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2화 〉 라비아 맥퀸
* * *
“대체 이게 무슨 기사야?! 정말 이러기야?!”
잔뜩 화가 난 라비아 맥퀸의 목소리. 하지만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태블릿 속의 남자는 얼굴을 굳힌 채 자신의 입술을 뚱하게 내밀 뿐이었다.
[별 거 아닌 일이었어. 잠깐 분위기를 타면서 신나게 놀았을 뿐인데, 그렇게까지 화를 낼 필요는 없잖아?]
“별 거 아닌 일? 이게 별 거 아닌 일이라고?”
남자 친구의 철없는 대꾸에 라비아가 얼굴을 구겼다. 그리고는 손에 들린 신문을 책상에 내리쳤다.
그녀의 눈으로 ‘할리우드 배우 마이클 존슨, 뜨거운 열애 중?’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들어왔다. 대문짝만 써진 타이틀과 함께 게재된 사진에는 클럽에서 놀고 있는 마이클의 모습과 그와 뜨거운 스킨십을 나누는 한 여성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그 여성은 라비아도 잘 알고 있는 영웅이었다.
‘쉴더급 공격대, 골덴 이글의 딜러인 도브 캐머런.’
9성 영웅인 그녀는 미국의 영웅들 사이에서는 블랙 킬러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조그마한 체구에 걸맞지 않게 대물을 지닌 흑인만 노리고 잡아먹는다는 흑인 킬러라는 뜻이었다.
뭐, 대부분의 영웅들이 남자를 볼 때 큰 물건을 선호하는 편이라지만, 도브 캐머런은 유독 심했다. 오죽하면 흑인이 아닌 다른 남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소문이 돌겠는가?
[그냥 사진만 찍혔을 뿐이야. 비즈니스, 비즈니스였다고.]
“아아, 클럽에서 비즈니스를 했다?”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듯 말을 하는 마이클의 태도에 라비아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개새끼.”
그리고는 태블릿의 마이클을 노려보다가 자신의 발을 부웅 휘둘렀다.
콰직!
남자 친구와의 연락을 위해 전장에서도 사용이 가능하게끔 특수한 소재로 만들어진 태블릿은 라비아의 발길질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렇게 박살이 나는 태블릿과 라비아를 바라보던 미리암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또 마이클이 바람을 핀 거야?”
“블랙 킬러와 함께 클럽에서 뒹굴었으면 보나마나 뻔한 거 아니겠어?”
친구의 말에 라비아는 이를 으득 갈았다.
한 번도 아니고 이게 대체 몇 번째인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애당초 파트너 관계로 만났으면 상관이 없을 터였다. 하지만 마이클은 자신만 사랑하겠다고 말했던 남자였다.
‘이래서 남자는 혼자 둘 수가 없다니까.’
자신이 실버급 마력의 결정 획득을 위해 본토를 떠난 지 기껏해야 두 달이나 되었을까?
‘그새 다른 여자랑 뒹굴고 있다니 나 원 참….’
아니, 뒹굴더라고 걸리지나 말 것이지. 이렇게 대문짝만하게 사진이 찍히면 자신만 우습게 되는 꼴이었다. 마이클이 자신의 남자 친구라는 사실은 주위 사람들 대부분이 아는 내용이었으니까.
“그러니까 그냥 프리하게 지내라고 했잖아.”
미리암이 툭 내뱉었다.
그녀의 말대로 남성이 카르텔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여성과 연애를 하며 관계를 맺는다면 여성 중에서도 프리하게 남성들을 만나는 이들이 있었다.
보통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이나 영웅들이 그랬다. 라비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러게. 진즉에 그럴걸 그랬어. 물건이 조금 크다고 귀여워했더니만 이게 아주 사람을 병신으로 만드네. 아무튼 본국으로 돌아가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뚱한 마이클의 얼굴을 떠올리니 라비아는 다시 한 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연스레 그녀의 발이 지면을 콱 내리찍었다.
후우우웅!
약간이지만 마력이 깃든 모양인지 사방으로 충격파가 터져 나오며 주변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런 라비아의 행동에 미리암이 본인의 어깨를 으쓱이더니만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마이클이 그렇게 물건이 컸어?”
“…나쁘지는 않았지.”
라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마이클과 연애를 이어나갔던 이유 중 90% 이상이 그 때문이었다.
라비아는 영웅으로 활동하며 여러 남자들을 만나본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마이클 만한 남성은 없었다. 조금 말랑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뜨거운 행위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사정도 나쁘지 않았고. 비록 여성의 로망이라는 임신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
이러다가 도브 캐머런이 먼저 임신하게 되면 괜히 속이 뒤틀릴 것 같았다.
그런데 자신의 말을 들은 미리암의 표정이 이상했다. 뭔가 가소롭다는 듯 혼자 실소를 터뜨리던 미리암이 자신의 손가락을 쫘악 벌렸다.
“이 정도는 됐어? 엄지에서 약지까지 닿을 정도?”
