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3화 〉 그 남자의 정력
* * *
인류를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용과 같은 인물이라고 해서 천룡인.
중국인들 사이에서 시작된 이 명칭은 다름이 아닌 민국을 뜻하는 단어로 한국의 커뮤니티에서는 고유 명사처럼 사용이 되고 있었다.
아무튼 그런 천룡인과 함께 밤을 보냈던 겨울이지만 성인이 되고나서부터 BJ로 활동했던 그녀의 인생 자체가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드라마틱하게 변한 건 아니었다.
그 한민국과 개인적인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고 또 카르텔로 추정되는 여러 여성들로 모인 단체 채팅방에 초대가 되었다는 점? 달라진 점이라고는 그게 전부였다. 물론, 카르텔 내 여성들과 직접 만난 적도 없었다.
게다가 자신과의 일이 터진 직후 곧바로 네이처가 주목을 받는 바람에 어느 정도 묻힌 감도 있었다.
그와 관련해서 겨울의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은 후원금을 쏘면서 민국과 겨울의 관계에 대해 몇 번이나 물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겨울이 확실하게 대답해 줄 수 있는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분명 민국의 마음에 들은 건 같지만, 그게 전부였다. 더욱이 민국이 GGW 공격대와 함께 【A】 난이도 던전 공략을 시작하면서 종종 주고받던 연락도 끊겼다. 던전 공략 중에는 메시지를 주고받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겨울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방송을 켜서 본인의 주력 방송인 리그 오브 히어로를 플레이하며 시청자들과 소통을 하는 그러다가 후원에 따라 리액션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생활을 보냈다. 한민국의 일반인 카르텔로 잠깐 유명세를 타기는 했지만, 그 효과가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래도 방송의 규모가 전보다 커지기는 했다. 덩달아 수입도 확 늘었고 말이다.
그래서일까? 전에는 꿈도 꾸지 못 했던 스트리머들의 대형 프로젝트에도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합방처럼 말이다.
<겨울아, 바텀!="" 봐줘야="" 돼!=""/>
“지금 바로 텔 탈게요!”
다섯 명의 스트리머가 함께 팀을 이뤄서 참가하는 대회.
마스터부터 브론즈까지 남녀를 가리지 않은 유명 스트리머들이 함께 팀을 이뤄서 펼치는 리그 오브 히어로 대회. 벌써 3회째 개최되는 이 대회는 킹핀에서는 가장 큰 이벤트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운 좋게 김겨울도 이 대회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팀이 이미 정해진 상황에서 겨울이 끼어들게 된 셈이었다.
‘원래는 이런 대회에 참여할 정도로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운 좋게 기존에 대회에 참여하기로 했던 스트리머 한 명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대회 참여를 취소했고, 그 자리를 김겨울이 낚아채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전부 천룡인 한민국 덕분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겨울의 방송이 갑자기 급상승을 할 이유도 없었으며 이런 기회 역시 가질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킹핀에서 리그 오브 히어로를 방송하는 실력파 여성 스트리머만 하더라도 수백은 넘었다.
하지만 굴러 들어온 돌이기 때문일까?
“아…! 텔포 지금 타면 안 되는데!”
이상하게도 기존의 멤버들과 호흡이 맞지 않았다.
[오우, 텔 타이밍 나쁘지 않고.]
[이거 제대로 호응만 싹 다…? 뭐임? 호응 안하네? 김겨울만 죽음?]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바텀 애들 왜케 쫄았는데? 미니언 먹는다고 탑 텔을 무시하는 거임? 이게 말이 되는 플레이야, 뭐야?]
특히나 2인 1조로 공격로에 나서는 바텀 멤버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전혀 이어지지 않았다. 특히나 겨울은 서포팅을 맡은 남자 BJ 최병식이 무척이나 껄끄러웠다.
<아, 씨발….="" 기껏="" 라인전="" 잘="" 풀어나가고="" 있었는데….=""/>
첫 만남부터 대놓고 그녀를 싫어하는 티를 팍팍 냈기 때문이었다.
그가 겨울을 싫어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그녀는 모르겠지만, 최병식은 한민국이라는 이름을 등에 업은 겨울이 본인보다 더욱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겨울은 다이아 상위 유저인데 반해 최병식은 실버 유저.
유명세가 비슷하다면 실력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 수 있어야 하는데, 실력으로는 비빌 수조차 없었다. 애당초 그는 게임 스트리머가 아닌 캠과 대화를 위주로 하는 남캠이었다.
[실버 따리가…. 말대꾸?]
[텔은 정확히 탔는데?]
어처구니가 없는 최병식의 남 탓에 겨울의 시청자들이 분노를 토해냈다.
<아, 텔을="" 타려면="" 라인을="" 보고="" 타야죠!=""/>
문제는 이 팀에 소속된 BJ 중 최병식의 카르텔에 속한 여성이 있다는 점이었다. 킹핀의 실력파 스트리머로 평균 시청자수가 6천을 넘는 여성이었다.
