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3화 〉 자유의 나라, 아메리카
* * *
●어둠 괴물과의 전쟁은 한민국의 등장 ‘전’과 ‘후’로 나뉜다.
●십이 재앙을 쓰러뜨린 한민국의 대단한 점
●한민국이 미국으로 간 이유.
●GGW 공격대는 한민국 키워낸 공격대라는 이야기가 맞다는 증거.
민국이 GGW 멤버 몇 명을 데리고 미국으로 간 지도 사흘 가량이 흘렀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민국에 대한 이야깃거리로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민국이 등장한 몇몇 방송을 통해서 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크게 늘어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민국을 다루고 있던 까닭이었다.
그도 그럴게 GGW 공격대의 성공은 인류가 어둠 괴물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의 불꽃이 되고 있었고, 정부 입장에서는 본인들의 지지도와 어둠 방위와 관련된 병력의 숫자를 늘리기 위해 이 점을 홍보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인도 전쟁의 승리로 인해 실질적으로 사람들의 피부로 와 닿는 것들도 적지 않았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식량의 가격이었다.
[인도 바스마티쌀 5Kg > 오늘 하루 42.500원.]
평소라면 10만원 가까이 줘야 하는 가격이었다.
그러나 인도 전쟁이 끝나고, 장벽이나 다름없었던 카우킹과 메를린의 세력이 사라지면서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육로 길이 재개되었다.
다시 말해 중국을 거치는 한국과 인도 사이의 길이 안전하게 열렸다는 말이었다.
육로 중앙에 새의 탑이 있기는 했지만…. 가루다는 저번 던전 브레이크의 실패 이후 그 활동이 극히 위축되었으니 당장은 크게 걱정할 부분이 아니었다. 그 쪽을 피해서 가는 방법도 몇 가지나 있었고 말이다.
아무튼 인도는 전 세계에서 쌀과 밀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곡창지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인도와 필적하는 수준의 식량 생산량을 자랑하는 미국과 중국도 있기는 했지만, 그 두 국가는 십이 재앙을 포함한 어둠 괴물들과 치고 박는 싸움을 벌여야 했다. 하지만 인도 전쟁에서 승리한 인도는 어둠 괴물의 위기를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계속된 전쟁으로 고위 괴물은 싸그리 전멸했고, 남아 있는 【A】 난이도 던전도 충분히 자국의 공격대만으로도 감당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기껏해야 중동 지방이 문제였는데, 그쪽은 사막이라는 천혜의 요새가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었다. 당장은 큰 문제가 생길 일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식량 문제가 안정화될수록 그리고 그에 대한 결과가 피부에 와 닿을수록 민국에 대한 국민들의 인기는 폭발적으로 높아지고 있었다. 더불어 국내에서도 한민국과 GGW 공격대를 보조할 수 있는 쉴더급 공격대를 키워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 한 가지 소식이 날아들었다. 민국이 미국에서 레이드를 진행한다는 이야기였다.
“갑자기 어떻게 된 거야? 미국에서 레이드라니?”
‘리그 오브 히어로’ 방송을 하다가 소식을 접한 현아는 바로 미국에 있는 유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방송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로 가득한 채팅창도 난리였다.
영웅이 던전 공략을 진행한다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라지만 공대장이 다름 아닌 한민국이라는 것 그리고 공략 멤버 중에 미국 클랜의 인원이 섞여 있다는 게 한국 국민들 입장에서는 기분이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네, 네? 현아 언니?]
갑작스레 연락을 받은 유나가 당황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와 동시에 채팅창이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아주 본인들 궁금한 것들을 전부 올리는 모습들이었다.
“아, 잠깐. 후원 끌게요. 채팅 치지 마요. 지금 나름대로 심각하니까.”
현재 방송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모양인지 전화를 받은 유나도 딱히 다른 말을 하지 않고는 가만히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유나가 입을 열었다.
[어…. 그 레이드 관련해서는 사실 저도 뭐가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는지는 잘 몰라요.]
“왜? 네가 모르면 누가 아는데?”
[그, 그러니까 언니. 제가 공대장이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네.”
유나도 제대로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민국의 던전 공략은 정말 갑작스럽게 그것도 즉흥적으로 이뤄진 일이었다.
때문에 GGW 멤버들 중에서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는 이가 없었다. 조만간 던전 공략을 진행 할거라는 말을 들은 게 전부였다.
“그런데 던전 공략 이야기는 갑자기 왜 나온 건데?”
[그것도 잘 몰라요. 갑자기 오빠가 온 김에 던전 공략을 하자고 했는데…. 아니, 근데 언니는 어떻게 알았어요?]
“방송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이야기해주던데?”
[와…. 우리 나라 사람들 장난아니네. 여기도 제대로 이야기가 나온 게 없는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큰 한숨에 현아는 머리를 몇 번 긁적였다.
보아하니 미국에서도 갑작스럽게 상황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잠시 생각을 하던 현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면 우리는? 나도 바로 미국으로 갈 준비 해야 되나?”
상위 난이도를 공략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포지션은 다름아닌 탱커.
