데리고 오려고 했다.
그러나 화이트 하우스의 멤버들은 여전히 인도에 남기로 결정을 내렸다.
던전에서의 끔찍한 사고가 아직 머릿속에 남아 있었지만, 죽은 이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아직 만족할 수준의 실버급 마력의 결정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아직 치유가 필요한 영웅도 있었다.
* * *
[지금.]
개인 단말기를 확인한 미리암은 힐끔 자신과 같은 방을 쓰는 라비아를 바라봤다.
원래는 따로따로 방을 사용했지만, 마력의 오염 때문에 라비아는 미리암을 보살피겠다는 말로 그녀의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물론, 외부에서는 다른 이유 때문으로 알고 있었다.
느껴지는 미리암의 시선이 라비아 맥퀸이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무슨 연락이라도 왔어?”
“응. 지금 GGW 공격대를 방문해야 할 것 같아. 한 공대장이 이제야 시간이 생겼나 봐.”
“아아…. 그쪽은 오늘도 임시 던전의 공략에 들어갔다고 했지? 바쁘네.”
“저번 전투의 영향 때문에 근방에서 임시 던전이 많이 생겨났으니. 아무튼 그러면 나는 나갔다 올게.”
그렇게 말하며 미리암은 조금 전까지 먹고 있던 크림을 입으로 쪽 빨아먹었다.
‘요즘 너무 굶주렸나?’
그런 미리암의 행동을 보며 라비아는 짧게 고개를 흔들었다.
이상하게도 조금 전 미리암의 모습이 너무나도 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라비암은 자신의 절친에게 한 마디 충고를 건네야 했다.
“한 공대장 앞에서는 행동 조심해. 그는 남자라고.”
진심으로 까닥 잘못하다가는 큰 일이 날 수도 있었다.
더욱이 그의 세계적인 인기를 생각하면 한민국의 말 한 마디에 사회에서 매장당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뭐, 그렇게까지 까칠해 보이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걱정하지 마. 그러면 다녀온다?”
미리암은 기쁜 얼굴로 방을 나섰다.
“그래도 다시 밝아져서 다행이네.”
미리암의 뒷모습을 보며 라비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력이 오염되는 큰 충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평상시와 다름없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천만 다행이야.’
던전에서 구출이 된 것도 다행이지만, 절친인 미리암과도 계속해서 공격대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미국 입장에서도 9성 탱커라는 뛰어난 인재를 잃지 않아도 되었고 말이다.
방에 혼자 남은 라비아는 침대에서 뒹굴며 개인 단말기를 사용해 SNS를 즐겼다.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영웅인만큼 계정에 글 하나를 올리면 순식간에 수 만개의 댓글이 들렸다.
최근에는 주둔지에서 회복을 하고 있는 상황을 올려서인지 자신들과 화이트 하우스의 쾌유를 바라는 댓글들이 굉장히 많이 달려 있었다.
《걱정해주셔서 모두 감사드립니다. 화이트 하우스의 영웅들은 다들 건강에 아무 이상이 없으며 현재 편안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걱정이 한가득인 국민들을 위해 라비아는 SNS에 글을 올렸다.
자신의 공식 계정에 글이 올라가자마자 댓글들이 순식간에 달리기 시작했다. 다들 화이트 하우스의 쾌유를 기원하며 영웅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는 류의 댓글이었다.
그렇게 댓글을 읽던 도중이었다. 그녀가 들고 있던 단말기가 짧게 진동했다.
[마이클]
미국에 있는 그녀의 남자친구였다. 라비아는 바로 통화버튼을 꾹 눌렀다. 그러자 카메라가 열렸다. 이제 보니 화상 통화를 전화를 걸었던 모양이었다.
[라비! 몸은 괜찮은 거지?]
통화가 연결되자 마이클은 바로 라비아의 건강부터 물었다.
하지만 라비아의 기분은 좋지 않았다. 마이클의 주위로 수많은 여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면 마이클은 그녀가 던전에 갇혀 있는 동안 열 개 정도의 문자를 보낸 게 전부였다.
‘휴우….’
하지만 그에 대해 섭섭함을 토로할 수는 없었다. 자신은 관대한 여자고 영웅이었으니까. 그런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봤자 오히려 속 좁은 여자만 될 뿐이었다.
게다가 던전에서 어둠의 괴물과 싸우는 영웅이 아니었다. 마력을 각성하지 못한 평범한 일반인. 그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걱정이 들어도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을 터였다.
라비아는 연기를 하듯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괜찮아. 그런데 뒤의 사람들은…?”
[아, 촬영 스태프들이야. 라비가 무사히 깨어났다는 걸 축하드리고 싶어 해서….]
라비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가 다시 펴졌다.
생각해보니 최근 그는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한 편 찍고 있었다. 히어로 클랜의 남자 영웅으로 활동하면서 어둠 괴물과 싸우는 액션 영화라나?