비 매너에 시청자들을 향한 욕설도 서슴지 않는 스트리머지만, 여성 영웅이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인기가 굉장히 많기도 했다. 그런 스트리머가 최병식을 우쭈주 해주고 남자에 미친 시청자들이 합세하니 정치질은 자연스레 김겨울에게 향할 수밖에 없었다.
“아…….”
김겨울도 할 말은 있었다.
콜을 해준 정글러도 거의 도착한 상황이었고, 자신이 시간을 끄는 동안 바텀이 호응을 하면 숫자에서 앞서기 때문에 바로 상대를 쓸어버릴 수 있었다.
문제는 자신의 텔레포트를 보고서도 바텀이 호응을 하지 않았다는 것.
[ㅋㅋㅋㅋ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쟤들 뭐함?]
[이것이…, LOH?]
[로아에 정치질이 빠지면 섭섭하지. 그나저나 친목질 조금 역한데? 굳이 이런 대회 나가야 함?]
충성스러운 시청자들의 채팅에 겨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더 잘해야죠. 미니언 숫자를 보고 텔레포트를 눌렀어야 했나 봐요.”
그렇게 마음을 가다듬은 겨울은 다시 게임에 집중했다.
겨울을 민국의 이름을 등에 업고 스트리머로 성공할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애당초 그는 자신과 사는 세계가 다른 사람.
‘프로 방송인으로 성공하는 것은 오로지 내 몫이야.’
오히려 세계적인 영웅인 민국의 이름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비록 첫 만남 이후 큰 접점은 없었지만, 자신이 그와 함께 밤을 보낸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고, 카르텔 채팅방에도 초대되지 않았던가?
‘언제까지 하꼬 방송인으로 남아 있을 수는 없어.’
그렇기 때문에 겨울은 이를 악물고 게임에 집중했다.
못해도 대기업 수준의 스트리머가 되려면 이런 대형 이벤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거나 실력을 높여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아야 했다.
하지만 서로의 호흡이 맞지 않는 팀이 게임을 잘 풀어나갈 리 만무했다.
그렇게 서로의 실수들이 나올 때 마다 팀원들의 비난은 전부 겨울에게 향했다. 정확히 말하면 원거리 딜러와 서포터가 틱틱 한 마디씩 날리기를 반복했다.
<하…. 그쪽도="" 그렇게="" 잘한="" 건="" 없는="" 거="" 같은데,="" 이제="" 그만하는="" 게="" 어때요?=""/>
결국 보다 못한 정글러가 겨울의 편을 들고 나섰지만, 이는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었다. 그렇게 감정이 격해지다보니 결국 선을 넘는 발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니, 진짜="" 저런="" 애가="" 이="" 대회에="" 참여하는="" 게="" 맞긴="" 한="" 거야?="" 한민국과="" 번="" 잤다고="" 평균="" 시청자="" 이천따리="" 하꼬를="" 껴주는="" 말이="" 돼?="" 못해도="" 칠천은="" 넘어야지?=""/>
<이천이 언제적="" 이천인데요?="" 지금="" 5천은="" 넘거든요?=""/>
<그게 전부="" 한민국="" 덕분="" 아닌가?="" 그리고="" 솔직히="" 말해="" 그="" 때="" 이후로="" 한민국한테="" 연락이라도="" 온="" 거="" 있어요?="" 알고="" 보면="" 카르텔도="" 거짓말="" 아니야?=""/>
<…뭐라고요?/>
선을 넘는 이야기에 겨울은 이를 꽉 깨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욕이라도 한바탕 퍼붓고 싶었지만, 괜히 한민국에게 누가 될까 싶어서 이마에 참을 인만 여러 개 새겼다.
오히려 날뛰기 시작한 것은 겨울의 시청자들. 하지만 저쪽도 극성 시청자들이 없는 건 아니었기에 양 스트리머의 채팅창은 곧 난장판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 * *
“…되게 아니 꼽네.”
강채영도 리오히라는 게임을 모르지는 않았다.
현아나 다른 이들처럼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는 걸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경기를 본 적은 많았다. 현역 때는 메모리아의 멤버들과 함께 프로 경기장을 찾은 적도 있었다. 자신을 주력 영웅으로 플레이하는 선수가 게임을 아주 잘해서였기 때문.
아무튼 채영은 조금 전의 경기가 완전히 엉망이었다고 생각했다. 전체적인 팀 호흡이 하나도 맞지 않았던 것. 문제는 그 엉망이었던 경기력을 전부 김겨울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와 같은 팀에 있는 남자와 여자 한 명이.
그리고 그 년놈들의 속내가 무엇인지 사회 경험에 이골이 난 강채영이 모를 리 없었다.
하꼬였던 김겨울이 민국의 이름값을 등에 업고 빠르게 성장해나가는 것이 아니꼬운 게 분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논란을 일으켜서 시청자들을 털어내려는 게 분명했다.
“그나저나…….”
의외인 것은 김겨울의 행동이었다.
한민국의 이름을 꺼내기만 하면 바로 대화의 주도권을 가지고 올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민국과 엮이는 것을 최대한 피하려는 모습이었다. 보아하니 민국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원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정신머리는 바르네.”
