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6화 〉 뜨거운 휴식
* * *
밤이 오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은 시간.
연습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네이처 멤버들이 거실로 모였다. 네이처의 맏언니지만 굉장한 동안의 소유자인 소미가 오늘따라 노트북의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 아랑이를 쳐다보다가 눈을 돌렸다.
“부엌에 대광어회 있던데, 누가 사온거야? 내가 회 좋아하는 거 또 어떻게 알고.”
“그거 매니저 언니가 힘들게 구해오신 거잖아요. 엄청나게 좋은 거라고 하던데요?”
“원래 회가 비싸고 귀한 음식이잖아. 바다에서 구해오는 게 얼마나 어려워. 아무튼 우리 오늘 저거 먹는 거 맞지?”
“아, 그거 지금 먹으면 안 돼요.”
고급스럽게 포장된 광어회를 보면서 침을 흘리던 소미가 아랑이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 찾아올 사람 있어?”
“네? 아니요. 지금부터 꼬셔보려고요.”
“…응?”
영문 모를 대답에 소미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모로 꺾었다.
팀의 막내인 아랑이는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저런 식으로 종종 뭔가를 빼먹는 경우가 많았다. 4년 넘게 한 팀으로 함께 지내면서 조금은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가끔은 답답할 때가 있었다.
“언니, 뒤요.”
아랑이와 동갑이지만, 생일 때문에 막내 자리에서 밀린 아린이 손가락으로 노트북의 화면을 가리켰다. 자연스레 소미의 시선으로 그리로 향했다. 아까부터 아랑이가 보고 있던 노트북에는…….
“헐.”
저도 탄성을 터뜨린 소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랑이의 옆으로 달라붙었다.
노트북에는 한 남성 스트리머가 방송을 하고 있었는데, 외모가 장난이 아니었다.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여러 남자들의 뺨 정도는 가볍게 후릴 수 있을 정도. 괜히 아랑이가 노트북에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던 게 아니었다.
“누, 누구야?! 이 사람?”
소미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4년 넘게 아이돌 생활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이 정도로 잘생긴 남자는 처음이었다.
그런 맏언니의 반응에 이미 자리를 잡고 힐끔힐끔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던 임사랑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야, 언니? 이 분 누군지 몰라?”
“아니, 이렇게 잘생긴 남자면 내가 모를 리 없는데…. 아이돌은 확실히 아니고, 배우인가? 아니지, 미래의 내 남편이구나?!”
“…갑자기 웬 개소리? 그리고 배우는 무슨 배우야? 한민국 영웅님이시잖아.”
“아?!”
사랑이의 말에 소미는 입을 벙긋거리며 화면에 시선을 집중했다. 확실히 뉴스를 통해서 본 듯한 기억이 있었다.
‘어쩐지 너무 잘생겼더라….’
영웅이 아니라면 저런 외모가 나올 수 있을 리 없었다. 빠져들 것 같은 눈동자에서 느껴지는 총기와 카리스마가 장난이 아니었다. 마력을 각성한 영웅이라 그런지 절로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국민 영웅, 한민국.
네이처 역시 국민 아이돌이라는 소리를 듣기는 하지만 한민국의 인기와 비교한다면 태양 앞의 반딧불 수준에 불과했다. 어둠 괴물의 방위 및 인류의 생존에 직접적으로 이바지하고 있는 말 그래도 저들은 진짜 영웅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최근 인도 전쟁에서 십이 재앙이라는 무시무시한 괴물을 물리치는 데 성공하면서 한민국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방송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들려오는 얘기들이 전부 그에 대한 이야기들뿐이었다.
‘진짜 개 잘생겼다.’
소미 역시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제법 얼굴 좀 생겼다는 남자들을 몇 번이나 만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뭔가 자신들과는 다른 세계에 있는 존재인 것 같았다. 저런 남자와 썸이라도 한 번 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소미가 본인이 좋아하는 광어회도 잊은 채 홀리듯 민국의 방송을 보고 있을 때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슬슬 민국이 방송을 마무리할 때였다.
{{안녕하세요, 한민국 영웅님? 색기가 부족해서 이상형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하게 된 김아랑입니다. 제가 오늘 최고급 대광어 한 마리 준비했는데…. 저희 네이쳐 멤버들과 함께 드실래요? 부족한 색기도 준비할게요!}}
아까부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아랑이 민국을 향해 후원 메시지를 보냈다. 무려 천만 원의 후원과 함께 말이다.
“무, 뭐야?”
막내의 돌발 행동에 박소미가 깜짝 놀라면서 막내를 바라봤다. 그런 맏언니의 시선에 계속해서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던 아랑이 말했다.
