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0화 〉 미노스
* * *
마하 강에서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다는 소식은 곧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더군다나 이번 전투에는 십이 재앙인 미노스가 포함되어 있기까지 했다. 때문에 마하 강에 GGW 공격대를 비롯해 영웅들이 주둔해 있는 R’s 클랜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상황의 파악이 여의치 않았다.
어둠 괴물의 공격으로 남아 있는 위성이 얼마 없던 터라 대부분의 정보를 미군에게 의지해야 했던 것이다. 그 때였다. 유다희가 실시간으로 영상을 보내기 시작한 것이.
“저게 뭐야?”
그녀의 영상을 본 오현정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노스….”
클랜 하우스를 찾은 강채영도 미간에 주름을 만들어냈다.
커다란 전투 도끼를 뜬 소머리 괴물은 단 한 놈밖에 없었다. 특히나 영상으로만 봐도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풍기는 녀석은 더더욱.
“미, 미노스요? 그 십이 재앙 미노스?!”
확신에 가까운 강채영의 말에 오현정은 다시 영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영상 속의 GGW 공격대는 미노스를 상대로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 * *
“지젤!”
아까부터 수상한 낌새를 보이던 미노스의 공격이 은밀히 그녀에게 향했다.
하지만 계속된 전투로 지친 것일까? 지젤의 발이 땅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민국이 잽싸게 달려들어 지젤의 뒷목을 잡고 뒤로 휙 던져 버렸다. 그와 동시에 미노스의 커다란 도끼가 종이 한 장 차이로 둘이 있던 자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
그제야 자신에게 벌어진 상황을 알아챈 지젤이 짤막하게 탄성을 터뜨렸다. 민국이 어금니를 악 물며 말했다.
“뒤지고 싶지 않으면 정신 똑바로 차려!”
“고, 고마워! 나중에 보상으로 보지랑 엉덩이 대줄게!”
“씨발, 전투 끝나고 각오해라. 아주 걸레를 만들어줄 테니까.”
전투를 시작하고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GGW 공격대는 숨이 돌만하면 기다렸다는 듯 덤벼드는 미노스를 계속해서 상대해야 했다.
죽기 일보직전일 정도로 힘들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 무시무시한 괴물은 감당할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들 뿐이었다.
만약 자신들이 물러난다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는 전선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병사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미노스의 발을 붙잡고 늘어져야 했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마력이 간당간당해.’
민국은 자신의 마력 상황을 체크했다. 아무리 길어봤자 30분 정도나 버틸 수 있을까?
그 이후는 전투를 이어나가고 싶어도 불가능이었다. 켄달과 지젤 역시 마찬가지. 이미 힐러진의 마력은 20% 이하를 밑돌고 있었다.
물론, 미노스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최상급 괴물의 수준을 뛰어넘는 놈의 단단한 피부가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최유나와 정예린의 연속 공격이 미노스의 신경을 빼앗는 사이 시라누이 마이가 번개처럼 미노스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이 년…!]
시라누이 마이의 접근을 느낀 미노스가 자신의 팔을 강하게 휘둘렀다.
하지만 마이는 자신의 몸을 뒤로 살짝 빼면서 미노스가 휘두르는 힘을 이용해 오히려 하늘로 날아올랐다. 놀랄만한 배짱과 감탄이 절로 나오는 균형 감각이었다. 시라누이 마이의 움직임에 정신이 팔린 미노스의 눈동자가 허공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김소정이 미노스의 다리 아래로 파고들었다. 이어서 불꽃의 대검이 미노스의 다리를 향해 강하게 휘둘러졌다.
[끄으으으으윽!!!]
십이 재앙의 다리를 푹 꺾이게 만들 정도의 강력한 일격. 영웅들을 바라보는 미노스의 눈이 분노로 타올랐다.
[이 놈들…!]
인간들의 전투력은 형편없다. 지금까지의 자신이 상대했던 인간들에 대한 미노스의 평가였다.
미노스가 만났던 적들은 자신의 도끼질 한 번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는 약골들에 불과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부하 몇이 인간들의 손에 당했다는 소식이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눈앞에 있는 녀석들이 문제였다.
‘반드시 여기서 이놈들을 죽여야 한다.’
눈앞의 영웅들은 분명 인간들의 최정예 전력.
