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8화 〉 미노스
* * *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지상에서 미노스를 상대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옛날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자신들도 많이 성장했으니까. 하지만 민국은 곧 고개를 저어야 했다.
‘아니, 내가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지상에서는 부활석이 통하지 않는다. 그런 만큼 더욱 신중해야 했다.
지휘관 급 개체라면 모를까, 자신은 아직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던 십이 재앙을 상대해 본 적이 없었다. 두 번의 던전 브레이크를 경험해 보기는 했지만, 그 때도 십이 재앙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었다.
‘나 뿐만 아니라….’
GGW 의 다른 영웅들도 십이 재앙을 직접 목격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지휘관급 개체보다 조금 더 강하다고 생각하기엔….’
십이 재앙과 지휘관급 어둠 괴물과의 강력함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괜히 십이 재앙이 조그마한 움직임을 보이거나 헛기침을 하면 세계 영웅 협회에 비상이 걸리는 게 아니었다.
‘라비아 맥퀸이라면 알고 있을까?’
아무래도 이에 대해서는 다른 영웅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화이트 하우스처럼 전 세계를 돌아다니던 베테랑들이라면 뭔가 알고 있을 지도 몰랐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야.’
설령 지상전에서 미노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 하더라도 자신은 온전한 십이 재앙을 상대로 싸워본 경험이 없었다.
유일하게 상대해 본 경험이 있는 십이 재앙은 가루다.
하지만 민국이 상대했던 가루다는 본인의 힘을 많이 잃었던 녀석이었다. 그렇지만 미노스는 부상을 입은 것도 힘을 잃은 놈도 아니었다. 상황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가루다 때보다 훨씬 강하겠지.’
물론, GGW 공격대도 그 때보다 훨씬 강해졌다.
궁극기도 여러 개를 보유했고 여덟 명의 팀원이 10성 영웅이 되었다. 하지만 이 전력으로 십이 재앙을 상대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져보면 뭔가 부족하다는 답만 내려질 뿐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어때? 가능할 것 같아?’
민국의 질문이 큐우♡에게 향했다. 오랫동안 십이 재앙과 대치해 본 경험이 있는 그녀라면 어떤 대답을 내려주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었다.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
민국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큐우♡의 대답은 의외로 긍정적이었다.
‘쉽지 않다? 그러면 잡을 수는 있다는 말이네?’
《민국님도, 민국님의 팀원들도 예전과는 다르니까요. 그렇지만 정말로 힘든 전투가 될 겁니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괴물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녀석입니다.》
‘음…. 그렇다고 그냥 물러설 수는 없잖아?’
어둠 괴물의 군세를 뚫고 십이 재앙과 맞닥뜨리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이 작금의 상황이었다.
아무튼 공략이 힘들더라도 클리어 각만 볼 수 있다면 상관없었다. 머리에 돌이 들어가 있지 않은 이상 끝없이 헤딩을 하다 보면 잡을 수 있는 게 레이드였으니까.
그리고 민국은 애당초 공격대를 구성할 때부터 어느 정도 재능이 있는 친구들만으로 팀을 짰다.
문제는….
‘경험과 부활석이네.’
임시 던전만 공략하느라 팀원들의 전투 감각이 떨어졌다는 게 걱정이었다.
게다가 제대로 된 휴식 없이 몇 개월 째 던전 공략을 이어나가고 있던 터라 지니고 있는 부활석 수량도 엉망이었다.
국내에서의 보급과 Sex 코인 상점으로 구입한 부활석이 있기는 했지만, 계속된 전투로 인해 지금 민국이 지니고 있는 부활석은 200개를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했다.
“못해도 천 개는 있어야 하는데….”
모바일 가상현실게임 우주소녀전쟁을 할 때도 그랬다. 보통 시나리오의 파이널 보스를 때려잡으려면 못해도 500트라이 이상은 때려 박아야 클리어 각이 보였다.
“현아야.”
“으, 응?”
아까부터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던 민국을 바라보던 현아가 깜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바로 현정이 누나에게 연락해서 부활석 지원이 가능한지 물어봐줘.”
“어, 언니에게?”
“응. 아니다. 바로 지원해 달라고 해줘.”
클랜에 예비 수량이 없는 것도 아닐 테니, 지금 바로 부활석 준비에 들어간다면 못해도 사흘 내에는 도착하지 않을까?
그게 아니라면 미노스를 물리치고 던전 공략에 들어가기 전, 클랜 1군과 다른 공격대의 손을 빌려야 했다. 아무튼 부활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바로 연락할게.”
대답과 함께 전화를 거는 현아를 뒤로하고 민국의 시선이 다른 쪽으로 향했다.
‘뿌우와 큐우♡. 지금 상황 알고 있지? 이럴 때 퀘스트 정도는 줘야 하지 않냐?’
이어서 큐우♡의 옆으로 메시지 창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뿌우였다.