“설명하자면 조금 긴데…. 요약하자면 한민국 영웅님이 광어회를 굉장히 좋아하신대요. 그래서 우리 숙소에 초대하려고요.”
“…뭐?”
막내의 어처구니가 없는 대답에 소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회 경험이 적은 것도 아닌데 우리 막내는 너무나도 순진했다. 그렇다고 한민국 영웅님과 같은 귀하신 분이….
[아, 이건 당연히 가야지.]
어라? 우리 숙소에 오신다고?
* * *
“……잘 먹겠습니다.”
최고급 횟감이라더니 쫄깃함이 장난이 아니었다. 특히나 기름진 지느러미 부위는 절로 엄지가 올라갈 정도.
자신이 먹는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네 쌍이 눈동자가 살짝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살짝 미소를 지어주자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돌리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걸그룹 네이처.
국민 아이돌 김아랑이 소속된 4년차 아이돌 그룹으로 리더인 박소미, 임사랑, 최아린, 김아랑으로 구성된 4인조 아이돌 그룹이었다.
사실 상대가 아이돌인 만큼 그녀들의 숙소를 방문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 애로사항이 생길 줄 알았다.
‘남자 영웅이 걸그룹 숙소를 방문한다는데 소속사 입장에서는 싫어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자신의 이름값은 그런 애로사항을 가볍게 무마시킬 정도로 대단했다.
자신이 네이처의 숙소를 방문한다는 이야기가 벌써 기사까지 나올 정도로 기사의 뉘앙스를 보면 걸그룹 네이처의 준비를 고맙게 여겨 그녀들의 초대를 받아들이고, 치하한다는 식의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고위 장교가 병사를 만나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인사를 드리기 위해 오겠다는 네이처 그룹 소속사 사장과 임원들을 제안을 극구 거부해야 했을 정도. 하마터면 회 한 점 얻어먹으려다가 국민 아이돌이라 불리는 발랄한 걸그룹 숙소에서 무거운 시간을 가질 뻔했다.
《국민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는 조금 잘못 된 거 아닐까요? 걸그룹의 특성 상 보이그룹의 인기에는 비교도 되지 않잖아요.》
《팩트로 이야기하자면 걸그룹 중에서만 가장 인기가 많은?》
민국의 시야 한 편에 메시지창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뿌우와 큐우♡였다.
그리고 둘의 대화를 보던 민국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예전의 세계에서도 걸 그룹보다 보이 그룹이 훨씬 더 돈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 고개 끄덕이셨다.”
“아랑이가 구해온 회가 되게 맛있으신가 보다. 맞죠? 맞죠?”
“아, 쫄깃쫄깃한 게 딱 내 취향이네.”
둘의 추측이 맞는 듯 대답을 해주자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서로를 보며 웃어대는 아이들. 나이 차이는 얼마 나지도 않는데, 예전 세계의 기억 때문일까?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아, 혹시 술도 한 잔 드릴까요? 원래 회에는 소주인데….”
“걸 그룹 숙소에 그런 것도 있어?”
“어….”
놀리듯 묻자 모두의 시선이 한 명의 여성에게 향했다. 그녀들의 눈을 따라가던 민국은 곧 눈을 동그랗게 떴다. 팀의 막내라 생각되는 멤버가 주당이었다니….
《막내라 아니라 맏언니 박소미입니다. 체구가 작고 굉장한 동안이라 막내 취급을 당하기도 하지만요.》
뿌우의 말에 민국은 다시 시선을 돌렸다.
저 외모에 맏언니라니…. 심지어 그녀는 자신과 동갑이기도 했다. 아무튼 얼굴과 이름은 기억했으니까. 아는 척 해주면 좋아하겠지.
“소미가 술 좀 마시나 보네.”
“에…. 일주일에 한 잔 정도? 어, 그런데 제 이름 알고 계세요?”
“물론, 네이처 리더 박소미. 69년 출생, 생일은 2월 20일. 맞지?”
“어, 어, 와! 와!”
자신의 대답에 희한한 소리를 내던 박소미의 얼굴이 폭탄이 펑 터지듯 빨갛게 물들었다. 옆에 있던 최아린과 임사랑의 얼굴로 부러움이 떠올랐다.
“저, 저는요?”
“최아린. 72년생. 생일은…. 4월 11일 맞지?”
“와! 정답!”
“저는요? 저는요?”
“아랑이는 당연히 알지. 아린이랑 동갑이고 12월 17일생.”
기다렸다는 듯 나오는 대답에 숙소가 발칵 뒤집어질 정도로 비명들이 터져 나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한민국이 자신들에 대해 이렇게 잘 알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모습들이 역력했다. 이어서 그녀들의 얼굴에 감동의 물결이 흐르기 시작했다.
‘전부 뿌우가 알려준 것들이었지만….’