그렇게 중얼거리던 강채영이 토독토독 핸드폰의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카르텔의 막내가 곤란에 처하면 큰 언니가 나서야지. 그것이 카르텔에 잡음이 생기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별 거 아닌 논란을 잠재우는 방법은 간단했다.
다른 스트리머들이 김겨울을 공격하고 있는 원흉인 그녀의 애매한 포지션을 애매하지 않게 만들어주면 되는 일이었다.
[메모리아채영님이 하트 50,000개를 후원하셨습니다.]
메모리아채영 : 김겨울이 한민국 영웅의 카르텔이 아니라니? 대화가 조금 이상하네? 어디서 나온 말이니? 그 이야기는?
폭죽이 터지는 효과와 함께 나타나는 후원 메시지.
순간 난장판이 되어 있던 채팅방에 기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게 하트 오 만개면 평범한 직장인의 월급보다 많은 액수였다.
더욱이 하트를 보낸 유저의 아이디와 그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메모리아채영.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이런 아이디를 쓸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참고로 영웅 사칭은 엄청난 중 범죄였다.
“……꿀꺽.”
강채영의 등장에 겨울이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녀가 초대된 카르텔의 채팅방에도 메모리아 채영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사람이 한 명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민국의 첫째 와이프이자 대한민국의 레전드 히어로 강채영이었다.
“혹시 채, 채영 언니세요?”
언니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았을까? 자신은 정말로 한민국의 카르텔이 맞는 걸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김겨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바로 답장이 도착했다.
[메모리아채영님이 하트 50,000개를 후원하셨습니다.]
메모리아채영 : ㅇㅇ
강채영의 등장에 채팅방의 분위기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특히나 김겨울의 팬들이 기세등등 날뛰기 시작했는데 방송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되었던 것이 그녀가 한민국의 카르텔이 아니라는 상대의 주장 때문이었다.
그런 와중에 김겨울이 침묵을 고수하면서 채팅이 난리가 난 것. 하지만 그것을 말끔하게 해결해 줄 인물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메모리아채영님이 하트 50,000개를 후원하셨습니다.]
조만간 악세사리 하나가 갈 거야. 민국이가 선물해주는 거니까 방송 때 마다 차고 다녀. 그러면 괜히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애도 없겠지.
[메모리아채영님이 하트 50,000개를 후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민국이와의 관계를 의심하는 사람이 있으면 아니라고 확실하게 대답해. 너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남편은 욕심이 많아서 너처럼 입 다물고 있는 거 별로 안 좋아해.
[메모리아채영님이 하트 50,000개를 후원하셨습니다.]
병식왕자, 가슴열매. 너희 둘에게 할 말은 많은 데 같잖아서 참는다. 내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조심해라.
그렇게 채영은 김겨울의 방에 나타나서 순식간에 논란을 정리하고 사라졌다. 걸 크러쉬가 따로 없는 모습. 심지어 그녀는 하루 만에 무려 이십오만 개의 하트를 쏘기까지 했다.
그리고 강채영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인터넷 방송 커뮤니티가 다시 한 번 들끓었다.
한국의 레전드 히어로였던 강채영은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입에서 화자가 될 정도로 유명인이었다. 그런 이가 조용히 김겨울의 방송을 보고 있었다니…. 당연하지만 김겨울의 하룻밤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한민국 카르텔의 맏언니나 다름없는 강채영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그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며칠 뒤….
[…몸에 걸친 거 되게 좋아 보인다?]
[어디서 샀음? 나도 하나 가지고 싶네?]
방송을 켠 김겨울의 모습에 시청자들이 하나 둘씩 채팅을 쳤다.
그녀는 평소와는 다른 악세사리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영롱하게 빛나는 목걸이와 귀걸이는 캠 화면에서도 환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여자라면 절로 욕심을 낼 정도로 아름다운 보석이었다.
“아, 이거요? 글쎄요?”
그런 시청자들의 물음에 부끄러운 듯 머리카락을 꼬기 시작하는 김겨울.
이어서 오바이트를 하는 이모티콘이 채팅창을 점령했다. 그와 함께 김겨울이 착용한 보석의 정체에 대해 알아내는 이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혹시 저거 에스랑떼 아님?]
[에스랑떼? 그 X 비싼 브랜드? 라온 백화점에만 입점했다고 들었는데?]
[5252! 우리 겨울이! 에스랑떼를 사다니, 성공한 인생이잖아?]
[…그런데 에스랑떼 맞음? 에스랑떼는 마력의 결정을 깎아서 가공하는 곳 아님?]
[나도 그렇게 알고 있는데, 저게 무슨 색이지? 흰색? 은색? 백금 같기도 한데…….]
갖가지 다양한 추측들이 채팅방을 점령했다.
그러던 도중 김겨울이 능청을 떨며 슬쩍 에스랑떼의 영수증과 감정표를 캠 화면에 비췄다. 그리고 잠시 후, 채팅창이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