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6화 〉 강한 남자 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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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이 두려워하는 어둠 괴물의 본거지 중 하나.
아시아의 나라 미얀마에 자리하고 있는 새의 탑 내부는 전과는 비교 할 수 없는 활기참으로 가득 차 있었다.
탑 내부를 오가는 일꾼들의 숫자만 해도 백이 넘었으며, 그들을 지키는 전사들도 적지 않게 있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인간 영웅들에게 탑이 싹 쓸려 나가 가루다 혼자서만 탑을 지키고 있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다.
현재 탑 내부에서는 대대적인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민구에게 받은 생명의 기운을 공허의 마력으로 치환하고, 바이콘에게 지원받은 크론을 불려서 탑 내부의 수리와 필수 시설들을 짓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가루다는 자신의 이름을 두려워 해 탑 내부로 진입하지 못하는 인간들을 비웃으며 조금씩 자신의 세를 불려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예전의 세력을 되찾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가루다의 세력에는 아직 지휘관급 개체가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기껏해야 심복이라 할 수 있는 괴물들도 7,8 등급의 개체에 불과했다. 일반적인 영웅들은 가볍게 찜 쪄 먹을 수 있는 강력한 괴물이지만 인간들의 정예라 할 수 있는 쉴더급에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부터 새의 탑은 달라진다.”
탑의 최상층.
멋들어지게 꾸민 옥좌에서 가루다가 무게감 넘치는 목소리로 외쳤다.
다른 이들에게 불우이웃처럼 크론을 지원받고, 공허 마력을 생산하는 건물을 지으면서 드디어 5만 크론을 모으는 데 성공한 것이다. 참고로 5만 크론으로는 9 등급 네임드를 불러낼 수 있었다.
“기나긴 모멸과 핍박의 시간. 정말로 지긋지긋하던 차였다.”
냉담한 목소리를 내며 가루다는 열심히 크론을 소모해 공허 괴물을 소환했다.
잠시 후, 한 마리의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커다란 지팡이를 들고 있는 신상, 공허의 관리자 카룩스였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공허 관리자가 가루다를 보고는 한쪽 무릎을 굽혔다.
“슈가빈의 여황 폐하.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너의 충성을 받아주지. 앞으로 너는 탑의 9층 관리자로 임명하마.”
“감사합니다.”
대답과 함께 고개를 꾸벅이는 카룩스를 보니 가루다는 가슴이 웅장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이렇게 꼬박꼬박 크론을 모아서 등급이 높은 괴물을 소환하다보면 언젠가는 자신도 한 지방의 지배자가 될 수 있으리라. 물론, 어느 정도 세력을 쌓을 때까지 인간들과의 충돌은 피해야 했다. 특히나….
“한민국, 그 놈은 반드시 피해야 해. 그 자식은 정말로 미친 새끼라고.”
어둠의 괴물인 자신을 자기 것 마냥 유린하던 한민국.
그 놈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해야 했다. 게다가 놈은 단순히 새의 탑을 엉망으로 만든 것만이 아니었다. 겁도 없이 인간 주제에 인도에서 미노스와 한 판 붙었고, 결국 그 전투에서 미노스를 쓰러뜨리는 데 성공했다.
그 때문에 십이 재앙의 분위기도 말이 아니었다.
[버니 : 당장이라도 그 자식을 찾아서 찢어 죽여야 돼. 가만히 있다가는 각개격파가 될 뿐이라고!]
[실버백 : 인도? 나는 거기까지 못 가. 바다를 어떻게 건너라고?]
[버니 : 리바랑 파푸니르가 도와주면 되잖아?]
[리바이어선 : 내가? 파푸니르랑 손을 잡는다고? 됐어, 안 할래. 어차피 인간들은 바다 못 와.]
[바이콘 : 필요하다면 메를린에게 도움을 줄 수는 있어. 하지만 내가 직접적으로 나서지는 못할 것 같아. 재미있는 것을 준비하고 있거든.]
[쉬다인 : 인도? 어디에 있는 땅이지? 아, 찾았다. 뀌익. 잠깐만. 여기는 너무 먼데…?]
잉글랜드에 터전을 잡고 세력을 불려나가고 있는 버니는 당장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인간 영웅을 찾아 후환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각각의 세력이 라이벌이나 다름없는 십이 재앙들의 의견이 한 데 뭉칠 리 없었다.
“뭐, 나도 너희들의 뜻은 동의하지만….”
그리고 이는 가루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그 놈들이 얼마나 무서운데. 한민국이 제대로 마음만 먹으면 자신은 하루 컷이었다.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험악한 대화가 오가는 십이 재앙들의 모습을 보며 가루다는 콧소리를 내며 흥얼거렸다.
