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381화 (381/486)

〈 381화 〉 미노스

* * *

[카우킹의 족장 미노스. 너희들의 목을 거둬갈 이름이다.]

경계선을 넘어서자마자 미노스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십이 재앙이 불리는 괴물을 응시하면서 현아는 놈의 공격을 대비했다. 공격대의 메인 탱커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놈의 공격을 막을 수 있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지상에서 열심히 치고 박고 한 까닭일까? 십이 재앙을 상대로도 몸이 얼어붙거나 하지는 않은 느낌이었다.

‘방패는….’

빠르게 자신이 들고 있는 방패를 다시 한 번 체크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격렬하게 이어진 전투로 방패 곳곳이 찌그러져 있었지만, 지금은 아주 멀쩡한 모습이었다. 던전에 진입하기 전 대장장이의 도구로 수리를 끝낸 것이다.

‘대장장이의 도구를 잔뜩 챙겨놔서 다행이네.’

영웅 학교에서 배운 지식. 덕분에 부활석이 떨어졌으면 떨어졌지 전투를 하면서 장비를 잃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기어 스코어가 붙은 장비는 어둠 괴물의 공격에도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물론, 장비의 단단함을 믿고 미노스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내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방어구가 모든 충격을 막아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언제까지 이어질 지 알 수 없는 전투를 생각하면 방어구가 부서지지 않도록 신경을 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전투 도중 대장장이의 도구를 꺼내서 장비를 수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공격을 흘려내야 돼! 충격을 분산시켜!”

“오케이, 알고 있어!”

자신과 일정 거리를 두고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는 타냐의 충고에 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자신을 향해 도끼를 내리치려는 미노스를 향해 몸을 낮추고는 방패를 들어올렸다. 방패의 경사면을 따라서 녀석의 공격을 흘릴 생각이었다.

콰아앙!

“쿨럭!”

그리고 방패에 마력을 잔뜩 집중한 채 미노스의 공격을 받아내는 순간 현아는 저도 모르게 기침이 토해냈다.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놈의 공격을 흘려냈다 생각했는데, 가해지는 충격이 상상이상이었다. 뱃속에서 장이 쪼그라드는 격통과 함께 팔에서 통증이 울리듯 아픔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팔이 부러지거나 금이 간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치명타만 아니면 막아낼 수는 있겠네.’

아마도 자신이 9성이었다면?

놈의 공격을 감당하는 건 불가능했을 것 같았다. 다시 말해 타냐 역시 미노스의 공격을 버텨낼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메인 탱커 힐!!!”

회복의 능력이 발동되고 미노스의 공격에 입었던 충격이 빠른 속도로 사그라졌다. 팔에서 느껴지는 통증도 씻은 듯 사라졌다. 하지만 놈의 공격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콰앙! 쾅!!!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충격파가 퍼져 나갔다.

현아가 미노스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어그로를 쌓고 있는 모습이었다. 눈앞의 조그마한 소녀는 어찌할 수 없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을까? 미노스의 눈은 오로지 메인 탱커인 오현아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힐러들 힐 업!”

“우리 탱커, 죽는다, 죽어!”

현아의 생명력을 회복시키면서 민국은 영웅 패드로 현아가 받는 데미지를 계산했다. 평타로 보이는 놈의 공격 한 방에 메인 탱커의 생명력이 30% 가량 날아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트라이를 진행할 수는 있겠네.’

하지만 메인 탱커가 받는 충격량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트라이 끝나면 찐하게 현아를 안아줘야 할 것 같았다.

고작해야 놈의 공격을 막아낸 것인데도 불구하고 현아의 주변은 충격파로 황폐하게 변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어그로가 잡힌 것처럼 보이자 민국의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언제까지나 놈의 공격을 방어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딜러들이 공격을 시작했다.

“내려치기 조심해! 충격파 데미지 있어! 오현아, 타냐! 그건 반드시 피해야 돼!”

“네!”

“힐러들! 도끼 투척 체크해! 맞으면 무조건 죽는 거야! 원거리 딜러도 마찬가지! 서로 간에 경로가 엇갈리지 않도록 지그재그로 포지션을 잡아!”

본격적으로 트라이가 시작되자 민국은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이어서 놈의 조그마한 습관 하나도 놓칠 수 없다는 듯 검은색의 눈동자가 매섭게 미노스를 움직임을 관찰했다.

‘트라이 초반인 만큼 최대한 놈의 패턴을 체크하는 게 중요해.’

더군다나 부활석이 많지 않았다.