이들을 없애야만 공허의 명령을 받은 어둠의 괴물들이 그리고 카우킹의 세력이 이 땅을 점령할 수 있었다. 그렇게 GGW 공격대를 죽이겠다는 생각만이 미노스의 머리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쿠와아아아아!!!]
몸을 일으킨 미노스가 포효를 터뜨렸고, 괴물의 포효가 전장을 뒤흔들었다. 심상치 않은 놈의 기세에 민국과 멤버들은 어쩔 수 없이 뒤로 몸을 빼야 했다.
“어째 이대로 물러났으면 좋겠는데….”
방패를 들며 방어 태세를 취한 타냐가 마른 입술을 혀로 적시며 말했다.
“켄달, 지젤. 지금 빨리 조금이라도 명상 돌려. 언제 전투가 이어질지 몰라.”
“네? 네.”
“쓰읍…. 진짜 죽겠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고생을 하는 건지….”
그렇게 두 힐러가 마력을 회복시키는 동안 민국은 눈을 가늘게 뜨며 미노스를 바라봤다. 그 때였다.
“…어?”
갑자기 자신의 반고리관에 이상이라도 생긴 걸까? 사방이 핑그르르 돌아가기 시작했다.
‘씨, 씨발?’
민국은 순간적으로 소름이 쫙 돋았다.
이런 상황에서 미노스의 공격이 이어진다면 죽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 때였다. 미노스와 자신들을 중심으로 검보라색의 막이 빠른 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들을 가두려는 결계처럼 말이다.
“이, 이건 뭐야?!”
“결계? 보호막? 일단 빠져 나가자!”
이대로 있다가는 왠지 큰 사단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
민국은 팀원들을 이끌고 결계가 올라온 경계의 근처까지 다가갔다. 이대로 몸을 던져서 밖으로 나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느낌이 좋지 않아.’
결계를 만들어낸 것은 십이 재앙인 미노스.
과연 그가 아무런 생각없이 이런 결계를 만들어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게 분명했다. 일단은 확인이 필요했다.
“잠깐 멈춰!”
앞서서 달려 나가던 현아를 멈춰 세운 민국이 땅바닥의 돌멩이를 들어 결계를 향해 던졌다.
아니나 다를까 돌멩이는 결계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모래로 변해 흩어졌다. 만약 자신들이 저것을 뚫고 지나갔다면? 온 몸이 무사할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이거 갇힌 모양인데?”
“…이게 말로만 듣던 막고라?”
“그건 또 뭔데?”
괜한 소리를 내뱉는 유나를 뒤로 하고 민국은 뒤를 돌아봤다. 미노스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젠장. 우리말이야. 부활석 몇 개나 가지고 있지?”
미노스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고, 눈에 보이는 거라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김새는 지닌 게이트였다. 아무래도 놈은 우리를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결계로 가둬놓고 던전을 만들어낸 모양이었다.
* * *
“끄, 끝났다…!”
1사단의 켄지 르윈 하사는 자신의 품에서 담배를 꺼내들었다. 땀으로 젖은 담배였지만, 태울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십이 재앙인 미노스의 공격으로 시작된 전투. 그리고 지옥이 펼쳐졌다.
장장 여섯 시간이 넘도록 이어진 전투를 통해 인도의 10군단과 미 해병 1사단의 병력은 사실상 모든 전투력을 상실했다. 수많은 병사들이 여기서 목숨을 잃은 것이다.
하지만 그럴 가치가 있었던 전투였다. 무려 십이 재앙인 미노스를 상대로 거둔 승리.
뿐만 아니라 인·미 연합군은 어둠 괴물의 지휘관급 개체를 세 개체나 쓰러뜨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모든 전투가 끝난 건 아니었다.
“저건 뭐야?”
담배를 피던 르윈 하사가 눈을 찌푸렸다.
멀리 보이는 검붉은 막 안에 누군가가 갇혀 있었다. 르윈 하사는 주변을 더듬어서 망원경을 찾았다. 그리고는 검붉은 막 내부를 확인했다. GGW 공격대였다.
“……조졌네.”
전투는 승리했다. 그리고 난리가 났다.
GGW 공격대가 결계에 갇혔다는 보고를 받은 루브리나 장군과 영웅들이 결계로 달려왔다. 다행히도 결계 내부에 있는 GGW 공격대와 소통은 가능했다.
“그, 그러니까 이게 미노스가 만들어낸 결계라는 거죠?”
“그렇게 생각됩니다. 아, 접근은 하지 마세요. 결계는 닿는 물질을 분해합니다.”
