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7화 〉 마하 강 방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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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날이 다가왔다.
어둠 괴물이 남하하는 이틀 간, 인도군은 정말로 바쁘게 움직였다. 마하 강을 방어선으로 수많은 참호들이 만들어졌고, 탱크와 야포들이 배치되었다.
후방에서는 공군의 지원도 있을 거라 하던데…. 솔직히 그건 기대하기 힘들었다.
계속된 전쟁으로 인해 인도의 공군은 궤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해군 역시 마찬가지. 바다에서 활동하는 십이 재앙에게 해군은 맛좋은 간식거리나 다름없었다.
아무튼 그런 이유 때문에 이번 전투에서는 대공부대와 원거리 딜러들의 임무가 막중했다. 상대의 공중 병력을 처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었다. 놈들의 손에 의해 기갑 전력과 포병 전력이 무력화되면 전투가 얼마나 힘들어질 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휘관실에서는 날마다 회의가 이어졌다. 그리고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전투를 상정해 후방으로 대량의 물자들이 보급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남부 도시들의 지원이 제 때 도착한 것이 천만 다행입니다. 이 모든 게 한민국 영웅님과 작은별 공격대 덕분입니다.”
“하하. 인도인들의 노력 덕분이죠.”
마침 락슈미바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민국은 그녀의 칭찬에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GGW 공격대의 활약 덕분에 인도 남부가 안정된 것은 맞지만 대놓고 그것을 뽐내기는 조금 부끄러운 감이 있었다.
대놓고 얼굴에 금칠을 해주는, 이런 경험이 처음인 것은 아니지만 민국은 영 익숙해지지 않았다. 이런 민국의 어색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락슈미바이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가 아는 다른 남자들은 칭찬에 약한 이들이었던 까닭이었다.
“아닙니다. 남부 지방의 지원이 이른 시간에 도착한 것은 전부 한민국 영웅님 덕분입니다. 아국의 복잡한 행정을 생각하면….”
군수 물자를 이렇게 빠르게 보내지는 않았을 터였다.
더욱이 지방 정부의 수뇌들이 지닌 생각들을 떠올리면 더더욱 그랬다. 분명 GGW 공격대가 마하 강 방어전에 참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물자를 보낸 것이겠지.
라니 락슈미바이는 살짝 시선을 틀어 눈앞의 남성을 바라보았다.
찻잔을 입에 가져다대는 옅은 붉은색의 입술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락슈미바이의 볼도 살짝 붉어졌다.
그녀는 지금처럼 공대장끼리 회의를 빙자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절로 말문이 막힐 정도의 엄청난 미남. 마력을 각성한 영웅의 신체가 미남, 미녀로 재구성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 영웅은 인도에서 적지 않은 수가 존재했다. 당연하지만 인도의 남자 영웅은 다들 남부에 있었다. 하지만 한민국 공대장은 단순히 마력을 각성한 남자 영웅과는 한 단계 위에 올라선 존재였다. 외모도 분위기도 그랬다. 능력도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가 물리친 어둠 괴물의 숫자와 구해낸 인도의 도시만 하더라도 그 수를 셀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이는 수많은 인도의 공격대들도 해내지 못한 엄청난 위업이었다.
“현재 인도인들 사이에서 한민국 영웅님을 가리켜 뭐라 부르시는 지 아십니까?”
“…예?”
“누구보다도 관대한 존재, 비슈누의 환생이시라 불립니다. 어둠 괴물의 위기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내려주었으니 그렇게 불려도 과언은 아니지만요.”
“그…. 비슈누라면 힌두교의 신 말씀이신 것 맞죠?”
“그렇습니다.”
락슈미바이의 말에 민국은 달아오른 얼굴을 손으로 부채처럼 휘두르며 식혔다.
자신도 귀가 있는 만큼 인도인들이 자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GGW 공격대가 구해낸 몇몇 도시에서 자신을 이름을 찬양하는 인도인들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신의 환생이라고 불릴 정도였을 줄이야….
‘이러다가 진짜 신으로 생각하는 거 아닌지 몰라.’
카우킹과 무플런의 세력들을 전부 몰아내면 정말로 그렇게 되지 않을까?
아무튼 중요한 것은 몇 시간 뒤에 있을 전투였다.
참고로 GGW와 시바 공격대는 마하 강이 굽이치는 서쪽의 돌출 부위에 배치되어 있었다.
