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7화 〉 뜨거운 휴식
* * *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메를린을 통해서 골드급 마력의 결정체를 생산한다는 계획은 실패했다.
“다, 당장은 결정체 생산이 불가능해요!”
정확히 말하자면 보류.
공허와 연결을 끊은 까닭에 메를린이 결정체를 생산할 힘을 잃은 것이 그 이유였다. 잃어버렸던 힘을 되찾으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데, 그건 민국이 메를린의 안에 아무리 정액을 쏟아 붓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뭐, 찬드라니암의 경우를 통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사실이라 크게 상심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조금 아쉽게 느껴지기는 했다. 그래도 메를린은 십이 재앙이라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을 거라 생각했던 까닭이었다. 게다가….
‘메를린을 통해서 골드급 마력의 결정체 공장을 돌릴 수 있다면….’
10성을 넘어 11성 영웅이 되는 것도 시간 문제였다.
물론, 가루다, 카우킹, 메를린. 이렇게 십이 재앙 중 세 녀석을 상대해 본 결과 현재 GGW 공격대의 스펙으로도 다른 십이 재앙의 공략도 어느 정도 가능해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는 노릇. 준비는 하면 할수록 나쁠 게 없었다.
“그러면 결정체 생산이 필요한 준비는 얼마나 걸리지?”
“어…. 그…. 정액을 받을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인간의 시간으로는 이 년 정도가 걸릴 것 같아요.”
“짧지 않네.”
“……그, 그래도 이 년 후에는 한 달에 세 개 이상의 결정체는 만들어낼 수 있어요.”
메를린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민국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은 아니지만 나중을 생각하면 뭐, 쓸모는 있어 보였다. 게다가 혹시 모를 어둠 괴물의 기습에 대한 비장의 수단도 되어줄테고 말이다.
아무튼….
[세계의 영웅 한민국과 GGW 공격대. 곧 한국으로 출국할 예정.]
[GGW 공격대가 떠나는 모습에 울음바다가 되는 인도의 퐁디셰리 공항.]
[인도의 통령 알리아 바트, “인도는 이 땅을 안전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준 이들을 잊지 않을 것. 특히나 한민국 영웅의 재방문을 기대한다. 그는 이 땅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
일 년 가까이 지속되었던 인도 전쟁이 끝나고, 민국과 GGW 공격대도 한국으로의 귀환을 준비했다.
“성과급! 성과급! 성과급!”
집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에 느낌이 이상한 모양인지 다들 흥분된 모습이었다.
특히나 GGW 공격대와 R’s 클랜의 1군 공격대를 따라서 인도까지 출장을 온 일반 직원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질 성과급에 잔뜩 신을 내고 있었다.
“와…. 진짜 엄청나게 길었다.”
“처음에는 그냥 임시 던전만 처리하는 줄 알았는데….”
영웅들 역시 기분이 이상한 것은 매한가지.
특히나 이번 전쟁은 인류를 위협하는 카우킹과 무플런의 세력을 전부 쓸어버리고 십이 재앙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전쟁이었다. 훗날 본인들의 장례식 때 보여줘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대단한 전공이었다.
이로 인해 인도를 위협할 만한 적대 세력은 히말라야 북쪽의 바이콘과 동남아시아의 새의 탑 뿐. 인도 대륙의 안전은 물론이고, 십이 재앙을 직접적으로 상대하면서 거둔 역사적인 승리였으니 인류의 대반격이라 해도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은 결과였다.
그리고 GGW 공격대가 소속된 한국 역시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진짜 GGW 미친 거 아니야?! 몇 십 년 동안 제대로 반격도 못해 본 십이 재앙을 두 마리나 잡았다고!]
[이, 이것이 남자?]
[아, 진짜 기저귀를 차도 물이 질질 새어나오네. 어떻게 저런 남자가 존재할 수 있는 거지? 그것도 한국인이라니!]
[진짜 부족한 게 뭐냐고?! 능력, 명성, 외모 어느 하나 빠진 게 없네. 그래서 민국 오빠, 와이프나 첩은 안 구하심?]
미노스를 잡을 것도 모자라 메를린까지.
인도에 있는 십이 재앙 두 개체를 쓸어버린 GGW 공격대와 한민국의 이야기가 화제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방송에서 그런 거 기획했으면 좋겠다. 한민국과 결혼할 수 있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우승자 한 명이 한민국의 첩으로 들어가는 거임. 나이는 15세에서 26세까지. 어떰?]
└왜 26세임?
└내가 26살이라….
└완전 환영. 그리고 일단 나 지원함.
[인도에서 사업하는 사람인데 한국 기업이라고 하면 뭐든지 프리패스임. ㄹㅇ 한민국은 여기서 신이다, 신.]
└이거 맞다. 한민국이나 GGW 공격대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한다? 바로 돌 날아옴.
[라온과 로즈 그룹만 노 났네. 특히 로즈는 이번 인도 재건 사업 중 굵직굵직한 것들을 전부 가져가는 거 아님?]
└관련 주가 떡상 중. 전부 한민국 때문임.