“으음…. 일단 포격으로 결계를 부실 수 있는 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결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전차가 포격을 시작했다.
하지만 포탄이 결계에 닿는 순간 그대로 먼지로 변해버렸다. 영웅들의 공격도 통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상황이었기에 민국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놈은 우리를 여기에 가둬 놓을 생각으로 보입니다.”
“……빠져나가려면?”
“눈앞에 보이는 던전을 클리어 하는 방법밖에 없겠죠.”
“으음……. 안에는 분명 미노스가 기다리고 있겠죠?”
“그럴 겁니다.”
루브리나 장군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정말 큰일이었다.
“미노스의 공략. 가능하시겠습니까?”
지금까지 루브리나 장군이 봤던 GGW 공격대는 최고의 실력을 지닌 영웅들이었다. 때문에 장군의 말에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담겨 있었다. 민국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불가능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하지만 이어지는 민국의 말에 루브리나 장군은 입술을 꾹 닫았다.
“부활석이 별로 없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부활석이 정확히 211 개네요.”
“미친….”
옆에 있던 라비아 맥퀸이 욕설과 함께 눈동자를 굴렸다.
수많은 트라이를 경험했고, 진행한 적이 있는 그녀는 211개의 부활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바로 부활석을 건네주기 위한 작전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부활석 역시 결계에 닿는 순간 바로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별의별 수단을 동원해 봤지만 외부에서 내부로 물건을 전달해 줄 방법이 없었다.
'…무조건 던전을 공략해야 돼. 그것도 빨리. 주어진 시간이 없어.'
민국은 냉정하게 판단을 내렸다.
자신들은 이 결계를 나갈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하고 기어 스코어의 장비로 몸을 보호할 수 있을까 싶어 결계에 가져다 대었는데 그대로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어둠 괴물의 공격도 막아내는 장비가 그대로 분해된 것이다.
하물며 인간의 피부라면?
아무리 마력으로 보호한다 하더라도 무사하지 못할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문제는 식량이 없다는 점이었다. 결국 던전을 공략하지 못하면 이대로 굶어 죽을 게 분명했다.
“이렇게 십이 재앙을 상대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지젤이 마른세수를 하며 중얼거렸다.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 켄달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온몸을 떨고 있었다.
“어후….”
“…….”
다른 이들도 정신이 나간 모습이었다.
민국 역시 한숨이 절로 흘러 나왔다. 하지만 약한 모습을 할 수는 없었다. 공대장인 자신이 약해지면 팀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상대는 십이 재앙. 거기에 부활석의 제한에 식량도 없다…. 가능할까?’
솔직히 말해 긍정적인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가능하지 않더라도 가능하게 만들어야 했다. 여기서 허망하게 죽지 않으려면 말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민국이 팀원들 개개인의 어깨를 주물러주며 말했다.
“일단 두 시간 정도 휴식을 취한 후에 던전 공략에 들어가 보자. 안에 뭐가 있는지 확인해 봐야지. 혹시 모르잖아? 미노스 놈이 다친 모습일지?”
“아! 그럴 수도 있겠다!”
“어라? 그렇다면 한 번 해 볼만 한 거 아니야?”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임시 던전을 공략하면서 GGW 공격대는 약해진 지휘관급 개체를 상대로 몇 번이나 승리를 거뒀었다.
그 뿐인가? 그리 어려운 상대도 아니었었다.
두 시간 뒤, 던전에 부활석이 설치되었고, 민국과 GGW 공격대가 많은 이들의 응원 속에서 미노스의 던전으로 진입했다.
“…….”
“젠장할.”
“어, 어떻게 하죠? 공대장님?
그리고 던전에서 만난 미노스는 조금의 부상도 없는 완벽한 모습으로 영웅들을 맞이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던전 내에 존재하는 네임드는 미노스 한 명 뿐이이었다.
“…어쩌기는 일단 놈의 공격 패턴부터 체크하자. 가루다 때와 마찬가지로 모든 패턴이 랜덤으로 이어질 테니 정신 차리고 집중하는 거 잊지 마. 일단 가볍게 브리핑부터 할게.”
미노스를 상대하는 방법은 알려진 게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조금 전의 전투를 통해 놈의 패턴 몇 개는 파악해 둔 것들이 있었다. 그렇게 민국이 브리핑을 진행했고, GGW 공격대의 첫 미노스 트라이가 시작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