‘가장 위험한 지형이면서도 뚫려서는 안 되는 지역이지.’
민국은 머릿속으로 인도의 지형을 떠올렸다. 이곳이 뚫리면 괴물들은 손쉽게 인도 서부와 서남부를 유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괜찮으십니까? 지금이라도 뒤로….”
갑자기 심각해지는 민국의 얼굴에 락슈미바이가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자신들이 위험한 장소에 배치되었다는 것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GGW 공격대를 이 지역이 배치하겠다는 루브리나 장군의 결정에 얼마나 많은 반발이 있었던가? 전부 GGW 공격대가 다칠 것을 우려한 반발이었다. 하지만 루브리나 장군의 제안을 들은 민국은 당연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가장 위험한 전투 지역이 될 거라는 이곳에 GGW 공격대가 배치가 된 것이다.
“그럴 수는 없죠.”
민국이 힐끗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자신들이 여기에 있기 때문에 병사들이 힘을 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뒤로 물러난다? GGW 공격대의 명예가 바닥에 쳐 박히는 것은 물론이고, 전투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이는 민국이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전투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던전 내도 아니고, 브레이크가 아닌 강제로 던전을 찢고 올라온 괴물들이었다.
뭐, 그렇지 않은 놈들도 있겠지만, 7 등급 이상의 상위 괴물들은 대다수가 그러한 놈들이었다. 다시 말해 페널티가 잔뜩 박혀 있는 놈들.
그런 놈들을 상대로 GGW 공격대가 무너진다?
‘그건 그것대로 큰 문제겠네.’
민국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주위를 훑었다.
그리고 공대장들끼리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첨예한 관심을 보이고 있던 현아가 민국과 잠깐이나마 눈을 마주치고는 잘못한 것 마냥 시선을 피하더니 몸을 떨었다.
“큰 전투가 될 겁니다.”
다시 한 번 이어지는 락슈미바이의 걱정 어린 목소리.
“그러니까 더더욱 저희들의 힘이 필요하겠죠.”
그리고 민국은 이런 대규모 전쟁에 참여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세계 2차 대전과 토탈워 시리즈를 몇 번이나 경험했는데….’
비록 가상현실의 이야기였지만, 극도로 발전된 가상현실은 현실이나 마찬가지였다.
잠시 후, 민국은 후방이 요란스러워지기 시작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보아하니 괴물들의 접근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천지를 찢어 가르는 포격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아군이 먼저 전투의 신호탄을 날린 셈이다. 이어서 멀리 보이는 하늘에 거뭇거뭇한 무언가가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눈을 가늘게 뜬 민국이 놈들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외쳤다.
“적의 공중 병력이다! 원거리 딜러진 준비해!”
“예, 엣?”
“하늘! 하늘 확인하고 이쪽으로 접근 하는 놈들은 모두 떨어뜨려 버려!!!”
갑작스런 지시에 당황한 최유나가 곧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탱커와 근접 딜러들, 그리고 그 뒤에 배치된 수많은 병사들도 초조한 눈빛으로 전방을 주시했다.
계속되는 폭발 속에서 괴물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바퀴벌레가 따로 없네.”
“못해도 수십 만은 될 것 같은데?”
정찰대가 보내온 정보에는 적군의 병력은 대충 4,50만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눈앞에 드글드글한 괴물들의 숫자를 보면 분명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까아아아악!!!
그리고….
계속되는 포격을 견제하기 위해 적의 공중 병력들이 강을 넘어 달려들었다. 동시에 아군 원거리 딜러들이 반격을 하는 것으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아이스 애로우!”
정예린이 만들어낸 수 백, 수 천발의 얼음 화살이 일제히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는 날개 달린 괴물들의 장갑을 그대로 뚫어버렸다. 입에서 피를 토한 괴물들이 하늘에서 쿵쿵 떨어져 내렸다.
즉사한 놈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살아남은 놈들도 없지만은 않았다. 지상으로 떨어진 괴물들을 참호에 숨어 있던 병사들이 총을 쏴갈겨 죽여 버렸다.
그 과정에서 희생자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한 명도 죽지 않고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이이이이익!
정예린이 힘을 내는 동안 신나연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마치 요새라도 되는 것 마냥 하늘 위로 떠오른 세 개의 마력구가 빛을 내뿜을 때 마다 근처를 지나가던 비행 괴물들이 두 동강이 나 목숨을 잃었다.