└ㅋㅋㅋㅋ ㄹㅇ 로즈에서 한민국한테 뭐라고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계열사 하나 떼어줘도 모자랄 듯.
모습을 드러냈다 하면 국가 자체가 흔들리는 괴물.
그래서 인류가 붙인 이름이 바로 재앙이었다. 현재 인류의 군사력으로는 결코 막을 수가 없는 존재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민국은 그리고 GGW 공격대는 그런 무시무시한 놈들을 무려 두 개체나 지옥으로 보내버렸다.
그 여파일까?
세계를 신음하게 만들던 어둠 괴물의 도발이 갑자기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십이 재앙이 인도와 관련된 일을 심각하게 여기고 떠들어대었다. 물론,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인도의 영웅들을 칭송하던 시각.
민국은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가면서 일찌감치 새의 탑으로 복귀한 가루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한민국 : 재앙들 사이에서 따로 이야기 나오는 것은 없어?]
[가루다 : 버니가 심각하게 반응하는 모습이지만…. 다들 본인들 일이 아니라서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는 것 같아요. 오히려 파푸니르와 바이콘은 메를린이 공허로 끌려갔다는 사실을 반기는 것 같아요.]
[한민국 : 왜?]
[가루다 : 그 년의 세력을 본인들이 어느 정도 흡수했거든요.]
메시지를 보면서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진짜 얘네들은 사이가 더럽게 좋지 않았다. 인류보다 훨씬 강력한 개체로 이루어진 어둠 괴물이 아직까지 지구를 정복하지 못한 이유가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살아남은 놈들이 있었나보네.’
메를린을 쓰러뜨리긴 했지만, 무플런 세력 전부를 무너뜨린 건 아니었다.
그래도 메를린을 포함해 지휘관급 개체는 대부분을 붙잡았기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목숨을 건져서 도망친 어둠 괴물들을 다른 십이 재앙이 흡수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크게 신경을 쓸 필요는 없겠지.’
중, 하급 수준의 괴물들이야 자신들에게는 밥이나 다름없었고, 인류의 영웅 전력 또한 그 놈들에게 당할 정도로 허약하지 않았다. 그나마 최상위 혹은 지휘관 급 개체나 되어야 문제가 생기겠지만, 그런 놈들은 캘커타 공방전에서 모조리 붙잡아 소멸시켰다.
[한민국 : 우리가 신경 쓸 필요는 없겠군. 탑의 상태는?]
[가루다 : 주인님의 자비로우신 은혜로 인해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충성충성. 그런데….]
핸드폰에 메시지를 작성 중이라는 내용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기는 한 데,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 내용인 듯 보였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가루다 : 보, 보름 후부터 연락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민국 : 왜?]
[가루다 : 새로운 슈가빈을 위해 출산 준비에 들어가야 해서요.]
[한민국 : 슈가빈의 출산?]
생각지도 못한 내용에 민국은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
강채영과 김태연의 뒤를 이어서 나의 씨로 태어나는 존재가 인간이 아닌 어둠 괴물이라니…. 점점 자신이 인간이 아니게 되는 기분이었다. 이어서 뿌우의 《민국님은 분명한 인간이십니다, 단지 마력을 각성했을 뿐이죠》라는 소리가 들려오기는 했지만.
‘그런데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있나?’
기분은 살짝 이상했다. 하지만 슈가빈의 부흥은 가루다와 손을 잡으면서 서로 주고받기로 한 것 중 하나였다.
그래도 이왕이면 태어나는 아이가 여성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남성체의 어둠 괴물이 자신을 향해 아빠아빠 거리는 모습은 딱히 보고싶지 않았다.
게다가 가루다의 외모가 인간의 기준으로 나쁘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아들 보다는 딸이….
[한민국 : 귀여운 딸이 태어나기를 바라지.]
그렇게 문자를 보낸 민국은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이번 인도 원정을 통해서 얻은 것들이 정말 많았다. GGW 공격대 전부를 10 등급까지 높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지만, 어둠 괴물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수 있었고, 혹시 모를 보험도 준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힘들었어.’
일 년 내내 군인들과 야전에서 뛰었던 것을 생각하면 당장 어둠 괴물들이 미친 듯 날뛰는 것이 아닌 이상 조금 쉬고 싶은 생각이었다.
아무튼 이번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몇 달은 푹 쉬고 놀 생각이었다. 그렇게 민국이 눈을 감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에도 비행기는 쉬지 않고 한국을 향해 날아갔다.
* * *
와아아아!!!!
한민국! 한민국! 한민국!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사방에서 자신들을 반기는 여성들로 인해 난리도 아니었다. 심지어 장관급 공무원도 나와 있었다.
물론, 그런 것에 신경 쓸 민국이 그리고 GGW 공격대가 아니었다. 민국은 모여든 사람들 앞에서 예의상 짤막하게 인터뷰를 한 후, 휴식을 취하겠다며 집으로 향했다. 미모의 아나운서가 당황하는 모습도, 장관급 공무원의 얼굴이 구겨지는 것도 당연히 모른 척했다.
‘뭐, 생각이 있으면 이에 대해 뭐라고 하지는 않겠지.’