어차피 남의 일에 불과했다. 자신은 GGW와 손을 잡은 사이. 먼 훗날 한민국이 다른 십이 재앙의 세력들을 처리하고 나면 그 때 슬그머니 인간 대륙에 슈가빈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만 얻어낼 수만 있으면 되었다.
“호주가 그렇게나 좋다고 하던데….”
대륙의 대부분이 사막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섬.
많은 인간들이 살고 있던 땅이었지만, 결국 어둠 괴물들의 계속된 침공을 견뎌내지 못하고 모든 인간이 후퇴했다고 알려진 땅이었다. 그리고 현재는 파푸니르와 리바이어선의 세력권 내에 있는 땅이었다.
땅의 크기가 제법 컸으니 그 땅을 얻어내면 슈가빈이 세를 불리기는 충분할 것 같았다.
“아무튼 미노스가 뒈졌으니 이제 다음 목표는 메를린이려나?”
자신의 결정을 뺏어간 얌체 같은 년.
그 때문에 마음에 마음을 졸였던가? 한민국이 칼을 들고 탑에 찾아올 까 제대로 잠도 자지 못했다. 아무튼 무플런의 세력까지 무너지면 다시 한민국을 꼬드겨 바이콘까지 처리하면 딱 일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나를 위협할 어둠 괴물들의 세력은 없다는 말씀.”
리바이어선이 있지만, 바다에 사는 놈이 뭘 어쩌겠는가?
게다가 그 년이 자신을 공격하려면 베트남이라는 인간들의 나라를 뚫고 와야 했다. 그 때 통신구가 몇 번 점멸하더니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루다, 자리에 있지?]
“어, 어어?”
메를린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마침 그녀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잠깐 당황한 목소리를 냈던 가루다는 빠르게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응, 메를린. 잘 지내고 있지?”
[잘? 진심으로 물어보는 거야?]
수정구 너머로 들려오는 답답한 한숨에 가루다는 자신의 어깨를 으쓱였다.
뭐,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미노스와 카우킹 부족의 전멸. 오랫동안 진행이 된 인간들과의 전투에서 지휘관급 개체가 사망하거나 십이 재앙이 모습을 드러냈다가 지상에서 패퇴하는 일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십이 재앙이 던전에서 사망, 공허의 틈새에 깔린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심지어 한 세력 전체가 몰살된 엄청난 상황이었다. 이제는 십이 재앙이 아니라 십일 재앙이라 불러야 했다. 그리고 그 미노스를 처리했던 공격대의 활동 범위 내에는 무플런이라는 메를린이 이끄는 세력이 있었다.
인간과 카우킹, 무플런으로 이루어진 삼파전에서 인간과 메를린의 일 대 일의 구도가 펼쳐진 것이다.
때문에 메를린은 십이 재앙끼리의 회의에서 버니의 의견을 강하게 지지하고 나섰다. 물론,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았지만 그래서일까? 메를린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미노스가 공허의 틈새에 갇혔어. 그것은 알고 있지?]
“물론이지. 아무리 내가 재앙들 사이에서 소외당하고 있다지만 그런 큰 소식까지 모를 정도는 아니야.”
귀 옆으로 적당한 크기를 한 붉은색의 날개가 삐죽 솟은 여성체, 가루다가 웃으며 말했다.
연이은 던전 브레이크의 실패. 그리고 GGW 공격대의 공략으로 지니고 있던 세력의 대부분을 잃었지만, 그래도 슈가빈의 여왕으로서의 힘은 잃지 않고 있었다.
[그래. 미노스를 쓰러뜨린 놈은 GGW 라는 녀석들이야. 그리고 그 년들은 아주 위험해.]
“음음, 위험하지. 나도 한 번 털렸는 걸.”
그리고 목숨을 구걸하던 도중 그녀들을 이끄는 지휘관에게 신나게 따먹히기도 했다.
특히나 GGW를 이끄는 한민국은 정말로 위험한 인간이었다. 그의 눈이 자신을 향할 때 마다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발가벗겨지는 느낌이었으니까.
미노스 역시 강력한 능력과 기술을 몇 개나 가지고 있었지만…. 그 괴물보다 더한 남자의 눈을 피하지는 못했을 터였다.
‘그런데 온전한 힘을 지닌 미노스라면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힘을 잃은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강할 게 분명한데, 그 놈을 잡는데 성공하다니.
역시 주인님에게 반항하는 건 무리인 것 같았다. 그냥 열심히 첩자 노릇이나 하면서 나중에 땅이라도 얻어내는 수밖에. 그게 슈가빈의 살길이자 자신의 희망이었다.
[아! 그렇구나. 생각해보니 너도 그 년들에게 한 번 당한 적이 있었지.]
“그래. 정말 위험한 주이…. 아니 년들이지. 정말 엄청나게 강했어. 도저히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그런데 어떻게 탑이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은 거지?]
“…운 좋게 인도에서 일이 터진 거지.”