“에이, 당연히 그 정도는 안 되지.”
미리암의 행동에 라비아는 고민할 가치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친구가 벌린 손가락 넓이는 못해도 18cm는 되어보였다.
‘마이클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저 정도는 아니었다. 초대형 딜도면 모를까.
남성들 중 흑인들의 물건이 가장 크다는 건 여러 연구를 통해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평균이라 해도 15cm 정도가 한계였다. 마이클 역시 그 정도 수준이었다. 물렁물렁한 15cm.
그만큼 그의 물건은 훌륭했다.
라비아를 푹 빠지게 만들었을 정도로 말이다. 문제는 그 역시 자신의 물건이 매력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잘 이용한다는 점이었다.
‘분명 흑인 킬러도 마이클이 먼저 꼬드겼겠지.’
아무리 도브 캐머런이 흑인의 물건에 미쳤다고 해도, 동료의 남성을 건드릴 정도로 정신 나간 영웅은 아니었다. 오히려 상위 영웅들은 그런 면에서도 더욱 조심하는 경향이 있었다. 서로 트러블이 생기면 본인들만 손해이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마이클의 물건은 아까웠지만, 라비아는 그와의 관계를 정리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사고 때 보여준 그의 행동에 실망하기도 했었으니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고 여기니 마음이 후련했다. 그리고 그 때, 라비아가 중얼거림이 미리암의 귀로 들려왔다.
“뭐야? 고작 그 정도 수준에 불과하면 한민국 공대장이 훨씬 크잖아.”
“…어? 응?”
미리암의 말에 라비아의 눈동자가 휘둥그레 변했다. 아니,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는데?
* * *
“2 파티 이동! 암흑 지역에서 벗어나!”
민국의 외침과 함께 2파티로 지정된 여성들이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그녀들이 있던 자리로 암흑의 구슬이 떨어졌다.
우우우웅! 우우웅!
공기를 울리며 떨어진 암흑 구슬은 블랙홀처럼 주변의 생명력을 빨아들였다. 이어서 힐러들이 움직임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힐 업! 힐 업!!!”
“최유나 좀 더 붙어! 힐 사거리 안 나와!”
“메인 탱커 좀 더 안쪽으로!”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힐러들의 요구에 GGW 공격대의 탱커와 딜러들은 열심히 발을 놀리며 무기를 휘둘렀다.
그런 팀원들의 움직임을 보며 민국은 손목에 붙여 놓은 영웅 패드를 힐끗 확인했다.
네임드의 광역 공격인 암흑의 구슬이 떨어졌는데, 공격대의 피해는 그리 심하지 않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궁극기는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의 공격이었다.
“임시 던전의 몬스터들이 편하긴 편해.”
민국은 온 몸에 상처가 난 괴물을 보며 중얼거렸다.
지금 GGW 공격대가 상대하고 있는 네임드는 9등급의 몬스터로 【S 8】 정도 수준에서나 볼 수 있는 강력한 괴물이었다. 당연하지만 실버급 마력의 결정을 주는 놈이기도 했다.
그리고 9 등급의 몬스터의 강함을 생각하면 조금 전의 공격은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수 있을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녀석이 온전한 모습이었다면 암흑 지역에서 더 멀리 떨어져야 하는 것과 함께 힐러들이 쉴 새 없이 회복 능력을 사용해야 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카우킹의 세력에 속해 있는 놈은 무플런 세력과의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고 던전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자신들은 그 틈을 노리고 녀석을 공격하고 있었고.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었다.
부상은 입은 녀석이라도 놈은 강력한 어둠의 괴물. 까닥하면 바로 영웅들을 주님 곁으로 보내버릴 수 있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공격대 나름.
10 등급 영웅들이 대부분이 GGW 에게 부상을 입은 9등급 몬스터는 식후 간식거리 수준에 불과했다.
“쫄지 말고 공격해! 녀석이 특수 공격을 사용하려면 멀었어!”
“메인 탱커는 천천히 전진! 딜은 신경 쓰지 말고 어그로만 잡아!”
사방에서 딜러들이 화력을 뽐내는 모습을 보며 민국은 시시때때로 영웅 패드를 보며 어그로를 확인했다.
GGW 공격대는 딜러만큼이나 두 탱커의 능력도 뛰어났고, 그 결과 폭발적인 공격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그로는 넘어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위기가 없던 건 아니었다.
영웅들의 계속되는 공격에 어둠의 괴물들이 숨겨둔 비장의 한 수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도 그랬다. 공격을 허용하면서도 끝끝내 공허의 마력을 모은 괴물이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어서 전장에 엄청난 크기의 암흑 구슬이 생겨난 것을 확인한 민국이 잽싸게 외쳤다.
“신나연! 거짓된 시간 사용해!”
“네, 네!
“모두 신나연을 중심으로 뭉쳐! 야, 오현아! 등! 등! 뒷걸음질로 방패를 들면서 물러나야지!!!”