“으응, 그렇구나.”
보나마나 상황이 쫘악 그려졌다.
미국에서 배우, 모델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이클은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보거나 부러워하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 자신은 미국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화이트 하우스의 영웅.
아니나 다를까 화면 너머로 사랑에 빠진 것 같은 여성들의 눈이 라비아 맥퀸의 눈에 들어왔다. 보나마나 마이클이 찢어지게 자랑을 하다가 연락을 취한 것이겠지.
“다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팬이나 다름없는 이들과 인사를 나눈 라비아는 아직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고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위험했던 사고.
그렇기 때문에 남자 친구인 마이클의 진정한 위로가 필요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화나네.”
서로가 좋아서 만나는 사이였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매달리는 건 자신인 것 같았다.
지금도 그랬다. 마이클이 진정으로 자신에 대해 걱정을 했더라면 다른 사람들만 소개시켜주다가 통화를 끊었을 리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여러 남자를 만나보는 건데….”
하지만 늦은 후회였다.
알고 있는 남자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질투심 많은 마이클 때문에 그와 만나면서 대부분의 인연을 정리했던 까닭이었다.
뭐, 마이클과 만나면서 나쁜 것만 있던 건 아니었다.
마이클의 그것은 다른 남자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컸고 대물을 선호하는 라비아의 니즈를 어느 정도 만족시켜줬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행동은 용서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라비아가 욕까지 섞어 가면서 마이클에 대해 원망을 내뱉을 때였다. 문득 한 남자의 얼굴이 그녀의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화이트 하우스의 멤버들을 찾았다. 인원은 총 열 명. 다들 무사해 보인다.]
팔 길이 정도 크기의 단검으로 화이트 하우스를 포위하고 있던 몬스터들을 학살하던 영웅.
새의 탑을 지배하고 있는 가루다를 몰아붙이고 여러 십이 재앙의 심복들을 공허로 되돌려 보낸 인류의 영웅.
수많은 격전지에서 활약하고 있는 쉴더급 공격대 GGW를 이끄는 공대장, 민국이었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GGW 공격대 한민국입니다. 구출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따뜻한 목소리는 아직까지도 라비아의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
일반인들보다 훨씬 뛰어난 정신력을 그녀였지만 2주 가량 던전 고립되는 동안 별의별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중 가장 최악은 몬스터들의 노리개로 끌려가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는 몸이 되는 것.
오히려 죽는 게 가장 나은 선택지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구출대가 도착했을 때의 그 상황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았다.
“마이클은 절대로 할 수 없는 행동이겠지.”
그리고 하지 않을 행동일지도.
지구 상에 각성한 남자 영웅은 한민국 혼자만이 아니었다. 못해도 이백이상의 남성이 각성을 했지만, 그 중 목숨을 걸고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영웅은 한민국은 혼자였다.
그러니 그만큼 민국이 대단하다는 찬사를 받고 있는 거지만.
“…….”
라비아 맥퀸은 허리춤까지 흘러내린 이불을 얼굴 위까지 끌어올렸다. 자신을 보며 웃던 민국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민국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남성 중 한 명인 마이클보다도 훨씬 잘 생긴 인물이었다.
애도 있는데다가 와이프가 둘이나 있었지만, 솔직히 그건 아무 흠도 되지 않았다. 영웅호색이라고 한민국과 같은 남자는 본처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 그의 유전자를 널리 뿌려야 했다.
그리고 라비아는 그 중 한 명이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이클과는 2년 넘게 만나고 있었지만, 임신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었다.
“……미쳤나.”
그렇게 상상을 나래를 펼치던 라비아는 괜한 쑥스러움에 픽 웃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아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도 않았다. 사례가 굉장히 드물기는 하지만 남성 영웅과 여성 영웅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이른 나이에 마력을 각성한다는 연구가 있었으니 말이다.
때문에 몇몇 레이드 강국은 남성 영웅의 짝으로 여성 영웅을 이어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면에서 한민국의 짝이라면…. 화이트 하우스의 영웅은 자신이 되어도 이상하게 여길 이는 아무도 없었다.
“후우….”
민국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라비아는 마이클에 대한 섭섭함이 점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살짝 무감각해지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둘의 위치에서 너무나도 큰 차이가 나기 때문으로 보였다.
게다가 한민국은 자신들처럼 어둠 괴물과 전투를 벌이는 영웅. 동질감을 느끼기도 쉬웠다. 그렇게 라비아가 민국에 대한 생각을 하며 침대에서 뒹굴고 있을 무렵.
“쿠루루룹…!”
민국은 치료라는 명목으로 자신을 찾아온 미리암을 상대로 열심히 회포를 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둘의 모습을 큐우♡가 눈을 반짝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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