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1화 〉 뜨거운 휴식
* * *
스트리머의 방송을 보는 사람들은 굉장히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둠 괴물의 등장 이후 뉴스가 다루는 것은 대부분이 괴물과의 전쟁과 관련된 우울한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방송들도 많았지만…. 아무튼 방송을 보다가 속보로 날아드는 전쟁 소식을 보게 되면 괜히 기분이 씁쓸해지기 마련이었다. 어둠 괴물의 공격에 인간이 패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더더욱. 그런 이유 때문에 집에서 정규 방송을 보지 않는 이들 또한 굉장히 많았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인터넷 방송을 하는 남자 스트리머를 보기 위해서였다.
여중, 여고, 여대, 군대라는 테크트리를 타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남자와는 손끝조차 스치지 못한 이들이었다.
그런 여성들이 남자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방법이란? 정말 성공한 인생이거나 돈이 많거나 외모가 압도적으로 뛰어나야만 가능했다.
그렇지 못한 일반 여성들이 찾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인터넷 방송. 자신들의 후원 채팅에 반응해주는 남자 스트리머와의 소통을 통해 연애의 대리만족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 스트리머는 대부분이 중소기업 이상의 규모를 자랑했다. 일단 스트리머를 빨아주는 여성들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여성 스트리머와 비교했을 때 스트리머의 숫자는 훨씬 적었지만, 후원 금액은 압도적이었다.
때문에 대부분 남자 스트리머들의 방은 굉장히 엄격한 채팅 문화를 자랑했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지만, 노출이 있는 성인 남자 스트리머들은 돈이 급하거나 여성들조차도 한 수 접어줄 정도로 외모가 무너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무튼 이와 비슷한 이유 때문에 민국의 방송을 찾은 시청자들은 세계 최고의 미남이라 불리는 한민국의 방송 역시 엄격한 채팅 문화를 자랑할거라 생각했다. 스킨십의 스짜만 나와도 영구 정지를 당할 거라 지레 짐작한 것이다.
하지만….
[첫 키스는 언제 하셨나요?]
“첫 키스? 글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가장 최근의 키스는 현아랑 했지. 혹시 여기 있는 사람들 중 키스 한 번 못해 본 사람은 없지?”
[…….]
[선생님, 뼈가 너무 아파요.]
[아, 광역 스킬 데미지가 너무 강력하시네요?]
불타오르는 채팅과 함께 이어서 들려오는 인공지능의 목소리.
[혹시 카르텔 멤버는 몇 명이신지 밝힐 생각이 있으신가요?]
“일단 GGW 멤버 아홉하고…. 와이프 둘. 거기에 R’s 클랜장인 오현정 외 일반인 다섯 명 정도가 더 있어.”
[스킨십 좋아하세요?]
“엄청 많이. 사실 제가 여자가 없으면 잠을 제대로 못 자는 병이 있어요.”
다소 선을 넘은 질문조차도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해주는 민국의 모습은 스트리머 중에서도 털털한 성격을 자랑하는 여성 스트리머가 따로 없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채팅창에서 선을 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시청자들 스스로가 자체하려는 분위기였지만, 스트리머가 도와주지를 않았다. 그녀들의 생각과는 달리 민국은 정말로 이런 질문들이 아무렇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일반인? 김태연 포함이겠지?]
[와이프 둘 외 일반인이 있다고 하잖아. 대체 그 일반인들은 누굴까?]
[와…. 진짜 개 부럽다. 한민국 카르텔이라니…. 전생에 어둠 괴물을 잡고 나라라도 구한 영웅이었나?]
당연히 방송을 찾은 시청자들은 이런 민국의 태도에 환호하고 열광했다.
연예인들의 연예인, 영웅들의 영웅이라 할 수 있는 한민국과 이런 식의 소통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셈이었다.
때문에 최소 후원 금액이 적지 않았지만, 밀린 후원 메시지 숫자만 하더라도 수십 개가 넘을 정도였다.