차마 목숨을 구걸했다고는 십이 재앙의 자존심상 말 할 수 없었다. 뭐, 시기도 비슷했으니 말이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리고 수정구 너머로 메를린이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이 느껴졌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아무래도 걱정이 드는 모양이었다. 특히나 미노스는 전투력 면에서는 메를린보다 한 수 위에 있는 괴물이었다. 잠시 후, 메를린이 더듬거리며 말을 꺼냈다.
[…가루다.]
“응?”
[나를 좀 도와주겠어? 이 은혜는 반드시 잊지 않을게.]
* * *
[가루다 : 그래서 나중에 대답해 주기로 했어요, 주인님.]
가루다의 메시지를 보며 민국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미노스도 처리한 마당에 슬슬 본국으로 귀환을 할 생각이었다. 국내 여론이 난리가 나기도 했지만, 카우킹의 세력을 쓸어버리는 데 성공하면서 다들 전쟁이 끝났다는 분위기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빠를 기다리는 소영이와 지호도 보고 싶었다.
“무플런까지는 건드릴 생각이 없는데…. 흐음….”
현재 무플런의 세력은 뉴델리를 포위하고 있던 괴물들을 모조리 귀환시켰고, 자신들의 보금자리인 캘커타에 조용히 틀어박혀 있었다.
그리고 계속된 전쟁으로 국토가 엉망이 되어버린 인도 입장에서는 이대로 전선을 고착화시키는 것을 원했다. 미노스를 쓰러뜨리는 엄청난 성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그 피해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영웅들이 죽었고, 군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참고로 폐허가 된 인도의 재건에는 여러 그룹들이 참여하기로 했다.
그 중 대표적인 기업이 한국의 라온과 로즈 그룹. GGW 공격대와 직접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는 만큼 인도의 주 정부는 그 두 그룹에게 직접적인 특혜를 주면서까지 자신들의 재건을 맡길 생각인 모양이었다.
덕분에 그룹의 부회장인 김태연은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모양이었다. 이 외에도 미국의 건설 업체 몇 곳이 인도 재건에 뛰어들었다. 마하 강 전선에서 희생된 병사들의 피 값이었다.
“어떻게 할까….”
메를린이 가루다에게 제안한 것은 하나였다.
GGW 공격대가 공격해오면 자신들을 도와 달라는 것.
다시 말해 자신의 던전에 와 달라는 말이었다. 그렇게 되면 메를린의 던전을 공략했을 경우 인간들은 두 개체의 십이 재앙과 맞닥뜨리게 되는 셈이었다.
《인간들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이겠군요.》
“그렇겠지. 두 개체의 십이 재앙을 한 던전에서 상대한다? 어휴, 쉴더급 공격대라도 다시 부활석을 설치할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을 걸?”
하지만 자신은 달랐다.
미노스를 잡으면서 스펙 업도 했고, 가루다는 걱정할 게 없었다.
설령 가루다가 배신을 한다 하더라도 가루다의 패턴은 이미 영웅 패드의 공략본에 적혀 있었다. 몇 번 전멸은 할 지 몰라도 감각을 찾는 건 어렵지 않으리라.
‘문제는 메를린이지만.’
미노스도 공허의 틈새로 보내버리는 데 성공한 마당에 메를린도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미노스의 상황을 겪으면서 부활석도 대량 얻어냈다. 결계에 갇혀도 천 트 이상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고민을 하던 민국이 힐끗 자신의 자지를 문 큐우♡를 바라봤다. 메를린은 잡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공짜는 조금 그랬다.
“퀘스트 줄 수 있나?”
《설마…. 메를린과도 싸우시려고요?》
“언제 인도까지 다시 오겠어? 기회가 있을 때 잡아야지.”
메를린까지 처리하고 바이콘까지 잡아낸다면?
동아시아 지역의 안전은 어느 정도 확보가 되는 셈이었다. 새의 탑이 남아 있다지만 그곳은 일단 제외하고. 아무튼 그렇게 본진의 안전이 확보되면 그 때부터는 원정을 다닐 생각이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각양각색의 여인들을 따먹는 원정. 뭐, 겸사겸사 십이 재앙도 처리를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미국을 생각하고 있었다. 화이트 하우스의 몇몇 영웅들과 맺은 인연도 있었지만, 이번에 마하 강 전투를 함께하면서 민국에게 큰 빚을 지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미국의 본토가 안전해져야지 아메리카의 물량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갈 수 있어.’
던전 내의 괴물들은 자신이 처리할 수 있다지만 지상에 모습을 드러낸 어둠 괴물들은 군대의 힘이 필요했다. 그리고 미국은 전 세계에서 군사력이 가장 강한 국가 중 하나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메를린을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확실해졌다. 아무래도 본국으로 귀환하는 것은 조금 더 뒤로 미뤄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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