《으음….》
《당장은 십이 재앙 수준의 퀘스트를 만들어낼 카르마가 없는데….》
이렇게나 갑자기 녀석이 급발진을 할 거라고는 예상도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두 녀석이 열심히 속닥거리더니 곧 결론이 나왔는지 뿌우가 메시지를 만들어내었다.
《혹시 후불 가능할까요, 민국님? 미노스를 쓰러뜨릴 경우 그에 걸맞은 보상을 선택지로 제시하겠습니다.》
‘일단은 퀘스트 없이 놈을 쓰러뜨려 달라고?’
《네, 그렇습니다. 현재 저희들의 카르마로는 십이 재앙의 수준에 걸맞는 퀘스트를 만들어낼 수가 없어서요.》
‘놈을 쓰러뜨리지 못한다면?’
《퀘스트가 없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죠?》
뿌우의 제안에 민국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뭔가 찝찝한 느낌이었지만 자신이 손해 볼 건 없을 것 같았다.
‘어차피 퀘스트 보상은 보너스잖아?’
그래도 이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상대가 누구인가? 인류에게 가장 큰 위협이라 할 수 있는 십이 재앙이었다. 그리고 고민을 끝낸 민국의 눈이 뿌우에게 향했다.
‘오케이. 퀘스트 없이 미노스의 클리어 보상만 나중에 선택지로 제시한다는 조건, 받아들일게. 대신에 미노스를 잡고 나면 얻을 수 있는 보상에 황금 기둥 띄어줘.’
《네, 네?》
‘나도 그 정도는 받아야지. 그리고 미노스 잡고나면 다른 놈들의 눈치를 볼 것도 없잖아?’
민국이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떨떠름한 표정을 짓던 뿌우와 큐우♡가 다시 한 번 회의를 하더니 알았다는 대답을 만들었다.
‘십이 재앙을 클리어 한 보상 상자에 황금 기둥이라니….’
벌써부터 뭐가 나올지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당장 미노스를 상대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던전 내에서 놈을 공략하려면 일단 지상에 모습을 드러낸 녀석을 두들겨 잡을 수 있어야 했다. 그리고 이건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군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해.’
그러나 군인들이 후퇴한다는 결정을 내린다면?
어쩔 수 없었다. 놈의 공략을 나중으로 미루는 수밖에. 게다가 10군단은 계속된 전투로 제법 큰 전력 손실을 입기도 했다. 미 해병 사단이 합류했지만, 미노스의 군세를 상대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일단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직접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 * *
미노스와 같은 십이 재앙이 전선에 직접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끔찍했다. 가장 최근에 모습을 드러냈던 십이 재앙은 가루다. 그녀의 불꽃은 동남아시아를 휩쓸었고, 몇 번의 전투에서 수천만의 희생자를 만들어냈다.
무차별적으로 떨어진 화염의 깃털은 일반인과 영웅을 가리지 않고 재로 만들어버렸고, 이는 인간이 막을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공격이었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상황이 인도 북부에서 다시금 재현이 되고 있었다.
쿠웅!!!
미노스가 발을 내리찍자 지면이 쩌적이며 앞으로 갈라졌다.
당연히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것들이 무사할 리 없었다. 비명과 함께 몰려드는 괴물들에게 포탄을 날리던 임시 요새가 비명과 함께 폭삭 무너지면서 지하로 사라졌다. 못해도 천 명 이상의 병사가 그대로 생매장을 당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한 시간 반 전, 나스만다 강에 세운 임시 요새의 전투입니다.”
“나스만다 강이면?”
“여기서부터 200Km 떨어진 곳입니다.”
누군가가 털썩 주저앉는 것을 시작으로 지휘 막사가 침묵에 빠졌다.
“크윽….”
루브리나 장군은 이를 악 물었다.
어둠 괴물의 사령관, 십이 재앙의 전투력은 자신들이 감당해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뉴델리 방어선이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미노스와 메를린이라 이름 붙여진 괴물이 전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던전이 아닌 지상에서는 어둠 괴물도 그 강함을 뽐내지 못한다지만 그것이 십이 재앙 수준의 괴물이라는 이야기가 달랐다. 그 강력함은 현재의 인류가 감당해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하 강 전선을 뒤로 물릴 수도 없었다.
방어선을 뒤로 물리고 나서도 미노스의 진군이 멈추지 않는다면 오히려 지형적 이점을 내주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가혹한 현실이군.’
수십만이나 어둠 괴물과의 전투가 대승으로 끝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십이 재앙 미노스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며 진군해 오고 있었다. 미노스가 오고 있다는 소문은 이미 병사들에게도 퍼진 상황. 덕분에 병사들의 동요도 말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 미군도 진지하게 철수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 때였다.
“회의 중이셨습니까?”
미남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아시안이 자연스럽게 회의에 끼어들었다.