[카르텔의 여성을 선택하는 조건이 따로 있나요?]
또 다른 질문.
그리고 민국의 방송을 보는 수많은 여자들이 화면에 시선을 집중했다. 모든 여성들의 꿈이자 소망이라고 한다면 바로 그의 카르텔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잠시 고민을 하던 민국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딱히 없는데…. 일단 예쁘고 자기 관리가 잘 되어 있는 사람. 그리고 카르텔 내 다른 여성들과 잘 어울릴 정도로 친화력이 있는 사람 정도? 아, 가장 중요한 것이 있는데 섹시한 여성일 것.”
[엇? 그거 나인데…?]
“그래? 그러면 현아에게 면접 보고 통과하면 우리 한 번 만나볼까?”
대답과 함께 미소를 살짝 짓는 민국의 태도에 채팅창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다들 카르텔에 지원하겠다는 채팅들이었다.
물론, 한민국이 하는 말 대부분이 립 서비스겠지만, 방송을 보는 여성들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아까 보니 리그 오브 히어로 플레이하시던데, 티어가 어떻게 되세요?]
“언랭크. 이제 열 판 정도 해봤어. 공격대 팀원들이 다들 리그 오브 히어로를 하더라고. 같이 어울리려면 나도 할 줄은 알아야지. 열 명이서 하는 건데 나만 빠질 수는 없잖아?”
[게임 좋아하세요?]
“어느 정도는? 사실 하는 것보다는 보는 것을 더 좋아해. 응원하는 프로팀은 T1.”
[하루에 섹스 몇 번?]
“매일 세 번 이상. 그런데 이거 방송 심의에 걸리는 거 아니지?”
별 생각 없이 대답을 하던 민국이 흠칫 놀라며 채팅창을 바라봤다.
단순히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말하기에는 수위가 제법 있던 까닭이었다. 하지만 채팅창은 ㄴㄴ라는 대화로 가득했다.
[성기가 보이는 거 아니면 상관없음. 유두 노출 가능.]
[그것도 실수로 살짝 보이고 지나간 수준이면 제재 안함.]
[키스 장면도 허용 가능.]
└아, 그래서 합방할 때 레인짱짱하고 솔님 키스 장면이 나왔구나?
└ㅇㅇ 그리고 솔 나중에 고소당함
└솔님 개불쌍.
└레인 그 씹새끼가 진짜 선 넘었지. 방송에서는 그렇게 우결 찍더니 뒤통수 제대로 후려갈김.
“…뭐, 생각보다 수위가 굉장히 너그럽네.”
세계가 세계인만큼 그런 면에서는 허락의 범위가 굉장히 넓은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굳이 토크의 수위에 제한을 둘 필요가 없어 보였다. 시청자들의 성희롱? 다른 남자 스트리머들의 생각은 알 수 없지만, 민국에게는 오히려 짜릿하고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게임 화면은 어느새 중단된 지 오래.
굳이 게임을 하지 않고도 밀려드는 질문만으로도 방송 진행이 충분히 가능했다. 그런 와중에도 계속해서 후원 메시지를 가장한 질문들이 날아들었다.
[네이쳐 김아랑이 자신의 이상형으로 한민국 영웅님을 꼽으셨는데, 알고 있으세요?]
“…김아랑?”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민국이 인터넷 검색창에 이름을 적어 넣기 시작했다. 물론, 이와 관련해서 멘트를 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연예계 관련해서는 잘 모릅니다. 아시다시피 정규 라이센스를 딴 이후, 대부분 던전 공략, 훈련, 해외 파병만 다녔거든요. 그쪽 관련해서 아는 이름이라곤…. 기껏해야 ‘금쪽같은 내 영웅’ 촬영할 때 알게 되었던 컨피덴셜의 소담? 그리고 메인 MC였던 수아씨 정도가 전부겠네요.”
[아, 그러면 인정이지.]