활로 저격을 해야 하는 최유나는 덩치가 큰 놈 이나 강해 보이는 녀석들만을 골라서 떨어뜨리고 있었다. 정예린이나 신나연처럼 광역 공격은 불가능했지만, 강력한 놈의 저격은 그녀에게 맡기면 될 것 같았다.
“공격! 공격해!!!”
인도 영웅들도 자신들의 마력을 쥐어 짜내며 강을 넘어오는 병력을 향해 공격을 날렸다. 그리고 땅에 두 발을 디딘 괴물들이 하나, 둘씩 강을 건너오기 시작했다.
“기관총! 기관총 준비!!!”
어둠 괴물들이 도강을 시작하자 군복이 터질 것 같은 커다란 가슴을 가진 지휘관이 무전기에 대고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잠시 후, 무지막지한 총알 세례가 강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놈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쾅! 콰콰아앙!!!
멀리서 날아온 화염구가 공들여 만든 참호와 폭발했다. 폭발의 위력을 생각하면 그 안의 병사들이 무사하리라고는 기대도 되지 않았다.
“탱커 앞으로!”
“힐러 집중해!!! 힐 끊기면 안 돼!”
사방을 휩쓰는 포격 속에서 영웅들도 조금씩 자신들의 마력을 끌어 올렸다. 적이 점점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그리고 선두의 무리가 강을 건너오는 것을 시작으로 근접 영웅들도 무기를 휘둘렀다.
“하아아압!”
4,5 등급 쯤 되었을까?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댄 이족 보행 괴물을 상대로 김소정이 불꽃의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놈은 김소정의 검을 막아내지 못하고 그대로 목이 잘려 쓰러졌다.
보호막으로 김소정에게 향하는 적의 공격을 튕겨낸 민국도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페널티가 크긴 크네.’
인간이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이유.
던전이 아닌 지상에 모습을 드러낸 괴물들은 그 힘이 굉장히 약해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몰려오는 괴물을 상대로 탱커와 근접 딜러들이 진형을 이뤄 전투를 시작했다. 사방에서 괴물들이 달려들었지만, 당황하는 영웅들은 없었다. 고작 이런 상황으로 당황하기에는 GGW와 시바 공격대가 지닌 경험이 너무나도 많았다.
“지젤! 우측 지원해!!!”
“놈들이 몰려온다! 여기 힐러 한 명 붙어줘!”
탱커와 근접 딜러들이 움직이는 것 이상으로 힐러들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힐러들의 치유 능력은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영웅들에게만 통용되는 힘. 하지만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상대라도 죽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살릴 수 있는 터라 임무가 막중했다.
멀리 수십 마리나 되는 괴물들이 현아에게 달라붙어 이빨을 들이댔다. 하지만 현아의 탄탄한 방어와 민국의 지원을 뚫어내지 못하고 하나 둘씩 쓰러져갔다. 그만큼 탱커와 힐러의 기량이 뛰어나면 지금처럼 괴물의 공격이 이어져도 충분히 버텨낼 수 있었다.
“좋아, 이대로 밀어버려!!!”
괴물들의 공격을 막아낸 현아가 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강을 넘어오는 어둠 괴물들의 병력은 끝이 없었다. 총탄이 쉴 새 없이 불을 뿜었고, 영웅들의 무기가 놈들의 생명을 끊어냈지만 놈들의 숫자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 것 같았다.
이렇게 전투가 계속 지속되면 놈들이 무너지기 전에 먼저 힐러들의 마력이 고갈 될 것 같았다.
‘이러면 곤란한데….’
민국이 이마를 찌푸렸다.
자신과 뷘드셴 자매의 남은 마력은 대략 45% 남짓. 지금까지의 전투 시간을 계산하면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두 시간 정도는 더 전투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은?
힐러들이 마력이 떨어지면 영웅들은 버틸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이후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대책이 필요했다. 그렇게 고민에 잠긴 민국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캬아아아악!!!”
프테라노돈과 비슷하게 생긴 괴물이 부리와 같은 입을 내밀며 민국에게 달려들었다.
근처에 있던 최유나가 깜짝 놀라 놈을 쓰러뜨리려고 준비하는 동안 단검을 이용해 괴물의 목을 갈라버린 민국은 시야를 넓혀서 전장을 살폈다.
“전선을 조금 뒤로 물리자. 놈들을 끌어들여야겠어.”
그리고 한 번에 쓸어버려야 할 것 같았다. 아군이 지치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