200개가 조금 넘는 수량을 사용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이 부활석을 전부 사용하기 전에 놈을 잡지 못한다면? 자신들의 운명은 끝이었다.

“물귀신도 아니고….’

자신의 욕을 들은 것일까?

미노스의 보랏빛 눈동자가 갑자기 민국에게 향했다. 그 순간 민국은 놈의 어깨 근육이 수축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놈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머릿속으로 빠르게 그려졌다.

“나한테 도끼!!!”

소리를 지른 민국은 바로 몸을 날렸다.

예상대로 미노스가 던진 도끼가 민국이 있던 자리를 강타했다. 지상에서 싸웠을 때도 봤던 패턴.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 때보다 도끼가 날아오는 속도가 조금 빠른 느낌이기는 했지만.

“어?!”

그리고 자신이 피했던 자리로 되돌아가려던 민국은 걸음을 멈칫 했다.

놈이 던진 도끼가 다시 되돌아가지 않고 떨어진 자리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마치 근처로 다가가면 날카로운 날에 몸이 베일 것만 같았다.

“바닥 패턴도 아니고…. 씨발, 포지션 다시 잡아야겠네.”

우주 소녀 전쟁을 즐길 무렵, 흔히 볼 수 있었던 패턴.

때문에 예상과는 다른 패턴이 등장한다고 해서 당황스럽다거나 멘탈이 깨지지는 않았다. 다행인 점은 도끼는 십초 가량 그 자리에 머물렀다가 다시 미노스의 손으로 돌아갔다는 점이었다.

보아하니 전투가 끝날 때까지 쉴 새 없이 날이 도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만약 그랬더라면 트라이가 정말로 피곤했을 텐데…. 천만 다행이었다.

[여기서 죽어라!!!]

미노스가 자신의 전투도끼를 양 손으로 들어 올렸다.

동시에 현아와 타냐가 좌우로 빠르게 흩어졌다. 딜러들 역시 마찬가지. 잠시 후, 먼지구름과 함께 강력한 충격파가 사방을 덮쳤다. 민국이 내려찍기라고 명명한 미노스의 패턴이었다.

‘이 패턴은 예상대로네.’

정면으로 받아냈으면 탱커라도 빈사 상태에 빠질 정도의 강력한 위력이었다. 피하는 게 맞았다. 미노스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충격파 역시 마찬가지. 회복에 들어갈 힐러들의 마나량을 생각하면 트라이를 끝낼 게 아닌 이상 먼저 피하는 게 나아 보였다.

[하하! 이 공격을 피해?!]

그렇게 공격이 끝나자 민국은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미노스의 행동과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어서 오현아가 당황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빠르게 영웅 패드를 확인했다.

조금 전, 미노스의 공격을 피해냈던 오현아에게 디버프가 걸려 있었다. 이동 속도 감소 그리고 방어력 감소.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타냐! 어그로 인계!”

“넵!”

타냐 루스는 망설이지 않고 미노스를 향해 자신의 마력을 밀어 넣었다.

갑자기 자신을 자극하는 불쾌한 마력에 미노스가 소름끼치는 눈동자가 타냐를 바라봤다. 이어서 타냐가 사각형의 커다란 방패를 가로로 세워 놈의 정강이를 내리 찍었다.

그렇게 시작된 트라이는 전투가 시작되고 3분 정도가 지나서야 끝이 났다. 갑자기 소용돌이치는 놈의 마력에 공격대 전원이 휩쓸려서 사망한 까닭이었다.

짧지만 강렬했던 전투. 하지만 얻은 것은 많았다. 특히나 이번 트라이를 통해서 민국은 미노스가 사용하는 공격의 패턴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일단은 팀원들에게 놈의 공격 패턴을 숙지시켜야 했다.

“도끼 투척과 내려치기는 설명하지 않을게. 다만, 놈의 도끼가 투척이 끝나고 바로 사라지지 않고 돌아가는 건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어야 돼.”

“투척 속도도 지상에서 상대했을 때도 조금 빠른 느낌이었어요.”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도 빨라. 그러니까 한 발 먼저 움직여야 돼. 그리고 이 패턴은…. 아무래도 놈이 죽기 직전까지 생각을 해야 할 거야. 대략적인 전투 시간은 25분에서 30분. 초장기전이 되겠네.”

“상대가 상대니까.”

현아의 말을 들으며 민국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3분의 전투가 이어지는 동안 GGW 공격대는 미노스의 생명력을 정확히 90% 아래까지 끌어내릴 수 있었다. 충격파만 피했더라면 조금 더 트라이를 이어나갈 수 있었는데….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공격인데다가 놈이 마력을 방출하는 속도가 상상이상으로 빨랐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못해도 15m. 딜러들은 그 안에서 벗어나야 돼.”