자신과 같은 탱커가 단단하게 정면에서 버티고 있어야만 네임드의 공략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미국 원정에는 동행한 GGW 탱커진이 없었다.
[언니 방송 스케줄 있지 않아요?]
“그거야 뭐 그냥 취소해야지.”
현아가 대수롭게 않게 말했다.
R’s 클랜과 GGW 공격대와 관련된 토크쇼였는데, 솔직히 말해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원래는 한민국을 영입하려고 했다가 자신에게 섭외를 돌린 느낌이라….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도중이었다.
갑자기 유나 쪽이 소란스러워지더니만 여러 대화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공략 일정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유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언니까지 오실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지금 공략 일정 나왔는데 【S】 난이도 하위랑 【A】 난이도 상위 수준의 던전을 공략할 거라고 해요. 부족한 포지션은 화이트 하우스 멤버랑 들어간다고 해요. 그…, 인도에서 처럼요.]
“…그래?”
현아의 눈이 채팅창으로 향했다.
채팅창의 분위기는 그리 좋지 않았다. 다들 민국이 화이트 하우스 멤버들과 던전 공략을 진행한다는 사실이 많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공격대끼리 연합을 해서 던전을 공략하는 일은 생각 이상으로 자주 있는 일이었다.
[네. 뭔가 돌아가는 분위기가 여기 온 김에 겸사겸사? 그런 느낌이라….]
유나가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민국은 그냥 미국에 간 김에 화이트 하우스를 도와주려는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그 의도도 쉽게 짐작이 되었다.
‘어휴…. 진짜 여자를 몇 명이나 만나고 다니는 거야.’
그 쪽 클랜과 관련된 영웅 중 몇 명과 진한 관계를 맺었으니 나름대로 선심을 쓰려는 게 틀림없었다.
뭐,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생긴 것과는 달리 민국은 자기 여자라 생각하는 여성에 대해서는 강하게 구속하는 욕심이 많은 남자이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본격적으로 던전 공략 일정을 진행하는 건 아니라는 거지?”
현아가 멈췄던 게임 큐를 다시 돌리면서 재차 물었다.
[네.]
“그런데 거기 미국에도 십이 재앙 한 녀석 있다면서?”
[그 고릴라인가? 그런데 딱히 그 쪽 관련해서 공략을 진행하고 그러는 건 아닌 거 같아요. 그런 거였으면 공대장님이 언니에게 직접 연락드리지 않았을까요? 아무튼 공대장님 다시 오시면 언니에게 직접 연락드리라고 말씀 드릴게요.]
“어? 어어? 아니,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현아는 재빨리 거절의 목소리를 내었다.
굳이 남자가 밖에서 하는 일에 일일히 간섭하고 그럴 수는 없지. 더욱이 그냥 던전 몇 번 도는거라는데…. 잠시 후, 게임이 잡히는 것을 보고 수락을 누른 현아가 다시 말했다.
“그냥 나중에 공략 일정 정확하게 나오면 그거나 얘기해줘. 알았지?”
[네? 네.]
당장은 그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그렇다고 그 한민국이 던전을 공략하는 도중 위기에 빠지거나 할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이렇게 대수롭게 않게 대화를 마치는 현아의 모습에 방송을 보는 팬들은 뭔가 아쉽다는 분위기였다.
현아가 강하게 민국을 말려줄 거라 기대했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미국에서는 민국의 던전 공략 소식에 난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소식을 접한 언론들이 세인트루이스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물론이고, 현재 세계 최고의 공대장이자 인류의 주적인 십이 재앙을 쓰러뜨린 민국과 함께 던전을 공략하기 위한 영웅들의 지원들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민국과 GGW 멤버들에게는 별 거 아닌 일이겠지만, 실제 【S】 난이도 던전의 공략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조금이라도 【S】 난이도 던전과 관련해서 경험을 쌓을 수 있다면? 영웅과 클랜 입장에서는 엄청난 도움이 되는 셈이었다.
* * *
실버급 마력의 결정을 얻으려면 【S】 난이도 던전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민국은 화이트 하우스가 내놓은 선택지를 보고 가볍게 【S】 난이도 던전을 선택했다. 퍼플급 마력의 결정도 희귀성이 차고도 넘쳤지만 그래도 실버급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그…. 괜찮으시겠습니까?”
“아, 네. 문제 없습니다.”
【S】 난이도 던전이라 그런걸까?
화이트 하우스 측에서 살짝 눈치를 보는 것 같았지만, 오히려 그쪽에서 빚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좋은 일이었다. 그만큼 편의도 봐줄 테고.
멤버 구성도 금방 끝냈다.
라비아의 개점 휴업으로 인해 클랜 내에서 놀고 있는 멤버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번 【S】 난이도 던전 공략은 클랜 입장에서도 꼭 필요한 일이었다. 던전 타이머의 초기화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급박하게 일정을 잡다보니 원했던 멤버 구성에 변동이 생기기는 했다.