[오우야….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
[연예인 이름보다 어둠 괴물 이름을 더 많이 알고 있다? YES, NO?]
“아…. 이건 Yes.”
아무튼 이름을 검색하니 어깨까지 머리카락이 내려온 고양이 상의 미녀가 눈웃음을 치는 사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보자마자 연예인이라는 생각이 바로 들 정도의 예쁜 외모였다. 그리고 가만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던 민국이 조용히 읊조렸다.
“오…. 합격.”
그와 함께 채팅창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한민국의 입에서 나온 합격이었다.
[김아랑 합격?]
[한민국의 카르텔에 들어갈 자격을 갖췄다? 성공했네, 김아랑.]
[한민국 영웅님의 입에서 합격 소리가 나오다니…. 역시 국민 아이돌.]
[김아랑이 지금 이 방송 보고 있었으면 소리 지르고 난리 났을 듯. 합격 소리 들은 것만으로도 성공한 것 아니야?]
그런 채팅들을 보고 있자니 민국은 절로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대답 하나하나에 불타오르는 모습들이라니…. 다들 관심과 애정이 고픈 이들이었다.
[주위에 영웅 분들이 많으신데 일반인들과 인연을 맺는 이유가 따로 있으신가요?]
다시 한 번 후원과 함께 들려오는 메시지. 질문이 요지는 간단했다.
마력을 각성해 신체가 재구성된 영웅의 존재가 있는데, 그보다 못한 일반인들이 과연 본인의 눈에 차는 것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리고 민국은 어렵지 않게 그에 대해 답을 해 줄 수 있었다.
“딱히 없어. 정확히 말하면 영웅과 일반인을 가리지는 않아. 다다익선이라는 말처럼 나를 사랑해주는 여성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쁠 건 없잖아? 그리고 일반인은 일반인만의 매력이 있거든. 내가 김태연하고 결혼을 하는 이유가 뭐겠어?”
[팩트)김태연은 라온 그룹의 회장이다.]
“아…. 나는 김태연이 평범한 일반인이었어도 충분히 결혼했을 거야. 여자 한 명 먹여 살리는 거야 어려운 일도 아니고. 우리 태연이가 또 기삿거리로 나오는 모습들과는 다르게 사적으로는 굉장히 귀엽거든. 그리고 카르텔 멤버 중에 일반인 여성이 다섯 명 가량 있다고 했지? 걔네들 정말로 일반인이야. 내가 알기론…. 백수 한 명에 한 명은 회사에 다니고 있던가? 아, 한 명은 우리 클랜 단장인데…. 만나지 못 한 지 오래됐네.”
여기저기서 올라오는 부럽다는 내용의 채팅들.
그렇게 민국은 시청자들의 질문에 맞춰서 자신의 카르텔 및 인도 원정, 십이 재앙과의 싸움과 있었던 썰들을 하나하나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 대화를 나누던 도중이었다.
[이상형 월드컵 해요!]
“응…?”
대부분의 남자 스트리머들이 한 번씩은 해 봤다는 이상형 월드컵 미션이 민국에게도 주어졌다.
* * *
이상형 월드컵.
토너먼트 방식으로 자신이 선호하는 이를 골라 최종 승자를 가리는 VS놀이.
[한민국의 이상형 월드컵? 아, 이건 못 참지.]
[큰 거 온다, 큰 거 온다….]
[주제는 당연히 여자 아이돌? 스트리머 포함인가?]
[256 강! 256 강! 256 강!]
[솔직히 256강이 많기는 하지만…. 한민국 영웅님의 여성 취향을 알 수 있다면 오히려 환영.]
[거기 등장하는 애들 지금 존나 떨고 있을 듯.]
[지금 조용히 한민국 방송 보고 있는 스트리머만 해도 오십 명 넘어감.]
채팅창이 순식간에 불타오르게 이상형 월드컵에 대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민국은 이런 분위기가 싫지 않았다.
‘뭐, 어려운 것도 아닌데….’