국내의 분위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인도에서 함께 활동했던 이들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GGW 공격대에 대한 국내의 분위기 역시 그 호감도가 장난이 아닐 게 분명했다.
게다가 한반도 북부에는 바이콘의 세력이 남아있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GGW 공격대 그리고 R’s 클랜과 척을 진다는 것은 아주 멍청한 짓이었다. 아무튼 이러한 존재감을 생각하면 굳이 얼굴 마담으로 상대의 홍보에 끌려 다니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전에도 그랬지만 말이다.
“자, 그러면 모두 해체! 내일 클랜 하우스에서 모인 후에 전리품 정산하고 일주일 휴가!!!”
정리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본격적인 일은 내일부터 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팀원들이 각자 흩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민국도 클랜에서 준비한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아쁘아!!!”
집에 도착하니 자신들이 귀국했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강채영과 소영이가 현관에서부터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와….”
자신과 강채영의 외모를 반반씩 섞어 놓은 귀여운 아기.
아기의 1년은 어른의 1년과 크게 다르다고 하더니만…. 영상 통화로 몇 번 보기는 했지만 자신이 인도에 있는 동안 정말 엄청나게 큰 느낌이었다.
그래봤자 두 살에 불과하지만 유아가 아닌 아이가 된 것 같아 살짝 섭섭한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그렇게 손을 뻗는 소영이를 안아 들고 강채영을 향해 돌아본 순간 민국은 그녀의 얼굴 표정이 살짝 일그러져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인도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겠지. 카우킹 사건을 포함해 메를린까지. 위험한 전투랑 전투는 다 뛰어들었으니 한국에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터였다.
“건강하게 잘 다녀왔어. 그리고 미안.”
“…칫. 그렇게 말하면 내가 화를 낼 수가 없잖아.”
사과를 하자마자 바로 얼굴이 풀리는 것을 보니 본인도 그렇게까지 뭐라 할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강채영 역시 해외로 파병을 나갔을 정도로 유명한 영웅이었으니 GGW 공격대의 상황과 그 입장을 모를 리 없었다. 그렇게 소영이와 놀아주면서 민국은 김태연와 아들 지호에 대해 물었다.
“태연이는 회사 일 때문에 오늘 못 올 거야. 요즘 많이 바쁜 가봐. 그리고 지호는 할머니 집에. 이따 밤에 올 지는 모르겠는데…. 뭐, 그쪽도 좀 바쁜 모양이더라고.”
“…아아.”
최근 라온 그룹은 인도 재건 사업 때문에 신경 써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넓은 땅을 아우르는 대대적인 건설 사업인데다가 인도 정부가 한국 기업에 갖는 호감이 하늘을 뚫고 있었다. 당연히 이번 기회를 통해 한 몫 남기고 싶을 터였다. 잘만 이용하면 그룹의 크기를 한 단계 더 키울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리고 지호는….’
이 세계에서는 그 귀하디귀한 남자.
그것도 라온 그룹의 핏줄인 김태연이 낳은 아들인 까닭에 아주 그룹 차원에 심혈을 기울여 키우는 모양이었다.
특히나 할아버지의 사랑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그래도 소영이와 따로 지내는 것은 아니고, 주에 세 번씩 함께 놀이 교육을 받는다고 했다.
“…고생하네.”
“아이 키우는 것쯤이야, 뭐. 나보다는 괴물들과 싸우는 당신이 더 위험하고 힘들지. 진짜 이번에 엄청나게 위험했던 거 알지?”
“한 가지 교훈은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지.”
“뭔데?”
“…예비로 사용할 부활석은 무조건 많이 들고 다녀라.”
미노스의 결계에 갇혔을 때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최악이었다.
만약 부활석이 떨어지기 전까지 그 놈을 쓰러뜨리지 못했더라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렇게 민국은 소영이와 놀아주면서 강채영이 준비한 식사, 간식들을 먹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하루 종일 긴장을 하고 있던 감각이 빠르게 풀어지는 것을 보면 역시 집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흐아암….”
오후 쯤 되자 옆에서 떨어질 생각도 없이 부비적거리던 소영이가 피곤한 듯 하품을 했다.
그리고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보던 강채영이 익숙하게 소영이를 재우기 시작했다. 피곤했는지 순식간에 고개가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하더니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딸. 그리고 범퍼 침대에 조심스럽게 아이를 재운 강채영이 흐트러지는 머리를 풀더니 한 데 묶기 시작으며 말했다.
“나 씻고 올 테니까 소영이 깨면 잠시 봐줘.”
“응? 씻는다고? 지금? 왜?”
민국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시간이 늦은 오후이기는 했지만 당장 잘 시간도 아니고…. 땀이 흐를 정도로 운동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뭐 씻고 싶다는데. 아무튼 알았다는 듯 민국이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종종 걸음으로 민국에게 다가온 강채영이 그의 귓가에 미지근한 바람을 불어넣으며 속삭였다.
“왜기는…. 우리 일 년 만에 본 거 알지?”
“……아.”
그 말에 움찔, 자지가 반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