“메인 탱커는 제자리 유지?”

“아마도 그래야겠지. 힐러들은 메인 탱커 힐 업에 신경 쓰고.”

“응.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게 만들어 줄게.”

“씨발….”

지젤의 말을 들으며 현아가 울상을 지었다.

십이 재앙 중 하나인 미노스. 놈을 코앞에서 상대하는 건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첫 트라이인데도 불구하고 놈이 내뿜는 살기와 강력한 공격에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였다.

‘이래서 탱커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영웅학교 시절 탱커가 남자한테 인기가 많다고 해서 직업을 선택한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그리고 괴로운 표정을 짓는 현아에게 민국이 말했다.

“트라이가 끝나면 찐하게 안아줄게.”

“…몇 번?”

“최소 열 번.”

“두, 둘 만?”

“물론이지. 밤부터 아침까지. 우리 둘만.”

멍한 표정을 짓던 현아의 얼굴에 조금씩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민국이랑 열 번. 그 정도의 포상이라면…. 미노스 녀석도 상대해 볼 만 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타냐 역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 * *

GGW 공격대의 고립.

덕분에 한국의 상황은 난리도 아니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GGW 공격대가 미노스와 호각으로 전투를 하는 모습을 보며 이것이 인류의 저력이라고 소리를 쳤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미노스의 물귀신 작전에 공격대가 고립되자 R’s 클랜은 돈만 밝히는 쓰레기가 되었고, 인도는 그야말로 가상의 적국이 되어 버렸다. 자세한 상황을 모르는 국민들은 빨리 영웅과 군인을 보내서 GGW 공격대를 구출해야 한다고 떠들어내고 있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십이 재앙이 만들어낸 결계입니다. 아쉽지만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 같습니다.]

[포탄도 쉴더급 공격대의 공격도 전투 무효화 시키고 있어요. 접근조차 불가능합니다.]

[어둠 괴물의 뼈로 만든 방어구를 가져다 대었는데 순식간에 먼지로 변하더군요. 일단 생명체는 통과 자체가 힘들 것 같습니다.]

R’s 클랜의 단장실.

인도에 있는 조선아 공대장의 이야기를 들은 오현정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단장실에는 또 다른 여성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과거 국가대표급 딜러로 불렸던 강채영이었다.

그녀는 미노스에 의해 GGW 공격대가 고립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자세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R’s 클랜으로 달려왔다. 오현정이 다시 물었다.

“그래서 상황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죠?”

[일단 지상에 모습을 드러냈던 카우킹 세력을 몰아내면서 영웅들은 임시 던전을 공략하는 중입니다. 미노스가 만들어낸 결계 장소도 일단 완전히 확보를 했고요.]

“그건 천만 다행이긴 한데…. 영웅들의 상황은요?”

[현재 미노스 트라이를 진행하고 있는 모양인데…. 지금까지 부활석 열 네개를 사용했습니다. 트라이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2페이즈 진입을 코앞에 둔 것 같고요.]

부활석 열네 개에 2페이즈.

오현정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GGW 공격대의 부활석 숫자를 생각하면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동자가 다른 쪽으로 향했을 때.

“공략 속도는 나쁘지 않네.”

소파에 앉아 있던 강채영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오현정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그, 그런가요?”

“네. 미노스와 같은 십이 재앙은 실제로 얼마나 강력한 지, 또 어떤 능력을 사용하는지 밝혀진 것들이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2페이즈 진입을 앞두고 있다는 것은 공대장과 팀원들이 생각보다 빠르게 놈과의 전투에 적응하고 있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쉰 개에서 예순 개를 사용했을 때 3페이즈 돌입이 가능할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부활석을 전부 소모하기 전에 미노스를 쓰러뜨리는 것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일이겠지만.”

상대는 일반적인 괴물이 아니었다.

인류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십이 재앙이었다 아무리 한민국의 지휘 능력이 대단하다 하더라도…. 놈을 쓰러뜨리려면 팀원들 전체가 각성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게 강채영의 생각이었다.

'뿐만 아니라 녀석의 능력을 파훼할 수 있어야 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깍지를 낀 그녀의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저 안에 갇힌 이가 민국이 아니라 자신이었다면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하지만 민국은 그녀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레이드의 고인물. 미노스와 같은 수준의 네임드는 골백번도 넘게 상대해 본 경험이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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