이참에 내가 모르는 미녀들을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인터넷에 이상형 월드컵이라는 단어를 검색하자 몇 개의 사이트가 등장했다. 아이돌, 연예인, 방송 스트리머까지 포함해서 등장하는 인물만 무려 256명이나 되는 대진표였다.
그리고 민국은….
[…선생님?]
[선택이 너무 빠르신데요? 혹시 기준이 따로 있으신가요?]
[일단 유명세는 전혀 상관없는 듯?]
[애당초 한민국 영웅이 저기서 등장하는 애들 중 몇 명이나 이름을 알고 있겠어? 그 김아랑도 모르는데?]
시작부터 빠른 속도로 클릭을 하며 화면을 넘기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월드컵의 대진표를 보면서 하나하나씩 소통을 하겠다만…. 등장하는 인물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래도 아무 말 없이 마우스만 클릭할 수만은 없는 노릇. 게다가 이상형 월드컵이라는 말답게 간혹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의 외모를 지닌 여성들도 있었다.
“오우…. 이 분은 몸매가 장난이 아니신데? ‘나는선아’? 이름만 보면 스트리머 분이신가 보네? 통과.”
“소희? 아, 이분은 걸그룹? 어쩐지 분위기가 아이돌 같더라. 그리고 이 옆 분은…. 이시명? 걸그룹? 오…. 그러면 두 분 중 어느 걸 그룹이 더 인기가 많은 거야? 아…. 왼쪽이 압도적으로 인기가 많다고? 하지만 내 선택은 오른쪽. 내가 고양이 상을 선호하는 편인데, 사진만 보면 이시명씨가 훨씬 마음에 들거든.”
수 만 명이 함께하는 이상형 월드컵. 그리고 민국은 능숙하게 시청자들과 소통을 하면서 이상형 월드컵을 진행해 나갔다.
[…어? 여기서 한선아를 거른다고?]
[여자 보는 눈이 진짜 확고한 듯. 일단 포니테일, 고양이 여성 상, 정면에서 찍은 사진이면 무조건 통과임.]
[ㅋㅋㅋㅋㅋㅋ 진짜 일관성 20이심.]
[오늘부터 포니테일 머리 하러 갑니다.]
[신기하게도 우리 영웅님, 다른 남자들과는 달리 노출 사진 정말로 좋아하심. 일단 어느 정도 노출이 있다? 바로 통과임.]
[어…. 그것도 그렇네?]
[밝히는 남자 영웅? 그것이 한민국이다? ㅜㅑ…. 일단 화장실 다녀오겠습니다.]
신기할 정도로 확고한 민국의 외모 취향을 보면서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은 다들 흥미진진한 반응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웅답게 여자를 보는 눈이 굉장히 까다로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증거로 현재 민국이 방송하고 있는 사이트 ‘킹핀’에서 방송을 하는 소기업 수준의 게임 스트리머 김겨울이 유명한 아이돌, 배우들을 전부 꺾고 4강까지 올라와 있었다. 큰 가슴과 섹시한 외모 그리고 반 이상 드러난 가슴의 쇄골 부위에 새겨진 문신이 매력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결국 결승전은 국민 아이돌 김아랑과 스트리머 김겨울이 맞붙었다. 그리고 한참의 고민 끝에….
“아, 김겨울 하겠습니다. 김아랑씨도 내 취향에 딱 들어맞기는 한데…. 뭔가 사진만으로는 색기가 부족해서 탈락.”
이상형 월드컵의 최종 우승자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게임 스트리머가 되었다. 하지만 놀람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별 일 없으면 자주 인사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상형 월드컵 우승 하신 김겨울씨는…. 혹시 괜찮으시면 우리 밥 한 번 먹어요.”
모두들 깜짝 놀라게 한 민국의 클로징 멘트.
그리고 본인의 시청자들과 함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민국의 이상형 월드컵 방송을 보고 있던 한 스트리머가 그 자리에서 섹스를 외치며 만세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