눈앞의 여성들이 그런 사실들을 알리가 만무.
뭐, 이런 간단한 관심만으로도 그녀들의 호감을 살 수 있다면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면 우리 귀여운 소미한테 술 한 잔 얻어먹어 볼까?”
“제가 가지고 올게요!”
막내 라인인 사랑이 냉장고로 쪼르르 달려가더니 낑낑거리며 술을 가지고 왔다. 못해도 다섯 병은 넘어 보이는 것이 본인들도 마실 생각으로 보였다.
”그, 그러면….”
심호흡을 한 소미가 민국의 잔에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긴장을 한 모양인지 손이 덜컥덜컥 멈추는 게 눈에 보일 정도. 그리고 민국도 멤버들에게 한 잔씩 술을 따라주었다.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으면서 무릎까지 꿇은 채로 황송하다는 표정을 짓는 것이 압권이었다.
‘뭔가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나를 조금 어려워하는 분위기같지만….’
술이 들어간다면 또 달라지겠지.
그렇게 민국은 몸에 쌓이는 취기를 마력으로 불태우면서 빠르게 그리고 쉬지 않고 네이처 멤버들에게 술을 권했다.
멤버들도 남자가 멀쩡한데 여자인 자신들이 술에서 밀릴 수 없다는 듯 넙죽넙죽 민국의 권하는 술을 받아마셨고, 4년차 걸 그룹답게 냉장고에 저장된 술은 굉장히 많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히…. 민국아, 한 번만 웃어주면 안 돼?”
“웃어 달라고?”
“응!”
역시 술의 힘은 위대했다. 자신을 어려워하는 것 같던 소미가 어느새 옆으로 다가와 뺨과 입술을 매만지고 있었으니까. 그녀의 말대로 입 꼬리를 살짝 올려주니 히약하며 신음에 가까운 소리가 새어나왔다.
“와…. 심장이 녹는다. 어쩜 이렇게 잘생길 사람이 있을 수가 있지? 너는 연예인 안 해?”
“영웅 활동이 연예인 활동 아니겠어?”
“아, 맞다. 영웅이었지…. 그런데 어둠 괴물과 싸우는 거는 안 무서워? 나는 뉴스로 나오는 것도 무서워서 제대로 못 보겠던데….”
“무섭지. 그래도 우리가 싸워야 너희들이 이 땅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거 아니겠어?”
“으….”
대답과 함께 살짝 웃어주자 소미의 얼굴에 다시 한 번 펑하고 터졌다.
이어서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젓가락을 들고 멈칫멈칫 눈치를 보고 있는 김아랑이 보였다.
“한 점 줄래?”
“네, 네!”
아는 척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 아링이 간장을 살짝 찍은 회를 한 점 입에 넣어준다.
걸 그룹 멤버가 직접 먹여주는 회라니…. 그래서일까?
회가 너무나도 달았다. 그렇게 술로 인해 살짝 풀어진 분위기 속에서 서로가 하하호호 웃으며 가벼운 터치와 같은 스킨십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던 도중이었다.
“아!”
불콰한 얼굴로 생글생글 웃던 아린이 민국에게 물었다.
“오빠는 우리 공연 본 거 있어요?”
“네이처 공연? 직접 본 것은 없지.”
그래도 노래 정도는 찾아서 들은 적 있었다. 그제였나? 이상형 월드컵에서 김아랑을 결승까지 올리면서 네이처의 인기곡을 검색해서 들은 것이 전부이기는 했지만.
그런 민국의 대답에 최아린이 눈을 깜빡거리며 웃더니만 곧 네 명의 여자가 쑥덕쑥덕 귀엣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자신들의 방으로 쪼르르 들어갔다.
《뭔가 속셈이 있어 보이는데요?》
‘보나마나 뻔하지. 본인들 공연 보여주려는 거 아니겠어?’
네이처의 팬은 아니지만, 기대가 절로 되었다.
걸 그룹의 무대를 직관할 수 있는 시간. 그것도 자신만을 위한 단독 무대였다.
그리고 잠시 후 검은색과 붉은색이 섞인 몸에 착 달라붙는 강렬한 의상을 입은 네 여성이 모습을 드러내자 민국은 노래도 듣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저도 모르게 합격을 외쳤다.
그렇게 시작된 그녀들의 무대는 굉장히 화끈했다.
‘여성들을 타겟으로 삼은 건가? 아무튼 나야 좋지.’
게다가 취기까지 돈 까닭인지 안무도 굉장히 유혹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답게 실수는 하지 않는 모습은 절로 박수가 나올 정도. 그렇게 공연이 끝나자 의상 그대로 자리에 앉은 여성에 가쁜 숨을 내뱉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