GGW 공격대를 이끄는 공대장이자 카우킹 세력의 지휘관 두 명을 지옥으로 보내버린 영웅, 한민국이었다.
자국의 전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몇 개월이자 인도에 머무르면서 그는 인도 중부와 남부를 구원했고, 네 개체의 지휘관급 괴물의 목숨을 거두기까지 했다.
그로 인해 인도군 사이에서는 한민국을 가리켜 비슈누의 환생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소문에 대해서는 루브리나 장군도 긍정하는 바였다. 그가 아니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들어낼 수조차 없었으니까. 아무튼 영웅의 물음에 대답해주기 위해 루브리나 장군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네. 미노스가 나스만다 유역까지 접근했다더군. 여기서부터 200Km 정도 떨어진 곳이지.”
“못 해도 모레면 마하 강에 도착하겠군요.”
어둠 괴물의 진군 속도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 추측을 할 수 있었다.
레이더를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놈들은 레이더에도 잡히지 않는 어둠의 괴물. 위성 촬영으로만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겠지. 참모부에서는 내일 오후 쯤 녀석이 모습을 드러낼 거라고 예상하고 있다네.”
루브리나 장군도 민국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리고 사방이 조용해졌다.
침묵의 막사. 그리고 어두워진 장군의 얼굴. 하나같이 모랄빵이라도 당한 것 마냥 눈이 풀린 모습들이었다. 이것이 바로 십이 재앙의 위엄이었다.
‘답답한 상황에 가슴이 터지겠지.’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이었다. 민국의 눈이 자연스레 한 쪽으로 향했다.
루브리나 장군의 작전 참모 중 한 명으로 대위 계급장을 단 여성이 보였다. 그 여성의 가슴 부위는 정말 터질 것처럼 보였다. 이무튼 상대가 만만한 녀석도 아니고 그 십이 재앙이니….
‘10군단의 전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미 해병사단이 합류해도 놈을 저지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더욱 큰 문제는 이 자리에 미군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혹시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알 수 있을까요?”
“…후퇴를 하는 게 올바른 결정이겠지. 하지만 여기서 물러서게 되면 기껏 어둠 괴물들의 손에서 해방시킨 중부 지역이 위험해지네.”
그 뿐인가?
여기 있는 전력은 인도 중, 남부의 최정예 병력들이었다.
물론 다른 전선도 배치된 병력도 있지만 그들이 함께한다고 해서 과연 미노스를 감당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다시 말해 인도군의 전력만으로 놈을 저지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아무튼 자신들이 미노스와 한 판 붙으려면 지상전에서 어느 정도 우위를 점하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어둠 괴물의 군세에는 미노스 뿐 아니라 놈의 심복들도 있을 테니 쉴더급 수준의 영웅 전력도 필요했다.
‘미군이 반드시 참전해야겠네.’
아무래도 라비아 맥퀸과 미리암 로스를 다시 한 번 만나야 할 것 같았다.
만약 그녀들과 미군이 참전하지 않는다면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미군의 지원 없이 인도 군으로 놈들에게 대항하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자신들이 합류한다고 해도 결과는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미군의 합류가 중요하겠군요.”
“아무래도 철수로 결정이 난 것 같다만…. 영웅은 또 모르겠군.”
“그쪽은 제가 한 번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쉽지 않은 전투가 되겠지만…. 십이 재앙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도 아쉬우니까요.”
그렇게 자신이 할 이야기를 마친 민국은 라비아 맥퀸과 미리암 로스를 만나기 위해 지휘관 막사를 나섰다. 일단은 가루다에게 시킬 일이 있었다.
[한민국 : 메를린의 움직임을 체크해줘.]
[가루다 : 넵!]
골드급 마력의 결정 사건 때문인지 가루다는 가타부타 없이 대답과 함께 바로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가루다의 대답을 기다리면서 민국은 화이트 하우스의 막사로 향했다.
‘반드시 설득해야 돼.’
자신들에게 빚진 것들이 있으니 매정하게 도망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십이 재앙을 쓰러뜨리는 건 쉴더급 공격대의 존재의의이자 인류의 궁극적인 목표 중 하나였으니까. 그렇게 민국이 걸음을 옮길 때였다.
콰아아아앙!
갑작스러운 충격파와 함께 대지가 흔들렸다. 본진에서 수십 킬로는 떨어져 있는 곳에서 들린 소리였다. 이어서 불꽃의 기둥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부대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내일이나 모레 오는 거 아니었어? 존나게도 빠르네.”
어둠 괴물의 공격. 미노스가 이끄는 어둠 괴물의 선봉대가 분명했다. 문제는….
[음뭐어어어!!!]
“…….”
자신의 귀를 울리는 커다란 포효.
“씨발, 아직 제대로 된 준비도 못했는데….”
민국의 얼굴이 볼썽사납게 구겨졌다. 어둠 괴물 무리에 더럽게도 강력한 소 새끼가 함께하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