화이트 하우스 입장에서는 본인들 소속 영웅으로 멤버 구성을 끝내고 싶었지만, 일정이 다수 겹치다보니 상위 영웅의 스케줄 중 근접 딜러 포지션이 어쩔 수 없이 공백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S】 난이도 던전을 공략하는데 7성 영웅을 투입시키는 것도 무리. 그렇게 해서 포함된 외부의 인원이….
“처음 뵐게요. 골덴 이글의 도브 캐머런이에요.”
미국의 쉴더급 공격대 골덴 이글의 딜러 영웅인 도브 캐머런이었다.
“엨…. 하필이면…….”
“그, 그러게요. 왜 하필…….”
당연하지만 화이트 하우스 멤버들은 그녀의 합류를 대놓고 싫어했다. 민국도 어느 정도 들은 게 있었기에 굳이 그녀들의 반응에 티를 내지 않았다. 그러면서 세인트루이스에 도착한 도브 캐머런을 바라봤다.
도브 캐머런.
미국의 전형적인 하이틴 스타처럼 생긴 그녀는 160cm가 넘지 않는 작은 키의 여성이었다. 주 무기는 건틀렛으로 자그마한 체구와는 어울리지 않게 초 근접 전투를 선호하는 영웅이었다.
아무튼 8성 딜러답게 그녀 개인의 실력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좋은 편이었다.
‘하기야 그렇지 않았더라면 클랜 멤버들과 굵직한 악연으로 얽혀 있는 그녀를 섭외했을 리 없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이트 하우스 클랜이 그녀를 섭외했다는 것은….’
그만큼 【S】 난이도의 공략에 어울리는 딜러 영웅이 미국 내에서도 많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뭐, 아무래도 상관은 없었다. 8성 영웅이면 일단 기본은 할 테고, 기본만 해준다면 그녀를 데리고 던전을 공략하는 건 일도 아니었으니까.
물론, 그것도 못한다면 조금 곤란할 것 같지만. 일단은 믿는 수밖에.
“흐응…. 최선을 다해서 공략에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도브 캐머런은 민국을 보자마자 야릇한 신음을 흘리면서 내숭을 떨듯 고개를 꾸벅 숙였다.
동시에 달라붙은 하얀색 티가 살짝 벌어지면서 검은색의 속옷이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대놓고 섹스어필을 하는 그녀의 행동 때문일까? 주변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하지만 그런 도브 캐머런의 돌발행동에도 불구하고 민국은 굉장히 태연했다.
‘별명이 흑인 킬러라고 했던가?’
민국의 눈동자가 도브 캐머런에게 향했다. 듣기로는 수많은 남자들과 잠자리를 가지면서도 만족을 하지 못해 여러 남자를 만난다고 들은 것 같은데….
아무튼 그녀가 무슨 생각으로 자신에게 섹스어필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고작 이 정도의 도발에 얼굴을 붉힐 민국이 아니었다.
“저도 잘 부탁드려요.”
이어서 민국이 능청스럽게 손을 내밀자 도브 캐머런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녀는 민국이 남자 영웅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바로 수긍하는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민국은 일반적인 남성과는 달리 여자를 좋아한다는 소문도 돌고 있었다.
‘어라…?’
그렇게 민국의 손을 맞잡은 도브는 그의 힘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힐러 클래스로 공격대를 이끌고 십이 재앙도 쓰러뜨린 영웅이지만 딜러나 탱커로도 전투에 나선다는 소문이 거짓은 아닌 모양이었다.
‘뭔가 기분이 이상하네.’
자신과 필적하거나 그보다 살짝 못한 힘을 지닌 남성의 등장에 도브는 고개를 살짝 모로 꺾었다.
아무튼 잘생긴 남자는 손도 고왔다. 수많은 전투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처 하나 없는 부드러운 손은 계속해서 만지도 질리지 않을 정도였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 붙잡고 있고 싶지만….’
주변이 좋지 못했다. 아까부터 자신을 쳐다보는 화이트 하우스의 눈동자가 따가울 정도였다.
그 때였다.
갑자기 민국이 실수라도 한 듯 도브 캐머런의 손을 아래로 잡아당겼다. 동시에 그녀의 손이 자연스레 민국의 아랫부분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 실수. 힘이 조금 강하게 들어간 모양이네요. 아무튼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곧바로 손을 놓고 꾸벅 인사를 하며 물러나는 한민국.
“…?!?!?!”
그리고 본의 아니게 힘차게 솟아오른 민국의 물건을 살짝 만질 수 있었던 도브 캐머런은 머릿속으로 몇 개의 물음표를 만들어내며 민국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침을 꿀꺽 삼켰다.
“…….”
자신의 손끝에 느껴졌던 엄청나게 크고 단단했던 그것은 분명 남자의 물건이 틀림없었다.
‘라비아 맥퀸이 왜 마이클을 버리고 한민국에게 갈아 탔나 싶었는데….’
그의 잘생긴 외모 때문 만은 아닌 게 분명했다. 그렇게 민국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도브 캐머런의 눈동자가 요사스럽게 빛나기 시작했다.
* * *