자신의 지시에 부리나케 달려오는 오현아가 네임드의 공격에 얻어맞고 생명력이 반 이상 날아갔다. 다행히 바로 회복 능력을 사용해 살릴 수 있었지만, 치명타가 터졌더라면 그대로 사망으로 이어질 뻔했다.
‘아, 피닉스 나이트의 부활이 있으려니 상관없었나?’
아무튼 암흑 구슬이 떨어지기 전에 팀원들이 모두 모였고, 신나연이 레전드리 클래스, 시간의 수호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특수 스킬인 거짓된 시간을 사용했다.
우우웅!
노란빛을 띈 그녀의 마력이 바람처럼 주변을 맴돌다가 영웅들의 어깨 위로 가라앉았다. 그 순간 영웅들의 생명력이 두 배로 뻥튀기가 되었다.
“힐 업! 힐 업!”
다만, 현재 생명력은 그대로였던 까닭에 민국을 포함한 힐러들은 높아진 생명력을 채우기 위해 열심히 회복 능력을 사용했다.
“생명의 권능 사용할까요?”
그 때문에 켄달이 자신의 궁극기 사용여부에 대해 민국에게 물었다. 하지만 민국은 고개를 저었다. 대형 암흑 구슬이 떨어지기까지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맞아보고….’
버티기 힘들면 그 때 생명의 권능을 사용해도 늦지 않았다. 놈이 온전한 9등급 괴물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녀석은 큰 부상을 입은 녀석이었다. 다시 말해 본인의 능력을 100% 발휘하지 못했다.
“보호막 둘러!”
민국과 켄달이 열심히 회복 능력을 사용하는 동안 지젤은 최대 생명력이 낮은 팀원들을 위주로 보호막을 둘렀다.
콰아아앙!!!
그리고 대형 암흑 구슬이 떨어졌다.
“힐 업! 버텨! 버텨!!! 죽을 것 같으면 회복 포션 먹어!!!”
암흑 구슬이 떨어지면서 생겨난 공허의 마력이 주위 영웅들의 생명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구슬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속도였다.
“5시 방향으로 이동!!!”
“천천히! 힐러들과 보조를 맞춰서 이동해!”
때문에 민국은 암흑 구슬이 떨어진 자리에서 본진을 이동시키며 팀원들을 살리기 위해 애를 썼다.
그래도 생명의 권능을 사용할 정도로 상황이 최악인 것은 아니었다. 조금의 쉴 틈도 없이 회복 능력을 사용해야 했지만, 이 정도의 피해도 궁극기 없이 팀원들을 살리지 못하면 최상위 공격대의 힐러 자격이 없었다.
“죽여!!!”
그렇게 대형 암흑 구슬도 성공적으로 버텨내자 이제는 GGW 공격대의 시간이었다.
불꽃으로 타오르는 대검이 어둠 괴물의 보호막을 박살내기 시작했고, 이어서 최유나의 화살과 정예린의 얼음 마법이 쾅 하고 틀어박혔다.
생각 이상으로 강력한 공격에 어둠 괴물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하지만 공격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최유나, 썬더 애로우 찍어!”
“넵!”
“김소정! 파괴의 교향곡!!!”
버프가 발동되는 것과 동시에 다시 한 번 공격이 시작되었다.
조금 전의 공격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파괴적인 위력이었다. 그리고 어둠 괴물은 아군의 공격을 버텨내지 못했다. 보호막이 부서지면서 놈의 신체 곳곳에 구멍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전투의 끝이었다.
“생각보다 쉽네.”
“그래도 부상을 입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쉽게 잡지는 못했을 거야.”
켄달의 말에 고개를 젓는 김소정.
그리고 민국 역시 그런 소정의 말에 동의했다. 그녀의 말대로 임시 던전이라 쉽게 잡을 수 있었던 거지, 그게 아니었다면 시행착오를 제법 겪어야 했을 것 같았다.
민국은 전투가 끝나자마자 영웅 패드로 메모장을 열어 조금 전의 레이드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했다.
‘나중에 【S】 난이도의 던전에서 만날 수도 있을 테니.’
쓰러뜨린 놈들의 능력을 기록하는 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그렇게 우혁과 GGW 공격대는 또 한 번의 임시 던전을 성공적으로 공략하며 주둔지로 복귀했다.
“오늘은 어때?”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옆에 앉은 현아가 살짝 젖은 목소리를 내었다. 유혹적인 목소리에는 뜨거운 기운이 담겨 있었다.
“음…. 오늘도 쉬고 싶은데. 레이드도 조금 힘들었고.”
“히잉, 애정이 식었어….”
하지만 민국은 그런 현아의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큐우♡에게서 뽑아내야 할 Sex 포인트가 잔뜩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주둔지로 돌아온 민국은 재빠르게 샤워를 한 후, 투명화 상태로 있는 큐우♡를 불러내려고 했다.
똑똑.
그러나 큐우♡를 불러내기 전, 누군가가 민국의 방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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